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싱글족 천태만상 라이프스타일

미래보다는 현재, 고독은 친구, 섹스는 선택, 취미는 필수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3-09-26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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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족 천태만상 라이프스타일
    “이제 겨우 직장에서 자리잡았는데 결혼하기는 싫어. 아무래도 결혼하면 여자는 가사 등 신경 쓸 게 많으니까. 난 당분간 결혼할 계획이 없어. 혼자 살면 자유롭지, 하고 싶은 일 모두 할 수 있지, 돈 버는 대로 나를 위해 재투자할 수 있지. 얼마나 좋아?”

    “그래서 독신주의자야?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음... 나이가 들면 해야지. 마흔 넘어서도 혼자 살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 텔레비전에서 독거 노인들의 처량한 모습을 보면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내 인생이 50세까지라면 결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우리 인생은 너무 길어. 마치 보험에 들 듯 결혼하는 게 아닌가 싶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싱글 여성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내용이다. 요즘 싱글족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싱글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 즉 싱글의 수는 1985년 66만1000여 가구에서 2000년 222만4000여 가구로 15년 만에 세 배 이상 늘었다. 2020년에는 전체 가구의 21.5%가 1인 가구, 즉 5명 중 1명이 싱글로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 속에서 너도나도 싱글족을 외치고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지금 결혼하지 않으려는 것일 뿐 나이가 들면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싱글을 추구하면서도 싱글로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35세 이상, 혼자 산 지 10년 이상 된 싱글들의 실제 삶은 어떨까. 이들은 싱글을 하나의 삶의 형태로 ‘선택했고’ 자신의 선택을 당당하게 드러낸 최초의 세대라 할 수 있다.

    클래식 공연기획사 미추홀을 18년째 운영하고 있는 전경화(49) 대표. 그는 16년째 혼자 살고 있는 싱글이다. 그는 결혼보다 자신의 일인 음악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18년 동안 350회의 음악회를 열었어요. 음악회를 준비하는 동안은 주인공인 연주자에 대한 생각밖에 하지 않았죠. 어떻게 하면 연주자를 돋보이게 할 수 있을지, 좋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다보니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영어회화, 스키, 테니스, 꽃꽂이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그는 지금도 1년에 4차례 이상 장기간 여행을 다니며 자유를 만끽한다.

    “저희 때만 하더라도 여성의 사회활동 비율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어요. 그래서 여자들은 일하는 남자들이 대단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죠.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막상 남자들과 일하다 보니 남자들이 유치하고 매력이 없더라고요. 주뼛주뼛하고 상사의 말 한마디에 꽁지를 내리고 의협심도 없이 아부만 하고. 저보다 잘났다는 느낌을 주는 남자가 없었어요. 또 사회생활을 오래하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잖아요. 저만해도 회사 대표다 보니, 과장인 남자와는 만나기가 힘들더라고요(웃음). 남자측에서도 그렇고요.”

    결혼정보회사 (주)선우에서 만혼팀을 담당하고 있는 김보형 대리는 “싱글 여성들의 경우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오히려 결혼하고자 하는 열망이 줄어든다”고 귀띔했다.

    “그때쯤 되면 직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자신의 일이나 삶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돼요. 또 집 한 채 소유할 정도의 경제력도 갖추게 되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자신보다 뒤처지는 남자와 결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즉 부모, 친지 등의 손에 이끌려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기는 했지만, 본인에겐 결혼자체에 대한 열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호주제를 비롯한 결혼제도의 불합리성도 30∼40대 싱글 여성을 증가시킨 또 다른 이유다. 현재 비혼동거(非婚同居) 중인 그래픽 디자이너 A(36)씨가 그런 케이스다.

    “제 자신이 아닌 누구의 처가 되어야 하는 결혼제도가 싫었어요.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 되는 것이 싫다고 했고요. 서로 합의 하에 동거중입니다.”

    그는 내년 중으로 아이를 가질 계획이다. 아이를 낳고 양육할 권리가 모두 여성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아이를 낳아 자신의 호적에 입적할 생각이다.

    마산 MBC PD이자 ‘나는 일부일처제가 싫다’의 저자 임혜숙(45)씨는 ‘돌아온 싱글’이다. 그는 2001년 12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후에야 비로소 정상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현재 딸 셋을 혼자 키우고 있는 그는 며칠 전 ‘일가’를 창립했다.

    “결혼하면서 제 호적이 아버지에게서 남편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이혼을 예감했어요(웃음). ‘본 적’도 없는 곳이 제 ‘본적’이 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여겨졌고요. 이혼 후 아버지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분가’했습니다. 현재 제가 호주이고 제 밑으로 딸 셋이 등재돼 있습니다.”

    그는 이혼하고 나서 사람들을 만날 때 좋은 점만 보게 됐다고 강조했다. 남편의 경우 배우자로 바라봤기 때문에 모든 것이 완벽하기를 바랐고 자연히 남편에게 실망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니 어떤 사람을 만나든 약점보다는 장점만 보게 된다는 것.

    한편 30대 중반 이후 싱글남성은 여성에 비해 그 비율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 이들이 싱글을 선택한 이유는 자유 추구와 가족 부양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일은 결혼하면 오히려 잘할 것 같아요. 또 부양가족이 있으니까 연말정산도 많이 받고 세금도 적게 내지요. 아내가 재테크를 해주니까 재산 불리기에도 유리하고요. 하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양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결혼한 친구 하나는 주말에 일부러 잔다고 털어놓더군요. 괜스레 깨어 있어 봐야 돈만 쓴다나요. 자녀 교육비 때문에 살기가 빠듯한데 가족들과 외출했다가 지출이라도 하게 되면 한 달 살림살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면서. 또 다른 친구는 요즘 유행하는 노래, 영화, 드라마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렇게 찌들어 사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신문사 기자인 B(39)씨는 장남에 집안 종손이다. 그런만큼 부모로부터 결혼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고 한다. 그는 신문사 일 외에도 주말에 외국인을 위한 관광 가이드를 하는 등 부업도 하고 있다. 또 다양한 동호회 활동을 통해 취미생활도 만끽하고 있다.

    “전 50세 전후가 되면 세계 여행을 떠날 계획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벌 수 있을 때까지는 열심히 벌어두려고요(웃음).”

    “평생 한 남자와의 섹스는 가혹한 일”

    싱글의 삶에 경제력은 필수. 마음껏 놀 수 있는 자유 역시 경제력에서 나온다. 실제로 35세가 넘어간 싱글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웬만한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 이에 따른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전경화씨는 미추홀을 운영하면서 ‘밥 벌어먹기’가 힘들었다면 결혼을 했을 거라고 털어놓았다. 일이 잘돼 돈벌이가 됐기 때문에 혼자 살아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

    “싱글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족이나 생계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까 정말 훌륭하지만 국내 인지도가 떨어지는 음악가의 공연도 과감히 기획했거든요. 그래서 손해본 적도 있었지만 대박을 터뜨린 적도 많았죠.”

    싱글의 낭만과 자유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코드는 바로 자유로운, 아니 자유로울 수 있는 성(性)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싱글 남성 C씨는 “결혼생각이 없기 때문에 쿨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와만 성관계를 가진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제가 싱글이고 당분간 결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여성으로서도 저와 편하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미혼이지만 애인을 통해 성적 즐거움을 얻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해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3년 이상 가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 후로는 정으로만 산다는데. 왜 그 좋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번만 느끼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죠? 전 결혼하면 분명 바람을 필 것 같아요(웃음). 저는 결혼이라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만나는 여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만약 요즘 여자들이 결혼하기 전에 성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면 싱글을 주장할 수 없었을 거예요.”

    싱글족 천태만상 라이프스타일
    예술품 수출입업을 하고 있는 40대 초반 여류사업가 D씨는 사업상 외국에 자주 나가는데, 가는 곳마다 적당히 ‘즐길’ 만한 남자친구들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남자친구들하고 섹스를 한다는 건 아닙니다(웃음). 그 중에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과는 섹스도 즐기지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없어질 수도 있는 건데, 결혼하면 평생 한 남자와, 그것도 세월이 흘러 사랑이 사라져버린 남자와만 섹스를 해야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죠.”

    싱글족들은 성욕이란 집착할 것도, 억압할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산 MBC 임혜숙 PD는 “누구랑 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이랑 할 것인가”로 인식을 전환하면 성 문제도 말끔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자위기구를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이성에 대한 두려움,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 등을 버리고 편하게 이성친구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이혼 후 남자후배와 함께 섹스숍에 가서 자위기구를 샀어요. 제 성감대는 제가 더 잘 아니까 오히려 기구를 이용하면 성관계를 가질 때보다 더 오르가슴을 느끼곤 합니다. ‘누구랑 섹스를 해야 하냐’를 걱정하게 되면 아무래도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라는 개념을 ‘무엇’으로 바꾸면 내가 능동적으로 섹스 라이프를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성은 문란해도 안 되지만 무조건 억압할 것도 아니거든요. 성욕이 생기면 내가 주체가 되어 남자를 만날 수도 있고, 안 되면 자위기구를 이용할 수도 있고, 다른 취미활동을 하면서 풀어버릴 수 있는 겁니다.”

    싱글남성의 경우 매춘 여성과도 쉽게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C씨는 매춘 여성은 싱글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유부남들이 많이 찾을 거라고 주장한다.

    “매춘 여성은 스릴이 없어요. 돈만 주면 바로 할 수 있는 성관계는 정말 매력이 없거든요. 싱글의 장점은 자유로롭게 사랑할 수 있다는 건데, 매춘 여성을 만날 시간에 사랑할 수 있는 여성을 만나도록 해야죠.”

    하지만 대다수 싱글들은 “섹스말고도 할 일은 너무도 많다”고 말한다. 인터넷 쇼핑몰 마케팅 팀장을 맡고 있는 싱글남성 E(47)씨는 마라톤 마니아다. 그는 퇴근 후 근처 공원에서 매일 1시간여를 달린다. 또 요즘은 통기타와 포크댄스를 배우고 있다. 일이 바쁜데다가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다 보면 그다지 섹스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실 나이가 들면 섹스 생각도 덜해져요(웃음). 게다가 정신없이 뛰다가 집에 들어오면 자고만 싶지 전혀 섹스 생각이 나지 않죠. 섹스하고 싶지 않을 때 안할 수 있는 것도 싱글의 장점 아닌가요?”

    화려한 삶 뒤의 절대고독

    하지만 싱글의 삶이 이처럼 쿨하고 풍요롭고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절대고독’과 ‘외로움’이라는 복병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혼자 잘살면 결혼해도 잘산다’의 저자 임계성(45)씨는 26세 때 결혼해 3년 만에 헤어진 후 15년을 혼자 살아온 여성. 아이가 없기 때문에 100% 싱글생활을 즐겼다는 그지만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의논할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친구가 무척 많은 편이에요. 지금도 ‘술 마시자’ 하면 뛰어나올 친구들이 꽤 있지만 결정적일 때는 저 혼자예요. 또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이들을 볼 때, 레스토랑에서 단란한 가족이 식사하는 광경을 볼 때 외로움이 가슴에 사무치죠.”

    싱글들을 위한 커뮤니티 쏠로닷컴(www.ssolo.com)의 남기주 (38)대표는 며칠 전 사귀던 여자와 결혼했다. 20세 때 처음 결혼해 아들을 낳았고 26세 때 이혼했다는 그는 10여 년을 혼자 살며 아들을 키워왔다. 재미있고 자유롭지만 그만큼 외롭고 불편한 삶이 바로 싱글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나이 들어서 혼자 산다는 것, 특히 이혼 후 혼자 사는 것은 절대고독과의 싸움입니다. 이혼하면 곧 새로운 사람을 만나 연애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가볍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만남을 바란다면 더욱 힘들어지죠. 이혼 후 5∼10년이 지나도록 한 남자도 사귀지 못하는 여자도 많아요. 남자의 경우도 술집 여자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힘들죠. 특히 저처럼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외로움이 커집니다. 다행히도 저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됐지만요.”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덜해진다고 주장하는 싱글도 많다. 30대 초반일 때 외로움이 극대화되고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그런 감정은 무뎌진다는 것.

    “둔해지는 거죠. 또 내가 선택한 외로움이기에 즐기려는 측면도 강해요. 남편이 있는데도 외로운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요?”

    마산 MBC 임혜숙 PD의 이야기다.

    싱글족 천태만상 라이프스타일

    싱글 가구, 얼마나 늘었나 (자료 : 통계청)

    그러나 정작 이들을 외롭게 하는 것은 싱글에 대한 편견이라고 한다. 특히 35세 이후 싱글 여성의 경우 결혼시장에서 배제되고 더 이상 연애할 수 없는 나이가 됐다는 일반적인 편견만으로도 불안해진다고 한다.

    미추홀의 전경화 대표는 “35세가 넘어가면서 결혼을 포기했어요. 요즘은 다르지만 저희 때만 해도 여자 나이 서른다섯이면 결혼시장에서 배제되는 것을 의미했거든요. 영화 ‘죽어도 좋아’처럼 70이 넘어서도 사랑할 수 있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싱글은 사생활이 문란하다?

    이혼했을 경우 이혼에 대한 악의적 편견이 이들을 더욱 괴롭힌다고 한다. 임계성씨의 이야기다.

    “이혼 후 한동안은 너무나 자유롭고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점점 외롭고 심심해지더라고요. 결혼한 친구들과도 멀어졌고요. 한 친구는 남편이 대놓고 이혼한 저랑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했다더군요. 자기 부인을 물들일까봐, 아니면 혼자 사는 여자는 성적으로 문란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지.”

    임씨는 방송국 작가로 일하던 시절 항상 자신을 편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 상사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방송국 일로 야근을 하게 되면 차장은 항상 ‘미스 임은 집에 가야 기다릴 사람도 없는데 일이나 하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24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언젠가는 ‘여자 혼자서 넓은 아파트에 살면 외롭지 않나? 우리 집보다 크다던데’라고 말했죠. 혼자인 여자라고 꼭 단칸방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한술 더 떠 ‘혼자 사는 사람들은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정말 뺨 한 대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회사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하면 ‘혼자 사는 여자가 돈 쓸 데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기 일쑤고, 은행에서는 ‘독신녀라 대출이 어려우니 담보를 설정하라’는 등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동양화가 F(42·여)씨는 웬만하면 집 근처에서 남자와 단 둘이 있지 않는다. 친하게 지내던 남자 친구에게 무거운 짐을 옮겨달라고 집으로 불렀다가 이웃들로부터 “누가 서방인지 몰라”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 이후 그는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남자들에게 잘 못하면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하고, 잘하면 헤픈 여자라 비아냥대죠. 실수나 잘못을 해도 내가 싱글이라서 그런 것으로 봐요.”

    남성잡지 GQ코리아 편집장 이충걸(40)씨 역시 싱글남성이라고 하면 성적으로 문란할 것으로 여기는 편견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그는 “40세 전후가 되면 직장에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면서 일에 푹 빠져 생활하다 보면 섹스에 대한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섹스에 관해서는 싱글이든 기혼자든 상대방 입장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싱글 입장에서는 공인된 섹스 파트너가 있는 기혼자가 부럽고, 기혼자 입장에서는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싱글이 부럽죠. 기혼자가 그렇게 하면 간통이 되니까(웃음). 그래서 흔히 싱글이면 성이 문란할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 일하고 들어오면 피곤해서 자기 바빠요.”

    싱글 여성의 경우 오히려 성적 억압을 받는 경우도 있다. 38세의 독신여성 G씨는 며칠 전 난소암 제거수술을 받았다. 난소암은 성생활이 전혀 없는 독신여성이 걸리기 쉬운 병. 성관계가 전혀 없었던 그는 예전부터 이유 없이 아프고 신경성 위장병, 생리불순 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이젠 정말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못한다고 하니 너무 기막히고 허무하다”며 울먹였다.

    좋은 친구, 다양한 취미는 필수

    중년의 싱글은 새로운 사고와 전통적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40대 중반의 싱글여성인 디자이너 H씨. 그는 38세 때 결혼했으나 4년 만에 헤어졌다. 이유는 그가 결혼 후에도 싱글 때처럼 똑같이 일했기 때문. 남편 뒷바라지보다 자신의 일이 우선이었던 그에게 남편은 ‘결혼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결국 이들은 헤어지고 말았다.

    “저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으면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 후 일과 가사가 겹치게 되니 일을 선택한 거죠.”

    그는 얼마 전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 모두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함께 살고 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동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혼인신고를 했다.

    “저나 그 사람이나 주로 보수적인 상류층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하거든요. 그래서 일 때문에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누구와 함께 산다’ 보다는 ‘누구의 부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사실상 100%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독신녀’ ‘이혼녀’ ‘동거녀’라는 소리를 듣거나 얕잡히기 싫어서 혼인신고를 한 거죠. 이혼했을 때도 주변사람들에게 굳이 이혼사실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고요. 요즘 친구들처럼 쿨하지 못한 거죠.”

    그렇다면 절대고독과 싱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며 당당히 싱글로서 중년을 살아가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지난 8월30일 서울 강남의 한 호프집에서 인터넷 싱글족 커뮤니티인 독신자의 방, 솔로베이(www.solobay.com)의 모임이 있었다. 30대 중반에서 40대에 이르는 싱글 100여 명이 모였다.

    “사실 싱글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을 하거든요. 아무래도 결혼한 친구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까 주로 싱글들끼리 모이게 돼요. 솔로베이를 만든 이유도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당한 싱글들끼리 모여 재미있게 살아보자는 거죠. 솔로베이에는 춤, 노래, 통기타, 마라톤, 등산 등 소규모 마니아 모임이 있어 다양한 취미활동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솔로베이의 운영자이자 싱글여성 이승옥(40)씨의 이야기다.

    이날 모임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무대에서 춤 소모임 멤버들이 살사댄스를 춰 큰 호응을 받았고 통기타방 멤버 두 사람이 나와 듀엣곡을 선사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말미에는 댄스 타임이 주어졌는데, 사람들 대다수가 무대로 나와 열정적인 춤을 선보였다.

    “싱글 생활을 잘하려면 좋은 친구와 다양한 취미활동은 필수입니다. 싱글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무척 외롭게 느껴지고 일종의 우울증을 겪기도 하지요. 특히 싱글 여성들 가운데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참 많습니다. 싱글 생활도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편견 없어져야 행복

    방송사에 근무하는 싱글남성 I(44)씨는 솔로베이에 가입한 지 석 달밖에 안된 새내기. 하지만 번개모임이나 여행에 자주 참여하고 통기타 소모임 방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싱글을 선택한 이상 업그레이드된 싱글 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싱글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 역시 싱글들 사이에서 화두일 수밖에 없다. 아무도 자신의 건강을 챙겨주지 않는 싱글로서는 몸이 아플 때 가장 외롭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몸 관리에 철저하다.

    잡지사에 근무하는 싱글여성 J(36)씨는 일이 끝나면 항상 요가를 배우러 간다. “컴퓨터 작업이 많은 직업이라 그런지 목과 어깨가 뻐근하고 종종 심한 두통이 있었는데, 요가를 한 이후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그는 식사도 주로 유기농 건강식을 선호한다. 싱글남성 C씨도 아침저녁으로 비타민을 꼭 챙겨먹는다.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영양소와 그것을 함유하고 있는 음식에 대해 쭉 늘어놓는 그의 영양 상식은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방송에서 제 나이 또래인 사람들이 나올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저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저랑 동갑인 경우가 많거든요. 아무래도 혼자 살고 고민을 덜하다 보니까 또래들보다 젊어 보이는 것 같아요. 특히 비타민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피부에 탄력이 생겨 더 젊어졌다고들 합니다.”

    싱글족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하기보다는 현재를 마음껏 즐긴다. 신문사 기자 B씨는 “나중에는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지도 몰라요. 사람의 감정은 바뀌는 거니까. 하지만 나중 일을 걱정하면서 현재를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또 세월이 흘러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할 겁니다. 40이든, 50이든 사람을 만나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GQ코리아 이충걸 편집장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저도 언제든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고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은 저보고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제일 늙은 아빠가 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얼굴에 주름이 없는 편이에요. 다른 아빠들보다 젊어 보일 자신도 있고요. 알고 보면 미래에 대한 걱정들은 매우 사소한 것이죠. 그런 두려움으로 결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무엇보다도 싱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없어져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예를 들어보면 싱글은 현행 입양법에 따라 자녀 입양이 불가능하다. 대한사회복지회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입양을 문의해오는 싱글이 무척 늘었다. 하지만 입양법에 따라 아이는 부모가 다 있는 가정으로만 입양시킬 수 있다. 싱글남성이나 여성은 ‘결손가정’으로 분류돼 입양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싱글, 즉 ‘1인 가구’를 정상적인 가정으로 보지 않는다는 증거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현미 교수는 “과거엔 싱글을 결혼을 앞둔 미완의 단계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젠 주체적으로 선택한 다양한 삶의 양식의 하나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모든 개개인은 1인 생계 역할 밖에 할 수 없어요. 결혼을 해서 잘살려면 남녀 모두 동등한 파트너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해요.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까지도 남자에게는 생계부양자의 역할을, 여성에게는 가정수호자의 역할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남성은 과도한 책임의식, 여성은 자기희생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는 거죠. 이들이 현실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것은 결혼 거부 밖에 없고 이런 사회구조가 유지된다면 싱글족은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소설가 장정일씨는 “우리 사회는 행복도 유니폼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삶의 유형을 만들어놓고 그것만이 행복한 삶이라고 규정해버린다는 것. 취재 중 만난 싱글들은 언론에서 만들어낸 것처럼 화려하지도, 일반적인 편견처럼 비참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단지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유니폼이 아닌 다른 모양의 행복이라는 옷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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