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근대일본의 조선인식’

일본인은 한국을 어떤 나라로 생각하는가?

  • 이성환 계명대 교수·일본정치 shl@kmu.ac.kr

    입력2005-10-14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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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일본의 조선인식’

    ‘근대일본의 조선인식’ 나카쓰카 아키라 지음/성해준 옮김/ 청어람미디어/285쪽/1만2000원

    올해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지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체결 40주년이자 ‘한일 우정의 해’이다. 2005년 앞에 붙는 이렇듯 다양한 수식어는 한국과 일본의 복잡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을사늑약-광복-한일협정-우정’으로 나아가는 방향성만 보면 한일관계가 꽤 진전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일본 시마네현이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등 올해 한일관계는 일찍부터 독도 영유권 문제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한일관계는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나아가면서도 언제 폭발할지 모를 요인이 잠재해 있다. 한일관계는 왜 이럴까. 아무래도 상호인식의 차이 때문인 듯하다. 근대 시기 이후 일본은 한국을 어떻게 인식해왔으며, 또 한국은 일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대한 문제다. 어떻게 보면 가까운 나라이기에 멀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가까울수록 접촉이 많다. 접촉이 잦으면 오해와 갈등 요인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국가간 관계는 ‘상대(partner)’가 있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방적인 선입견이나 논리만으로 상대 국가를 이해할 수 없다. 또한 국가간 관계는 현실적 이해(利害)를 추구하면서 이념적으로는 협조라는 이상적 에토스(ethos)에 의해 제약을 받는 이원적 성격을 띤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와 그로티우스의 이상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아포리아(aporia) 딜레마’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딜레마를 갖고 있다. 과거사에 대해 책망하면서도 경제 협력을 요청해야 하고, 군사적 협조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군사 대국화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하는 모순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의 상반된 관계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 한일관계다.

    ‘가깝고도 먼 관계’

    인접한 나라간 관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상대 국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고, 자기 본위의 인식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고정관념이 강하면 상대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그것이며, 우리는 그 선입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선입견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역사문제다. 이를 우리는 흔히 일본의 ‘역사왜곡’ 또는 ‘역사인식의 왜곡’이라 한다.



    “일본 근대 시기에 형성된 조선에 대한 인식이 얼마만큼 일본인의 역사인식을 왜곡시켜왔는지, 그러한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와 같은 일관된 문제의식”에서 씌어진 책이 ‘근대일본의 조선인식’이다. 이 책은 근대 시기에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일본인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조선에 대한 인식의 실체를 밝혀내고자 한다. 특히 제국주의 일본이 왜곡한 조선 인식이 역사교육을 통해 대중의 뇌리에 깊이 자리잡고, 오늘날 일본의 국민적 ‘상식’으로 거듭나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일본의 오늘날 한국에 대한 인식은 근대 일본의 성립과 함께한다. 이 책은 그 뿌리를 메이지(明治) 시대를 전후한 일본의 근대 시기에 천황 정부와 군부가 조선침략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찾는다. 이러한 시도는 일본인 관점에서 볼 때 ‘국민적 상식’으로 존재하는 사실(史實)을 부정(否定)하는 대담한 학문적 도전이다.

    “4세기 중반부터 야마토(大和) 조정을 중심축으로 한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를 예속시켰던 것은 명확한 사실이고, 이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 믿는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역사가들 사이에 확신으로 자리 잡았을뿐더러 ‘국민적 상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러한 가공(架空)의 ‘사실(史實)’이 형성되었는가. 또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군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배한 것과 관련해 일본은 “어느 시대나 한국보다 앞섰다”는 ‘조선 낙후론’ ‘조선 정체론’의 관념이 오늘날 일본에 더욱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왜일까.

    이 책은 일본에서 광개토대왕비가 어떻게 연구되어 왔는가를 통해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광개토대왕비는 일본에서 호태왕비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고대 국가 형성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기초적인 사료이다. 이 사료의 자의적이고 의도적인 해석이 임나일본부설을 낳았고, 그것이 또다시 조선낙후론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누가 조선의 독립을 막았는가’ ‘한일합방, 일본이 얻은 것과 잃은 것’ ‘역사 왜곡 속에 탄생한 한국과 일본의 불행한 미래’ ‘일본 근대사의 전개와 조선인식’ 같은 항목에서 독자에게 한국과 일본 역사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공해줄 것이다.

    저자 나카쓰카 아키라가 지적하는 이러한 부분은 어쩌면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이런 논리를 펴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유도 그것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기 때문은 아니다.

    일본의 대표적 양심 학자

    1929년 오사카에서 출생한 나카쓰카 아키라 교수는 2001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 때 한중일 3개국 학자들을 대표하여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한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학자이다. 그는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실린 광개토대왕비문의 탁본이라고 알려져 있던 사진이 신묘년의 기록만을 빼내 원본의 자순을 바꿔 나열한 조작된 사진 석판임을 밝혀내 이 도판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도록 한 바 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이 행한 최초의 무력행사가 경복궁을 계획적으로 점령한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일본 육군의 기록을 찾아내기도 했다. 서문에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1차 사료를 기초로 역사를 서술하려고 했다”고 밝히고 있듯 저자는 기존에 일본 역사학계에서 발표된 주장을 면밀한 사료 분석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이와 같은 실증적 연구방식은 저자의 객관적 역사의식과 함께 글의 내용에 신뢰를 더해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인에게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정립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인에게는 일본이 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그 실체를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책이다.

    세부적인 테마 폭넓게 망라

    일본인은 한국을 어떤 나라로 인식하는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것은 몇 년부터 몇 년까지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쓴 학생은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였다. 또 “재일한국인은 대략 몇 명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쓴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한편 “영국의 도시 이름 다섯 개를 쓰시오”라는 질문에는 다섯 개를 다 쓴 학생이 36%인 데 비해 “한국(남북한 합쳐서)의 도시 이름 다섯 개를 쓰시오”라는 질문에 다섯 개를 다 쓴 학생은 지금껏 한 명도 없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해보았다. 일본의 학생들보다는 응답률이 높았으나, 일본보다는 미국의 도시 이름을 알고 있는 빈도가 더 높았다.

    한일 양국 간에는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할 부분이 아직 많은 것 같다. 바로 이 점이 독자에게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이다.

    하타다 다카시의 ‘일본인의 조선관’을 비롯해 일본의 조선 인식에 대한 저술은 여러 권이 있다. 지금의 역사학계는 이 책이 다룬 여러 주제에 대해 세부적으로 더 많은 연구 성과를 축적하기도 했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이 책이 제공하는 정보보다 더 새로운 정보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카쓰카 아키라 교수의 이 책은 그러한 세부적인 테마를 폭넓게 망라한다. 오늘날 역사학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었지만 일반 대중이 원하는 것은 세분화보다는 일관성 있는 광범위한 안목을 제공하는 책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독자가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상세한 주를 달아놓은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옮긴이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또 옮긴이의 수려한 표현력은 전공자나 일반 독자 모두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굳이 지적을 하자면, 역자의 서문이나 후기가 없다는 점이다. 번역서의 경우 역자의 글은 전체 글에 대한 해제의 성격을 담고 있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해주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역자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책을 접하도록 한 배려였다면 이는 필자가 간과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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