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6일부터 8일까지, 노벨위원회는 노벨평화상 1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의 홀멘콜멘호텔에서 열린 이 심포지엄의 주제는 ‘20세기 분쟁의 회고와 21세기를 위한 처방’이었다. 시몬 페레스와 야세르 아라파트는 현지 사정 때문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병세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으나, 김대중 대통령과 달라이 라마·레흐 바웬사·데즈먼드 투투 등 생존해 있는 역대 수상자와 수상기관이 대다수 참석했다.
세계적인 석학들도 초청했다. ‘제국의 시대’ 저자로 유명한 에릭 홉스봄 교수를 비롯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케임브리지대), 조셉 나이(하버드대), 마이클 도일(프린스턴대), 헬가 하프텐도론(자유 베를린대) 교수 등 17명의 학자들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열띤 논쟁을 전개했다. 필자는 비서구권 학자로서는 유일하게 이 심포지엄에 초청받는 영광을 안았다.
20세기의 전쟁과 평화-회고와 전망
9개의 패널로 편성된 심포지엄은 각 주제별로 학자 대표와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제를 하고, 이에 대해 다른 학자들과 수상자들이 논평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다루어진 쟁점을 사안별로 요약·정리해본다.
에릭 홉스봄 교수는 발제에서, “20세기는 가장 처절하고 살인적인 전쟁의 세기였다”고 규정했다. 그는 1914년부터 1987년 사이 1억8700여만 명이라는 막대한 인명이 전쟁으로 희생됐다고 강조하며, 이는 1913년을 기준으로 한 세계 인구의 10%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20세기를 풍미한 전쟁은 주로 국가간의 분쟁이었다. 에릭 홉스봄 교수는 이러한 전쟁 유형이 1914년에서 1989년까지 사실상 중단 없이 계속되어 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21세기의 전쟁은 과거의 전쟁과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국가간의 분쟁은 줄어들고, 대신 국가 내부의 종족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간의 분쟁과 국가 내부 갈등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홉스봄은 21세기 갈등은 더욱 복합적인 성격을 띨 것으로 전망했다.
그뿐만 아니다. 홉스봄은 최근의 전쟁은 평화와의 구분이 어려우며 전쟁과 평화가 혼재하는 모순성을 보이고 있다고 설파했다. “평화는 전쟁의 예고가 되고 있다. 전쟁은 오로지 한시적 평화의 가능성만을 지향하고 있어, 전쟁과 평화가 혼재한다. 이러한 모순구조는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극대화시킨다”고 홉스봄은 지적했다. 르완다에서 코소보, 수단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최근 발생한 전쟁은, 전투요원의 희생은 최소화하는 반면, 비전투요원의 희생을 극대화하는 반(反)인도주의적 성격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전쟁 대상이 광역화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과거 국가간의 분쟁에서는 주적(主敵)개념이 분명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안보개념이 광역화되면서 주적개념은 모호해지고 전쟁 대상은 다양해졌다. ‘마약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따위의 슬로건은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전쟁은 사회분야에서 일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관찰을 근거로 홉스봄 교수는 “21세기는 암울할 것이다”고 예측했다. 그는 21세기에도 인류가 추구해온 평화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21세기에는 국가간의 갈등과 국가 내부의 갈등이 미묘하게 연동된 복합 분쟁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 홉스봄 교수는 그 이유를 국가 내부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는다. 따라서 그는 국제사회와 모든 국가가 경제·사회적인 불평등을 해소해 내부적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분쟁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내부적 평화가 자리잡을 때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인 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국가 내부의 빈곤과 불평등이 전쟁을 야기한다는 홉스봄 교수의 논리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보다 구체화시키며 논쟁을 촉발시켰다. 김대통령은 발제문에서 “9·11사태 이후 전쟁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선전포고 없는 전쟁, 얼굴 없는 적과의 전쟁, 공격의 유형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법의 규칙을 무시하고 무고한 민간인을 볼모로 잡는 전쟁, 그리고 테러리즘이 21세기 전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테러리즘은 인류의 적이고 테러 행위에 대해 인류는 강하게 응징해야 한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물리적인 응징만으로는 국제 테러리즘의 근본 원인을 치유할 수 없다. 구조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테러리즘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제·국내 분쟁은 종교와 문화와 종족과 이념의 갈등에서 유래하는데, 이러한 갈등의 뿌리에는 빈곤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빈곤을 퇴치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 평화를 바랄 수 없다고 단정했다.
김대통령은 빈곤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세계화에 따른 경제적인 빈부격차이고, 둘째는 정보화의 격차(digital divide)에 따른 빈곤 현상이다. 김대통령은 경제적인 빈부격차뿐만 아니라 정보화의 격차도 줄어들 때 세계는 지속적인 평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김대통령의 견해에 동조했다. 특히 심포지엄이 끝난 후인 12월10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수상 연설문에서 “세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가간 그리고 국가 내부의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핵심 요소”라고 강조함으로써 김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해주었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서 빈곤 문제에 관해서는 세계적인 대가인 아마르티야 센(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김대통령의 주장에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그는 빈곤과 불평등·기아 등 경제적 현상을 갖고 전쟁과 폭력을 인과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빈곤과 기아라는 변수로서 정치적인 폭력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경제적 환원주의의 우(愚)를 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설파했다.
센 교수는 여러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1840년대 아일랜드에서 감자기근이 들어 상당수의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이주했으나, 농민폭동과 같은 정치적 폭력은 발생하지 않았던 사실을 예로 들었다. 또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1942년 그가 태어난 인도의 벵갈지역에서는 영국 총독부에 대한 대규모 저항운동이 전개됐으나, 그해 벵갈지역은 대풍을 이뤄 경제적인 상황은 아주 양호했다고 밝혔다. 반대로 다음해인 1943년은 아주 심각한 기근현상이 나타났지만, 정치적인 폭력사태는 진정국면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같은 논리로 그는 빈곤이란 단일 변수만으론 아프간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전쟁이나 정치적 폭력은 빈곤이나 기근 같은 경제적 변수 이외의 변수도 촉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센 교수는 “전쟁의 원인을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구조에서만 규명하려 하면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진정한 이해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빈곤을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데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센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빈곤은 전쟁의 원인’이라는 보편적 명제를 반박하는 것이라 참석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빈곤 문제 못지않게 쟁점이 된 것은 국내구조와 평화의 상관관계다. 이념과 체제가 전쟁과 평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가 또 하나의 쟁점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프린스턴대학의 마이클 도일(현 유엔사무차장) 교수가 발제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모든 국가가 민주 공화정을 채택할 때 영구평화의 가능성은 높아진다”며 ‘영구평화론’을 주창한 바 있다. 칸트는 ‘민주공화정 국가는 법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을 인정하며 사유재산권을 확고하게 보장한다. 민주공화정 국가는 균형과 견제를 이루는 대의(代議)정치를 채택하기 때문에 위정자들은 시민들이 원치 않는 전쟁을 일방적으로 선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도일 교수는 이러한 영구평화론에 근거해 국가의 이념체제와 정치체제는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도일교수는 민주평화론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패권국가들이 물질적인 이득이나 인권과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명분으로 여타 국가들에 대해 무분별하게 개입한다면, 이는 불필요한 전쟁을 야기하고 국제질서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이념과 체제가 반드시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고도의 도덕성과 신중한 정치력이 가미돼야 진정한 의미의 영구평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일 교수의 제한적 민주평화론에 대해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공감을 표시했다. 도일 교수는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해 우회적이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참석자들은 도일 교수가 주장한 자유주의 국제관계이론의 다른 한 축인 자본주의 평화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자본주의 평화론도 그 지적인 연원은 칸트에 닿아 있다. 일찍이 칸트는 경제적인 상호의존으로 국가간의 상업적 이해관계가 심화되면 될수록, 전쟁의 가능성은 적어지고 평화의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예측했다. 경제적인 상호의존도가 높은 단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상거래를 통해 구축해놓은 경제적인 부(富)가 일순간에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각 나라의 자본가들은 정치적 압력을 가하여 전쟁 방지를 도모한다는 것이 칸트의 견해다.
사실 자본주의 평화론은 전후 유럽에서 설득력 있게 가시화된 바 있다. 유럽은 자유무역지대·관세동맹·공동시장·경제동맹·통화동맹의 경로를 거치며 경제적인 유대를 강화해왔다. 이러한 유럽에서 국가간의 분쟁이 일어날 소지는 거의 없다. 미국·캐나다·멕시코로 구성된 북미 자유무역지대 회원국 사이에서도 국가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의 심화와 경제통합이 반드시 평화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제적인 의존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화되었지만, 3국 간에는 아직도 갈등의 소지가 많다. 아시아 국가들과 중미와 남미 국가의 사례도 경제통합이 자동적으로 평화체제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예시해주고 있다. 따라서 참석자들은 시장통합이 평화체제로 전이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정치·안보상의 협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데 의견합치를 보았다.
강대국의 흥망성쇠는 전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500년 동안 일어난 전쟁의 60%가 강대국간의 전쟁이었다. 1·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20세기의 주요 전쟁도 강대국 중심으로 벌어졌다. 따라서 전쟁과 평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대국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강대국은 힘이 아주 강할 때는 제국(帝國)의 형태를 띠는데, 이때는 국가간의 전쟁은 없고, 대개 내부적인 갈등과 평화가 문제가 된다.
한 국가에 힘이 집중되는 패권국가 시대에도 전쟁의 발생 가능성은 줄어든다. 패권국가가 도전국가에 대해 평화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권세력 없이 주요 국가(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이 펼쳐지면, 평화는 불안정하고 자의적으로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조셉 나이는 강대국의 흥망을 소재로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해 발제했다.
나이 교수는 21세기에도 미국은 패권적 주도국가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그 패권력이 어느 정도일지, 얼마나 유지될지, 그리고 국제체제의 안정에 얼마나 공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나이 교수는 국력을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했다. 그는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그 둘의 연계능력이란 세 가지 힘의 요소가 한 국가의 국력을 좌우한다고 보았다.
나이 교수는, 미국은 군사력에서는 세계 최강이지만 경제력과 그 둘의 연계능력에서는 패권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오늘날 미국이 직면한 패러독스는 ‘도전받기에는 너무 크고, 독자적으로 테러리즘이나 핵 확산을 억제하기에는 상당히 제한적인 국력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힘을 통한 세계평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고, 미국 또한 다른 나라의 협력과 존경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아프간을 침공한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경향을 고려할 때 나이 교수의 이러한 진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나이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에 종사한 사람이다. 그가 자유주의적 경향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이 교수 발제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았다. 필자와 메리 칼도(런던 정경대)교수 등은 “전쟁과 평화는 국력의 배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력이라는 객관적 지표보다는 국력의 목적이 전쟁과 평화를 좌우하는 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패권국의 의도와 의지, 그리고 패권국의 국가목표가 규명돼야 전쟁과 평화의 방향을 추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이의를 제기했다. 9·11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아프간을 침공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확전 가능성과 민간인 살상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지뢰제거 캠페인 등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조디 윌리엄스 등 일부 진보적인 인사들은 나이 교수의 아프간 침공 불가피론에 대해서 공격했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의 확전 구상은 궁극적으로는 미국내의 지지 저하와 국제적인 저항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디 윌리엄스는 9·11 사태 이후 미국에 팽배하고 있는 내셔널리즘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요즘의 국제정치 이론 논쟁에서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안보개념에 관한 논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간에는 국가안보가 안보논의의 핵심을 이루었다. 국제정치의 기본단위는 국가이며, 국가의 생존과 번영과 명예를 지키는 것이 국가안보의 모든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세계화와 탈냉전 추세가 확산되면서 국가안보의 독점적인 지위는 심각하게 도전받았다. 국가안보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인간안보(Human Security)이며, 인간안보 중심으로 국제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한 것이다.
메리 칼도 교수의 발제는 인간안보의 시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칼도 교수는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는 찰스 틸리의 근대국가 형성의 폭력적 기원을 인용하면서, 세계화와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는 더 한층 군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군사부문의 혁명(RMA)을 통해 더욱 첨단화한 전력구조를 구축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도 군사부문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3세계 국가들 또한 정규군과 민병대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군사화의 심도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군사주의 경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칼도 교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타개해나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군비통제 등의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군비경쟁이나 군사화경향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엔 중심의 평화유지군도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서 칼도 교수는 국제 인도주의법(전쟁법)을 강화하는 데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인간안보를 안보의 중심개념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국제법이란 형식을 통해 구체화시킬 때, 군사화의 추세를 제도적·구조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칼도 교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화셋 교수(옥스퍼드대), 나이 교수 그리고 필자 등은 “아직도 국제정치의 기본단위는 국가다. 때문에 인간안보보다는 국가안보를 중시하고 있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또 “전쟁을 예방하고 전략적으로 안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제법보다는 관련 국가들 사이에 신뢰를 쌓고 군비통제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개진되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영토와 자원을 소재로 한 국가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어, 인도주의·자유주의적 시각을 맹목적으로 적용할 수가 없다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참석자 대부분은 칼도 교수의 입장에 크게 동조했다. 이것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자유주의·인도주의·국제법주의 경향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9·11사태에 비추어, 이번 심포지엄이 문명의 충돌이란 담론에 주목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참석자들은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논의를 회피하려고 했으나 결국 이 부분에 관한 논쟁에 빠져들고 말았다. 문명 충돌론은 일찍이 헌팅턴 교수가 제안한 바 있다.
헌팅턴 교수는 ‘21세기 세계는 냉전시대의 이념 대결에서 벗어나 정체성(Identity)과 문화 그리고 문명 사이의 충돌이 전쟁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이 주제와 관련해 세 가지 흥미로운 논쟁이 전개되었다.
첫째는 마무드 맘다니(컬럼비아대) 교수의 정체성 논쟁이다. 맘다니 교수는 문화적 정체성은 대결의 대상이 아니라 종족간의 공존 여유를 갖게 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주로 발생하는 종족갈등은 문화적 정체성의 대결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을 무시한 법적·제도적 정체성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법적·제도적 정체성이란 과거 식민종주국이 식민통치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인위적 구성물을 가리킨다. 종족·부족간의 권력과 부는 이러한 법적, 제도적 정체성에 의해 발생했으며, 종족분쟁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맘다니 교수는 더욱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 르완다의 비극을 후투족 탓으로만 돌리지 말라는 것이다. 후투족이 10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80만 명의 투치족을 학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스스로가 식민지배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맘다니 교수는 ‘희생을 당해본 자만이 남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역설적인 명제를 제기했다.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에 겪은 고통과 식민지배가 만들어놓은 차별적인 법과 제도가, 식민지배가 끝난 후에도 집단적인 정신적 병리현상을 일으키고 마침내 르완다 대학살이라는 참극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아키라 이리에(하버드대) 교수의 문화국제주의론이다. 이리에 교수는 미국으로 귀화한, 일본계 역사학자다. 이리에 교수는 ‘오인 불신 그리고 공포’라는 발제를 통해 20세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문화간의 거리가 좁혀져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이유를 세계화를 통해 나라와 사람들간의 상호의존이 증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오해와 불신 그리고 공포를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현재의 세계화는 물질적인 세계화 즉, 반쪽의 세계화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화를 통한 문화와 문명간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세계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신적인 세계화는 문화국제주의(cultural internationalism)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이리에 교수는 문화국제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UNESCO와 같은 국제기구와 다양한 형태의 NGO를 활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교차 문화적인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평화의 규범을 공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세계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에서는 이리에 교수의 당위론적인 집착이 문제가 되었지만 그의 이상주의와 낙관주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참석자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노벨연구소 소장인 가이르 룬데슈타트의 발제문이 논쟁거리가 되었다. 룬데슈타트는 지난 100년 동안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한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그 기준은 ①국제평화와 법을 위해 공헌한 자 ②인권을 위해 공헌한 자 ③인도주의적인 도전을 감행한 자 ④핵무기와 재래식 전력을 포함한 상비군의 감축을 위해 노력한 자 ⑤환경과 자원과 식량 등 인류의 새로운 과제를 위해 공헌한 자다.
여기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이유가 문제되었다. 룬데슈타트 소장은 발제문에서 “김대중에게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아시아적 가치논쟁에 대한 노벨위원회의 거부를 명백히 보여주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발언이 필자와 아키라 이리에 교수를 비롯한 여러 참석자들의 반론을 촉발시켰다.
룬데슈타트를 포함한 노벨위원회 위원들이 지칭한 아시아적 가치논쟁이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시각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리콴유 류의 편협한 아시아적 가치를 배척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옹호했기 때문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김대통령이 아시아적 가치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아시아적 가치는 인권과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를 진작시키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 김대통령의 기본 입장이다. 김대통령은 아시아적 가치의 보편적 측면을 발굴하고 계발할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명간 대화와 접합점이 성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아시아적 가치를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국지적 가치라고 매도한 룬데슈타트의 표현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