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군관계(Civil-military relations)를 다루는 많은 논문이, 군의 역할이나 위상을 축소하는 것이 문민통제의 요체인 듯 주장했다. 군의 가치는 무시하고 그 부작용에만 주목한 까닭이다. 이는 국방변혁 과정에서 항상 제기되는 다음 질문과 관련이 깊다. 군은 왜 필요하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원론적으로 군은 무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 위해 존재한다. 민군관계가 항상 쉽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군과 시민사회는 운영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군이 민간처럼 운영된다면 국가가 부여하는 무력적 임무를 달성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군이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국민이 특정상황에서는 무력의 행사나 시위가 불가피하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력의 사용은 자칫 재앙을 부를 수 있으므로 군사작전의 기획과 실행, 훈련, 장비획득, 병력구성 등은 군사적·정치적 요소를 고려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2장] 정치와 군, 그리고 ‘통제’
군은 군사정책 결정과 집행의 기술적 측면에는 참여할 수 있지만 국가운영의 근본이슈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합의다. 그러나 역사에서 군이 정치에 개입한 사례는 많다. 이들은 대부분 국가수호, 헌법수호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문민통제는 이 부분에서 의미를 갖는다. 군은 경찰이나 소방대처럼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 중 하나다. 다른 기관처럼 군도 국가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군은 국방정책의 수립과정에 조언을 하고 그 집행을 담당해야 하지만, 의사가 보건정책을 만들지 않듯 스스로 국방정책을 만들지는 않는다.
군은 통수권자나 장관 개인이 아니라 그 직책에 복종한다. 이들이 국가를 대표하거나 권한을 위임받았기 때문이다. ‘문민통제(civil control)’와 ‘민간인 통제(civilian control)’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민간인을 자리에 앉힌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다. 문민통제를 달성하려면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스탈린과 후세인은 모두 민간인이었다.
민군관계는 나라마다 차이가 크다. 정치적으로 발전한 나라에서는 미세조정에 불과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국가의 장래를 좌우할 수도 있다. 군과 민간엘리트의 교류,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시민사회의 개입, 군과 시민사회의 잦은 접촉은 문민통제를 이뤄가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다.
[3장] 국방정책의 수립
국방정책은 정책 분류 단계상 국가정책, 대외정책, 안보정책의 다음에 위치한다. 국방정책은 집행의 영역, 수단의 영역이고 이를 통해 대외정책을 지원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반면 안보정책은 가장 복잡한 분야여서 외교부와 국방부가 긴밀히 협력하며 만들어가야 한다. 국가기관은 간혹 이견대립을 빚곤 하는데 전략적인 통찰력이 없으면 이를 해소하기가 어렵다.
부처간 견해조정 모델에는 중앙집중형과 권한분산형이 있다. 전자는 하향식(top-down), 후자는 상향식(bottom-up)으로 의견이 전달된다. 안보 분야에서는 대개 외교부가 사안을 책임지지만 실제상황에서 정책결정을 준비하려면 국방부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내각이나 정치적 통수권자가 국방정책상 주요결정을 내리면 군은 실행해야 한다. 군이 다른 정부부처의 사정에 정통한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정책집행의 지원과 실행에 큰 도움이 된다. 국방부의 민간관료는 외교부와의 조정을 한결 수월하게 만든다. 이들을 묶어 ‘정책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