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호

한국경제 ‘감’못잡는 한국 경제학자들

  •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6-10-10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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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앞의 미래도 예측하지 못한다, 현실감각이 뒤떨어져 정책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경제현안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에게 쏟아지는 비판이다. ‘한국경제를 연구하지 않는 한국 경제학자.’ 그 아이러니의 속사정은 무엇인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은 경제문제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된 해답을 얻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조운 로빈슨)

    “경제학자의 주된 임무는 틀리는 데 있다. 경제학자는 우선 자신이 틀리고 이어서 타인을 속인다. 그가 틀리면 틀릴수록 사람들은 더욱 그의 ‘식견’을 필요로 한다. 경제학자의 수많은 실수는 그의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란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 자신의 역할과 유용함이 강조되는 유일한 전문가다.”(미셸 무솔리노)

    영국과 프랑스의 두 경제학자가 그린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오류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기도 하고,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지닌 한계를 인정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로 들어간 지 꼭 2년째 되던 지난해 12월3일, 10여 명의 국내 중진 경제학자들이 한 민간 경제연구소가 주최한 ‘IMF 경제위기와 한국경제학의 반성과 전망’이라는 토론회에 참석했다. 실천과학자인 경제학도로서 사상 초유의 금융대란을 미리 막지 못한 데 대한 자기 반성의 자리로 비쳤다.

    그러나 두 대학교수의 주제문 발표에 이어 본격적인 토론으로 접어들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소장 학자들을 중심으로 “IMF 경제위기에 대해 우리가 반성할 것은 없다” “잘못은 관료들이 했는데 왜 학자들이 책임을 덮어쓰느냐”는 등 강한 반론이 제기된 것. 급기야 주제문을 발표했던 교수들도 “주최측이 당초 ‘한국경제학의 반성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글을 청탁해놓고 이제 와서 이를 IMF 경제위기와 연결짓고 있다”며 젊은 학자들의 견해에 동조하고 나섰다.



    결국 이날 토론회는 경제위기에 대한 반성보다는 우리 경제학자들의 학문하는 자세에 대한 반성, 연구 여건, 한국경제학의 진로 등에 대한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논의로 성격이 변했다.

    헛다리 짚은 경제학자들

    하지만 IMF 환란을 겪으면서 우리 경제학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험악한 사회 분위기에서 경제학자는 비록 ‘주범’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공범으로 찍히기에 충분한 빌미를 줬다. 경제연구소와 대학 등에 몸담은 일부 경제학자들이 외환위기 직전까지 쏟아낸 엉터리 예측 때문이었다.

    96년의 경상수지 적자가 230억 달러에 이른데다 한보 삼미 등 대기업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97년 벽두부터 중소기업의 부도가 확산되고 실업자가 넘쳐났으며, 해외에서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도가 추락, 차입금리가 오르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97년 4월 주요 관변 경제연구소들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초에 발표한 것보다 1% 정도 낮은 5%대로 수정하면서 그 시점에 벌써 “경기가 하강할 대로 하강해 바닥에 이르렀다”고 추정했다. 이들은 불과 3개월 후인 7월의 하반기 경제전망에서는 6월의 수출 회복세를 근거로 성장률을 6.2%로 상향 조정하면서 “경기가 바닥을 치고 상승국면에 들어섰다”고 호언했다.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대개 5.5∼6.0%대의 성장률을 제시했다.

    ‘경제위기’란 천만의 말씀이었다. 8월에 태국이 IMF체제로 들어가자 우리나라가 그 지원국의 하나로 5억 달러를 내줄 처지가 됐는데도 우리의 위기를 강력히 주장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또한 이들 중 누구도 환율이 곧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10월 말에는 달러 환율이 연거푸 가격제한폭까지 올라 금융기관의 외환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지만 일부 학자와 연구소들은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 증가 논리를 앞세워 98년 성장률을 6%대로 내다봤다. IMF 관리체제로 편입되기 겨우 한 달 전인 11월에도 내로라하는 경제연구소들은 97년 말∼98년 초의 환율 예상치를 1달러당 920∼995원대로 잡았다.

    하지만 실제 환율은 이들의 예상을 비웃기나 하듯 11월20일 1100원을 넘어선 뒤에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다 12월23일에는 2000원까지 치솟았다.

    태평스러운 낙관론자들은 97년 12월3일 우리나라가 마침내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98년 성장률이 -6.7%로 추락하면서 큰코를 다치자 그 후로는 하나같이 비관론자로 돌변했다. 그 무렵 이들이 조심스럽게 내놓은 99년 성장률 예상치는 1∼2%대. 그러나 99년에 우리 경제는 10.7%의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비록 ‘일부 연구소’와 ‘일부 교수’의 오류라고는 해도 이들 대부분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발깨나 센 학자들이었으니만큼 이들의 견해가 학계 주류의 목소리처럼 들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98년 3월에는 국내 유수 대학의 경제·경영학과 교수 9명이 대우그룹의 ‘세계경영’을 극찬하는 책을 펴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기업분석 결과 “대우의 세계경영 전략은 한국 기업이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일깨워준 모범 사례”라며 “이는 대우라는 개별 기업의 경영전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 전체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과제이며 한국경제의 도약 및 국부확대 전략이다”고 평가했다. 대우는 그 후 1년여 만에 부도위기를 맞았다.

    경제학의 한계

    우리 경제학자들만 헛다리를 짚은 것은 아니었다. IMF는 97년 8월21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대기업 부도 사태가 생산과 수출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며, 수출과 투자가 회복되고 있고, 금융부문의 혼란도 수습될 수 있다”며 연말까지 6.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97년 9월23일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도 “한국경제에 문제가 없다”며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동남아 국가와 한국의 경제상황을 비교하는 일부의 시각이 있으나 한국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무솔리노의 말마따나 ‘틀리는 것이 경제학자의 주된 임무’라고 한다면 지나치겠지만, 이렇듯 틀린 예측을 내놓았다고 해서 경제학자들의 자격을 시비할 일은 못 된다. 경제학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학문이다.

    성신여대 경제학과 강석훈 교수는 “경제학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현재에 주어진 정보에 바탕을 두는데, 이 정보는 이미 현재의 경제지표에 모두 반영됐기 때문에 미래의 변화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라고 설명한다. 경제학에서 자주 쓰는 ‘랜덤워크(random walk) 이론’과 ‘루카스의 비판’이 그 상징적인 예라는 것.

    주가나 환율은 술취한 사람의 걸음걸이처럼 제멋대로 변하므로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게 랜덤워크 이론의 골자다. 즉 주가나 환율의 변화는 과거의 변화와 패턴에 제약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므로 오늘의 주가나 환율이 내일의 주가나 환율을 예측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따라서 미래의 주가나 환율을 예측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계량경제학에서 흔히 이용하는 예측모델도 믿을 게 못 된다. 가령 ‘y=a+bχ’라는 예측모델이 있고 y를 소비, χ를 소득이라고 하자. 여기에서 계수 a와 b는 현재의 소비 등을 기준으로 추산하는데, 사람들은 소득이 오르거나 내릴 것이라고 예상되면 이들 계수 자체를 변화시키므로 소비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1년 후의 소득이 줄 것으로 예상되면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소득에 변함이 없더라도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이려 한다는 것. 이것이 루카스의 비판이다.

    미국의 통화·금융·시장정책을 총괄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처럼 미래 경제지표의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따라 임금증가율이 올라갔다든지 내려갔다든지 하는 구체적 증거가 나올 때만 정책에 손을 댄다. 미국의 총통화(M2) 예상치는 약 20%의 근사치만으로 알려진다고 한다. 이런 수치를 근거로 성장률을 1%대까지 예상해 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MIT 경제학과 폴 크루그먼 교수는 ‘경제학의 향연’이라는 책에서 “경제학은 원시과학”이라며 경제학자를 19세기 말의 의학 교수에 비유한 바 있다. 당시 의학 교수들은 인간의 신체기관과 작용에 대해 많은 정보를 축적했으며 이를 토대로 질병의 예방법에 대해 유용한 충고를 해줄 수 있었지만, 막상 누군가가 병에 걸리면 대개는 치료할 줄을 몰랐다고 한다. 경제학자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서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의 예방법 등에 대해 유용한 충고를 해줄 수는 있지만, 그가 치료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식으로 해석하자면, 한국의 일부 경제학자들은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예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원시과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단기적인 경제 예측을 남발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했다.

    이런 시각에 대해 강석훈 교수는 “의사가 술 담배를 많이 하는 환자에게 ‘금주, 금연하지 않으면 건강에 해롭다’고 조언할 수는 있지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앞으로 10개월 후에 쓰러진다’고까지 단언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고비용 저효율’로 요약되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외환위기가 닥치기 오래 전부터 거듭 주의를 환기시켰지만, 한국경제가 무너지는 시점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었다는 것.

    더욱이 정확한 예측을 시도하려면 정확한 데이터가 확보돼야 하는데, 당시로선 이것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당시 한국은행 발표로는 수백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차입금을 상환하느라 하루에도 엄청난 달러가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가용 외환보유고가 어느 정도인지는 베일에 가려 있었다.

    한국은행이 외환시장과 관련된 데이터를 거의 공개하지 않다 보니 경제학자들조차 환율변동이 시장에 의해 이뤄지는지, 외환당국에 의해 이뤄지는지 모를 정도였다. 외채 규모와 구조에 대한 정보도 모두 정부가 독점하고 있었다. 또한 그 무렵 정부가 발표한 금융기관의 부실여신비율은 1%가 채 안 됐는데, 이를 미국이나 일본의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의 비율은 ‘극비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홍익대 무역학과 박원암 교수는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도 위기 이전부터 수많은 학자들이 위기를 경고했다. 위기가 임박해 취해진 정책들이 위기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수없이 지적했지만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관료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처럼 경제학자들로 구성된 정책자문위원회 같은 것도 없었으니 학자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채널은 신문이나 잡지 칼럼밖에 없었다. 많은 학자들이 글을 썼다. 그중에는 위기를 경고하는 글을 쓴 학자도 있었고 안심해도 된다고 쓴 학자도 있었다. 학계에는 늘 찬반양론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이들을 신중하게 취사선택해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이 정책 담당자의 임무다. 평소에는 경제학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다가 위기가 닥치니까 전체 경제학자들을 싸잡아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에게 경제현안을 자문하고 정례 보고서를 발행해 경제정책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경제자문위원회(Council of Economic Advisers) 위원들이 모두 경제학 교수들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위원장을 맡은 교수는 각료급 대우를 받는다. 학교를 휴직하고 위원회에 몸 담은 교수들은 이름을 걸고 경제정책을 자문하므로 자신과 반대되는 견해를 포함한 학계 안팎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한국 경제현실 외면

    그러나 IMF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한국 경제학자들이 한국 경제현실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 배운 미국 중심의 주류 경제학 이론을 국내로 단순 이전하기만 했을 뿐 한국 경제현실에 바탕한 자체 이론 개발을 등한시한 나머지 정책수행이나 기업경영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많은 이들의 지적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지순 교수는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미시·거시경제학, 재정학, 화폐금융론 등을 강의하면서 주로 미국에서 나온 원서나 그 번역본 수준의 교과서를 사용했는데, 이런 교재들은 미국의 경제제도와 정책, 데이터를 중심으로 이론을 설명하기 때문에 가르치는 교수나 배우는 학생 모두 ‘이런 것들이 도대체 한국경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털어놨다.

    사상 초유의 환란을 겪은 뒤에도 그 전후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는 체계적·종합적인 연구가 부족했다. 외환위기와 관련된 학회와 세미나는 수없이 열렸지만 그 대부분은 논문이나 한 편씩 내고 끝내는 일회성 행사에 그쳤다.

    한 경제학자는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관련학자들이 꾸준히 자료를 축적하면서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데, 학자들의 관심이 벤처니 전자금융이니 하는 최신 유행을 좇아 확확 바뀌면서 금세 열기가 식었다”고 지적한다. 누군가가 지금도 외환위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면 다른 학자들로부터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해묵은 주제에만 매달린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가 멕시코 경제를 따라가고 있다든지, 제2의 외환위기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등의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한 분석적인 연구를 찾아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해온 한 관변 연구소 연구위원은 “연구를 하면 할수록 우리 경제를 낙관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며 “지금 당장은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지만, 대우그룹 문제와 투신권 문제 등 부실 처리가 지연되고 정부 및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이 미진해 또 한 번 예기치 않은 외부 충격이 올 경우 우리 경제의 문제해결 능력이 극히 의심스러운 형편인데도 정부나 학자 모두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재정적자 문제도 조만간 심각성을 더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거의 연구되지 않고 있다. 이는 공적 자금 지원 문제와 맞물려 당장 금융·재정 분야의 현안으로 불거질 전망. 공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재정적자가 더 악화되고 이를 해소하려면 다시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이 나타나기 쉽다. 이렇게 되면 채권금리가 오르면서 일반금리의 상승을 초래, 만성적인 고금리 상황으로 빠져들 위험성이 높다. 상명대 경상행정학부 백웅기 교수의 말.

    “정부는 2004년까지 균형재정을 맞출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환란, 거듭된 공적 자금 투입, 실업자 구제기금 확보 등으로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정부의 부채규모가 너무 커졌다. 재정적자는 일단 발생하면 다시 흑자로 돌리기 어렵다. 미국은 레이건 정권 초기부터 재정적자 문제로 시달리다가 15년이 넘게 곤욕을 치렀고, 일본 유럽 등도 마찬가지였다. 재정적자가 심각해지면 재정 확대정책을 못 쓰게 되므로 통화정책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임기 말까지 균형재정을 맞춘다는 정치 논리에 밀려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밖에 통일에 대비한 연구, 경제에 대한 정부의 몫과 그 한계에 대한 연구, 기업에 대한 연구 등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업에 대한 연구는 경제학에서 경영학이 분리되면서부터 눈에 띄게 소홀해졌는데, 우리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제를 추종하면서도 대개 반기업적 성향을 갖고 있어 기업을 이윤극대화의 주체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기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비판부터 앞세우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불합리한 교수 평가기준

    한국경제를 연구하지 않는 한국 경제학자.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들이 있다.

    우선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학자들이 우리 경제에 대한 데이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외국에 나와 있는 데이터만 보고 우리에게도 이만한 데이터쯤은 당연히 있을 것으로 알고 실증연구에 뛰어들었다간 고생만 잔뜩하다 두 손 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통계작업의 미비로 데이터 자체가 부족할 뿐 아니라 경제당국이 데이터를 공개하는 데 인색하고, 공개된 데이터의 신뢰도도 낮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정부는 소득분배 개선정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상황에 대한 데이터는 태부족이다. 거의 유일한 자료가 통계청에서 내는 ‘도시가계연보’인데, 이는 2인 이상의 도시 근로자 가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1인 가구와 자영업자, 농어촌 지역 주민의 사정은 알 수가 없다.

    이런 기초적인 자료도 없이 소득분배 개선이나 국민연금, 의료보험 정책 등을 연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업·금융기관 관련 자료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비로소 ‘IMF 기준’에 맞는 데이터들이 나오고는 있다지만, 이들이 분석의 틀로 유용하게 다뤄지려면 상당한 기간 동안 축적돼야 한다.

    ‘정보 사각지대’에 가까운 대학에 비해 연구소는 최근의 데이터를 입수하기가 비교적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 관변 연구소 경제학자는 “금융부문의 부실현황이나 은행 경영상태 등 정작 써먹을 만한 데이터는 아직도 구하기 힘들다. 금융감독원 자료 하나 얻으려고 금감위원장 ‘빽’을 써야 할 때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부실 처리를 위해 국민에게 막대한 공적 자금을 요구하면서 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침해다”고 비난했다.

    대학교수들에 대한 불합리한 연구평가 기준도 한국경제에 대한 연구 의욕을 꺾고 있다. 교수들은 해외에서 발간되는 학술지에 연구논문이 실릴 경우 대학의 교수 평가기준이나 학술진흥재단 등의 연구비 지원기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려면 미국 등 선진국의 학계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를 다뤄야지, 우리의 관심 주제를 연구해서는 주목받기 어렵다. 더욱이 사례 연구는 연구실적에 포함되지도 않아 학자들은 현장 조사마저 꺼리게 된다.

    이렇다 보니 특히 젊은 경제학자들이 한국경제의 당면 과제를 분석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학문적 ‘세계화’ 드라이브의 그늘인 셈이다.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한국의 모든 경제학자가 여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국내 학술지에 대한 평가기준에도 문제가 많다. 교수의 임용이나 승진에 있어 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면 학술지의 질적 수준은 묻지 않고 높은 점수를 주며, 학회를 통해 연구비를 신청하면 학회 육성 차원에서 우대해주는 게 관행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학회마다 학술지를 내는 데 급급할 뿐 아니라 심지어 학술지를 발간하기 위해 학회를 결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무려 50여 개의 경제학회가 난립해 있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학회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실적은 단순히 건수 위주로 평가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1년에 한두 번 발간되는 유명무실한 학술지에 나눠먹기 식으로 논문을 모아 싣고 아무런 심사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출판해도 여기에 실린 논문들은 훌륭한 연구실적으로 인정된다는 것. 이렇게 급조된 논문에서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칠 만한 깊이 있는 연구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또한 학회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 한 편은 대체로 A4 용지 20매 안쪽의 짧은 분량이다. 한정된 지면에 여러 학자의 논문을 끼워 넣으려다 보니 분량을 제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대학교수는 “짧은 논문이라고 해서 학술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여건에서는 학자들이 학술지에 내기에 적당한 만큼의 단편적인 연구에만 치중하기 쉽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결과물에 대한 경제정책 담당 관료들의 무관심 때문에 연구와 정책이 따로 놀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정책에 반영되기를 기대하면서 공무원의 ‘눈높이’를 염두에 두고 어렵사리 논문을 써보지만 전혀 반향이 없다는 것이다.

    학자와 관료 간의 교류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정책 담당자들은 정책을 집행하기에 앞서 공청회나 위원회에 학자들을 참석시켜 의견을 묻지만 토론시간이 제한돼 있어 깊이 있는 토론이 이뤄질 여지가 없다. 이런 자리에 학자들을 초빙할 때도 ‘분위기 깰’ 우려가 없는 온건한 인사들을 선별하기 때문에 토론다운 토론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학자들이 여는 학술대회에 고위 관료들이 참석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학자들의 의견을 들으러 온다기보다는 기조연설 등을 통해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무원들은 대학교수들을 “현실도 모르면서 원리 원칙만 따진다”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존심 강한 고시 출신 경제관료들은 ‘학자들에겐 더 배울 게 없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유용한 고급 정보를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도 교수들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한국의 경제현실에 대해서는 대학보다 경제연구소에서 더 많이 연구되는 편이다. 연구소(혹은 연구원)는 무엇보다 조직 활용과 정보 취득 면에서 대학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특히 정책 입안을 위한 연구그룹인 관변 연구소들은 경제부처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비중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관변 연구소의 현실

    그러나 독립적인 정책 연구기관으로 기능해야 할 관변 연구소들은 상당수가 경제부처의 수족과 다를 게 없는 단순한 산하기관 신세로 전락했다. 관료들이 연구소에 대한 예산권을 쥐고 있는데다 연구소장·연구원장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해 이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구소 경제학자들의 연구 주제도 경제부처에서 일방적으로 제시한 것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경제부처 각료의 연설문 원고 작성을 연구소에 떠맡기기도 한다.

    연구소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관료들을 움직이거나 정책에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자들이 낸 보고서에 조금이라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 있으면 관료들은 ‘보안 유지’를 내세워 입단속을 하기에 급급하다. 보고서는 그날부터 서랍에서 잠을 잔다. “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관료에게 보고서 갖다주는 것으로 우리 일은 끝난다. 그 후로는 무조건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게 한 연구소 연구위원의 말이다.

    “특히 올해처럼 선거라도 있는 해에는 연구소장들부터 알아서 입조심을 하기 때문에 보고서다운 보고서는 나오지도 않는다. 공무원들은 보직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지금 쉬쉬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거의 책임을 지는 경우가 없다. 그러니 좀 시끄럽겠다 싶은 보고서는 일단 뭉개고 본다.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도 이런 조그만 부실들을 방치하다 곪아터진 것 아닌가. 이런 분위기에서 소신껏 연구활동을 하지 못하는 유능한 전문인력들은 대학으로 갈 기회만 엿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 관변 연구원의 연구위원은 신문기자에게 “정부가 대우그룹 문제를 채권단에 미루려 하고 있다.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처방이 어렵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가 기사화된 후 연구원장과 함께 관련 경제부처를 진사 방문, 이 방 저 방을 돌며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환란 직전인 97년 10월에 한국경제 분석보고서를 내놓은 컨설팅그룹 부즈 앨런 · 해밀턴은 우리 경제를 분석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와 관계기관들이 이미 한국경제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심층적인 연구조사를 마치고 해결방안까지 찾아놓았더라는 것.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처럼 완벽한 진단과 처방을 해놓고도 한국병을 고치기 위한 10여 가지의 개혁조치 가운데 하나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서울대 이지순 교수는 “대학과 연구소의 단점을 서로 보완하고 경제학자간에 선의의 학문적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경제학자의 직장 이동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의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 경제학부에 정교수 자리가 날 경우 그 자리를 서울대 부교수 중에서 뽑아 채울 게 아니라 자격을 갖춘 모든 사람에게 문호를 개방해 적임자를 앉히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KDI에 선임연구원 자리가 공석이 되면 그 자리 또한 KDI 연구위원을 포함한 모든 유자격자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렇듯 직장 이동이 활발해지면 경제학자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대학은 현실감각을, 연구소는 자율성을 확보할 여지가 넓어질 수 있다.

    경제학에 등돌린 학생들

    한국 경제학의 위기는 경제학 교육 분야에서도 감지된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 학부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경제학과가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은 경제학과·경영학과·행정학과·국제통상학과를 하나의 학부로 묶었는데, 성적 순으로 학생들에게 학과 선택권을 주면 경영-행정-국제통상-경제의 순으로 자리가 채워진다. 경제학과로 오는 학생들은 소신껏 지원한 몇몇 학생을 빼놓고는 1∼3지망에서 모두 미끄러진 ‘열등생’들이다.

    한때 수재들이 몰려들던 경제학과가 비인기학과로 몰락한 이유 또한 한국 경제학의 현실감각 부재에서 비롯된다. 학자들이 현실경제를 설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 대신 계량적·수학적 모델링만 파고들다 보니 학생들도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서강대 경제학과 김병주 교수는 “경제학은 학문이 발전하면서 너무 정교해진 나머지 그 정교함으로 다룰 수 없는 부분은 경제학의 연구대상에서 제외해왔다. 수학적으로 풀 수 없는 것은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다 보니 경제학에서 수리·계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져 경제학 원론조차 너무 어렵게 가르쳐왔다”고 말한다.

    미국 학계에서는 10년 전부터 이런 문제에 대한 반성이 제기됐는데, 우리 학자들은 미국에서 무비판적으로 배워온 경제학을 지금껏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 이는 학생들이 미국 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데 도움이 되는 경제학일지는 몰라도 현실경제의 ‘감’을 잡도록 이끌어주는 경제학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경제학을 공부한 학생들을 채용한 기업 관계자들이 “학생들이 경제학을 배웠으면서도 단편적인 경제지식만 갖췄을 뿐 경제현실을 너무 모르고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종합적인 판단능력도 떨어진다”고 불만스러워하는 게 당연하다.

    이지순 교수는 “경제학은 교수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시청각 교재와 인터넷을 활용하는 쌍방향 학습도 가능하고, 교재도 난해한 이론을 주입식으로 나열하기 보다는 한국의 경제현실을 적절한 예제로 활용해 흥미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학회가 지난 3월 산하에 ‘경제학교육특별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눈길을 끈다. ‘현실에 가장 가까운 경제학’ ‘재미있는 경제학’을 만들기 위해 대학에서의 경제교육은 물론, 사회 일반에 대한 경제교육과 고등학교 경제교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개편방안을 연구해 하반기 중 성과를 내놓겠다는 것.

    또한 서울대 경제학부는 내년부터 학부 커리큘럼을 학자 양성 위주에서 탈피해 비즈니스 경제학·공공경제학·국제경제학·전자상거래 등을 다루는 신경제학 등으로 다양화해 학생들이 희망하는 진로에 따라 선택하게 할 계획이다.

    이런 비유가 있다.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 누군가가 경제학자에게 “한 달에 요금이 얼마쯤 나오느냐”고 물었다. 경제학자의 대답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기본요금이 얼마인데, 그걸 패밀리 요금제로 바꾸면 얼마이고, 세이브 요금으로 하면 얼마이고, 한 통화당 평균 단가는 얼마인데, 평일에 많이 쓰는 사람은 어떻고, 주말에 많이 쓰는 사람은 어떻고….”

    이번엔 경영학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답은 명쾌했다.

    “요금? 많이 쓰면 5만∼6만원쯤 나오고, 적게 쓰면 2만∼3만원쯤 나와.”

    수학자·사학자·정치가·철학자

    우스갯소리지만 경제학자들에게 ‘학자들만을 위한 경제학’의 울타리를 뛰어넘으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오늘, 한국의 경제학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결코 ‘무모한 변신’이 아니다.

    케인스는 경제학의 대가가 갖춰야 할 덕목들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수학자이자 사학자인 동시에 정치가이며 철학자여야 한다. 기호들만으로 이해한 것을 평이한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특수한 경우들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고찰할 수 있어야 하며, 추상과 구상을 동일한 사고의 지평 위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경험 아래 미래를 목표로 현재를 연구해야 하고,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규범 중 미세한 일부도 관심의 대상에서 빠뜨려선 안 된다. 예술가처럼 초연하면서도 가끔은 정치가처럼 치열하게 세속적이어야 한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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