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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 | 선각자 인촌을 말한다

교육구국의 신념 지닌 인덕(仁德)의 대인

주제발표 ② 인촌과 교육

  • 한용진|고려대 교수·교육학

교육구국의 신념 지닌 인덕(仁德)의 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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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구국의 신념 지닌 인덕(仁德)의 대인

고려대 본관 앞에서 (오른쪽은 인촌, 왼쪽은 현상윤 초대총장)

가훈과 함께 인촌의 인간됨을 유지해주는 인생 좌우명은 바로 ‘공선사후(公先私後)’와 ‘신의일관(信義一貫)’이라는 휘호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신의일관의 좌우명은 대인관계에서 한번 사귄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접는 법이 없고, 언행에 편중되거나 남을 비방하지 않고 옳음(義)의 자세를 한결같이 지켜나가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좌우명 이외에도 약전(藥田) 김성식(金成植)은 인촌의 인격을 잘 드러내는 또 하나의 휘호로 ‘담박명지(淡泊明志)’를 들며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욕심 없고 밝은 뜻’을 의미하는 글로 생각되는데, 인촌은 평생을 통해서 사욕을 부린 적이 없고 그가 지닌 뜻 혹은 지조는 명명백백한 것이었다. 욕심이 없었기에 무슨 일에나 뒷전에서 힘썼고 뜻이 밝고 분명했기 때문에 동지들이 안심하고 인촌 주변에 모이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건대 ‘담박명지’였으니까 ‘공선사후’하고 ‘신의일관’할 수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입지(立志)의 선비 : 역사적 내비게이션

인촌에게서 볼 수 있는 교육적 인간상의 세 번째 모습이자 21세기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자신이 세운 뜻을 올곧게 지키는 역사적 의식인으로 선비의 모습이다. 인촌의 교육구국의 꿈은 일본 유학시절 와세다대학에서 무르익은 것이라 한다. 스물세 살의 열혈 청년이 교육을 통해 구국의 뜻을 세운 데에는 이미 영신학교를 세운 양부 원파공으로부터 보고 배운 바가 있겠지만, 일본 유학시절을 통해 게이오의숙의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치나 와세다대학의 설립자 오쿠마 시게노부와 같은 경세가들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교육적 인간상의 입장에서 입지(立志)란 주체적 자기 형성의 나침반을 갖는 것이다. 인생 계획표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이 중요하다. 비록 속도는 느려도 그 방향이 틀리지 않다면, 비록 끝내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삶의 과정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하더라도, 방향이 잘못된 사람들은 자신이 낭비한 인생을 후회하며, 뒤늦게 ‘삶의 길’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입지의 선비에게 요구되는 것은 현재 나의 공간에서 방향을 가르쳐주는 나침반(혹은 내비게이션)뿐만 아니라, 역사적 흐름 속에서 나의 선택이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시해주는 나침반이어야 한다.



교육적 인간상으로서 ‘입지의 인간’은 바로 선비(士)의 마음(心)을 세우는(立) 것이다. 선비는 자신의 뜻을 세워, 이를 오롯이 하는 사람이며, 선비가 뜻을 세우면 그 뜻을 관철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직간(直諫)을 하는 가운데 유배지로 귀양 가는 것조차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인촌이 일본에 유학하기 위하여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유학에서 돌아와 백산학교 설립의 꿈을 품었던 것도, 그리고 학교 설립이 좌절되었을 때 이를 대신하여 중앙학교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결행한 단식투쟁도, 그리고 보성전문을 인수한 후 총독부의 지난한 통제와 회유와 억압 속에서도 그가 교육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도 어쩌면 그의 교육입국에 대한 입지의 강고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촌의 이러한 인간상이 21세기의 교육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정리해보면, 첫째로 ‘인덕의 대인’이란 단지 생래적인 것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지향해야 할 가치다. 즉 과거의 카리스마적 권위나 공식적 직책에 따른 권한에서 비롯되는 하드파워보다, 비전의 공유나 일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끌어내는 비공식적 힘에서 비롯되는 소프트파워의 지도자상으로 제시될 수 있다.

둘째로 ‘공과 신의’의 개념은 그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요구되는 핵심적 가치다. 앞의 인덕 개념과 함께 신의를 공정광명하게 실현할 때, 사회 전체는 봄바람의 화목한 기운(春風和氣)이 충만한 살기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

셋째로 ‘역사적 의식인으로 입지의 선비’는 현대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을 줄여주기 위하여 자기 나름의 주도적 선택에 의한 뜻 세우기, 즉 입지의 중요성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을 살다 떠날 때에 다음 세대에 자신이 세운 뜻을 남겨 보여주는 사람이 선비이다. 그리고 그가 이루고자 했던 뜻이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져 뜻있는 역사가 될 때,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그리고 그의 죽음조차 의미를 갖게 된다.

신동아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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