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김태룡 한국행정학회장 인터뷰

MB는 역대 대통령처럼 정부개혁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05-31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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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정부 만든다면서 청와대 비대해져
    • 대통령과 장관의 ‘5분내 네트워크’ 없는 듯
    • 레임덕 불안에서 벗어나 부처에 재량권 줘야
    김태룡 한국행정학회장 인터뷰
    한국행정학회는 2010년 4월26일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등과 함께 ‘현 정부 2년 평가와 향후 국정운영 방향 심포지엄’을 주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부개혁 성과와 과제도 활발히 발표·토론되었다. 한국행정학회 김태룡(金泰龍·55·상지대 행정학과 교수) 회장에게 현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정부개혁론’‘한국정부론’이 전공이기도 했는데(한국행정학회 홈페이지) 질문요지를 e메일로 받아보고 8시간쯤 뒤 인터뷰에 응했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 초 11개 기관을 줄인 점에 대해 그는 예상과는 달리 “정부조직개편의 폭이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고 평했다.

    “盧, 활착이 안 되는 바람에”

    ▼ 현 정부 들어서 노무현 정부의 2원 18부 4처 18청 4실 10위원회가 2원 15부 2처 18청, 3실 5위원회로 축소 조정됐는데 대폭적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나요?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노무현 정부보다는 폭이 크지만 김대중 정부에 비하면 오히려 작은 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손대려다 저항이 많아 못한 측면이 있고요.”



    ▼ 노 전 대통령 성격이면 다소 저항이 있더라도 밀어붙였을 거 같은데요.

    “전(前) 정권인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너무 많이 손을 대놓아서…. 수술 부위가 서서히 아물 듯이 바뀐 정부조직들이 ‘활착’되려면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이런 이유로 노 전 대통령이 많이 못한 거죠. 우리 같은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을 말리기도 했고요. ‘부처를 없애고 만들고 하기보다는 기능의 재배분, 이런 쪽으로 관심을 두시라’고.”

    ▼ 현 정부 조직개편의 특징적인 부분이라면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기획재정부로 된 점,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과학기술부로 된 점, 정보통신부가 해체되어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에 분산된 점, 국정홍보처가 없어진 점,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내부 직제가 개편된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뀌고 나서 2년여가 지난 지금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지 평가를 한번 해주시죠.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은 ‘기능통합’에 주안점을 둔 것 같아요. 통합을 지향하다보니 외견상 부처는 주는 거죠. 기획과 재정을 합친 건 둘이 같이가는 게 효율적이라는 측면에서 괜찮았던 거 같아요. 실제로 기획재정부 출범 이후 긍정적인 측면이 나타나고 있고요. 그러나 과학과 교육을 합쳐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든 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과학이 길을 잃었다

    ▼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나요?

    “과학 쪽이 교육 쪽에 비해 덩치가 훨씬 작잖아요. 통합된 이후 아무래도 과학기술영역이 축소되는 경향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학은 어쩌면 우리 경제가 도약하는 데 가장 중요한데 과학이 행정서비스로부터 소원해지고 있는 거죠. 같은 이유로 정보통신부를 해체해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로 보낸 것도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거죠.”

    최근 정부출연연구소 등 연구기관들은 과학기술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없어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길을 잃고 있다고 말한다. 연구예산이 깎이거나 전략적 장기연구가 진행이 안돼 미래 성장 동력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동아일보 5월14일자 보도)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은 3월22일 과학기술부를 부활하여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학회장은 “방통위가 IT산업을 가져가기는 했는데 위원회라는 속성상 정책집행 기능이 원활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 정부가 정보통신부를 해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부는 ‘이제는 IT상황을 행정적으로 통제하고 관할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거죠. ‘우리는 큰 그림 쪽으로 가겠다’면서요.”

    ▼ 산업계의 반응은 어떠하다고 보나요?

    “IT업계가 중소기업이 밀집된 업계잖아요. 또 정통부가 독립부처로 있을 때 정부주도로 성장해온 것도 사실이고요. 정부조직개편 이후론 IT산업이 후퇴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와요. 생각보다 방통위가 작동을 못한다는 거죠.”

    김태룡 한국행정학회장 인터뷰

    2008년 1월31일 전직 과학기술부 장관들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찾아가 과학기술부 폐지에 반대하는 호소문을 전달했다.

    ▼ 지식경제부 쪽으로 넘어간 정통부 부분은….

    “그쪽도 역할이 줄어들긴 마찬가지라고 해요.”

    김 학회장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가 너무 이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국정홍보처는 현 정부 들어 문화체육관광부의 제2차관실로 축소되었는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이후 정부 내에서 홍보강화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조직형태는 그대로 둔 채 예산을 늘려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현 정부의 정부개혁 2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청와대의 비대화라고 했다.

    ▼ 노무현 정부 때도 문제가 됐었죠.

    “그때도 그랬는데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 정부조직개편을 하면서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거든요. 초기에는 청와대가 축소되는 양상이 보여서 비교적 바람직하게 개편되고 있다고 생각했죠.”

    ▼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앙정부부처는 정부조직법이나 국회 등 걸리는 게 있으니 잘 안 건드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꾸 청와대 조직을 늘리는 경향인 거죠. 출범 초기 NSC 사무처 해체할 땐 거의 NSC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후 안보문제가 자꾸 터지고 결정적으로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우리 국민이 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NSC 사무처 폐지에 대해 질타가 나왔잖아요. ‘너무 성급하게 없앴다, 외교에서 너무 실용만 따진다, 안보에 둔감하다’는 이런 내용이죠. 굳이 경계를 나눈다면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청와대는 서서히 기구를 늘리고 강화되어갔다고 봐요.”

    청와대는 2009년 8월 조직개편 및 인사를 단행했다. 이 개편으로 청와대는 1실장 8수석 4특보 체제에서 2실장 8수석 6특보 체제가 되어 실장직 1개, 특보직 2개가 새로 생겼다. 또한 수석과 비서관의 중간급인 기획관직도 늘었다. 정권 출범 당시엔 기획관 없이 1실장 8수석이 전부였다. 직책은 늘었지만 참신한 인물의 등용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측근들이 돌아가며 중요 보직을 맡는 ‘회전문 인사’ 우려가 나왔다.(국민일보 2009년 8월31일자 보도)

    ▼ 청와대 비대화가 갖는 조직론적 의미는 무얼까요?

    “대통령이 부처행정을 더 장악하겠다는, 직할통치를 하겠다는 의미죠.”

    ▼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행정부처를 단단히 장악하겠다고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정부조직개편과 청와대개편으로 나눠 설명이 가능한데 먼저 중앙정부 조직개편은 일종의 기능통합이어서 긍정적으로 볼 측면도 있다고 봐요. 그러나 청와대개편의 경우 ‘슬림화’가 기본 노선인데 임기 중반기로 오면서 상당히 비대해지고 있거든요. 이것이 왜 문제냐면 부처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니 청와대의 직제 비서관을 더 두어 부처를 보다 직접적으로 관할하겠다는 의도인데 그럴수록 대통령은 부처와 더 유리될 수 있기 때문이죠.”

    “역대 정부와 같은 길 걷고 있다”

    ▼ 청와대의 비대화는 비단 특정 정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죠.

    “역대 정부가 똑같은 길을 걸었어요. 임기 중반 정도를 지나면서 권력누수를 최소화하고 행정부를 확실하게 통제하겠다면서 청와대의 몸집을 키웠죠.”

    ▼ 대통령에게 이익만 주지는 않는다는 거죠?

    “청와대의 비대화는 다른 말로 청와대 참모 기능의 비대화인데 이렇게 되면 각 부처의 장은 참모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이로 인해 각 부처의 청와대 의존경향성은 더 높아지죠. 반면 부처의 자율성, 부처 간 자유로운 경쟁은 감소합니다.”

    ▼ 위기대처능력은 어떻게 될까요?

    “조직이 비대해졌다고 위기대처능력이 좋아지는 건 아니죠. 이번에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을 때 청와대는 어떠했나요? 대통령에게 보고된 걸 국방부 장관이 늦게 보고받고 대신 대통령은 보고는 받았지만 집행능력을 행사하지 못했죠.”

    김 학회장에 따르면 정부조직은 대통령이 각 부처를 실행력 있게 장악하여 의미 있는 정책효과와 실적을 내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각 부처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이나 대통령 입장에서는 참모일 뿐이다. 다만 장관은 청와대 참모와는 달리 실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 참모다.

    대통령이 부처의 모든 공무원을 지휘하거나 모든 사업에 세세히 관여할 수 없으므로 대통령은 장관을 통해 목적하는 성과를 내도록 한다. 대통령과 장관 간의 긴밀한 의사소통, 장관의 소신 있는 재량권 행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학회장은 대통령과 청와대는 레임덕 불안에서 벗어나 부처에 충분히 재량권을 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청와대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행정부의 정책기능이 감퇴되어 비효율이 되기 쉽다는 교훈을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 그렇다면 대통령과 장관은 어느 정도 가까운 위치에 있어야 할까요?

    “사건이 터지면 5분 내에 대통령이 장관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고 봐요. 현 정부에서는 이게 잘 안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안보문제에 관한 한 현 정부는 대북 실용외교보다는 내부의 유기적 네트워크 환경 조성이 더 시급했어요.”

    ▼ 이명박 정부는 초기 정부조직을 줄여 절감된 예산을 복지에 투입하겠다고 했는데 조직개편에 따른 예산절감 효과는 어느 정도라고 보나요?

    “장관 자리가 좀 줄었으니 그만큼의 인건비는 줄겠죠. 그러나 일정시간이 지나면 통합 전 기능이 부활되는 게 다반사죠. 정권이 끝날 때쯤이면 예산 증감에 큰 차이가 없어요. 조직개편으로 예산절감 효과를 보겠다는 건 단순한 생각입니다.”

    ▼ 그렇다면 민간부문과 관련한 정부조직개편의 의미는….

    “기능상으로 이 일이 국가가 나서야 할 일인지, 아니면 기업이나 민간이 나서야 할 일인지를 판단해 불요불급한 정부기능은 기업과 시민사회로 이관하는 게 정부조직개편의 실질적 의미겠죠. 정부 내 통폐합 차원만이 아니라요.”

    ‘작은 정부’ 아니라 ‘더 큰 정부’

    ▼ 역대 정부도 방만함을 줄이기 위해 개혁을 추진했으나 대체로 실패한 것 같은데요.

    “김대중 정부는 IMF경제위기와 함께 출범했기 때문에 정부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말기엔 오히려 늘어났어요. 노무현 정부 땐 더 비대해졌고요. 정부기능의 민간이양도 거의 없었고 되레 정부역할을 더 키워놓았죠. 어느 정권이든 정부를 구조적으로 개편해 조직과 인원을 줄이고 예산을 절감한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부개혁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나요?

    “이명박 정부는 ‘큰 시장, 작은 정부’를 정부개혁목표로 내세우는데 글로벌 경제위기로 국가경제가 위축된 탓도 있지만 ‘큰 시장’을 구현했다고 보기는 어렵죠. 초기에는 ‘작은 정부’의 모습이 나타났지만 임기 중반에 들어 그런 모습도 별로 보이지 않아요. 청와대는 몸집이 점점 불어나 부처의 자율성을 압박하고 있죠. 정부기능의 민간이양도 거의 된 게 없지 않나요? 오히려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정부기능을 확대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있죠. 예산상으로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 ‘더 큰 정부’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 금융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은 있다고 하지만.”

    ▼ 총리실에선 국무조정실장직이 없어졌는데….

    “그외엔 노무현 정부와 비교해 별로 달라진 게 없죠. 국무총리의 역할이나 기능도 전 정권 때와 비슷하고요.”

    ▼ 현 정부의 두 총리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글쎄요. 한승수 전 총리는 아시다시피 자원외교 등 경제기능으로 권능이 한정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정운찬 총리는 다소 운신의 폭을 넓혀 정치적 총리 역할을 하려고 하는데 현재로서는 한 전 총리와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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