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확 달라진 기업연수 풍속도

사회봉사·100km 지옥행군·연극 공연·‘미션 임파서블’

  • 글: 이가연 자유기고가

    입력2003-09-26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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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수원에 입소시켜 빡빡한 일정으로 수험생 공부시키듯 하는 것이 일반적인 신입사원 연수 풍속도다.
    • 그러나 최근 들어 기업 연수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이색적인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있는 것. ‘튀는 기업’에서 ‘튀는 연수’를 받은 신입사원 5명의 이색 체험기.
    확 달라진 기업연수 풍속도

    강릉에서 ‘사랑의 집짓기 운동(해비타트)’에 참여하고 있는 이랜드 신입사원들

    비취색 남해안을 낀 전남 여수시. 7월13일 이랜드 신입사원 김지헌(32)씨와 일행 5명은 이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바다는 아름다웠지만 피서를 즐길 여유는 없었다. 김씨는 회사에서 부여한 임무를 다시 한 번 읽어 봤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여수, 순천, 광양, 목포, 광주. 이 5개 도시를 돌며 각 도시마다 5개 패션 상권을 찾아낼 것. 찾아낸 상권을 지도로 그릴 것. 상권의 시장상황(매출 등)을 조사하고 향후 시장 전망과 이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찾을 것’

    “휴…, 이걸 신입사원 6명이 해결하라니.” 이들 가운데 전라도가 연고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막막하긴 하지만 ‘우리들은 무적 새내기’라고 되뇌며 일단 부딪쳐 보자는 마음으로 전진했다.

    처음 김씨 일행이 찾아간 곳은 여수시청 도시개발계획과. 담당 공무원에게 예의바르게 다가가 여수 시내의 기초적인 경제 지리를 브리핑 받았다. 김씨 팀은 이 지역 상권의 발전 가능성을 물어보았다. 이들은 유능한 경제부 기자가 되어야 했다. 김씨가 공무원을 취재하는 사이 다른 동료는 이 과정을 캠코더에 담았다.

    그 다음 만나볼 사람은 시장 상인들. 특히 거리 곳곳에 있는 이랜드 매장 점주들이 주요 정보원이었다. 그러나 모든 상권마다 이랜드 매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본사에서 협조요청을 받은 이랜드 매장과는 달리, 타사 브랜드 매장들은 정보를 주려고 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시행착오 끝에 김씨 일행은 복덕방이 상권을 조사하는 데 더없이 좋은 취재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부동산 업자들은 전세금이나 권리금 동향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동료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그 거리 상권의 매출 현황을 알아내기도 했다.



    복덕방은 다른 용도로도 요긴하게 쓰였다. 연수 과제 중에는 상권 지도를 만들라는 것도 있었는데, 보통 서점 지도로는 힘들었다. 김씨 팀은 복덕방 벽면에 걸려있는 마을 전도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다음 출력하는 방식으로 지도를 제작하는 임기응변의 능력을 보였다. 그들은 유능한 ‘스파이’가 되어야 했다.

    이런 방법으로 다른 도시들도 점령해 나갔다. 조사를 하다보니 회사에서 지정한 5개 도시로는 25개 상권을 메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인근 지역인 화순군, 영광군, 나주시까지도 차를 타고 누볐다. 이들은 7월19일 서울로 돌아와 이랜드 본사에서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이랜드 신입사원은 81명. 이들은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 각지로 흩어져 ‘신한국 대장정’이라는 이름 아래 방방곡곡을 누볐다. 김씨 팀처럼 캠코더로 촬영한 팀도 있었고, 사진이나 그림으로 발표한 팀도 있었다.

    회사 선배들은 발표와 토론, 세미나 전 과정에 동참했다. 동기들의 고생담을 들어보니 김씨 팀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떤 팀은 강원도로 배정을 받았는데 인구가 많지 않아 상권을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 팀은 결국 태백시까지 찾아갔다(상권이란 유동인구 10만 명 이상의 거리를 말한다). 김씨는 “이번 조사를 통해 경기가 불황임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상당수 매장 주인들이 매출 감소로 사업을 포기할까 고민하고 있더군요”라고 말했다.

    김씨의 ‘고생’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전라남도를 돌며 발품 팔았던 피곤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막노동이 김씨와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랜드 신입사원들은 7월24일부터 26일까지 강원도 강릉 수해지역 ‘사랑의 집짓기 운동(해비타트)’에 참여했다. 이랜드 복지재단은 이 지역 해비타트 운동을 후원하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에 땀은 비오듯했다. 일명 ‘노가다’에 가까운 일이었다. 여성 사원들도 건축자재를 나르고 못을 박는 등 남녀 차별 없이 똑같이 일했다.

    그들에게 힘을 주는 것은 해비타트 현장에 입주하는 사람이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김지헌씨는 “입주자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봉사의 결과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차마 ‘부실공사’를 할 수가 없었지요.”

    사회봉사 교육은 요즘 대기업 연수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코스다. 연수생들은 밤마다 등에 파스를 붙이고 못에 찔린 상처를 치료해 가며 공사를 진행했다.

    윈도 크기만 보고도 매출 추산

    이번 연수를 진행한 이랜드 인재개발팀 정성찬 과장은 “신입사원 수준이 예상 보다 훨씬 높았다. 연수원생 중에는 여러 번 조사를 반복한 끝에 매장 윈도 크기만으로도 매출을 추산할 정도로 도사가 된 사원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이랜드의 ‘신한국대장정’ 프로그램은 금년에 처음 시도한 것이다. 이랜드는 올해 1월부터 신입사원 교육 내용을 강당 위주에서 현장 위주로 바꿨다. 강당에서는 줄 수 없는 지식을 현장에서 가르치자는 의도다. 정과장은 “요즘 젊은 세대는 참여하는 걸 좋아한다. 신입사원 대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연수로 ‘신한국대장정’을 꼽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회사로서는 지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효과도 거뒀다.

    정과장은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을 준비하려면 보통 2∼3개월 걸린다. 요즘 기업 교육의 화두는 ‘액션-러닝(Action-running)’이다. 연수생들이 가만히 앉아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문제를 풀고 평가하면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에는 신입사원들을 중국으로 보내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이징의 패션 상권을 조사해보라는 임무를 주는 것이다. 내년 이랜드 신입사원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다.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 항해】

    올해 한진해운에 입사한 이윤희(25·여)씨는 여의도에서 카고 클레임(화물사고처리)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올해 4월에 있었던 해프닝을 잊지 못한다. 컨테이너가 바다로 떨어진 사고로 인해 고객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왔는데, 사고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해 쩔쩔맸던 것.

    ‘래싱’(결박)이라고 해서 컨테이너를 배에 잘 묶어두는 것이 뱃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일인데, 종종 허술하게 결박된 컨테이너들이 배가 파도에 흔들릴 때 바다에 빠지곤 한다. 그런데 이씨는 배의 구조를 정확히 알지 못해 사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추상적으로 그려진 사고 도면을 앞에 놓고 끙끙대는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던 부장이 “직접 배를 타보고 와야겠다”고 놀렸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6월11일 이윤희씨는 도쿄항 한진해운 전용 터미널에서 컨테이너선 ‘한진말타호’에 올랐다. 태평양 항로 PNX 노선을 경유해 부산으로 향하는 5000TU급 배다. 한진해운 신입사원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코스로이윤희씨는 6월7일부터 3박4일 동안 도쿄에서 국제화 체험을 한 뒤 이 날부터 2박3일 동안 조원 12명과 함께 컨테이너선 승선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운항 중 날씨가 좋지 않아 파도가 상당히 높았다. 동기들은 배 멀미를 많이 했다. 배가 양옆으로 흔들려 잠을 자다가도 침대에서 구르고 샤워하다가 넘어지곤 했다. 부산항에 도착할 때까지 꼬박 50시간을 배에서 고생했다.

    이씨가 그 동안 봤던 여객선들은 ‘한진말타호’의 규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말타호의 크기는 63빌딩을 옆으로 뉘어놓은 것만 했다. 길이가 280m에 7층 엘리베이터가 운행한다. 교육용 선박이지만 실제로는 컨테이너 화물을 운송하고 있었다.

    선장 출신 교관이 승선 교육 전담관으로 동참했다. 이씨는 교관을 따라 엔진실, 기관실, 컨테이너 적재장 등을 견학하고 선박의 구조를 공부했다. 브릿지라고 부르는 선교(船橋)에 올라가 선장과 항해사들을 만났고, 그들이 조타하는 것을 구경했다.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인 선교에 올라오는 것은 교육생들에게만 주는 특혜다. 뱃머리에서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흉내내는 동료도 보였다.

    이씨가 이번 항해에서 얻은 큰 교훈은 무엇보다도 선원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선원이라고 하면 영화 ‘보물섬’에 나오는 것처럼 시거를 물고 있는 터프한 사람들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직접 만나뵈니까 교육도 많이 받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기술자들이더군요.”

    밤에는 선교에 올라가 갑판장, 항해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해상직원(선원)들의 애로사항을 알게 되었다. “이 분들은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해요. 단절감이 가장 큰 짐인 거죠.” 연수생들은 배를 타고 한국으로 오는 동안 20여 명의 선원들을 면담해 ‘백문백답’을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씨는 아직도 현해탄을 넘어오면서 본 제주도 전경을 잊지 못한다. 부산항 외항에 정박하려 할 때 조그마한 모터보트(터크보트)가 줄 하나로 그토록 큰 말타호를 반 바퀴 돌리는 모습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배를 직접 타보고 나서, 제가 하는 업무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제 배 구조를 몰라서 사고 상황을 헷갈리는 일은 없겠죠.”

    연수담당자 추유신 부장은 “승선 교육은 국제화 체험도 될 뿐만 아니라 육상직원과 해상직원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런 행사가 아니면 두 부류의 직원들은 서로 만날 기회가 없어 자칫 괴리감이 생길 수 있다는 것. 1인당 교육비용은 120만원 정도로, 해외 연수 치고는 저렴한 편이다. 한진해운 선박을 이용하기 때문에 교통비가 들지 않아서다.

    신입사원 연수를 해외에서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동국제강은 대졸 신입사원 17명 중 성적이 뛰어난 6명을 뽑아 체코,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에 보내기도 했다.

    추부장은 “요즘 웬만한 신입사원들은 대학 때 해외 연수를 다녀옵니다. 그래서 해외 연수는 메리트가 크지 않아요. 실무와 연계해 현장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해외실습의 매력이죠”라고 말했다.

    한진그룹이 선상 실습을 시작한 것은 1988년도부터. 전에는 부산에서 인천까지 가는 식으로 국내 항로를 이용했는데 최근 국제 항로로 영역을 넓혔다.

    현재 한진그룹은 4000TEU급 ‘마르세이유호’와 ‘말타호’, 5300TEU급 ‘베이징호’ 등 3척에 교육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 교육선으로 활용하고 있다. 교육생은 매년 400여 명에 달한다.

    한진그룹은 1996년 외항선에 여성을 태우지 않는 금기를 깨고 업계 최초로 여직원을 승선시킨 적이 있는데, 올해 신입사원 50여 명 가운데 여성이 50%이상을 차지해 사상 최다 여성 승선을 기록했다.

    【포스코의 벽화 만들기】

    8월11일 포스코 신입사원 오정열(30)씨는 포항 인근에 있는 포스코 인재개발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 그는 8월6일에 입소한 하기 연수생 32명 중 한 명이다. 입소하고 나서 첫 일주일은 수동적인 강당 교육이 이어졌지만, 11일부터는 신입사원들이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결과물을 도출하는 ‘미션 임파서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11일 오씨와 동기들은 대형 벽화 제작을 시작했다. 벽화라고는 하지만 땅에서 45。 각도로 비스듬히 누운 입체 조형물로 가로 2.7m 세로 3m에 달했다. 회사에서 제시한 과제는 14일까지 이 보드 위에 포스코의 과거-현재-미래를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라는 것.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속출했지만, 포스코의 TV CF와 비슷하게 만들기로 했다.

    “아래 부분에 포스코 역사와 관련된 사진을 모아 타임테이블 같은 걸 만드는 거야” “과거는 그렇게 하고 미래는?” “가상 신문을 만들면 어떨까? 미래 기사를 담은 신문” “오케이, 그럼 현재는 포스코 공장 모형을 넣으면 되겠네.”

    오씨 팀은 바닥은 바다와 모래로, 윗부분은 산과 언덕으로, 가운데는 나무와 공장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연수생들은 작품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각 팀이 분업하기로 했다. 한 팀에 6명 정도 속했다.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게 힘들더군요.” ‘학생장’을 맡았던 오정열씨가 털어놓은 애로사항이다.

    이날 저녁이 되어서야 공장 모형에 들어갈 내용이 정해졌다. 우선 제철소 건물 사진을 크게 찍어서 넣은 뒤 생산라인 원료로는 연수생 얼굴 사진을 넣고 하트 모양으로 표현한다. 이 하트가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해 공장을 지나가면 별 모양의 미래 제품이 생산되어 나온다는 줄거리였다.

    포스코 교육담당 김윤희씨의 말. “벽화 제작이 끝나면 회사의 과거와 미래를 총괄하는 노래를 만들게 됩니다. 오정열씨 조 외에 다른 조들이 만드는 도형도 대개 비슷해요.”

    연극 제작은 유행 프로그램

    교육생들이 표현한 벽화 스타일은 다음과 같다. 과거는 모래로 표현하고, 그 모래 위에 포스코가 세워진다. 요즘 포스코에서는 ‘시그마6 운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굴뚝에서 시그마6 형상이 나타나곤 한다. 환경친화적인 기업을 강조하는 데에 물과 나무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이에 대해 김윤희씨는 “나무를 통해 미래의 주역은 자기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라고 풀이한다.

    연수생들의 두 번째 과제는 포스코 정신을 표현하는 CF 만들기. CF라고 해서 진짜 동영상 영화를 찍는 것은 아니고 연극 시나리오로 대체한다. 연극을 만들어 공연하는 것도 대기업 연수의 새로운 형태다. 예를 들어 삼성 그룹은 신입사원으로 하여금 ‘드라마 삼성’을 공연하게 해 삼성의 역사를 자연스레 각인시킨다. 일정에 따르면 연극 공연 다음에는 홍보 전단지 만들기가 이어진다.

    예년에는 이런 프로젝트가 없었다. 토론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이렇게 포스코라는 회사를 소재로 고민하고 생산물을 발표하는 ‘미션 임파서블’ 프로그램은 올해가 처음이라는 것.

    그 효과는 이전과 판이하게 나타났다. 첫 번째 과제를 수행하려면 반드시 회사의 역사와 전통을 스스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따로 강사가 나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김윤희씨는 “연수를 해 보면 1주가 다르고 2주가 다르고 4주가 다르다”고 말한다. 4주차쯤 되어 퇴소할 때 눈물을 흘리는 원생이 종종 있다고. 이는 집단 최면 효과일까.

    현대 하이스코와 한화그룹 신입사원 연수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연수과정에 도로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진행 방식은 정반대다. 하이스코 연수가 레크레이션 축제라면, 한화그룹 연수는 군대식 극기훈련이다.

    7월14일부터 17일까지 제주도서 열린 하이스코 하기 신입사원 연수에 참가한김남훈(가명·27)씨는 한라산을 등반하고 있었다. 김씨와 50여 명의 신입사원들은 10시간 동안 산을 올랐다. 윤명중 하이스코 회장도 이들과 함께했다. 정상에 올라서는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을 가졌다.

    하루 전날 만나 서로 잘 모르는 동료들이 팀을 짜고, 팀 구호를 정하는 등 마치 대학교 MT에 온 것처럼 놀았다. 다음날에는 하이스코 페스티벌이라는 축제를 열었다. 연극 무대도 마련되어 조별로 공연을 하고, 춤도 추고, 퀴즈대회도 열었다. 연극 내용은 포스코처럼 진지한 것은 아니었다. 인기 있는 TV프로그램을 패러디한 게 많았다. 올해는 개그콘서트가 패러디 소재로 인기를 끌었다.

    김씨가 기억하는 연극은 이랬다. 자동차 두 대가 서로 마주보며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한 쪽은 완전히 찌그러졌고 다른 한 쪽은 멀쩡하다. 그러자 배우가 멀쩡한 차를 가리키며 말한다. “아, 이 차는 하이스코가 만들었군요.”

    김씨는 “연수생 전원이 자전거를 빌려 제주도 해안도로를 달린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1등부터 150등까지 성적 공개

    김씨가 제주도에서 하이킹 스포츠를 즐기며 노는 시간에 한화그룹 신입사원 양정열(28)씨는 설악산 연수원에서 아침마다 3km 구보하며 고생을 했다. 하루 수면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가혹한 연수였다. 아침에 구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저녁에 보충훈련을 받기도 했다. 살벌한 스파르타식 신병교육 훈련이다.

    양씨가 설악산 인근에 있는 연수원에 입소한 것은 7월1일. 입소 다음날부터 마치 고3 수험생 다루듯 시험이 이어졌다. 밤 9시까지 수업이 진행되고 과제와 시험문제가 나왔다. 3주동안 중간 평가 세 번을 포함해 필기 시험만 다섯 번 치렀다. 매너와 프리젠테이션은 실기 심사 점수로 따로 매겼다.

    무엇보다 힘든 점은 성적을 공개한다는 것. 1등부터 꼴찌까지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150등의 기분은 좋을 리가 없다. 양씨는 1주차 때까지 좋은 성적을 내려고 애썼으나 성적이 떨어지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다시 학생이 된 기분으로 치열하게 공부한 덕에 기억에 남는 게 많습니다. 비즈니스 매너 시간에는 명함을 건네는 방법, 자기 소개하는 방법 등을 배웠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사소한 매너조차 모르고 살았나 싶었습니다.”

    한화그룹 인력 개발원 엄기준 과장은 “작년까지는 여름에 지리산 종주를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여름 행군이 위험하다고 해서 겨울에만 했는데 올해 여름 행군을 시도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연수기간도 과거에 비해 길어져 무려 한 달(4주)이나 된다. 박과장은 “10년 전 제가 한화그룹에 입사했을 때는 연수 기간이 3박4일밖에 되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외부 강사를 불러 ‘설교’하는 게 대부분이었죠”고 말했다. 그는 또 “회사마다 색깔이 다른 법입니다. 창의성이나 다양성을 강조하는 기업도 있고 자율성을 강조하는 기업도 있겠죠. 한화그룹은 신입사원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좀 엄하게 하더라도, 힘든 경험을 하게 하면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나중에 엄한 상사를 만나도 잘 이겨나갈 수 있는 거죠”라고 연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해마다 4∼5%는 교육중 중도하차한다. 올해도 152명 가운데 6명이 연수 도중에 퇴사했다. 물론 다른 기업에 중복 합격해 옮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중도 하차율이 가장 높은 때는 행군이나 유격훈련이 아니라 각종 시험이 몰려있는 첫 주라고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걸까?

    연수 강화하자 퇴사율 낮아져

    7월21일 한화그룹 신입사원 양정열씨와 그 동기들은 드디어 소문으로만 듣던 지옥 행군에 나섰다. 2박3일간 100km를 걷는 강행군이었다. 천안에 있는 천안북일고등학교에서 아산을 지나 용인까지 가는 코스.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종일 걷다 보면 발에 물집이 잡히는 것은 예사다. 여자동기들이 쓰러질 것 같으면 짐을 나누어 들면서 독려했다. 도중에 비까지 내려서 고생이 더했다.

    양씨는 4조에 속해 있었는데 조원 한 명이 행군 도중 무리하다 물집 때문에 목발을 짚게 되었다. 그 조원은 행군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조원들은 친구의 어깨를 잡고 부축했다. 남은 조원들은 일부러 뒤처져서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 미리 도착해 대기한 동기들이 박수를 치며 그를 환영했다. 그래서 4조가 1등으로 들어왔다. 행군이 끝나자 하늘에선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하이스코의 즐기는 연수와 한화그룹의 스파르타 교육 가운데 어느 쪽이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걸까. 한화그룹 엄기준 과장은 “교육 결과 퇴사율에 큰 변화가 있었다. 예년에는 퇴사율이 10% 정도였다. 하지만 신입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나서부터는 5%로 뚝 떨어졌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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