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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신드롬의 허상

정치적 메시아가 아닌 ‘정치 로또’에 열광

  • 정해윤|미디어워치 객원논설위원 kinstinct1@naver.com

안철수 신드롬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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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신드롬의 허상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안철수 교수의 시장후보 양보로 지지율이 급등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이런 성향을 내포한 사람만이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의 역설은 권력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권력을 맡기려 든다는 점이다. 그가 마음을 비운 대가로 권력을 얻는다면 노자(老子) 철학을 가장 잘 실천한 사례로 기억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세계에서 가능한 일일까?

역사적 인물에게 공(功)과 과(過)는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온다. 10월6일 사망한 스티브 잡스의 경우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친딸을 사생아로 내버려둔 나쁜 아빠, 직원들을 극한까지 몰고 간 나쁜 경영자의 이미지도 함께 존재한다.

‘2m 수영장’論의 허구성

유독 한국 사회는 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의 유별난 무균질 선호 성향은 검증받을 기회가 없던 신인이나 은둔거사형(型) 인물을 과대평가하게 만든다. 안철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무결점의 리더로 비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본격적인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고, 보다 본질적인 것은 큰 과를 기록할 만큼 큰 성취를 이룩하지 않은 데 있다.

안철수는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올 때 ‘2m 수영장’론(論)으로 행정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과시했다. 수영을 하는 사람에게는 수심 2m의 수영장이나 태평양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의 얘기는 듣기에 따라 ‘애플 같은 회사를 만들 수도 있는데 하지 않았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안철수의 한계를 드러내 보인다. 높은 산이 큰 그늘을 드리우듯이 한 사람의 리더가 아무런 흠결 없이 세상에 성취를 남기는 경우는 없다. 스티브 잡스는 숱한 인간적 실수와 실패작을 양산하며 창의적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안철수는 그런 흠결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거대기업을 만들지 못했다. 그가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기업을 키우는 것은 안철수연구소 정도가 한계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와 유사한 인물을 꼽자면 벤처기업가가 아니라 이병철 같은 산업화 시대의 경영자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병철이 위대한 기업가였다고 주장한다. 이런 목소리는 삼성에 아부하는 소리로 간단하게 매도된다. 그가 위대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 고매하고 인간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탐욕이 춤추는 기업의 세계에서 누구보다 탐욕스러웠기 때문이고, 냉혹한 경영의 세계에서 누구보다 차가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초일류기업이 된 삼성전자는 창업자의 이런 성향이 발현된 결과다.

정치인 안철수를 김대중과 비교해보자. 많은 이가 안철수, 박원순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1987년 양 김씨의 단일화 실패를 떠올렸을 것이다. 대중은 5%의 지지를 받는 인물에게 50%의 지지율을 헌납한 안철수를 칭송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적 정치행위라면 김대중은 그렇게 했어야 했다.

김대중은 1987년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김영삼에게 양보했어야 했다. 1992년 정계 은퇴선언은 반드시 지켜야 했고 정치복귀는 해서는 안 됐다. 독재정권이 금권정치를 펼쳐도 정치자금은 한 푼도 안 받았어야 했다. 이를 실천했더라면 비토세력으로부터도 존경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평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노벨평화상 수상도 없었을 것이다.

이병철과 김대중은 본질적으로 다른 인물이 아니다. 기업가가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과 정치인이 최고 권력을 지향하는 것은 본질이 동일하다. 그들이 소유한 강한 욕망이야말로 두 사람을 정상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었다.

1987년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는 양 김씨가 역사적으로 심판받아야 할 사안임이 분명하다. 동시에 이 장면은 두 사람이 권좌에 오른 이유를 압축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렬한 자기 확신은 세상과 불화하는 이유이면서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의 원동력이었다.

김대중이 1992년 정계 은퇴선언을 했을 때 세상은 찬사로 가득했다. 그러다 1995년 정계복귀를 선언했을 때는 정반대의 역풍을 맞았다. 그러나 김대중이 역사에 기록될 부분 중 가장 큰 페이지는 결국 집권 기간에 이룩한 일들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큰 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직업윤리의 문제

안철수 현상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근대적 직업윤리의 부재’에 있다. 근대적 인간형은 한 사람이 특정 분야의 직인(職人)으로 성장해가는 유형이다. 이병철과 김대중은 평생 기업가와 정치인으로 살았다. 반면 안철수는 많지 않은 나이에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의사가 되었다. 일본식 직업윤리를 적용한다면 가업을 이어나갔어야 옳다. 그는 이 길을 관두고 기업가의 길을 택했다. 이 역시 10여 년 만에 그만두고 교수의 길을 택했다. 그는 괜찮은 의사였고 괜찮은 기업가였지만 한 번도 최고가 되어본 적이 없다. 이런 안철수식 이력관리는 한국인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라고 미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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