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호

다목적 전투기 F-15K로 한국 하늘을 장악하라!

  • 이정훈 hoon@donga.com

    입력2005-05-11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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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공군의 FX 사업에 도전하는 미국 보잉사의 F-15 이글 전투기는 101번을 싸워 단 한번도 진 적이 없는 不敗의 전투기다. 이 전투기에는 세계 최강을 지향하는 미국 공군의 야망과 세계 최첨단을 지향하는 미국 과학자들의 열정이 녹아 있다. 경쟁사들이 F-15를 '늙은 사자'로 부르는 데 대해 보잉측은 ”3개 경쟁 기종은 설계상으로만 최강인 '종이 호랑이'다. 그들은 뜻밖의 허점이 드러나는 실전에는 단 한번도 투입되지 않았다” 고 맞받아친다. 미국이 제시한 F-15K는 어떤 비밀을 갖고 있는가?
    기자는 2000년 11월호 ‘신동아’에 한국 공군의 FX(차기 전투기) 사업에 참여하는 프랑스 다쏘항공의 라팔 전투기 기사를 게재하고, 12월호에서는 전략 공군으로 발돋움하려는 한국 공군의 야망을 밝힌 기사를 내보낸 후, 적잖은 관계자와 독자들로부터 전화와 이메일을 받았다. 이러한 전화와 이메일 중에는 ‘소련 공군의 벨렝코 중위가 미그-25기를 몰고 일본에 온 것은 80년이 아니라 76년이었다’ ‘일본이 도입한 F-15 전투기는 F-15E가 아니라 F-15C/D다’ 등 기자의 실수를 지적한 것과, ‘왜 라팔만 좋게 써주었느냐?’며 비난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상당수 이메일은 ‘FX사업에 관심이 많다. 10여 년 전에 추진된 KFP(한국형 전투기 프로그램) 사업 때도 기종 선정이 공정치 않았다며 시비가 일었던만큼, 라팔뿐만 아니라 FX 사업에 도전하는 다른 전투기들도 자세히 소개해 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국방부는 2001년 4월까지 FX 사업 대상 기종을 결정할 예정이다(그러나 다소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부 관계자들은 “FX 사업 대상 기종이 결정되면, 탈락한 업체들은 정치적인 압력 때문에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투서를 남발해, 정국을 혼란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심사 단계에서 각 기종의 특성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이런 차에 F-15K(한국형 F-15E) 전투기를 들고 FX 사업에 도전한 미국 보잉사 쪽에서 미국 현지 취재를 제의해왔다. 보잉측의 제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스러웠다. 첫째, 적잖은 수의 한국 공군 장교들이 “F-15K는 구식이다”며 도입에 반대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기자의 기사로 인해 FX 대상 기종 선정에 참여한 공군과 국방연구원의 전문가들이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고민을 거듭하다 현지 취재에 응하기로 했다. 기자 자신이 고정관념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번 부딪쳐 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2000년 12월3일 밤 기자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 도착했다. 세인트 루이스는 미국 프로야구(MLB)에서 3년 연속 홈런왕이 된 마크 맥과이어가 속해 있는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 팀의 본거지로 유명하다. 이 도시는 미주리 강과 북미 대륙에서 가장 긴 미시시피 강이 만나는 곳이라, 일찍부터 주운(舟運)이 발달했다.

    이러한 주운 때문에 북미 대륙 동쪽에 상륙한 미국인들은 이곳에 몰려들려 서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미국인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이다. 이 소설의 작가인 마크 트웨인은 세인트 루이스 인근에 살며 모험심 강한 미국인들의 일상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두 명의 조종사가 타는 F-15E

    세인트 루이스는 ‘태양왕’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가 다스리던 곳이라, ‘생 루이(st. Louise)’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나폴레옹 시절 이곳을 영국에 팔자, 생 루이는 영어식으로 ‘세인트 루이스’로 고쳐 읽게 되었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적극적으로 서부 진출을 지원한 지도자였다. 1963년 세인트 루이스 시는 ‘이곳이 서부 개척의 관문’이었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미시시피 강변에 폭과 높이가 똑같은 630피트(약 210m)의 거대한 ‘게이트웨이(Gateway·‘관문’이라는 뜻) 아치’를 세워, 제퍼슨 대통령을 기렸다.

    세인트 루이스는 서부뿐만 아니라 하늘을 향한 미국인의 의지가 모여든 출발선이기도 하다. 세인트 루이스 시에는 월남전에서 이름을 떨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F-4 팬텀과 미 해군의 주력기로 발돋움하는 F/A-18 호넷, 그리고 현재까지도 세계 최강의 제공기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F-15 이글을 생산하는 맥도널더글러스사가 있던 곳이다.

    1980년대 중반 맥도널더글러스사는 F/A-18 호넷 전투기를 내세워 한국 공군이 추진한 KFP(한국형 전투기 프로그램) 사업에 도전했다가, F-16C/D 파이팅 팰컨을 들고 나온 미국의 제너럴다이내믹스사에 역전패한 전력이 있다.

    그 후 맥도널더글러스는 세계 최대의 민항기 제작사인 미국 보잉에 합병되었고, 승자인 제너럴다이내믹스 또한 세계 최대의 방산 그룹인 미국의 록히드마틴에 통합되었다. 보잉 그룹에 합병된 맥도널더글러스는 ‘보잉 군용기 및 미사일 시스템’사로 재탄생했다. 제럴드 다니엘스 사장(55)이 이끄는 보잉 군용기 및 미사일 시스템(이하 보잉)사가 바로 F-15K를 들고 한국의 FX 사업을 두들긴 주인공이다. F-15K에 맞설 경쟁자로는 프랑스가 개발한 ‘라팔’, 영국과 독일·이탈리아·스페인이 공동 개발한 ‘타이푼’, 그리고 러시아의 ‘수호이 35’가 있다.

    보잉이 내민 F-15K는 ‘스트라이크 이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F-15E를 개량한 것. F-15K의 원형에 해당하는 F-15E는 두 명의 조종사가 타는 복좌기(複座機)라는 점에서 다른 3개 기종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다른 3개 기종도 복좌기로 제작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단좌기로 개발되었다).

    F-15E는 왜 복좌기일까? 이러한 의문을 추적해 들어가보면, 보잉이 F-15K를 한국의 FX 사업에 최적 기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잉측의 논리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기자는 세인트 루이스의 보잉 본사를 방문하자 “F-15K는 구식이 아니냐”며 공격을 퍼부었다.

    F-15K가 구식이라는 공격에 대해 보잉측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F-15K가 구식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을 보유하고 있는 알래스카 엘멘돌프 기지를 방문했을 때도 반복되었다. 이에 대해 보잉측에서는 조 허러 부사장과 마이클 마크 부사장 그리고 스키프 베네트 이사 등이 돌아가면서 매우 전문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으로 반격을 가해왔다.

    ‘F-15K는 구식인가, 아닌가’란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F-15 이글 개발사를 더듬어볼 필요가 있었다. 또 F-15 이글 개발사는 FX 사업에 참여한 나머지 3개국의 전투기 개발 역사와 바로 연결되므로 생각 밖으로 흥미진진하다. 다음은 이들의 설명과 기자가 다른 루트로 입수한 자료를 근거로 재구성해본 F-15 이글의 개발사다.

    월남전에서 시작된 F-15 개발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전에 개입한 미군은 베트남 동쪽의 남중국해에 항공모함 수척을 띄워놓고 월맹(북베트남)을 맹공격했다. 미국인들은 남중국해에 붙박이로 띄워 놓다시피한 이 항공모함들을 가리켜 ‘양키 스테이션’이라고 불렀다. 해군력과 공군력이 절대적으로 빈약한 월맹은 이 양키 스테이션을 전혀 공격하지 못했다. 이 시기 양키 스테이션을 기지로 삼아 월맹 공격에 나선 대표적인 전투기가 바로 맥도널더글러스가 개발한 F-4 팬텀이었다.

    북베트남 공격에서 F-4 팬텀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했지만 몇 가지 약점도 노출했다. F-4 팬텀은 지상 폭격을 위주로 하는 전폭기로 제작됐다. 그러다 보니 적기와 공중전을 벌이기에는 기동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밝혀졌고 뛰어난 기동성으로 적기를 쉽게 요격할 수 있는 순수 제공기(air superiority fighter)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비슷한 시기 소련이 순수 제공기로 미그-25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제공기란 주로 공대공 전투를 하는 전투기를 말한다. 전폭기는 공대지 전투를 위주로 하는 전투기다. 따라서 제공은 공대공 작전, 전폭은 공대지 작전과 같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여러 전투기 제작사가 제공기 개발에 들어갔는데, 이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맥도널더글러스였다. 1969년 이 회사는 미 국방성과 순수 제공기 개발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1972년 시제기를 제작해 전투 시험에 들어갔다. 이 시험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강한 맥도널더글러스는 1974년부터 F-15A를 양산해 미 공군에 인도했다. 순수 제공기인만큼 F-15A기에는 하늘의 왕자인 ‘이글(독수리)’이란 닉네임이 붙었다. 쌍발 엔진을 장착한 F-15A는 추력 대 중량 비가 1대 1이 넘는 최초의 전투기다. 추력이란 전투기 엔진이 발휘하는 힘인데, F-15A기의 추력이 F-15A의 무게를 능가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F-15A는 강력한 기동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추력이 강하다고 무조건 제공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투기가 급기동을 하면 조종사와 전투기는 상당한 부하를 받게 된다. 이러한 부하의 크기는 g(gravity·‘중력’이라는 뜻)로 표시되는데, 일반인이 일상 생활에서 받는 중력을 1g라고 한다. 1g에서 2g로 옮겨가는 것은, 지구상에 있는 공기의 부피가 2분의 1로 줄어들 정도로 압력이 강해지는 것을 뜻한다. 3g로 옮겨가면 4분의 1로 줄고, 4g에서는 8분의 1로 줄어든다. 4g에 이르면 사람들은 가슴이 눌려, 호흡하는 데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는 억지로 가슴 근육을 움직여줘야,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뱉을 수가 있다. 1분 내외의 짧은 시간이라면 일반인들도 최고 4g에서 억지 호흡을 할 수 있다. 반면 전투기 조종사들은 평소에 억지 호흡을 연습하기 때문에 최고 7g에서도 잠시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전투기를 포함한 모든 비행기는 무게를 줄이는 쪽으로 제작되는데, 그러다 보니 지상 장비에 비해 훨씬 약하게 만들어진다. 전차와 장갑차는 총알도 뚫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철재로 제작되므로, 50~100g 상황에도 끄떡없다. 하지만 비행기는 가볍게 제작됐기 때문에 이런 압력을 받으면 금방 부서지거나 우그러들게 된다. 추력이 강한 전투기가 급기동에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7~8g의 압력이 기체에 가해진다. 따라서 추력을 증가시킬 때는 기체도 더불어 강화시켜야 급기동시 전투기가 파괴되지 않는다. F-15A는 9g까지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된 최초의 전투기다.

    강력한 추력과 견고한 기체는 급기동을 가능케 하는 충분조건이지만, 이것만으로는 공중전에서 승리할 수 없다. 공중전에서 이기려면 조종사의 눈놀림이 매우 빨라야 한다. 왜 조종사의 눈놀림이 빨라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동차 운전을 예로 든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운전자의 시선은 대개 차 유리창 너머에 펼쳐지는 교통 상황에 고정된다. 그러다 라이오 채널을 맞추거나 속도계를 보아야 할 때면, 운전자는 재빨리 시선을 자동차 안에 있는 라디오나 계기판으로 내려야 한다. 공중전에 들어간 전투기에서도 이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공중전에 들어간 조종사의 시선은 조종석 유리창(‘캐노피’라고 한다) 밖에서 벌어지는 공중전 상황에 고정돼 있다. 그러다 속도를 살피거나 기타 다른 계기를 보아야 할 때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조종실 안에 있는 계기판으로 내려야 한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공중전은 워낙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선을 내리는 사이 추적중인 적기를 놓치거나 적기로부터 역습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조종사가 시선을 내리지 않고도 계기판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따금 사무실에 앉아 멍하니 유리창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유리창이 유리창 밖 상황뿐만 아니라, 사무실 안쪽의 상황도 비쳐주는 거울 구실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유리창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시선의 초점을 맞추면 유리창 밖 상황이 보이고, 유리창에 초점을 맞추면 유리창에 비친 사무실 안을 살펴볼 수가 있다. 시선 방향을 바꾸지 않은 채 초점만 변경함으로써 유리창 밖 상황과 사무실 안 사정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전투기의 캐노피도 기본적으로는 유리창이므로, 이러한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응용해 조종석에 특수한 장비를 설치한다면, 조종사는 시선을 내리지 않은 채 캐노피에 비친 계기판을 보고, 즉시 초점을 변경해 캐노피 밖의 공중전 상황에 집중할 수가 있다. 조종사가 머리를 든 상태(Head Up)에서 계기판을 볼 수 있도록(Display) 한 것을 영어로 Head Up Display라고 하는데, 미국의 과학자들은 이 장비를 ‘허드(HUD)’로 명명했다. F-15A는 허드를 장착한 최초의 전투기인데, 허드 장착으로 F-15A의 공중전 능력은 현저히 강화되었다.

    호타스도 최초 채택

    공중전에서 이기려면 눈 놀림뿐만 아니라 손 놀림도 빨라야 한다. 전투기 조종실에는 자동차 운전석에 있는 기어 스틱(변속기)처럼 생긴 두 개의 막대가 있다. 이 막대는 스로틀(throttle)과 스틱(stick)이라고 하는데, 조종사는 양손에 하나씩 부여잡고 전투기를 조종한다. 그러다 무기를 쏘거나 다른 조작을 해야 할 때는, 손을 계기판 쪽으로 옮겨 그곳에 있는 단추를 눌러야 한다. 이 경우 조종사의 손 이동이 느리거나, 손을 옮기기 위해 시선을 내려야 한다면, 기동성이 강한 전투기라도 적기로부터 역습을 받게 된다.

    공중전 능력을 배가하려면 조종실 안에서 조종사의 손 이동을 없애야 한다. 이를 위해 맥도널더글러스사는 스로틀과 스틱 위에 조종과 전투에 필요한 거의 모든 단추를 집합시켰다. 조종사로서는 이 단추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다가, 필요시 컴퓨터의 마우스를 클릭하듯 눌러주면 되므로, 조종실 안에서 손을 옮길 필요가 없어졌다. 이러한 설계는 ‘조종사가 양손을 스로틀과 스틱에 올려놓고 있다’는 뜻의 영문 Hands 0n Throttle And Stick의 머리글자를 따서 ‘호타스(HOTAS)’라고 한다. 호타스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F-15A가 처음 채택할 때까지는, 그 어떤 비행기 제작회사도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 허드(HUD)와 호타스의 개발로 F-15A는 그 어떤 전투기보다 강한 전투 능력을 갖게 되었다.

    강력한 제공기를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은 ‘좋은 시력’이다. F-15A는 최대 150㎞까지 탐지하며 공대공과 지대공 모드를 겸한 휴즈사의 APG-63 레이더를 채택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전투기에 적기만큼이나 두려운 존재는 적의 방공 레이더망이다. 지상에 설치된 방공레이더는 전투기에 설치된 레이더보다 탐지거리가 훨씬 더 길다. 따라서 전투기를 향해 방공미사일을 먼저 발사할 수 있다. 맥도널더글러스사는 이러한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ALR-56 레이더 피탐(被探) 경보기’를 F-15A에 장착했다. 이 경보기는 적이 쏜 레이더파가 전투기에 닿는 즉시 경보를 발한다. 따라서 조종사는 위험 회피 조작과 기만에 들어갈 수가 있다.

    我生然後에 殺他

    적의 방공레이더망에 걸려든 F-15A가 취할 수 있는 회피 조작에는 적 레이더를 향해 강력한 전자파를 쏴 적 레이더 화면을 “지-지” 거리게 하는 것(이를 전자 재밍이라고 한다)과 레이더파 반사 능력이 좋은 은박지의 일종인 ‘채프(chaff)’를 쏘는 것이 있다. 채프를 쏘면 적 레이더 화면은 채프에서 반사되는 레이더파로 하얗게 변한다.

    F-15A는 그 틈을 이용해 방공미사일 사정권 밖으로 달아날 수 있는 것이다. F-15A에는 전자파를 쏘거나 채프를 발사하는 ALQ-35라는 장비가 설치돼 있는데 이 장비는 적의 방공레이더망에 걸려들었음을 알려주는 ALR-56 레이더 피탐 경보기와 연결돼 있다.

    로랄사가 개발한 ALQ-35는 ‘플레어(flare·불꽃)’라는 기만 장비도 발사한다. 플레어는 영어 뜻 그대로 거대한 불꽃을 쏘는 물체인데, 플레어가 쏘는 불꽃은 F-15A 엔진에서 나오는 불꽃보다 강하다. 대부분의 방공미사일은 전투기 꽁무니에서 나오는 엔진 불꽃을 감지해 따라 들어간다. 그 때문에 플레어를 발사하면 방공미사일은 불꽃이 강한 쪽으로 유도돼 플레어를 맞히고 폭발하므로 F-15A는 위기를 벗어날 수가 있다. 바둑을 둘 때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가 상대 대마(大馬)를 잡기에 앞서 내 집부터 살려야 한다는 ‘아생연후 살타(我生然後 殺他)’다. 공중전에서도 이와 똑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F-15A는 강력한 생존장비를 갖췄기 때문에 손색없는 제공기로 활약할 수 있었다.

    F-15A는 작전 목적에 따라 조종사 두 명이 타게 제작됐는데, 이러한 복좌기를 F-15B라고 한다. 하지만 F-15A와 F-15B는 같은 전투기이기 때문에 둘은 F-15A/B로 통칭하고 있다. 미 공군은 F-15A를 340대 도입하고 F-15B는 47대 도입했다. 1976년 이스라엘 공군이 F-15A/B기 51대를 수입했다. 이 전투기에는 이스라엘의 약칭인 I자가 붙어 F-15I라고 했다.

    1982년 중동전이 일어나자 이스라엘 공군의 F-15I는 시리아 공군의 미그-21, 미그-23과 공중전을 벌여, 단 한 대도 희생되지 않고 무려 50여대의 적기를 파괴했다. ‘50 대 0’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전적으로 F-15A는 일약 세계 최고의 제공기란 찬사를 받게 되었다.

    이스라엘 공군이 F-15A/B를 도입한 1976년 9월 일본에서는, 소련 공군의 벨렝코 중위가 미그-25기를 몰고 초저공으로 날아와 ‘미국 망명’을 요구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벨렝코 중위가 초저공으로 미그-25기를 몰고 올 때 일본 항공자위대의 레이더망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 열도는 발칵 뒤집혀, 일본의 항공력 부족을 지적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당시 일본 항공자위대의 주력기는 F-4 팬텀이었는데, F-4 팬텀으로는 소련 공군의 미그-25를 상대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하루빨리 F-15A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79년이 되자 맥도널더글러스사는 F-15A/B의 레이더 성능과 추력 대 무게 비가 훨씬 더 커지도록 엔진 성능을 강화한 F-15C/D 개발에 착수했다(F-15D는 F-15C의 복좌형이다). 이러한 개량 설계를 주도한 것은 맥도널더글러스의 연구기관 ‘팬텀 웍스 연구소’였다. 팬텀 웍스 연구소의 명성은 워낙 자자해서 맥도널더글러스가 보잉에 합병된 후에도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보잉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항공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에는 스컹크 웍스라는 연구 기관이 있다).

    F-15 면허 생산한 일본

    팬텀 웍스는 F-15C/D에 공중조기경보기와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능력을 추가했다. 전투기에 탑재된 레이더는 그 성능이 아무리 우수해도 360도 전방위를 탐지할 수는 없다(F-15E의 탐지각도는 120도다). 또 이 레이더는 지상에 설치된 레이더에 비해 탐지 거리가 짧다. 하지만 대형기를 개조해서 만든 공중조기경보기는 360도 전방위뿐만 아니라 지상 레이더만큼 먼 거리를 탐지하는 레이더가 탑재된다. 따라서 공중조기경보기가 탐지한 정보를 제공받는다면 전투기의 능력은 배가될 수가 있다.

    F-15C/D에는 공중조기경보기가 잡아낸 정보를 바로 제공받을 수 있게 해주는 데이터 링크 시스템(JTIDS)이 장착되었다. 또 이 전투기는 다른 F-15C/D기와 정보를 교환하는 능력도 갖추었다. 이로써 F-15C/D는 자신이 탐지하지 못하는 사각 지대는 요기(僚機·동료 전투기)가 탐지케 해 위험한 사각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개량도 F-15C/D를 세계 최고의 제공기로 자리잡게 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미 공군은 이 전투기를 520대 구입했다. ‘벨렝코 중위 쇼크’에 시달려온 일본도 즉각 F-15C/D 이글 전투기 100대 도입을 결정했다.

    이스라엘은 F-15A/B를 미국에서 직구입했으나, 일본은 ‘경제대국’답게 F-15C/D의 부품을 들여와 일본에서 조립하는 면허 생산 방법을 채택했다. 즉 100대의 F-15C/D기 중에 14대만 미국 맥도널더글러스사에서 제작하고, 나머지 86대는 일본의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조립생산한 것이다. 일본이 면허생산한 F-15C/D는 일본을 뜻하는 J자를 붙여 F-15J라고 한다. 면허생산은 직구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지만, 조립 과정에 항공기를 설계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기술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미쓰비시 중공업은 수년 전부터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F-16 파이팅 팰컨의 파생형인 F-2를 공동 설계·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토인비는 역사가 도전과 응전에 의해 발전한다고 정의했다. 무기 개발 역사도 이와 같다. 소련이 미그-25를 개발하자 미국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F-15 이글 개발에 착수했다. F-15C/D 이글이 세계 최고의 제공기라는 찬사를 받게 되자, 이번에는 소련을 비롯한 경쟁국들이 응전에 나서기 시작했다. 먼저 F-15C/D에 필적하는 제공기 개발에 나선 소련은 1986년 급상승을 하다가 갑자기 멈춰서는 ‘코브라 기동’을 할 수 있는 수호이 27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순수 제공기로 개발된 수호이 27에 전폭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개량한 것이 한국 공군의 FX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수호이 35다).

    제공기끼리 공중전을 벌이는 것을 도그 파이팅(개 싸움)이라고 한다. 공중전에서는 적기 엔진의 꼬리에서 나오는 분사열을 따라 들어가는 공대공 미사일을 사용하므로, 도그 파이팅을 벌일 때는 적기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적기에 꼬리를 물렸을 때는 적기가 열추적 미사일을 쏘지 못하도록 급기동을 해야 한다. 이러한 급기동 중에서 가장 어려운 기동으로 꼽히는 것이 코브라 기동이다. 코브라 기동은 갑자기 머리를 쳐드는 코브라(뱀)처럼 수평 기동을 하다 갑자기 기수를 위로 들고, 일순간 공중에 멈춰 섰다가 다시 기수를 낮춰 다시 수평기동에 들어가는 것이다. 코브라 기동은 적기에 꼬리를 물렸을 때 아주 효과적이다. 코브라 기동에 들어가면 뒤따라오던 적기는 순식간에 이 전투기를 앞질러 나가므로, 코브라 기동에 들어간 전투기가 거꾸로 적기의 꼬리를 잡을 수 있게 된다.

    경쟁국들의 제공기 개발

    소련에 이어 프랑스-영국-독일(당시는 서독)-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5개국도 공동으로 독자적인 제공기 개발에 착수했다. 이 제공기는 ‘유러 파이터’로 명명됐는데, 개발 초기 이 사업의 양대 주축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심각한 의견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은 유러 파이터를 F-15C/D에 필적하는 순수 제공기로 개발하자고 주장했으나, 프랑스는 제공은 물론이고 전폭도 가능한 다목적기로 개발하자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한술 더 떠서 육상 기지는 물론이고 항공모함에서도 이착함이 가능한 다목적기를 개발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은 수직 이착륙기인 ‘해리어’를 개발해 보유하고 있던 터라, 이러한 주장을 묵살했다.

    이렇게 의견 차이를 빚자 프랑스는 유러 파이터 개발 계획에서 탈퇴하고, 다쏘항공이 차세대기로 청사진만 그려 놓았던 미라지-4000을 토대로 라팔 개발에 착수했다. 프랑스 해군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미국 항공모함에 비해 톤 수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 항모에 비해 비행갑판의 면적이 작고, 비행갑판에 설치된 활주로의 길이도 짧다. 전투기가 이러한 조건에서 이착함하려면 필연적으로 그 크기가 작아야 한다. 이런 배경 때문에 라팔은 다른 제공기에 비해 덩치가 작아졌다.

    다쏘항공은 1986년 라팔 시제기를 공개하고 88년 생산에 들어갔으나, 양산은 90년대 후반으로 늦춰졌다. ‘타이푼(태풍)’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유러 파이터는 그보다 더 늦은 99년에야 생산에 들어갔다.

    F-15C/D가 미국의 경쟁국으로 하여금 동급의 제공기 개발을 자극할 정도로 명성을 떨치자, 사우디아라비아도 이 전투기 도입을 결정했다(직구매). 사우디아라비아는 1982년부터 84년 사이 F-15C/D기를 62대 도입했는데, 이 전투기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뜻하는 S자를 붙여 F-15S라고 한다. 1987년 이란과 전쟁을 벌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전투기를 띄워 이란 공군의 F-4 팬텀기 2대를 격추시켰다. 이로써 F-15C/D는 F-4 팬텀을 능가하는 최고의 전투기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 시기 F-15 이글은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 나라나 사갈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일본·사우디아라비아 등 최우호국으로 판단되는 나라에 대해서만 F-15를 팔거나 조립생산하도록 허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F-15에는 이른바 ‘마이너스 옵션’이 적용돼, 미국이 보유한 F-15보다 약간 성능이 떨어지는 F-15가 제공됐다고 한다. 미국과의 우호로만 따진다면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단단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은 F-15 도입을 꿈도 꾸지 못했다. 80년대 초반의 한국 대통령은 전두환(全斗煥)씨였는데, 전두환 정부는 F-15 이글은 아예 쳐다보지도 못하고 F-16 파이팅 팰컨 판매를 미국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가 보인 첫째 반응은 “판매하기 곤란하다”였다. 그로 인해 한국 정부는 모든 실력자를 동원해 미국 정부 요인을 설득하는, 암호명 ‘평화의 가교(Peace Bridge)’ 대미 로비전에 들어갔다. 첩보전을 방불케 한 이 로비전은 성과를 거둬 마침내 미국 정부는 40대의 F-16 C/D기의 한국 판매를 승인했다(이 전투기는 YS 정권 때 KFP 사업으로 도입한 KF-16 전투기와는 별개로 F-15C/D 보다는 성능이 떨어진다). 비슷한 시기 대만 정부도 F-16 전투기 도입을 시도했으나 대중(對中) 관계를 고려한 미국의 거부로 좌절됐다. 이에 대만은 F-16과 동급으로 평가되는 프랑스 다쏘항공의 미라지 전투기를 구입하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그러는 사이 미 공군은 전폭 및 공격기로 사용하던 F-111이 1990년대에는 수명이 다해, 이를 대체할 전폭기를 개발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미 공군은 F-111보다 성능이 뛰어난 전폭기를 원했기 때문에, 맥도널더글러스는 최고의 제공기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F-15C/D 이글을 전폭기로 개조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필요시에는 제공기도 겸하는 다목적기를 지향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이런 원칙하에 개발을 시도하다가, 한 사람의 조종사로는 조종과 전투를 동시에 수행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맥도널더글러스는 여기서 전방석의 조종사는 전투기 조종에 전념하고, 후방석의 조종사는 전투에 전념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복좌기 개발에 들어갔다.

    다목적기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이 때문에 이 전투기는 기존 복좌기인 F-15D와 똑같은 외관을 갖게 되었다. F-15D에는 F-100 엔진이 장착됐으나, 이 전투기에는 훨씬 강력한 F-110 엔진이 탑재되었다. F-15C/D에 탑재된 APG-63의 레이더 최고 탐지거리는 150㎞였지만, 이 전투기에는 180㎞까지 볼 수 있는 APG-70 레이더가 내장되었다. 조종사가 더 많은 정보을 읽을 수 있도록 허드(HUD)도 더 넓은 것으로 교체됐다.

    이 전투기가 가장 효과적으로 전폭 임무를 수행하려면, 적 레이더와 적 병사의 육안 관측을 피할 수 있는 달 없는 밤에 초저공으로 침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전투기가 야간에 초저공으로 비행해 목표물을 포착하려면, ‘랜턴(LANTIRN)’이라는 특수 장비가 있어야 한다. 이 전투기는 랜턴을 동체 밑에 장착하게 되었다.

    지상공격에 사용하는 무기는 적기를 요격하는 무기보다 다양하다. 이러한 무기에는 목표물까지 정밀 유도할 수 있는 GBU-15와 AGM-130 폭탄과, AGM-65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 등이 있다. 이 전투기는 아군기를 위협하는 적 레이더기지를 파괴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적이 쏜 레이더파를 따라 들어가 레이더 기지를 파괴하는 AGM-88 HARM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 전투기는 적 함정을 공격할 수 있도록 대함 미사일 AGM-84 하푼을 장착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전투기는 이러한 무기를 떼어내고 순수 제공 무기를 장착할 때는 제공기 기능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로써 정밀 대지공격은 물론이고 대공제압과 대함공격, 그리고 제공전투까지 할 수 있는 전투기가 탄생했는데, 맥도널더글러스는 이를 F-15E로 명명하고 ‘스트라이크 이글’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전투기에는 도합 2만4000파운드 무게의 무기를 달 수가 있다.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방석에는 전투기 조종에만 전념하는 조종사가 앉고, 후방석에는 무장통제사(WSO)가 앉아 공격 임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무장통제사도 전투기 조종술을 익혀 그가 앉는 후방석에도 이 전투기를 조종하는 조종간이 설치돼 있다. 혹시 전방석의 조종사가 사망하더라도, 무장통제사가 전투기를 조종해 기지로 돌아올 수가 있다. 복좌기가 갖는 높은 생존성 때문에 제공과 전폭을 겸하는 다목적기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은 탄생과 동시에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복좌기는 두 명의 조종사가 일심동체가 돼 네 개의 눈과 네 개의 손을 움직이므로, 같은 조건의 단좌기에 비해 유리하다. 그러나 두 명의 조종사가 갈등 관계에 빠진다면 단좌기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후방석에 앉은 무장통제사는 지상 목표물을 때리기 위해 급강하할 것을 요구하는데, 전방석의 조종사는 적이 쏘는 대공화기에 겁을 먹고 급강하를 거부할 수도 있다. 이때 무장통제사가 조종사보다 계급이 높다면 두 사람의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미 공군은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듯 바둑의 ‘아생연후 살타’ 원칙을 원용해,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는 것보다 전투기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 계급 고하에 관계없이 최종 의사 결정권은 조종사가 갖는다”고 규정해 놓았다.

    不敗의 신화

    1988년 미 공군은 처음으로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을 인수해 알래스카와 아이다호·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리고 영국에 있는 미 공군 기지에 실전 배치했다. 이로써 미 공군은 F-16C/D 파이팅 팰컨 외에 또 하나의 전폭기를 갖게 되었다.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은 순수 제공기인 F-15C/D와 성능이 유사하므로, F-16C/D 파이팅 팰컨보다 정밀한 타격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은 F-16C/D 파이팅 팰컨에 비해 항속거리가 월등히 길므로 장거리 타격에도 훨씬 더 유리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1991년 터진 걸프전은 F-15가 명성을 날리게 하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되었다. 이 전쟁에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은 도합 250대의 F-15C/D와 F-15E기를 투입했다. 보잉측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F-15기들은 모두 7500회 출격했는데, F-15C/D의 임무 완수율은 95.9%, F-15E의 임무 완수율은 94%였다고 한다. 걸프전에서 F-15기는 단 한 대도 파괴되지 않고 30대 이상의 이라크 기를 파괴했다.

    1999년 코소보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F-15E 스트라이크 이글과 F-15C/D 이글을 모두 3031번 출격시켰다. 이 출격에서 순수 제공기인 F-15C/D 이글은 유고 공군 소속의 미그기 4대를 격추했고,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은 270만 파운드의 폭탄과 미사일을 유고 전역에 퍼부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도 F-15기는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아 ‘불패(不敗)의 신화’를 이어갔다. 보잉측은 “F-15기는 개발 이후 현재까지 모두 101대의 적기를 격추시켰으나, F-15기 자신은 단 한 대로 격추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보잉은 “101전 불패(百一戰 不敗)를 기록한 현존 전투기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강조한다. 보잉측은 “수호이 35나 라팔, 타이푼은 실전에서는 단 한 번도 승리를 올린 적이 없다. 그들은 우리를 ‘늙은 사자’로 부르지만, 우리는 연전 연승을 기록한 역전의 용사다. 반면 3개 기종은 실전에서는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고 설계상으로만 최강이라는 ‘종이 호랑이’ 아닌가. 실전에 들어가면 설계시에는 발견하지 못한 뜻밖의 허점이 노출될 수도 있다. 라팔 시제기는 1986년에 나왔지만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은 그보다 늦은 1988년에 나왔으니 오히려 우리가 신품이다. 한국은 실전에서 검증된 사자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도상에서만 최고인 종이 호랑이를 고를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보잉측은 이러한 논리 위에서 “F-15는 구식이 아니라, 세계 최강의 전투기다”라고 주장했다. F-15C 이글은 일본을 비롯한 3개국에 수출됐지만,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은 제3국에 수출된 적이 없다. 이러한 사실에 포착한 기자는 “그렇다면 F-15E에 공대공 무기를 붙이고 F-15C와 겨루게 하면 누가 이기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알래스카 엘먼돌프 기지에 있는 F-15E 조종사들이 들려주었다. 이들은 “실전에서는 물론이고 미 공군이 정기적으로 벌이는 최대 훈련인 레드 플래그 훈련에서도 F-15E와 F-15C를 붙여본 적이 없다. 그러나 똑같은 공대공 무장을 붙이고 맞붙는다면 F-15E가 이길 것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전투 반경이 가장 긴 전투기

    이어 기자는 “과거 미국은 F-15A/B와 F-15C/D를 수출하면서 마이너스 옵션을 적용시켰다. 만약 한국이 FX 기종으로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을 선택한다면 역시 마이너스 옵션을 적용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보잉의 마이클 막스 이사는 “아니다. 한국에 제시한 F-15K에는 오히려 플러스 옵션이 적용된다. F-15K에는 F-15E에 탑재된 APG-70에 비해 정비 업무를 훨씬 더 단순화한 APG-63(v)1 레이더가 장착된다. F-15E에는 ALR-56 레이더 피탐(被探) 경보기가 장착돼 있지만, F-15K에는 이보다 성능이 좋은 ALR-56(v) 레이더 피탐 경보기가 장착된다”고 강조했다.

    막스 이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국인들은 F-15K가 구식이냐 아니냐는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FX 사업을 통해 한국 공군이 얻는 전투기가 무엇이냐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공군이 원하는 FX 전투기는 제공과 전폭 기능을 겸하고 장거리 타격이 가능한 다목적기다. 우리가 제시한 F-15K는 1800㎞를 날아가 공격한 다음, 무사히 기지로 돌아올 수가 있다. 우리를 제외한 3개 기종 중에 1800㎞의 전투 반경을 가진 것이면 나와 보라고 해라.”

    1998년 F-15E의 원제작사인 맥도널더글러스는 보잉에 합병되었다. 맥도널더글러스가 보잉에 합병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90년대 초반 한국이 추진한 KFP 사업에서 패한 것도 한 요인이 된다. 우선협상대상자 고지를 선점한 맥도널더글러스는 최초 협상에서 제시한 가격과 우선협상대상자가 되고 난 후 제시한 가격이 달랐기 때문에 록히드마틴에 역전패했다. 기자는 이 사실을 거론하며 다니엘스 사장에게 “KFP 사업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다니엘스 사장은 간결하게 답변했다.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보잉사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보잉 관계자들이 한미 동맹체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은 한국의 정치 상황과 한국인의 대미 인식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어, 한미 동맹을 거론하면 오히려 F-15K의 판매에 불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이러한 판단을 토대로 보잉은 두 번 실패는 없다며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고 있다. 보잉이 제시한 F-15K는 과연 한국 하늘을 장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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