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강원랜드

옛 탄광 터의 씁쓸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0-01-08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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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당포와 모텔과 노래방으로 뒤덮인 사북과 고한은 아이 울음소리 들리고 문화 예술이 춤추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모할 것이다.
    강원랜드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다. 그것도 정확히 경기도와 강원도를 구분하는 영동고속도로 섬강교를 지나면서부터다. 마치 ‘강원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하듯.

    섬강교의 우안, 강원도 권역에 속하는 산비탈엔 ‘예스 평창, 2018 동계 올림픽!’이란 거대한 입간판이 서 있다. 두 차례의 좌절, 그럼에도 다시 강원도는 2018년 동계 올림픽 유치에 나섰다. 만약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때 ‘평창!’이란 외침을 들으면, 그야말로 강원도는 ‘예스 평창!’을 드높이며 다각도의 로드맵을 실천해나갈 것이다. 그때까지 저 섬강교 산비탈에 기립한 입간판은 제몫을 다하고자 찬바람을 몇 번은 더 맞아야 할 것이다.

    #오후 3시, 영월과 사북 사이

    눈은, 그리고 또 거짓말처럼, 영동고속도로를 버리고 중앙고속도로에 올라 남하하는 차량을 향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앞선 차량의 후미가 안전거리를 요구하는 비상등의 점멸로 반짝거리고, 그에 맞춰 기나긴 행렬이 서서히 주춤거린다. 눈발은, 제천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나 영월로, 또 거기서 이번 취재의 최종 목적지인 사북으로 힘겹게 지향하는 행로 앞으로 아득하다. 와이퍼가 뻑뻑 소리를 지르면서 차창을 연신 닦아냈는데도 강원도의 눈은 방문자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러다가 문득, 사북이 나타난다. 사실은 이렇다. 강원도 남부 지역 도로 사정은 사통팔달 교통망을 가진 이 나라에서도 손꼽힐 만큼 열악하다. 제천을 시작점으로 해 영월과 정선의 여러 마을을 거쳐 태백을 찍은 후 동해로 빠져나가는 이 38번 산악도로는 해발 1000m 넘는 험준한 산령 사이의 깊은 골짜기에 놓은 것으로 과거 탄광 산업이 활황일 때도 일직선 행로가 여의치 않았다.



    그 후, 그러니까 이 일대 여러 곳이 폐광하고 그에 따라 정든 마을을 떠나 서울이며 부산 같은 큰 도시 변두리 시민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는 더욱이 도로 확충에 대한 민간의 요구가 드물었는데, 21세기 이후 전국 교통망의 일반적 확충 정책에 더하여 이 일대의 관광 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강이며 골짜기를 감아 도는 곡선의 옛 도로 대신 일직선의 신설 도로 공사가 착착 진행되어 마침내 이번 가을엔 최악의 난공사를 마치고 영월에서 사북을 거쳐 태백으로 넘어가는 국도가 순조롭게 개통을 본 것이다.

    신작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38번 국도 문곡에서 사북 사이가 4차선으로 확장 개통됐다. 국토해양부는 2015년까지 태백~동해 간 25.4㎞를 준공할 계획도 세웠다. 이 공사를 완료하면 충북 제천에서 동해의 바다까지 4차선의 교통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국토부가 38번 국도에 깊은 관심을 쏟은 직접적 원인은 강원 남부권 폐광지역 활성화와 고원 관광자원 개발 촉진에 있다. 충북 제천에서 강원 태백에 이르는 동서 4차로 확장은 이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 2006년 12월 제천과 영월 사이, 그리고 사북과 태백 사이를 완공했는데, 영월에서 사북에 이르는 34.6km를 올가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전체로 보건대, 비교적 짧은 거리의 국도 확장 공사를 2000년 12월 착수해 정확히 10년에 걸쳐 마무리한 셈인데, 이 기나긴 시간과의 싸움은 강원 남부 일대 험준한 산령과 그 속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를 집약해 보여준다.

    잠시 38번 국도를 벗어나 골짜기마다 들어선 작은 마을 사이로 들어가본다. 옛 함백광업소로 인해 오직 그곳의 석탄과 태백선을 잇고자 조성한 함백선 옛길을 따라 예미에서 함백까지 올라가본다. 폐광은 자연스레 철길의 폐선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작은 기차역들의 폐업으로 연결되는데, 손바닥만한 함백역 또한 모든 열차가 무정차 통과하는 쓸쓸한 역사로 남고 말았다. 하지만 이 작은 역사는 우리 철도사(史)에 있어, 그리고 강원도 역사에서 작지만 의미 가득한 과정을 거쳤다. 2006년 10월 말 정선군이 지역 주민과 상의 없이 역사를 철거했다가 가까스로 회복한 일이 그것이다. 철거 이후, 해당 지역주민이 함백역 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다양한 방식의 모금과 지원으로 마침내 2008년 6월9일 기공식을 가졌다. 이후 국가기록원이 함백역을 포함한 이 일대를 ‘기록사랑마을 1호’로 선정하면서 함백역은, 이 지역 역사와 삶과 추억을 담은 소중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강원랜드

    사북 동원탄좌 터(왼쪽), 1981년 정동광업소 가스폭발사고.

    다시 차를 돌려 사북으로 향하다보면, 민둥산역이란 낯선 역이 나타난다. 옛 이름은 증산역인데, 이 지역의 주산인 민둥산이 대처의 산행객에게 널리 알려졌고 또 가을의 억새풀을 보려고 꽤 많은 사람이 찾는 덕분에 2009년 9월 옛 이름 대신 민둥산역으로 개명한 것이다.

    이처럼 지금 강원 남부 여러 마을은 탄광이라는 오랜 숙명을 한편으로 되새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확장하거나 개명하거나 증개축하면서 필사적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름이 바뀐 민둥산역에 서서 한참이나 증산마을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38번 신작로를 타고 사북으로 향한다.

    #오후 4시30분, 사북

    사북에 이르는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고산준령의 허리를 일직선화한 국도를 따라 줄기차게 달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램프를 타고 국도의 아랫마을로 급하게 내려가는 형세다. 이 일대 수많은 마을 지형이 이와 비슷하다.

    함백, 증산, 고한, 태백 등 이 강원 남부 마을은 골짜기 아래에 형성됐고, 그 위로 하늘을 여러 조각으로 구분하는 고산이 첩첩하며, 그 중간 탄광을 주 목적지로 삼는 태백선이며 함백선 같은 철로가 오랜 세월 동안 산허리를 가로질러 달렸으되 이제는 4차선으로 확장된 38번 국도가 그 반대편 산허리를 관통하며 내달린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함백역이나 민둥산역도 모두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허리에 위치했다. 사북이나 고한의 기차역 또한 마찬가지다.

    4차선으로 확장된 신작로를 따라 터널을 지나고 가파르게 오르막을 오르고 일렬횡대의 준령 사이를 질주하면 느닷없이 램프가 나타나는데, 그리하여 사북은 산 아래로 펼쳐지는 것이다. 12월 초, 눈발은 더욱 거셌고 차는 제동거리를 한참이나 어기며 미끄러졌으며, 간신히 들머리 신호등에 멈췄을 때, 사북은 오래전 필름 속 이미지가 아니라 이 산간 오지에 기이한 형체로 들어선 숙박업소와 노래방, 전당포, 음식점 간판이 서로 어깨싸움을 하며 난립한 형상을 보여준다. 탄광 산업의 요충이었다는 기록이나 한때 폐광지로 스산했다는 뉴스는 화려한 네온사인의 점멸과 함께 사북의 과거로 사라졌다.

    사북은, 최근 3년 사이 서너 차례 방문한 기억까지 합해 말하건대, 언제나 조금은 들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주말이면 차량이 밀려들고 저녁이면 사람이 분주하게 왕래하며 그 위로 네온사인 불빛이 사북의 로터리를 중심으로 도로와 골목의 끝까지 명멸한다. 12월 초의 주말은 더욱 그 들뜬 분위기가 바이러스처럼 확산해 있었다. 겨울 레저의 꽃인 스키가 시즌을 맞이한 바람에 어느 곳에서나 과장된 웃음과 언성을 터뜨리는 젊은이들의 울긋불긋한 아웃도어 복장이 사북의 거리를 메웠다. 떠들썩하면서도 어딘가 스산한 사북의 거리 위로 눈이 내렸으나, 이내 진창에 처박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오후 6시, 강원랜드 카지노

    강원랜드

    사북역 풍경.

    그곳에 강원랜드가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강원랜드는 법인명이고 2007년 6월 ‘하이원리조트’라는 브랜드로 론칭해 지금은 이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마도 카지노 때문일 것이다. 강원랜드는,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데다 이 시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부정적 사건 때문에 강원랜드 대신 하이원리조트를 론칭해 복합 레저 타운의 면모를 내세우려고 한다. 기존 카지노 시설에 더하여 스키장을 비롯한 다양한 레저 문화 시설을 확충해 ‘리조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업 운영이 가능해진 현실적 이유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카지노는 폐광지역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강원도가 주도한 범국가적 ‘탄광지역개발 촉진지구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조성한 것이다. 그 시작은 1994년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육성에 관한 법률’의 제정·공포 이후이며 이에 준거해 1995년 12월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이 제정·공포돼 내국인 출입 카지노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에 따라 1998년 6월 법인을 설립했고 이듬해 스몰카지노호텔을 착공해 2000년 10월 개장했다.

    이 과정에서 도저히 생략할 수 없는 강력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법적 근거 확보와 실제 공사의 진행에 있어 이 지역 주민들의 필사적 사투가 있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이 일대의 삶은 황량하고 피폐했다. 폐특법만이 유일한 탈출구였고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자 지역 주민들은 목숨 걸고 싸웠다. 대개의 싸움이 그렇듯 그 속에는 수많은 이해가 상충했고 중앙정부, 지방정부, 각 지역 기관과 단체 그리고 삶의 처지가 조금씩 다른 주민들 사이에 숱한 갈등과 반목이 있었으며 그 여진은 사북과 고한 일대에 지금도 아득하게 번져 있다.

    그렇기는 해도 카지노라는 산업 형태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울 만큼 절박했다. 이 산업에 대해 공인된 도박이란 오랜 관념이 있고 또 이를 극복하고자 건전한 게임이란 설정으로 도덕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도 있었거니와 중요한 것은 해당 지역 주민에게 이 같은 개념의 긴장은 오히려 나른한 말의 유희일 뿐, 그 선입관이나 이미지에 있어 카지노보다 더 꺼림칙한 방사능폐기물처리장까지 유치하려고 했던, 그 생존의 열망뿐이었다.

    강원랜드

    강원랜드 음악분수(왼쪽)와 카지노 객장.

    나른한 유희

    이후 강원랜드는 2003년 4월 메인 호텔, 카지노, 테마파크를 공식 개관해 멀티 리조트 시설로 변신을 꾀했고 2005년 골프장, 2006년 하이원 스키장 및 콘도 개장으로 카지노 대신 복합 리조트로서의 가능성을 더욱 확산해가고 있다.

    1998년 입사해 10여 년 세월을 아낌없이 이 검은 땅의 변화와 함께 한 강원랜드 홍보팀 박은희(37) 대리는 “수많은 부작용과 일부 편견에도 카지노가 이 지역 발전에 기여한 건 틀림없다”고 말한다. 평생직장 삼아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1990년대 말, 사북의 풍경은 밤마다 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곳이었다. 곧 허물어질 것만 같은 사택과 방치된 기계와 주인 잃은 신발이 널린 곳이었으나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 정확히 그 사자성어가 들어맞는 변화가 일어났다.

    카지노를 중핵으로 한 관광 레저 산업은 지난 10년간 3조5000억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2000~09년 8월 강원랜드의 중앙재정 기여액만 관광기금 6765억원, 국세 1조1470억원이다. 지방재정 기여액은 폐광기금 5302억원, 지방세 1322억원. 관광기금은 카지노 매출의 10%, 폐광기금은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의 20%를 납부한다.

    #오후 11시, 카지노 객장

    깊은 밤 카지노, 이 공간은 10년 세월과 그 사이 경제 유발 효과 혹은 이 일대 주민의 삶 변화와 상관없이, 어쨌든 깊은 밤 객장에 미만한 공기는 무표정한 긴장, 바로 그것이다.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보는 떠들썩한 공기의 울림이란 아직 이 내국인 카지노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겨울의 주말, 스키장을 목적지 삼아온 가족, 친구가 밤 여흥으로 카지노에 들르는 예가 많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강원 남부의 산간 오지에 들어선 카지노에 흐르는 공기는 무겁게 내리눌린 갑갑함을 주조로 한다.

    특히 따로 설치한 흡연실의 공기는, 단순히 담배 연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삼삼오오 여흥 삼아 들른 여행객조차 이 흡연실 안에 들어서면 압도적 공기에 짓눌려 잠시 대화를 멈춘다.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유리창 너머 게임기와 테이블과 딜러와 그 주변에 몰려든 이들을 바라본다. 아마도 잠시 유리창 밖 누군가는 답답함을 못 견디겠다는 자기 몸의 간절한 호소를 받아들여 이 흡연실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하루저녁 즐기는 거죠. 종자돈 5만원으로 서너 시간 했나. 주변에선 선방했다고 하네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중년남자(47)의 말이다. 가족과 스키장을 찾았다가 저녁 먹고 잠시 들렀다고 한다. 아이들은 야간 스키를 타러 갔고 아내는 콘도에 머물면서 쉬기로 했으므로, 원래부터 온몸으로 힘써야 하는 레포츠에 큰 관심이 없던 그는 셔틀버스 타고 카지노에 놀러온 것이었다.

    “다 자기 마음먹기 아니겠어요? 당구 한 게임 치고, 맥주 한잔 마셔도 5만원인데, 반나절 이만큼 즐겼으면 된 거죠. 5만원이 10만원 되고, 그게 또 100만원 되면 그 순간부터 도박이죠. 나는 이젠 올라가서 잘랍니다.”

    그는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빤 후 흡연실을 나갔다. 그와 엇갈려 두 사람이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왔고 나는 객장으로 나갔다. 슬롯머신 960대가 객장을 채웠고, 그 사이로 테이블 게임이 설치돼 있다. 테이블마다 게임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어깨 틈으로 이 신경전을 관찰한다. 영화 속 카지노의 수다, 미소, 환호는 아직은 강원랜드의 몫이 아니다.

    테이블영업팀 이새롬(28) 주임은 7년차 딜러다. 고등학교 다닐 적 딜러를 꿈꾸었고, 강원관광대 카지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강원랜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인간 저마다의 수많은 욕망을 매일같이 만난다. 딜링 경진대회에서 룰렛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할 만큼 실력파인 이 주임은 카지노가 뒤집어쓴 편견이 예전보다 크게 개선됐다고 말한다. 신출내기 딜러 때는 게임 규칙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은 일부 고객의 과도한 요구나 언성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요즘은 게임을 즐기는 고객이 늘어서 일하기 수월하다고 한다.

    거울 시계 유리창

    강원랜드 고객지원팀 김성진(37) 주임은 “카지노는 도박 속성이 분명하게 있지만 건전한 레저 문화로 정착시키려고 다양한 노력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외 카지노 시설엔 이른바 3무(無)라고 해서 거울, 시계, 유리창을 설치하지 않는데, 강원랜드 객장은 이 세 가지를 어느 방향에서나 볼 수 있게끔 했다고 한다. 물론 그것으로서 도박 속성을 결코 무시하기 어려운 이 욕망의 대리전이 한순간에 게임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을 반사해 보여주는 거울이나 시공간의 혼란을 방지하는 시계, 유리창을 설치했다는 것은 강원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엿보게 한다.

    이 같은 기대는 비단 강원랜드만의 노력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 곧 욕망의 배설과 관리라는 측면에서 조절되는 문제일 것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합리성에 대한 기대가 추락하고 있다. 예측 가능한 삶의 행로와 질서가 비합리적 요소에 의해 굴절한다. 지금 누군가 도박에 빠졌다면 기본적으로 그 당사자의 처신과 상황에 따른 것이지만 그 수가 날로 증가하고 그 형태 또한 본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양태로 번져간다면 이는 개인의 욕망을 사회의 큰 틀이 조절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강원랜드는 자구 노력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000년 개장 이후 금품수수와 폭행, 회사기금 횡령 등으로 징계받거나 법적으로 처벌받은 예가 끊이지 않았다(‘신동아’ 2009년 6월호 ‘불법·탈법의 온상 강원랜드 대해부’ 제하 기사 참조) 최근엔 환전팀 여직원이 80억원을 횡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9개월 남짓한 기간 날마다 100만원권 수표 뭉치를 횡령했다는 건 당사자의 용의주도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강원랜드의 허술한 장치가 범죄를 부추긴 것이다.

    강원랜드 최영 사장이 11월10일 직원들의 부정비리를 근절하고자 ‘내부부정 사건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직원의 고약한 행동 때문에 이미지를 쇄신하지 못하는 것은 강원랜드 처지에선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겠으나 어쨌든 그와 같은 사건이 카지노 안에서 벌어진 것임은 틀림없는 일이다. 게임 부정, 영업 매뉴얼 위반, 배임수재, 경력 위변조 등으로 인한 이용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늘고 있으며, 더욱이 그 소송에서 강원랜드가 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도 강원랜드가 이를 악물고 도덕성을 일신해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오전 2시, 고한역

    강원랜드
    흡연실의 답답한 공기와 객장의 시끄러운 기계음을 피해 폭설이 내린 호텔 정문을 나서자 택시가 서너 대쯤 보인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나서 숙소로 올라갈 예정이었지만 다가온 택시가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갑자기 새로운 용무라도 생긴 듯 고한역으로 가자고 했다.

    “숙소를 그쪽으루 잡으셨드래요? 역 앞에 그냥 내려드리면 되나.”

    택시운전자는 검은 점퍼 차림으로 역에 데려다달라는 나를 카지노 고객으로 판단한 듯했다. 차창 밖으로 폭설은 그쳤지만 내리막길은 오히려 얇게 얼어붙었으므로 기사는 조심스럽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고한역 아래에 택시는 섰고, 나는 택시의 후미등이 사라지고 나서야 고한역으로 올라갔다.

    미지근한 커피

    깊은 밤, 여객 기차가 왕래할 일이 없고 거무튀튀한 화물열차만이 눈밭을 헤치며 지나갈 뿐이지만, 그 작은 역사 안엔 후줄근한 행색의 중년 남자들이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역사 안 휴게실에선 텔레비전 소리가 왕왕거렸고, 대여섯 줄의 벤치에는 한눈에도 이 깊은 밤의 추위를 안온한 방에서 피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이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이 비좁고 허름한 공간에 모인 다섯 명의 남자를 모두 카지노에서 빈털터리가 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리 베팅으로 연명하는 카지노 앵벌이나 그마저 신통치 않아 거리를 배회하는 카지노 노숙자가 사북과 고한에서 중요한 지역 문제로 떠올랐음은 틀림없다. 이들이 하나같이 개인적 처신의 부주의로 인해 신세를 망쳤다고 지적한다면 우리는 정말 너무나 야박한 사회에서 사는 것이다. 폐특법에 따라 카지노 시설을 유치할 때부터 이와 같은 일은 예상된 것이었고, 지난 10년 카지노 역사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자체와 강원랜드가 더욱 근원적인 처방과 대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역사 한구석 자판기로 걸어갔다. 지폐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커피 흐르는 소리가 쪼르르 들리는 사이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 역시 커피 한 잔을 마실 작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나는 거스름 버튼 대신 한 잔을 더 뽑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좁은 역사에서 서너 걸음 떨어진 채 미지근한 커피를 마셨다. 성에가 낀 역사 바깥으로 줄지어 늘어선 숙박업소 네온사인이 깜빡거린다.

    #오전 11시, 옛 동원 탄좌

    강원랜드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왼쪽). 2009년 8월 사북석탄문화제 때 인기를 끈 광차 탑승 및 갱도체험.

    당신이 만약 스키든 카지노든 그 어떤 욕망과 일탈을 위해 사북에 당도했다면, 어색하게 치장한 굴다리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길로 곧장 스키장이나 카지노로 가지 말고 잠시 들를 곳이 있다.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부지.

    강원랜드가 위치한 곳은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일대인데, 이곳은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저장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2004년 11월 폐광한 이 지역의 옛 생활 모습과 광부의 노동 현장 및 장비를 보존, 복원해 문화공간을 꾸렸다. 문화제 기간 중엔 광차(인차)를 타고 2.2㎞ 지하 갱도를 둘러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는 강원랜드와 한국메세나협회가 기틀을 마련하고 공공미술가 네트워크인 공공문화예술A21이 마련한 ‘지역 공동체형 공공미술 사업’의 일환이다. 이 같은 사업은 일시적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2011년까지 3년간 지속하면서 사북 지역의 역사와 유물과 생활상을 온전히 복원해나갈 계획이다.

    이처럼 사양길에 들어선 탄광 지역의 역사와 자연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고자 하는 노력이 일고 있거니와 영국의 뉴캐슬, 일본의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등이 탄광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폐광을 첨단 예술 공간이나 온천 관광지로 탈바꿈한 사례가 있다. 아마도 그 대표 격이 스페인 북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일 것이다. 이 퇴락한 도시에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데, 이에 자극받은 프랑스는 1억5000만유로를 투자해 북부 폐광 도시 랑스에 루브르 미술관 분관을 지을 계획이다.

    그와 같은 규모나 기획은 아니지만 강원 남부 탄광 지역은 문화와 관광을 접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사북, 고한 지역에 상주하면서 주민과 더불어 문화적 삶을 도모하는 ‘창작 레지던스’를 벌이고 있으며, 정선군 또한 2010년부터 33억원을 들여 함백광업소 일대 탄광촌을 관광자원으로 꾸밀 계획을 수립했다. 태백시 역시 황연동 태안광업소 한보탄광 부지에 허브공원을 조성한다.

    운탄길(運炭路)

    강원랜드 초입의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부지에 들어서면 이제 더는 효용이 없어진 탄광의 잔재가 더 많은 애착과 관심을 기다리며 겨울의 찬바람을 견디고 있다. 여름 한철 몰려왔던 발길은 뜸해졌지만 이따금 옛 추억을 되새기는 가족이나 연인이 소요하면서 사진을 찍거나 광업 일에 소용되는 화차며 기계를 만져본다.

    막장이라고 했던가. 전 생애를 던져 깊은 갱도 속으로 들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고된 일들이 이제는 재생하고 복원해야 할 관광자원으로 떠오르는 것은 매우 권장할 일이면서도 아직까지는 어색하다. 나날의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며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광부들의 탄차에 올라타 호들갑스럽게 사진이나 찍는 일도 아직은 매우 거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는 해도 삶은 지속돼야 하고 이 일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백운산이며 함백산 일대의 운탄길(運炭路), 그러니까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 80여 km나 되는데, 아마도 그 고행의 길 역시 요즘의 걷기 열풍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나들이 코스로 변하게 될 것이다. 화절령에서 만항재로 이어지는 해발 1200m의 운탄길 역시 그런 관점에서 주목받을 것인데, 그 길 아래로 강원랜드 스키장과 카지노와 골프장이 있다. 또 그 아래에는 여전히 이 지역 삶의 가장 밑자리에 놓인 사북과 고한의 삶이 버티고 서 있다.

    머지않아 사북과 고한, 이 검은 땅에선 문화예술의 각별한 지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삶이 영글어갈 것이다. 지금은 전당포와 모텔과 노래방으로 뒤덮인 사북과 고한이지만 문화와 복지 시설이 늘어나고 교육 환경이 개선되며 예술가들이 거처하고 잠시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귀향하는, 빈 터 위에 새집 들어서고 아이 울음소리 들려오는 마을로 거듭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제천으로 뻗은 38번 국도에 올랐다. 눈은, 밤새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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