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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인 발자취를 찾아서 ⑤

황무지에서 곡창으로 탈바꿈한 秋風四社

빽빽한 잡림 베어내고, 홍후즈 약탈을 권총으로 지켜낸 피맺힌 땅

  • 글: 반병률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황무지에서 곡창으로 탈바꿈한 秋風四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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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4사 가운데 그 형성과정에 관해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는 곳은 푸칠로브카마을이다. 1895년에 추풍지대 한인마을을 조사한 러시아지리학회 아무르지부 학자들은 푸칠로브카마을의 사제와 오랜 주민들의 얘기를 바탕으로 푸칠로브카마을의 형성과정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겨놓고 있다.

1867년에 ‘최’라는 성을 가진 한 한인이 동네사람의 부탁으로 러시아지방을 다녀오기로 했다(러시아 학자가 말하는 최씨는 러시아 최초의 한인마을 지신허를 개척한 최운보(崔運寶)가 아닌가 한다). 최씨의 여행목적은 러시아지방 가운데 궁핍한 농민들이 살 수 있는 곳이 없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포세트, 니콜스크예 등 남부 우수리지방의 거의 모든 지역을 둘러보았다. 최씨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남부 우수리지방의 생활과 농업상의 조건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경흥의 궁핍한 농민들 150가구가 당국의 허가 없이 포세트구역의 연추마을로 무단 이주를 감행했는데, 이곳에는 이미 30가구의 한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연추마을에 도착하기까지는 2개월, 그 과정에서 이들이 겪었을 고통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러시아 학자는 이들이 겪었을 궁핍상에 대해 “잘 알려진 것처럼 자기 가족들에 대한 애착이 강한 한인들이 겨우 몇 접시의 식량을 얻기 위해 처와 자식들을 판 경우가 있었다”는 얘기를 함으로써 충분하다고 썼다.

3개월이 지난 후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연추마을에 남았고, 나머지 한인들은 연추마을을 떠나 블라디스토크로 향했다. 이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것은 1868년 3월의 일. 1개월 후 몇 가구는 이곳에 남았고, 나머지는 행정당국의 허가를 받아 기선을 타고 라즈돌리노예역(하마탕역)으로 보내졌다. 이들은 정착지를 특별 할당해줄 것을 러시아당국에 청원했다. 이에 연해주당국은 수이푼강의 오른쪽 분지를 할당하기로 하고 관리 푸칠로(Putsillo)를 파견했다. 라즈돌리노예에 온 지 8개월 만이었다. 다시 일부는 라즈돌리노예에 정착하기 위해 남고, 나머지 가구들이 푸칠로를 따라 수이푼강의 지류인 류치헤자강(Rechka Liuchikheza, 현재의 카자취카강 Rechka Kazachka) 오른편 분지에 정착했다.

니콜스코예마을로부터 서쪽으로 25베르스타(약 26km)에 위치한 최초의 한인마을은 이 러시아 관리 푸칠로의 이름을 따서 ‘푸칠로브카’라고 하였다. 1869년 4월의 일이다. 한인들은 푸칠로브카마을을 육성촌(六城村)이라고 했는데, 마을 옆의 강 이름 즉, 바로 ‘6개의 지류를 가진 강’이란 뜻의 류치헤자(六?河子)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에 처음 정착한 한인가구는 10가구였다. 이들은 배치되자마자, 중국식과 조선식을 모방해 거처할 집과 다른 용도의 건물들을 지었다. 그러나 원래 푸칠로브카마을이 들어선 분지는 사람이 근접할 수 없는 잡림이 빽빽하게 들어찬 황무지였다. 그러던 것을 이주한인들이 매년 분지를 뒤덮고 있는 삼림들을 베어낸 결과 몇 년 만에 오래된 참나무 몇 그루를 빼놓고 15∼16베르스타(16∼17km)에 달하는 분지를 덮고 있던 삼림이 사라졌다.



일단 거처할 집을 마련한 뒤 정착민들에게 절박했던 것은 일용할 식량이었다. 이들은 소, 말과 같은 가축이나 주요한 농기구조차 없어 몇 안 되는 목재나 철제의 호미와 도끼를 갖고 거의 맨손으로 땅을 일궈 채소와 곡식을 파종할 밭을 마련했다. 이들은 조, 감자, 옥수수를 심었는데 종자는 러시아당국으로부터 제공받았다. 다음해인 1870년 러시아당국은 땅의 경작을 위한 경작용 소 한 쌍을 푸칠로브카마을에 제공해 더 많은 땅을 개간할 수 있게 했다. 러시아당국은 이와 함께 파종용 종자를 구입할 수 있도록 은화 30달러를 지원하였는데, 이 돈으로 농민들은 국경지대의 중국마을인 산차거우(三?口)의 중국인들로부터 종자를 구입했다.

자국민처럼 보호해준 러시아정부

러시아당국은 또한 당시 수이푼강 일대를 횡행하고 있던 홍후즈(紅?賊, 붉은 수염을 한 중국인 마적)로부터 방어할 수 있도록 2개의 권총을 줬다. 가을이 되자 푸칠로브카마을 한인들은 수확한 농작물 중 일부를 자급용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산차거우의 중국인들에게 팔았다. 푸칠로브카마을의 농민들은 곡식을 판 자금으로 소와 말을 사 기르고 이를 위한 축사를 마련했고, 고난의 3∼4년을 거친 후에는 제법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됐다.

이들 한인들은 두고 온 국내의 고향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성공적인 정착과 안정된 생활소식을 전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매우 좋다. 식량이 풍부하고 러시아정부는 자국민처럼 도와주고 보호해주며 애정으로 받아들여 비옥한 토지를 주었다. 때문에 더 많은 한인들이 이주해와도 상관없을 정도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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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반병률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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