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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종횡무진 공간읽기 ⑦

강원랜드

옛 탄광 터의 씁쓸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강원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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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 한구석 자판기로 걸어갔다. 지폐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커피 흐르는 소리가 쪼르르 들리는 사이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 역시 커피 한 잔을 마실 작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나는 거스름 버튼 대신 한 잔을 더 뽑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좁은 역사에서 서너 걸음 떨어진 채 미지근한 커피를 마셨다. 성에가 낀 역사 바깥으로 줄지어 늘어선 숙박업소 네온사인이 깜빡거린다.

#오전 11시, 옛 동원 탄좌

강원랜드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왼쪽). 2009년 8월 사북석탄문화제 때 인기를 끈 광차 탑승 및 갱도체험.

당신이 만약 스키든 카지노든 그 어떤 욕망과 일탈을 위해 사북에 당도했다면, 어색하게 치장한 굴다리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길로 곧장 스키장이나 카지노로 가지 말고 잠시 들를 곳이 있다.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부지.

강원랜드가 위치한 곳은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일대인데, 이곳은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저장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2004년 11월 폐광한 이 지역의 옛 생활 모습과 광부의 노동 현장 및 장비를 보존, 복원해 문화공간을 꾸렸다. 문화제 기간 중엔 광차(인차)를 타고 2.2㎞ 지하 갱도를 둘러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는 강원랜드와 한국메세나협회가 기틀을 마련하고 공공미술가 네트워크인 공공문화예술A21이 마련한 ‘지역 공동체형 공공미술 사업’의 일환이다. 이 같은 사업은 일시적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2011년까지 3년간 지속하면서 사북 지역의 역사와 유물과 생활상을 온전히 복원해나갈 계획이다.

이처럼 사양길에 들어선 탄광 지역의 역사와 자연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고자 하는 노력이 일고 있거니와 영국의 뉴캐슬, 일본의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등이 탄광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폐광을 첨단 예술 공간이나 온천 관광지로 탈바꿈한 사례가 있다. 아마도 그 대표 격이 스페인 북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일 것이다. 이 퇴락한 도시에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는데, 이에 자극받은 프랑스는 1억5000만유로를 투자해 북부 폐광 도시 랑스에 루브르 미술관 분관을 지을 계획이다.



그와 같은 규모나 기획은 아니지만 강원 남부 탄광 지역은 문화와 관광을 접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사북, 고한 지역에 상주하면서 주민과 더불어 문화적 삶을 도모하는 ‘창작 레지던스’를 벌이고 있으며, 정선군 또한 2010년부터 33억원을 들여 함백광업소 일대 탄광촌을 관광자원으로 꾸밀 계획을 수립했다. 태백시 역시 황연동 태안광업소 한보탄광 부지에 허브공원을 조성한다.

운탄길(運炭路)

강원랜드 초입의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부지에 들어서면 이제 더는 효용이 없어진 탄광의 잔재가 더 많은 애착과 관심을 기다리며 겨울의 찬바람을 견디고 있다. 여름 한철 몰려왔던 발길은 뜸해졌지만 이따금 옛 추억을 되새기는 가족이나 연인이 소요하면서 사진을 찍거나 광업 일에 소용되는 화차며 기계를 만져본다.

막장이라고 했던가. 전 생애를 던져 깊은 갱도 속으로 들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고된 일들이 이제는 재생하고 복원해야 할 관광자원으로 떠오르는 것은 매우 권장할 일이면서도 아직까지는 어색하다. 나날의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며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광부들의 탄차에 올라타 호들갑스럽게 사진이나 찍는 일도 아직은 매우 거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는 해도 삶은 지속돼야 하고 이 일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백운산이며 함백산 일대의 운탄길(運炭路), 그러니까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 80여 km나 되는데, 아마도 그 고행의 길 역시 요즘의 걷기 열풍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나들이 코스로 변하게 될 것이다. 화절령에서 만항재로 이어지는 해발 1200m의 운탄길 역시 그런 관점에서 주목받을 것인데, 그 길 아래로 강원랜드 스키장과 카지노와 골프장이 있다. 또 그 아래에는 여전히 이 지역 삶의 가장 밑자리에 놓인 사북과 고한의 삶이 버티고 서 있다.

머지않아 사북과 고한, 이 검은 땅에선 문화예술의 각별한 지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삶이 영글어갈 것이다. 지금은 전당포와 모텔과 노래방으로 뒤덮인 사북과 고한이지만 문화와 복지 시설이 늘어나고 교육 환경이 개선되며 예술가들이 거처하고 잠시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귀향하는, 빈 터 위에 새집 들어서고 아이 울음소리 들려오는 마을로 거듭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제천으로 뻗은 38번 국도에 올랐다. 눈은, 밤새 그쳐 있었다.

신동아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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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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