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게 아닐까. 명예퇴직을 당한 뒤 최고 대우를 받고 컴백한 송재익 캐스터. 탁월한 감성멘트와 4회 연속 월드컵을 중계한 경험은 그만의 장점이다. ‘축구중계를 브랜드화시켰다’는 찬사까지 받고 있는 송캐스터의 배꼽 잡는 축구중계 뒷이야기.
송캐스터가 리드하는 중계방송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SBS 여의도 사옥에 나붙은 대형 현수막의 문구처럼 그는 ‘최고의 입담’을 자랑한다. 축구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중계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인터넷에 등장하는 ‘송재익의 코믹 멘트’를 보면서 배꼽을 잡는다. 그중에는 수작이 많지만, 졸작도 적지 않다. 수작은 수작대로 마니아를 길러내고, 졸작은 졸작대로 스토커를 양산한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송캐스터의 어록을 모아놓은 사이트는 무려 100여 개에 달하고 있다.
“저건 외딴 백사장에 혼자 처박힌 빈 콜라병 같군요.”(골대 뒤편으로 넘어간 어이없는 센터링을 보고)“심판이 대머리라서 얼굴로 물이 많이 흘러내리겠는데요. 참 안됐습니다.”(경기중 소나기가 내리자 대머리 심판을 보고)
“우리는 오늘 현해탄을 건너 불구경을 왔습니다. 한국이 신랑으로 신방을 차려놓고, 아랍과 일본 중에 신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한국이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뒤 일본 대 UAE전을 앞두고)
4월30일 오후 여의도 SBS사옥에서 송재익 캐스터를 만났다. ‘월드컵 D-30’ 특집방송을 마친 송캐스터는 앙드레김이 직접 디자인한 붉은색 재킷 차림으로 나타났다. 아침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잠시 멎은 틈을 타 여의도공원에서 사진촬영차 포즈를 취하고 방송사 커피숍으로 향하는데, SBS사옥 벽면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최고의 입담 송재익’ 옆에 당연히 붙어 있어야 할 ‘최고의 해설 신문선’이 보이지 않았다. 송캐스터에게 “어떻게 된 겁니까?” 하고 묻자, 웃으면서 답한다. “바람에 찢어졌어요. 제 건 그냥 있고, 신위원 것만 날아갔어요. 바람도 사람을 구별하나봐요.” 시작부터 특유의 입담이 번뜩인다.
―월드컵 때도 오늘처럼 비가 오면 한국팀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아마 불리하겠죠. 우리가 체력에서 좀 밀리거든요. 한국축구가 아직까지 세밀한 경기를 펼칠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힘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데, 불행히 우리는 유럽팀과 붙잖아요. 미국도 유럽 스타일이고. 비가 오면 체력전으로 가야 하고 그렇게 되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가 오면 외국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는 반면 한국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비가 오든 날씨가 덥든 악조건이라면 골이 터지지 않으니까 무승부 확률이 높아지겠죠. 사실 한국이 월드컵에서 많은 골을 넣고 이기기는 어렵잖아요. 무승부로 가다가 막판에 한 골 넣고 이기기를 기대해야 하는 게 현실이에요. 자칫 경기시작 10분 만에 우리가 한 골을 먼저 넣었다가 상대팀이 초반부터 벌떼처럼 나오면 아주 힘들 거예요.”
―오늘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 엔트리 23명을 발표했는데, 느낌이 어떠십니까.
“아주 좋아요. 그중에서 송종국과 차두리가 최고의 행운아가 아닐까 생각해요. 두 선수는 히딩크와 궁합이 잘 맞아서 국가대표가 됐어요. 그런 걸 보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운이 따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코스타리카전에서 차두리가 한 골 넣은 것도 운이잖아요. 안정환이 공백을 만회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뛰었는데, 그 덕을 차두리가 톡톡히 본 거죠. 차두리는 의도적으로 슛을 한 게 아니고 본능적으로 발을 갖다 댄 건데, 그게 절묘하게 꺾여서 들어갔어요. 저는 차두리가 대표팀에 들어왔을 때부터 야생마 같은 기동력을 눈여겨보았어요. 차두리가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히딩크하고는 잘 통했어요. 세계에서 성인 남자 평균 신장이 제일 큰 나라가 네덜란드입니다. 무려 182cm나 되거든요. 그러다보니 히딩크 감독이 큰 공격수를 선호한 거죠. 미국 자동차가 큰 이유는 기름탱크 때문이잖아요. 많이 달리려면 휘발유가 많이 필요한데, 차두리는 기름탱크가 크다고 생각한 거죠.”
―송캐스터는 중계방송 도중 차두리 선수를 여러 차례 나무란 것으로 압니다. ‘힘은 좋은데, 세기가 모자란다’거나, ‘아버지하고 아들은 다르다’는 식으로….
“그런 식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비교한 적은 없어요. 그건 위험한 방송이죠. 차두리가 처음 발탁됐을 때 제가 ‘체력과 기동력이 좋은데, 아직 덜 영근 것 같다’는 표현은 몇 차례 했어요. 저는 차범근씨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예요.”
송캐스터는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이 터지자 울산 장생포로 피란갔던 시절을 빼면 줄곧 서울에서 살아왔다. 그는 전주 우석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0년 MBC 아나운서 공채 6기로 방송에 입문했다. 송캐스터는 비교적 늦게 스포츠를 맡았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중계방송이 주말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생태계에 관심이 많았다는 송캐스터는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갔다고 한다. 그의 멘트에서 농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한 예로 한국선수의 부정확한 센터링이 나오면 송캐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마치 모내기할 때 못다발 던지는 것과 같아요.”
―송캐스터의 멘트를 들으면 감성이 풍부한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감성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중요한데….
“우리 어렸을 때는 세종문화회관 뒤로 흐르는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잡고 놀았어요. 6·25 때는 울산으로 피란을 떠났는데, 당시엔 부둣가에서 아름다운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에 현대중공업이 들어와서 엉망이 됐지만, 그때는 방어진에 고래가 들어오고 그랬어요.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시와 소설도 써보았고.
저는 눈물이 참 많아요. 감성이 풍부해서 그런지 아니면 못나서 그런지 찡한 장면을 보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곤 해요. 축구중계를 하다가 운 적이 여러 번 있어요.”
―이순을 넘긴 남자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물이 많아요. 하다못해 KBS퀴즈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에서 장원이 나와도 눈물이 나와요. 아직 어린 학생이 떡 버티고 앉아서 어른스럽게 문제를 풀어가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때, 속으로 ‘누군지 자식 한번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자식을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하곤 해요.”
―시간이 나면 성남시의 모란시장을 자주 찾는다면서요.
“제가 생태계에 관심이 많거든요. 특히 동물의 세계와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저는 외국이든 지방이든 중계를 나가면 꼭 재래시장, 동물원, 박물관을 둘러봐요. 성남 모란시장에 가면 물건값을 흥정하는 사람들, 산나물 몇 꾸러미를 내놓고 하루 종일 앉아있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못 먹을 것 같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 화장을 짙게 하고 개의 볼기짝을 두드리는 예쁜 여자…. 그런 걸 보면서 삶의 처절함을 실감하죠. 복싱이나 축구에도 그런 처절함이 있잖아요.”
송캐스터는 축구를 맡기 전에 복싱을 중계했다. 한국 프로복싱이 전성기를 누리던 1970∼80년대 그는 MBC권투를 통해 매주 시청자들과 만났다. 특히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김득구 선수의 세계타이틀전은 아직까지 그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다. 송캐스터는 이날의 혈전을 인공위성 화면을 받아 생중계했는데, 김득구 선수는 이날 처절한 투혼을 발휘하다 링에서 쓰러진 뒤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세월은 흘러 송캐스터는 김득구의 삶을 재현하는 영화 ‘챔피언’에 출연한다. 물론 배역은 캐스터다.
―복싱과 축구의 닮은 점은 무엇입니까. 축구중계를 하면서 복싱에 자주 비유하시던데.
“골키퍼가 펀칭할 때 너클파트로 치는 것처럼 복서도 너클파트로 상대를 가격합니다. 너클파트가 우리말로 하면 정권이에요. 축구든 복싱이든 너클파트로 정확하게 치면 별 탈이 없지만, 빗맞으면 문제가 생겨요. 축구에선 골을 먹을 수 있고, 복싱에선 반칙이 되죠. 그런 점에 착안해서 ‘복서가 너클파트로 때리듯이, 축구공을 정확하게 차야 한다’고 말하는 거죠. 복싱과 축구의 가장 큰 공통점은 역시 투혼이에요. 김득구가 생사의 기로에서 펀치를 날린 것과, 이임생이 98프랑스월드컵 때 붕대를 감고 운동장에 들어오는 장면은 여러 측면에서 일치합니다. 한마디로 엽기적인 상황이죠.”
―복싱을 중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무엇입니까. 주먹싸움을 이야기로 풀어내려면 뭔가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싱은 가난한 시절의 스포츠잖아요. 복싱에는 배고픔의 탈출과 피를 부르는 인간 드라마가 들어있죠. 그래서 복싱 중계가 제일 힘들어요. TV화면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치고 받으니까 보기 좋죠. 하지만 캐스터가 얘기할 게 없는 종목이 복싱입니다. 복싱경기 중계방송을 녹음해서 들어보면 ‘레프트, 라이트’ 소리밖에 안 나와요.
그래서 저는 한 편의 소설을 쓰는 기분으로 중계했죠. 축구는 전후반 90분이 정해져 있지만, 복싱은 10대를 맞더라도 한 방에 역전할 수 있잖아요. 세계타이틀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 선수들이 받는 파이트 머니, 가난한 복서의 눈물겨운 이야기, 분만의 고통보다 참기 힘들다는 체중조절의 비화…. 체중조절이 어려울 때는 침도 삼키지 못해요. 실신을 무릅쓰고 체중을 줄여 저울대에 올라가 극적으로 계체량을 통과한 복서의 인간승리….
저는 그런 점을 미화시켜서 ‘복싱은 싸움이 아니다. 복싱은 오케스트라다’라고 말하는 거죠. 복싱선수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두 팔을 휘젓지 않습니까.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연주할 때 현악기들이 움직이는 모습과 레너드 같은 테크니션 복서가 경쾌하게 스텝을 밟는 장면은 모두 예술의 경지로 봐야겠죠.”
―복싱을 중계할 때도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타이슨이 귓가에 입을 대는 것 같더니 홀리필드가 펄쩍펄쩍 뛰면서 붉은 피를 흘리는 거예요. 또 스미스 선수의 경기 때는 행글라이더가 날아와서 라스베이거스 특설링으로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목뼈가 부러지고 난리가 났었죠. 미국은 참 재미있는 나라예요.”
복싱의 시대가 저물어갈 무렵 송캐스터의 주종목도 축구로 바뀌었다. 한국이 월드컵을 현지에서 생중계하기 시작한 것은 1986년 멕시코대회부터다. 당시 한국축구는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었다. A조에서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와 대결한 한국은 비록 1무2패에 그쳤지만, 경기마다 투혼을 불사르며 축구팬들을 열광시켰다.
―아르헨티나전이 첫번째 월드컵 중계방송인 셈인데, 그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우선 본선에 나가는 장면이 극적이었잖아요. 일본을 연파하고 32년 만에 본선에 나갔으니까요. 중계를 준비하는데 외신기자들이 찾아와서 한국팀 스타팅 멤버를 불러달라는 거예요. 내가 ‘차범근’ 그러면 ‘차붐’ 하고, ‘허정무’는 발음이 어려워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예요. 워낙 바쁜데다 설명해도 못 알아들어서 등을 떠밀었던 기억이 나요. 후반전에 박창선 선수가 35m 지점에서 터뜨린 중거리슛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게 한국이 월드컵에서 터뜨린 첫번째 골이잖아요. “
―불가리아전에서는 비가 많이 와서 애를 먹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실토할 게 하나 있어요. 가끔씩 제가 중계하면서 선수 이름을 틀리게 말한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나름대로 제가 중계를 충실히 하려다보니 생기는 실수예요. 가령 ‘한국 잡았다, 일본이 뺏었다’ 하면 어려울 게 없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중계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선수 이름을 다 외워서 시청자들에게 좀더 많은 정보를 주려고 노력하죠.
불가리아전이 벌어진 경기장에는 지붕이 없었어요. 경기시간은 다가오는데 맞은편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더라고요. 예감이 이상해서 콜라 박스를 얻어다가 모니터를 덮었어요. 경기 직전이 되어서야 불가리아 선수명단이 들어왔는데, 장대비가 내리면서 다 젖어버린 겁니다. 내 평생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 건 처음 봤어요. 중계석이고 모니터고 다 젖어서 중계를 중단한 곳도 있었어요. 불가리아 선수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다 명단은 비에 젖었으니 어떻게 해요. 할 수 없이 대충 선수 이름을 꾸며댄 거죠. 불가리아 선수들 이름이 긴 데다 뒤에 대부분 ‘프’가 붙잖아요. ‘무슨 무슨 코프’ 하면서 중계를 끝낸 거죠.”
86멕시코월드컵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송캐스터는 이후 한층 노련해진 모습을 보였다. 이때부터 송캐스터가 즐겨 쓴 멘트가 바로 ‘아, 위험합니다’였다. 이 말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른바 ‘송재익 시리즈’의 소재가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대형 화물차가 송캐스터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다. 이때 송캐스터가 화물차를 보며 하는 말, “아, 위험합니다.”
송캐스터는 운동장에 서너 시간 먼저 도착해서 중계방송에 활용할 소재를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86서울아시안게임 때는 잠실메인스타디움의 수용인원이 8만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내무부에 전화를 걸어 ‘인구가 8만명인 도시가 어디냐?’고 묻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이번에 묵호와 북평이 합쳐서 동해시가 생겼는데, 이 운동장에는 동해시 주민 8만명이 다 들어올 수 있습니다’라는 멘트가 탄생했다.
송캐스터는 경기 도중 카메라가 한 인물을 클로즈업하면 재치있는 멘트를 던지는 것이 장기다. ‘오카다 감독이 저 두꺼운 안경을 쓰고 벤치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케 해요.’ ‘아 오카다 감독 마치 셰익스피어가 생각나는군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90이탈리아월드컵에서도 송캐스터의 순발력이 빛을 발한 장면이 있었다. 송캐스터는 1990년 월드컵을 중계하다가 이탈리아의 골게터 스킬라치 선수가 나오자 ‘저 선수의 용모는 마치 테너 파바로티 같습니다’라고 운을 뗀 뒤 파바로티의 음악을 슬쩍 끼워넣었다. 그런데 잠시후 카메라가 관중석에 앉아 있는 ‘진짜’ 파바로티를 잡은 것이다.
―90이탈리아월드컵 결승전에서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을 때 무척 흥분하신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때 많이 울었죠. 제가 목이 메어서 말을 잇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때의 멘트를 다 외웁니다. 본부석에서 마테우스가 피파컵에 입맞춤하고 돌아서 나올 때 이런 멘트를 했습니다. ‘마테우스가 이끄는 독일 병정들이 이제 세계축구를 평정하고 저 휘황찬란한 피파컵을 가슴에 안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나라는 통일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몇 초 지난 뒤 제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죠. ‘아 참 부럽습니다.’ 거기에 더 보탤 말이 없더라고요. 단지 월드컵 우승이 부러운 게 아니었어요. 우리 세대에게 통일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입니까? 마테우스가 시상대 위로 걸어올 때부터 저는 감격한 겁니다. 6·25 세대로서 이건 참 멋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 참 부럽습니다’ 하고 울먹인 거죠. 깜깜한 새벽 스튜디오 안에서 방송을 했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요.”
―1997년 9월28일 한일전에서 했던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도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민성이 역전골을 터뜨리고 나서 뭔가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이민성이 골을 넣고 손을 치켜들며 환호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3·1절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뭔가 일본을 상징하는 얘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일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로 결심한 거죠. 처음에는 일왕과 후지산을 생각했는데, 축구중계하면서 일왕을 언급하기는 좀 그렇고 해서 그냥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다’는 멘트를 한 겁니다.”
―98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에서 한국이 1대3으로 패한 뒤 클로징 멘트를 하면서 ‘지금 국민 여러분 잠을 설치고 계실텐데,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는 저희들도 괴롭습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캐스터로서 중계방송을 중단하고 싶은 순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거 많죠. 네덜란드하고 4대0이 되고 5대0이 되는데, 순간적으로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캐스터도 중계하면서 메모지에 스코어를 적는데, 얼이 빠져서 신문선 위원한테 ‘야, 5대0이냐 4대0이냐’고 묻기도 했어요. 그런데 신위원이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종이에 5대0이라고 써서 물어봤어요. 그날은 캐스터가 뭐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 스탠드를 가득 메운 네덜란드 축구팬들을 보면서 그냥 ‘밀감 밭에서 중계하는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송캐스터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재미있는 멘트 때문이다. 사람들은 송캐스터가 많은 멘트를 준비했다가 적절한 상황이 닥치면 그것을 꺼내놓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단 한번도 사전에 멘트를 구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야만 시청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송캐스터의 대답이 사실이라면 그는 정말 비유의 천재다. 그것이 상황에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단어 선택만큼은 압권이다.
―지금까지 하셨던 멘트 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운동장에서 소란이 벌어지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특히 심판의 편파판정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가끔씩 ‘오늘 우리 한국은 14명이 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11명이 뛰는데 주심하고 부심이 우리 편을 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언젠가 한번은 운동장에서 난동이 벌어졌어요. 술 취한 사람이 쓰레기통을 운동장에 던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저 사람은 왜 자기가 들어가야 할 집을 던지죠?’ 하고 말한 적도 있어요.”
―비유가 너무 적나라해서, 방송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방송에서 경어를 잘 안 쓰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좀 심했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잠실에서 일본과 붙었는데 그날 홍명보가 빠졌어요. 스코어도 0대2로 몰렸고, 경기내용도 형편없었어요. 그래서 ‘오늘 한국 수비는 깨진 쪽박’ 이라고 말했죠.”
―‘막대기 없는 대걸레’도 그날 하신 멘트죠.
“막대기가 바로 홍명보니까요. 홍명보가 막대기처럼 키도 삐쭉 크잖아요. 그때 한국은 월드컵 진출이 확정됐고 일본은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벼랑 끝에 매달린 일본에게 우리가 구명줄이 돼줄 것이냐, 아니면 빨간 넥타이 매고 초상집에 가는 문상객이 될 것이냐’고 말했습니다.”
―그런 표현이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축구를 쇼로 만든다’ ‘축구와 어울리지 않는 멘트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98프랑스월드컵이 끝난 지 벌써 4년이 됐잖아요. 김치찌개도 한참 보글보글 끓을 때 먹어야 맛있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좋은 음식도 식고 곰팡이 슬어서 돼지밥통에 들어갈 때가 되면 추하게 보이듯이, 유행어나 멘트도 마찬가지예요. 이미 긴 세월이 흘렀는데 옛날의 멘트를 가지고 재미있네 없네 하고 입방아에 올린다면 제가 할 말이 없죠. 저는 극적인 상황에서 적절한 표현을 떠올리는 캐스터이지, 시종일관 웃기는 만담가나 개그맨이 아닙니다. 인터넷 시대인 만큼 네티즌들의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생전 축구 한번 보지 않은 사람들이 유머집을 거론하면서 ‘이 사람은 축구중계를 왜 이런 식으로 해’ 하고 비판할 때는 솔직히 불쾌합니다.”
송캐스터는 축구의 밑바탕에 오락이 깔려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중계방송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축구를 잘 모르고 중계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캐스터의 임무는 해설자의 능력을 잘 끌어내는 것이지, 그 종목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고 반박한다.
송캐스터는 “축구든 복싱이든 상식선에서 접근하고, 적절하게 애드리브를 구사하는 것이 나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송캐스터의 애드리브는 방송가에서도 알아준다. 종합대회 메인 캐스터를 자주 맡았던 그는 경기장 연결이 원활치 않을 경우 재미있는 멘트로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곤 한다. 94히로시마아시안게임 때는 무려 10분을 끈 적도 있다.
“히로시마에 오니까 정종이 좋던데, 그건 쌀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중략) 이 지역의 음식을 먹어보았더니 더운 지방이라서 음식이 짰다.(중략) 원폭 피해자를 기리는 히로시마 영혼탑에 가봤더니 까마귀가 많다. 일본에는 까마귀가 참 많은데 히로시마의 까마귀떼와 원폭 투하지점이 묘하게 일치한다.(중략) 재일동포 희생자의 위령탑은 히로시마 평화공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다리를 건너가야만 볼 수 있어서 안타깝다(중략).”
애드리브는 분명 송캐스터의 강점이다. 문제는 송캐스터의 애드리브가 이따금씩 ‘오버’한다는 데 있다. 그는 축구경기와 관련이 없는 비유를 들거나, 특정 선수의 잘못을 너무 아프게 꼬집어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송재익 유머집’에는 이런 멘트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축구 중계방송에서 담을 수 있는 멘트일까. 네티즌들이 심각하게 문제 삼았던 멘트들에 대한 송캐스터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예전에 일본경기를 중계하면서 ‘카즈 미우라 선수의 부인과 장인이 바람을 피운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건 축구와 별로 상관이 없고, 방송에서 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일본에서 미우라가 가장 인기있는 선수였어요. 그런데 일본대표팀의 가모 슈 감독이 미우라를 벤치에 앉혀놓고 뛰게 하질 않는 거예요. 그러니 카메라는 계속해서 미우라를 잡을 수밖에 없었죠. 뭔가 미우라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는데 마땅한 소재가 없더라고요. 마침 현장에서 ‘니칸 스포츠’를 보니까 집안에 스캔들이 있다고 나와 있어서 그걸 소개한 거예요. 제가 없는 얘기를 꾸민 게 아니고, 그런 기사를 전달했을 뿐인데 그게 왜 문제가 되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98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에서 블랑코 선수가 점프하면서 한국 수비수를 따돌리자 ‘저 짓을 또 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일전에서 고정운 선수가 공을 뺏겨서 선취골을 허용했을 때도 ‘이상한 짓’이라는 표현을 썼고요. ‘짓’이라는 말이 방송용어로 적합한지….
“저 짓이나 이상한 짓이 무슨 슬랭입니까? 저는 괜찮다고 봐요.”
―특정 선수를 두고 ‘약 먹은 병아리’라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까지 중계하시면서 시청자 단체나 방송사로부터 ‘이런 표현은 자제해달라’는 주문을 받으신 적이 없습니까?
“없었어요.”
―그렇다면 나름대로 수위조절을 잘 해왔다고 봐야겠네요.
“얼마전 광주에서 크로아티아전을 중계하는데, 붉은 악마를 훑던 카메라가 화장을 곱게 한 여자 두 명을 잡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순간적으로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나왔군요’라고 말했어요. 그건 유행가 제목 아닙니까. 유행가가 없었다면 제가 그런 얘기를 안했을 거고요. 카메라가 빠지고 나서 혹시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역시 여자의 아름다움은 건강에 있습니다. 참 발랄함이 좋습니다’라고 풀어갔는데, 방송사 내에서는 뒷말이 있었나봐요. 하지만 저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신문선 위원과의 찰떡궁합
송재익 : “아, 저런 행동은 마치 자갈밭에서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읽는 격이군요.”
신문선 : “네에.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서 신문을 읽을 수 있나요?”
신문선 : “호나우두 선수 얼굴이 보입니다. 저 호나우두 선수 입모양 좀 보세요. 쥐처럼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호나우두 선수 별명이 쥐 입이에요. 쥐 입!”
송재익 : 네. 쥐는 날마다 이빨을 갈아줘야 한다는데 그럼 혹시 호나우두 선수도 경기전에 항상 이빨을 갈고 나오는 거 아닙니까?”
신문선 : “지금 최용수 선수는 패스를 받을 준비도 되어 있질 않은데, 패스를 하니 뺏길 수밖에 없죠.”
송재익 : “마치 숟가락도 들기 전에 밥상을 떠미는 격 아니겠어요?”
한마디로 부창부수다. 송캐스터의 입담은 신문선 위원이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두 사람이 서로 장단을 맞출 때 중계방송의 흥미가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다음과 같은 멘트는 두 사람이 아니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송재익 : “저는 이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축구심판이 되고 싶어요. 파란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축구심판이 정말 부럽습니다.”
신문선 “축구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쿠퍼 체력테스트에 합격해야 합니다. 축구심판은 이론 체력 인격 등을 두루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송재익 : “아니, 인격도 봅니까? 그럼 전 안되겠군요.”
―신문선 위원과는 처음부터 호흡이 잘 맞았나요.
“둘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입을 맞춘 적은 없어요.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풀어가야 리얼하기 때문이죠. 우리의 호흡이 잘 맞은 것은 아마 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 때일 겁니다. 특히 한일전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일본 후지TV가 중계를 앞두고 ‘격렬 스포츠파워 장외대결’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한일 캐스터의 입담 대결을 다룬 50분짜리 프로그램이었죠. 그래서 저는 나리타공항에서부터 밀착취재를 당했어요. 일본 사람들이 원래 호들갑을 떨잖아요.
도쿄국립경기장 중계방송석에서 캐스터가 오른쪽에 앉고 해설자가 왼쪽에 앉았는데, 경기를 앞두고 오프닝을 뜨기 위해 잠깐 자리를 바꿨어요. 오프닝은 운동장을 배경으로 찍어야 하니까요. 그때 후지TV는 내가 앉아 있는 쪽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는데, 나는 그걸 몰랐던 거예요.
오프닝을 뜨고 나서 자리를 바꾸지 않고 그냥 중계에 들어갔는데 그날 따라 신문선 위원이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대히트’를 친 거예요. 그래서 그 필름이 도쿄방송에 나갔는데, MBC 일본지사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뉴스데스크’에 보도한 거죠.”
―이번 월드컵에서도 신문선-송재익 콤비가 타 방송사를 압도할 것으로 보십니까.
“이번에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두 분의 중계방송이 경쟁사를 앞설 수 있었던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신문선씨는 목청이 좋고 장점이 많은 해설가예요. 다만 목소리 톤이 너무 높아서 제가 아니면 맞출 수가 없어요. 저나 신위원이나 철저히 준비하는 편이고, 엔터테이너의 기질도 있잖아요. 축구중계를 하면서 시청자를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되거든요. 즐겁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월드컵을 다섯 번째 맞이하는 송캐스터가 한국축구를 훤히 꿰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운동장에서 열심히 귀동냥을 할 뿐 전문가들의 얘기에 절대로 끼어들지 않는다”라며 겸손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미 축구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전문가 수준이다. 축구공과 축구경기장의 규격, 축구규칙과 월드컵의 역사, 스타플레이어의 장단점과 감독의 스타일…. 비록 스튜디오가 아닌 커피숍이었지만, 그는 막힘이 없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릴 것으로 보세요.
“저는 캐스터니까 한국이 16강에 진출한다는 확신을 가지려고 해요. 그래야 그렇게 흘러갈 것이고, 마술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히딩크 감독이 팀을 운영하는 걸 보면 역시 거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여러 사람이 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선수들이 자기 역할을 모르고 경기를 치렀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선수들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것처럼 정확하게 수를 읽는 것 같아요. 예전엔 감독한테 조인트 까지면서 그냥 불같이 뛰기만 한 거고….”
―얼마전 출간된 고원정씨의 축구소설 ‘마지막 15분’을 보면 한국이 1승1무1패로 D조 2위가 되고, 16강전에서 연장 골든골을 성공시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릅니다. 만일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중계하실 것 같습니까.
“정말 모르겠어요. 제가 1984년 LA올림픽 때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중계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그림이 기가 막히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시청자들한테 전달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밤 12시가 지났는데 혹시 옆에 흔들어 깨워도 신경질을 안 부릴 사람이 있으면 좀 깨우십시오. 이번 대회에 싱크로나이즈드라는 시범종목이 있는데 정말 인어들이 나옵니다’.”
―‘여성동아’ 5월호에 실린 ‘송재익 VS 허정무’ 직격토크를 보니까 ‘이번 월드컵 끝나면 비 온 뒤에 초목이 자라듯이 한국축구가 잘될 것이다’라고 말하신 부분이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솔직히 월드컵 이후의 한국축구가 걱정스럽습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습니다. 명절 때 고속도로로 내려가는데 ‘대전까지 10시간 걸린다’는 걸 미리 미리 계산한다면,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복싱에서도 유명우 선수가 세계타이틀을 방어하든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든, 그 다음날 복싱체육관에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요. 그런 것처럼 세상의 흐름이 그렇게 단조롭지 않습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직업의 귀천이 분명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잖아요. 이제 축구만 잘해도 먹고 사는 시대가 오고 있어요. 브라질 유학생이 생기고 차범근 축구교실도 붐비고…. 저는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저도 예전에는 한국축구를 비관적으로 보았어요. 86멕시코월드컵에서 오연교 골키퍼가 펀칭을 잘못해서 한국이 이길 수 있었던 불가리아전을 1대1로 비겼잖아요. 저는 가끔씩 중계방송에서 ‘펀칭의 쓰라린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얘기했었는데, 얼마전에 오연교 선수가 죽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미안한 마음이 사무치더라고요.
제가 멕시코월드컵 끝나고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축구는 영원하고 우리는 축구 강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혹시 텔레비전을 보는 청소년 중에서 축구에 뜻이 있는 학생이 있다면, 골키퍼 한번 해보십시오’ 옛날 동네 축구할 때 제일 못하는 사람을 골키퍼로 세웠잖아요. 지금도 우리는 공격수를 높이 쳐주지 골키퍼는 잘 알아주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16강에 가려면 골문이 가장 안정돼야 합니다. 두세 골 먹으면 단순 산술법으로 따져봐도 유럽을 이길 수가 없어요.
저는 그동안 한국축구의 암적인 존재가 잔디라고 생각했어요. 몇년 전만 해도 우리가 사철잔디를 들여온다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이게 달라졌단 말이에요. 경기도 파주에 청소년 축구센터가 생겨서 초등학생들이 잔디에서 연습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건 엄청난 혁명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 한국축구의 희망을 거는 거죠.”
―축구중계를 처음 하셨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한국축구가 어떤 점에서 나아졌다고 보십니까.
“우선 지금은 길을 헤매지 않잖아요. 길목마다 우리 선수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마치 지하철역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가 지하철 지도를 보면 일정한 위치에 역이 있잖아요. 나는 그게 머리에 딱 떠올라요. 동네축구는 공만 따라서 우르르 몰려다니잖아요. 볼 달라고 소리 지르고, 안 주면 욕하고…. 예전엔 제가 그런 비유를 한 적도 있어요. ‘한국이 골 먹을 때는 마치 눈 오는 날 자동차 사고가 나는 것 같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어어 하면서 꽝 부딪히는 거예요. 그냥 멀리서 보아도 사고가 날 것 같은데, 멈추지 못하고 박는 거죠. ‘아, 위험합니다’라는 말도 거기서 시작한 겁니다.”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어느 순간 자기 나름의 축구철학이 생기는 것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축구는 전쟁 발레 체스의 결합’이라는 정의를 자주 인용한다. 축구는 전쟁의 또다른 표현이자, 발레의 몸동작과 체스의 전술을 포함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신문선 해설위원은 중계방송 도중 극적인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을 즐겨 쓴다. 모든 스포츠가 드라마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축구선수의 골 세리머니와 축구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엔 특별한 그 무엇이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비유와 입담에서는 당대 최고로 평가되는 송캐스터에게도 뭔가 남다른 축구철학이 있지 않을까.
―축구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바둑과 장기의 결합이라고 생각해요. 짧은 패스 같은 건 장기에 해당되죠. 만일 스트라이커나 플레이메이커가 빠졌다면, 저는 ‘오늘 차포가 빠졌다’거나 ‘차포를 떼고 싸운다’는 식으로 얘기해요.
또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두서너 수 앞을 내다보고 플레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바둑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대마를 잡지는 못했지만, 계가에서 밑지면 안된다’ 뭐 이런 식이죠.”
―98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에서 황선홍 최용수가 빠지고 김도훈이 원톱으로 출전하니까 ‘한국은 오늘 차포가 없지만 마상졸로 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선수들은 마상졸이라는 얘기가 되는데….
“사실 저는 잡기에 능하지 못해요. 술담배도 못하고 고스톱도 흉내나 내는 정도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부러 장기와 바둑을 사다준 적도 있어요. 졸이라고 해서 꼭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졸도 장군을 부르고 골키퍼도 골을 넣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현대축구에서 포지션의 의미가 없고, 히딩크 감독도 전천후 축구를 강조하는데….”
송캐스터는 얼마전 회갑을 치렀다. 잔치를 벌이지는 않았지만, 자녀들과 저녁을 함께하고 ‘용돈’도 받았다. 송캐스터는 1남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도쿄방송에서 일하다 지금은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있으며, 딸은 경제주간지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송캐스터가 60이 넘은 나이에 2004년까지 SBS와 억대 연봉으로 계약한 것은 분명히 파격적인 일이다. 그가 만일 2006독일월드컵 때까지 중계방송을 맡는다면, 6회 연속 월드컵 중계방송 캐스터라는 대기록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송캐스터의 꿈은 소박한 곳을 향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사랑해줄 때까지만’ 중계방송을 하고, 그 다음엔 고부간의 갈등과 입시철 학부모들의 고충 등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주부 토크쇼를 해보고 싶단다. 더 늙으면? 가족과 함께 생태기행을 겸해 제주도를 세 바퀴나 돌았다는 송캐스터. 그는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바닷가에서 사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