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전경련·대한상의·무협·삼성이 보수진영 ‘스폰서’'

6·25, 8·15 국민대회의 가려진 진실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3-09-25 18: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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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련·대한상의·무협·삼성이 보수진영 ‘스폰서’'

    광복절에 열린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와 ‘신동아’가 입수한 8·15 국민대회 결과보고 자료 중 예·결산 관련부분

    보수단체들은 올들어 3·1절과 6·25, 8·15를 맞아 모두 세 차례 국민대회를 열었다. 하나같이 경찰 추산으로도 참가자가 최소 1만5000명에서 최대 11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중집회였다. 이때문에 한국 보수진영을 개관하기 위한 취재과정 내내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 하나가 있었다. 바로 행사비용과 관련한 것이었다. 국민대회 주최측인 각 집행위원회는 행사 개최에 필요한 재원을 어떤 경로를 통해 마련한 것일까.

    이는 국민대회를 성금 등 국민들의 자발적인 ‘십시일반’으로 개최했다고 유독 강조해온 보수진영의 ‘순수성’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매우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8월29일 ‘반핵반김 국민대회 청년본부’가 개최한 광화문 집회에서 이날 동원된 멀티비전과 행사장 무대시설 등을 조선일보 계열사측이 지원했다는 의혹을 MBC TV ‘PD수첩’(9월2일 방영된 ‘우익 총궐기?’편)이 보도하자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는 “왜곡보도”라며 MBC측에 대해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할 것이라 밝히기도 한 터였다. 신대표는 9월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조선일보측으로부터 단 한푼도 지원받은 게 없으며 거의 모든 행사비용은 청년본부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신동아’의 취재 결과 6·25 및 8·15 국민대회 집행위원회는 재원의 상당액을 삼성그룹과 경제단체들로부터 지원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먼저 각 국민대회별 행사비용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8·15 국민대회 결과보고 자료 입수

    국민대회 개최비용은 한 회당 2억∼3억원 이상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세 차례의 국민대회는 모두 각 대회별 집행위원회가 신문에 국민대회 개최 광고를 낸 뒤 광고에 밝힌 은행계좌를 통해 국민성금을 모아 개최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신동아’가 입수한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 결과보고 자료를 파악해본 결과 사실은 그와 달랐다. 해당자료는 8·15 국민대회 집행위원회측이 9월4일 서울 타워호텔에서 비공개로 연 ‘8·15 국민대회 결과보고 모임’에서 참석자 50여 명에게 배포한 것이다. 당초 기자는 9월5일 8·15 국민대회의 집행실무를 담당했던 자유시민연대 한 핵심간부에게 이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자료내용 중 예·결산관련 부분을 절단한 뒤 간략한 대회 총평이 담긴 부분만 건네줬다. 하지만 기자는 예·결산관련 부분을 다른 경로를 통해 입수했다. 자료의 예산관련 부분을 보자. 자료엔 ‘성금총액 3억749만1060원(이월금 2438만4860원 포함), 지출총액 2억5507만7280원, 잔액 5241만3780원’으로 기재돼 있다. 잔액은 곧 그만큼 흑자가 났음을 의미한다.

    이번엔 결산관련 부분. 여기엔 ‘대회임원(국민대표, 자문위원, 집행위원)들의 분담회비 실적은 6·25 국민대회(50%)에 비해 저조(40.5%)한 실적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새로 영입된 인원 등으로 전체인원의 확대 및 일부 임원의 외면에 기인한 것임. 그러나 전체 임원의 납부액은 6·25 행사(3050만원)에 비해 25% 증가(3810만원)하였으며 종교단체의 실적은 현저하게 저조한 반면, 경제단체의 성금액은 6·25 행사 때보다 3000만원이 더 많았음’이라 기록돼 있다. 대회임원의 분담회비는 1인당 30만원. 이는 집행위원회 내부사항이므로 하등 문제될 게 없다. 종교단체의 실적이 저조하다는 부분도 8·15 국민대회가 기독교계의 광범한 참여없이 보수단체들만의 참여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경제단체의 성금액’이란 부분이다. 자료에 언급된 경제단체는 어디를 지칭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자유시민연대측은 “이전 집행위원회(6·25 국민대회 집행위원회)로부터 5000여 만원을 이월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자료에 언급된 경제단체는 어디어디를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그냥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등으로만 이해해달라. 액수는 1억3000만원쯤 된다”고 잘라 말했다. 기자가 접촉한 보수단체 인사들은 예산문제를 거론하자 한결같이 “대외비”라며 경계하는 반응을 보였다. 행사 후원단체의 명칭이 외부로 노출될 경우 후원금이 대폭 줄어들지도 모를 우려 때문이었다.

    경제단체가 아닌 다른 외부단체의 지원은 전혀 없었을까. 8·15 국민대회 집행위원회측은 “대기업 지원이 전혀 없었다”고 밝히면서도 국민성금의 세부 명세는 일절 확인해주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것은 앞서의 자료에 언급된 ‘특정기업의 다액성금’이란 부분이다. 자료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명시돼 있다. ‘(8·15 국민대회의) 전체 성금액은 6·25 행사 때의 특정기업의 다액성금을 제외하면 비슷한 실적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번 행사는 1억여 원을 절감하고도 이월금 2400여 만원을 제외한 2800여 만원을 또다시 이월하는 흑자행사였음.’

    그렇다면 ‘다액성금’은 얼마이며 그 출처인 ‘특정기업’은 대체 어디일까. 기자는 ‘퍼즐 맞추기’에 나섰다. 그리고 취재과정에서 접한 보수단체의 한 핵심인사를 통해 ‘특정기업’이 삼성그룹이며 ‘다액성금’은 1억원이란 사실을 어렵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자료에 나타난 ‘1억여 원을 절감하고도’란 부분과 액수가 일치한다. 즉 6·25 국민대회 때보다 1억원의 수입이 줄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교차확인이 필요했다.

    후원금 지원 여부를 묻는 기자에게, 삼성 구조본 관계자는 “금시초문이다. 협찬담당자에게 문의해보니 (6·25 국민대회를 지원한) 그런 사실이 확인이 안 된다고 한다”고 간략히 답했다. 전경련 홍보팀 관계자 역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전혀 없으며,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전경련의 공식 입장은 ‘지원하지 않았다’로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했다.

    “다른 데는 못주던데 삼성은 주더라고”

    과연 그럴까. 기자는 9월6일 봉두완(68) 광운대 석좌교수(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와의 전화통화에서 삼성그룹은 물론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대한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들이 6·25 국민대회 때 지원금을 내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봉두완 교수는 6·25 대회 때 재정위원장을 맡아 대회 당시의 재정상황을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통화내용.

    -6·25 국민대회 때 재정위원장을 맡으셨는데, 당시 국민성금을 모집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산이 모자라 삼성측으로부터 1억원을 지원받고….

    “그건 나중에 마이너스가 나는 바람에 개인적으로 얻어왔죠.”

    -그러면 원래는 성금…(이때 갑자기 통화가 끊어져 그의 휴대전화 번호로 재통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어, 전화가 갑자기 끊어져버렸네요. 내가 어디 좀 가는 길이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6·25 대회 때는 원래 성금이 얼마나 들어왔나요?

    “뭐, 어느 정도 들어왔는데 하여튼 마이너스가 8400만원 정도 났어요.”

    -국민대회 하고 나서요?

    “예, 하고 나서요.”

    -그러면 국민대회 한 뒤에 협찬이 들어온 거네요?

    “예, 뭐 (협찬을) 했는데, 자세한 액수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돈이 모자라) 목사님들 한 열 분이 500만원 정도씩 모으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게 또 안 됐어요. 그래서 내가 어디에 가서 좀 구해왔죠.”

    -어디서요? 현명관 (전경련) 상근부회장 통해서요?

    “삼성에서 구해왔어요.”

    -현명관 부회장이 아니고 삼성에서요?

    “예, 현명관씨는 4000만원만 줬어요, 전경련 이름으로. 처음엔 한 2억∼3억원쯤 기대하고 나하고 재향군인회장이 같이 찾아갔는데, 그랬더니 내부적으로 좀 복잡했나봐. 그래서 거기서 일하는 전무가 내가 발이 넓으니까 자기네 혼자만 하는 건 좀 이상하다 이거예요. 그래서 상공회의소, 무역협회와 같이 하는 게 명분도 좋겠다…무슨 얘긴 줄 알죠? 요즘 기업주들…무슨 얘긴 줄 알죠? 그래서 거기서 1억원을 해줬어요, 세 군데 합쳐서….”

    -그럼 그 경제단체들은 후원을 해주면서 보수단체들의 행사 취지에….

    “(보수단체들의 6·25 국민대회 취지에) 찬동을 하면서 한 2억∼3억원 해줄 생각을 하다가 잘 안 된 셈이죠.”

    -삼성 쪽도 국민대회의 취지에 동의한 건가요?

    “동의를 한 거겠죠, 내가 달라니깐…. 내가 상황설명을 했죠. (행사비용이) ‘펑크’ 났는데 남들이 보면 이게 무슨 꼴이냐고? 그래서 다른 데(기업)는 현 정권 무서워서 못하니까 삼성이 좀 해달라고 했더니만 OK해주더라고.”

    -그럼 (삼성) 구조본 쪽에 찾아갔겠네요?

    “거기 있는 이학수씨(삼성기업구조조정본부장)를 내가 잘 알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하고 친하잖아요, 고등학교 1년 선후배간이고…. 그래서 안심하고 주던데 다른 기업에선 100만원도 못 주더라고.”

    -그럼 결과적으로 (‘펑크’를 메우고 남은 돈으로) 흑자를 만들어 8·15 국민대회 집행위원회에 이월해준 거네요.

    “한 3800만원쯤 남겨줬죠. 내가 재향군인회 회계과장한테 도장을 맡겨서 거기서 입출금을 다 했죠.”

    -최정석 재향군인회 안보연구소장 말씀이시죠?

    “예, 왜냐하면 재향군인회하고 같이 (국민대회를) 주관했으니까. 3·1절 국민대회 때 (결산과 관련해) 약간의 잡음이 있었다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는 감사보고까지 다 했어요.”

    봉두완 교수의 이같은 답변은 6·25 국민대회 당시 기획위원장을 맡았던 최정석 재향군인회 안보연구소장의 답변과 거의 일치한다.

    6·25 대회 수입 3억8500만원

    최소장은 9월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장부를 보고 말해주겠다”고 한 뒤, “6·25 대회 때의 수입은 3억8500만원, 지출은 3억5600만원으로 2800여 만원 흑자가 났는데 대회 이후 신문에 사례(謝禮) 광고를 내기 위한 비용 300만원을 뺀 2500여 만원을 8·15 대회 집행위원회에 이월해줬다”고 답했다. 그는 또 “당초 6·25 대회 때 국민성금 모금실적이 저조해 대회가 끝난 뒤 적자가 나서 봉두완 당시 재정위원장이 협찬을 받아왔다. 삼성그룹이 1억원, 전경련이 4000만원, 상공회의소가 3000만원, 무역협회가 3000만원을 각각 지원해줬다”고 후원금 명세를 소상히 밝혔다.

    최소장은 또 “후원한 단체들은 애국시민단체들이 자유민주체제를 수호해야 기업의 성공도 보장된다는 행사 취지에 동감한 것으로 안다”며 “3·1절 대회는 우리가 주관하지 않은 만큼 정확한 수입지출 명세를 알 수 없지만, 국민성금 모금실적이 좋아 거의 성금과 군소단체의 후원금으로만 행사비용을 충당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봉두완 교수와 최정석 소장의 말 사이엔 약간의 오차가 있다. 봉두완 교수는 8·15 대회 집행위원회측에 이월해준 액수가 ‘3800만원’이라 답변했지만, 최소장은 ‘2500여 만원’이라 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실제 회계업무를 맡았던 당사자가 최소장이었고, 그가 장부를 직접 봐가며 기자에게 얘기해줬음을 감안하면, 그의 말을 더 신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6·25 대회가 개최된 지 2개월이 훨씬 지났으니 봉두완 교수의 기억과 실제 장부 사이엔 어느 정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삼성그룹과 경제단체가 분명히 금전적 지원을 했다는 사실이다.

    대회비용 절반 이상이 후원금

    이로써 6·25 및 8·15 국민대회 집행위원회측이 삼성그룹과 경제단체들로부터 행사비용을 지원받은 사실은 명백해졌다. 즉 6·25 대회 집행위원회는 삼성그룹과 경제단체들로부터 합계 2억원을, 8·15 대회 집행위원회는 경제단체들로부터 1억3000만원을 지원받은 것이다. 이는 대회 개최비용으로 밝혀진 3억5600만원(6·25 대회)과 2억5507만7280원(8·15 대회)의 절반을 웃도는 ‘매우 긴요한 자금’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이나 경제단체들이 보수단체의 대규모 행사를 후원하지 말라는 법은 물론 없다. 문제는 국민들의 광범한 지지에 힘입어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음을 강조해온 보수단체들이 이처럼 재정적인 투명성을 상당 부분 결여한 ‘이율배반’에 있다.

    더욱이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는 9월5일 기업의 정치적 목적 이용과 부당한 정치자금 제공을 금지하는 내용의 이른바 ‘자정선언’을 통해 기업의 재산이나 조직·인력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점을 공언한 바 있다. 비록 보수진영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정치성 자금으로 볼 것인지 여부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국민대회가 일정한 정치적 이념성을 띤 행사였다는 점에서 자신들과 ‘코드’가 비슷한 보수단체에 지원금을 내줬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허문도 전 통일원 장관이 8·15 국민대회 당시 작성한 궐기사엔 이런 대목이 포함돼 있었다. ‘(상략)…재벌기업이 좌익들의 잡지에 광고를 주어, 좌익들의 준동을 음성적으로 지원하는 자본주의 국가는 지구상에 대한민국말고는 없습니다…(하략).’ 이에 대해 허 전 장관은 9월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진보 성향의) 월간 ‘말’지 등에 포스코 등 대기업의 광고가 게재되는 걸 보라. 일본의 경우 기업들이 사회당이나 공산당 등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발행하는 매체에 그 어떤 광고도 싣지 않는다”며 궐기사에 해당 대목을 넣은 취지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경제단체들의 후원금을 받은 보수진영은 비슷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신동아’는 이념적 편향성을 가지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자칭 ‘진보’를 외치면서도 은밀하게 ‘구태’를 답습하는 보수진영의 ‘퇴행’을 지면을 통해 적시할 뿐이다. 이런 지적은 ‘신동아’가 지난 9월호에서 현대자동차가 재야운동권 출신 386들에게 해외연수를 지원해준 사실을 보도한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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