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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 목사의 체험 한국 현대사 ①

‘찬탁론자’ 의심받던 이승만, 세력구축 위해 돌연 반탁운동 나서

  • 대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찬탁론자’ 의심받던 이승만, 세력구축 위해 돌연 반탁운동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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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용 목사는 ‘살아 있는 한국 현대사’다.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남북한을 두루 체험했고, 일본 제국주의, 미군정, 건국정부, 과도정부, 군사독재, 민주체제를 온몸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었다. 파란의 역사 고비고비에서 핵심적인 인물들과 교류, 접촉하면서 우리 현대사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 그가 ‘몸으로 쓴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역사 대담’을 연재한다. 신탁통치와 친일문제 등 광복 직후 정국에서부터 조봉암 사건 등 이념갈등, 박정희 시대, 1960∼80년대의 민주화 운동, 주요 정치인들의 행적, 남북관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가 강목사의 생생한 숨소리와 함께 다뤄질 것이다. 대화 사이의 괄호 안에 있는 설명은 대담자가 붙인 것이다.<편집자>
‘찬탁론자’ 의심받던 이승만, 세력구축 위해 돌연 반탁운동 나서
박태균 : 목사님께서 최근 발간하신 저서 ‘역사의 언덕에서’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처럼 현대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유익한 읽을 거리가 될 듯합니다. 그런데 현대사 연구자로서 좀 욕심이 생기더군요. 목사님께서 방대한 내용을 쓰셨지만, 몇몇 대목에서는 좀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아마 일반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한 부분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마침 ‘신동아’에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줬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 현대사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과 인물들을 중심으로 목사님의 소중한 증언을 듣고자 합니다.

강원용 : 좋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책을 통해 정리하긴 했지만 그리 체계적이진 못했어요. 더욱이 관련자료를 일일이 찾아보고 쓴 게 아니라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으며 쓴 것이라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번 기회에 현대사 전문가와 함께 다시 과거를 돌아보면서 제대로 된 기록을 남겼으면 합니다.

박 : 책 앞쪽에서는 이승만 박사와 신탁통치 반대운동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존의 평가와는 아주 다른 해석을 하셨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박사가 반탁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하셨는데요.

강 : 광복후 이승만 박사가 귀국했을 때만 해도 저는 그분을 거의 광신도처럼 지지했어요. 그 무렵 이박사 반대파가 ‘이승만은 일제시대에 해외에서 한반도의 신탁통치를 주장한 사람이다’는 얘기를 많이 퍼뜨렸습니다(실제로 이승만은 1920년대에 독립을 위한 방편으로 미국에 의한 위임통치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것이 이승만이 임시정부의 집정관 총재직에서 탄핵되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저는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알기에 이박사는 신탁통치에 대해 김구 선생이나 김규식 박사처럼 단호하게 반대하진 않았어요. 그는 신탁통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겁니다.

지지세력 없는 이승만의 선택



박 : 신탁통치가 발표된 시점에는 이박사가 어떤 태도를 취했습니까.

강 : 신탁통치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토론이 시작된 것은 1945년 12월29일 밤 김구 선생의 거처인 경교장에서 큰 모임을 가지면서부터였어요. 정당 대표들, 좌익, 우익, 중간파 할 것 없이 다 모였으니까. 남로당 사람들까지 다 나왔어요. 다들 아주 격해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우리가 왜 서양 사람 구두를 신느냐. 짚신을 신자. 양복도 벗어버리자”면서 흥분했어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입장이었어요. 송진우 선생만은 “침착하고 신중하게 대처하자”고 했지만. 이박사는 그날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당시 그는 신탁통치에 대해 담화를 낸 일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나서서 뭘 하자고 한 적이 없어요. 그분의 정치적 판단으로는 신탁통치를 반대할 생각이 없었던 듯합니다.

박 : 이박사가 예컨대 비상국민회의나 남조선대표국민의원 같은 데서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반탁운동을 이용한 측면이 있다는 말씀이죠?

강 : 제가 보건대 반탁운동이 고양되던 상황에서 누구도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안을 읽어보거나 면밀하게 검토한 사람이 없었어요. 방송만 들은 겁니다. 그저 다들 격해 있다가 모스크바 3상회의의 내용을 자세히 알게 되면서부터 달라진 겁니다. 남로당과 좌익에서는 3상회의를 지지하고 나섰고, 온건세력은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았어요. 이들이 3상회의 결정안에 반대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미소공동위원회를 열어 정당·사회단체 지도자들과 함께 한국에 어떻게 통일정부를 세울 것이냐를 논의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를 해도 미소공동위원회에 참가해서 하자는 것이었어요. 김규식 박사 계열이나 안재홍씨, 그리고 한국민주당까지도 미소공동위원회에 참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신탁통치 반대세력이 매우 강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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