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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사건 주역, 서상목 전 의원 단독 인터뷰

“97년 대선 때 홍석현이 나를 이회창에게 소개했다”

세풍 사건 주역, 서상목 전 의원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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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철과 이원종 전 청와대 수석에 밉보인 게 불행의 씨앗● DJ 정권, 이회창 차기 집권 원천봉쇄 위해 세풍 사건 일으켰다● 국세청 압력 있었다면 대기업이 여당 후보에게 20억, 30억밖에 안 줬겠나● 1992년 대선 때 청와대는 10대 그룹, 국세청은 30대 그룹에서 모금● 1997년 DJ 비자금 조사 안 한 건 YS와 김태정 검찰총장의 합작품● 김종필측, “내각제 약속하면 DJP 연대 깨고 이회창에 가겠다” 제의● 홍석현 회장에게 10억 요구한 건 당 외부 홍보조직일 것● 대통령제에선 능력 있는 후보보다 약점 적은 후보가 이긴다

세풍 사건 주역, 서상목 전 의원 단독 인터뷰
‘세풍(稅風) 사건’의 주역 서상목(徐相穆·58) 전 한나라당 의원이 입을 열었다. 국세청을 동원해 불법 대선자금을 모았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세풍’. 공교롭게도 검찰은 1998년 8월 이회창씨가 한나라당의 총재로 선출되던 날, 서 전 의원을 출국금지하면서 수사를 시작했다. 한나라당 의원 십수명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됐고,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일부 야당의원들은 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1년 동안의 수사, 7년에 걸친 재판 끝에 서씨는 1년형을 선고받았고 사건은 종결됐다.

그러나 꼬박 1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에도 서 전 의원은 여전히 ‘죄인’으로 살고 있다. 최근 ‘X파일 사건’이 터지면서 세풍 사건은 다시 언론에 오르내렸고, 참여연대는 진상규명을 위해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지난 8·15 사면복권 명단에도 그의 이름은 빠졌다. 담담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불법 모금한 죄보다 더 큰 죄가 있다. 선거에서 진 죄, 그래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게 한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다.

서 전 의원은 작정한 듯 기자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19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의 갈등과 견제, 김대중 후보보다 이회창 후보와 연대하고 싶어했던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본심, 이회창씨의 선거자금을 모금하게 된 배경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과거 인민군에 학살당한 그의 가족사를 계기로 감옥에서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를 집필했다는 얘기도 기억에 남았다.

국회의원 시절 그의 텃밭이던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서 전 의원은 강남구 원격교육원의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8·15 사면복권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2002년 불법 대선자금을 모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사면됐는데, 그보다 5년 전인 1997년 대선자금 관련자들은 사면되지 않았어요. 섭섭하지 않습니까.

“내가 더 섭섭해하는 것은 한나라당이에요. 나 같은 사람의 사면은 반대한다고 했잖아요. 이 정권에 당하는 것보다 더 섭섭해요.”

-친정에서도 내쳤으니 다시는 정치를 하고 싶지 않겠군요.

“글쎄…. 좀 허무해. 박지원씨처럼 대통령이나 만들고 감옥에 갔으면 좋았지. 내 이익을 위해 뛴 것도 아니고. 이회창씨 대통령 만들겠다고 이리저리 뛰었지만, (청와대에서) 도움도 받지 못하고, 돈도 몇 푼 못 모으고, 그걸로 범죄자 취급받고, 지금까지 사면 복권 안 시켜주니….”

YS, JP, TJ에게 사랑받던 절정기

-어떻게 정치를 하게 됐습니까. 경제전문가로 이름을 날릴 수도 있었는데요(서 전 의원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세계은행(IBRD)에서 일하고, ‘타임’지 경제고문을 지냈다. 귀국해서는 36세에 일약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을 맡았고, 국내 처음으로 국민연금제도를 연구해 도입하는 등 1988년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경제통으로 활약했다).

“1983년 KDI에서 근무할 때 사공일 청와대 경제수석이 88서울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작업팀을 구성해서 연구했습니다. 1964년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개최해 성공했고 우리도 올림픽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것이란 결론을 냈죠. 그땐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올림픽이 악영향을 줄 거라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내 보고서가 청와대를 고무했고, 당시 노태우 올림픽조직위원장의 눈에 띄게 됐습니다. 1988년에 나를 13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 후보로 지명한 사람이 바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에요.”

-그뒤 내리 3선(選) 의원이 됐고,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했으니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고 할 수 있겠군요.

“김영삼 대통령이 나를 아꼈죠. 내가 대선공약을 만들었고, YS 대신 TV 토론에도 나가 선전했거든. 그래서 보건복지부 장관도 했고. 김종필 당 대표는 내가 충청도 사람이라며 챙겨줬어요. 박태준 최고위원도 나를 경제전문가로 예우했어요. 경제 관련 회의가 있으면 나를 불러서 같이 간 적이 많아요. YS, JP, TJ에게 모두 사랑을 받았으니, 내 인생의 절정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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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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