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똘똘 뭉친 한국 보수진영의 ‘역습’

집행기구 상설화, 상시 1만명 이상 동원능력으로 대중성 확보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3-09-25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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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수단체들이 일제히 ‘몸 풀기’에 돌입했다. 올들어 세 차례 대규모 집회를 연 보수진영은 대구U대회를 거치며 결속력을 한층 강화, ‘반핵반김(김정일)’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침묵하던 보수’가 ‘행동하는 보수’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한 속사정은 무엇인가.
    똘똘 뭉친 한국 보수진영의 ‘역습’
    “죽여라, 죽여!”“빨갱이 죽여!”8월29일 오후 4시20분,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반핵반김 국민대회 청년본부’가 주최한 ‘북한기자 대구만행 규탄대회’가 시작된 지 20분쯤 흘렀을까. 갑자기 “퍼퍼퍽”하는 소리와 동시에 격한 외침들이 군데군데서 터져나왔다.

    연사 중 한 명인 민주참여네티즌연대 이준호(32) 대표가 ‘주권을 포기한 노무현은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린 단상에 올라 인공기를 찢는 퍼포먼스를 하려던 찰나, 단상 옆에 있던 사복 경찰관 몇 명이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인공기를 뺏았다. 그러자 집회 참가자들 일부가 그중 김모 순경을 에워싸고 10여 분간 집단폭행을 가했다.

    얻어맞은 김순경의 이마에선 핏물이 흘러내렸고, 집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전경들의 보호를 받아 김순경이 경찰버스에 오를 때까지 흥분한 집회 참가자들은 연신 “잡아라, 잡아!” “빨갱이 죽여라!”는 구호들을 외쳐댔다. 강원도 속초에서 왔다는 한 30대 남성은 단상으로 뛰어올라 “예비역 해병대, 예비역 공수부대원들은 앞으로 나와 연단을 보호하자”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날 집회는 8·15 국민대회에서의 인공기 소각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유감 표명, 8월24일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이하 대구U대회) 미디어센터 앞에서 벌어진 보수단체와 북한기자들 간 충돌에 대한 조해녕 대구U대회 조직위원장의 유감 표명, 뒤이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유감 표명 등을 규탄하는 성격의 행사. U대회 기간중이어서 경찰의 경비는 부쩍 삼엄했다.

    집회는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4절까지), 멀티비전 상영, 자유발언, 성명서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서해교전 당시 전사한 고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태씨도 연단에 올라 “한총련 학생들은 몽땅 빨치산 후손이다. 북한 미녀응원단은 특수훈련을 받은 특수요원들이라 생각한다”며 한총련과 북한 응원단을 강력 성토했다.



    노대통령과 이장관의 ‘사죄’를 촉구한 집회 참가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 시골군수감도 안된다” “집회가 끝난 뒤 이창동이 사무실을 때려부수자” “다음에 모일 땐 청와대의 좌익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등 극단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400여 명(경찰 추산)의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50∼70대 남성. 태극기를 든 참전용사들 사이로 그들의 가족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철승(81)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 지만원(61) 시스템클럽 대표 등 익히 알려진 보수인사들의 얼굴도 보였다. 집회장 한 켠엔 ‘월간조선’의 자사 출판물 가판대도 자리잡고 있었다.

    집회가 막바지에 다다른 오후 5시45분, 사회를 맡은 인터넷 ‘독립신문’ 신혜식(35) 대표는 인공기를 찢는 퍼포먼스에 실패한 걸 의식한 듯 마무리 멘트를 소리 높여 외쳤다.

    “헌법 아래서 우리의 주장을 얘기하고 있는데, 인공기를 찢거나 태우는 게 대체 무슨 죄가 됩니까. 애국시민 여러분! 다음주에 한 번 더 합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9월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북한기자 대구만행 및 자칭 국민의 힘 테러 규탄대회’ 집회에서 ‘김정일 타도’를 부르짖은 300여 명(경찰 추산)의 ‘행동하는 우익’은 결국 인공기를 찢고 불태우는 데 성공했다.

    ‘총궐기’ 나선 보수진영

    보수단체들은 올들어 세 차례의 대규모 집회를 잇따라 개최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결속력을 보여주고 있다.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3월1일 개최, 경찰추산 7만명 참가),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 국민대회’(6월21일 개최, 11만명 참가),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8월15일 개최, 1만5000명 참가)는 똘똘 뭉친 보수세력의 기세를 한껏 과시한 ‘파격’이었다.

    보수단체들의 이같은 ‘집단행보’는 1970년대의 소위 ‘관제데모’ 이후론 그 전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뭉치게 한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 국민대회의 성격과 흐름을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3·1절 국민대회의 경우 (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회장 길자연 목사·이하 한기총)가 지난 1월 개최한 평화기도회와 무관하지 않다. 한기총이 1월11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개최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가 보수단체 인사들의 이목을 끌면서 자연스럽게 국민대회를 한기총과 함께 열자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10여 개 보수단체가 연합해 ‘구국협의회’를 만들어 3·1절 대회를 열게 됐다는 게 북핵저지시민연대(www.cceo.or.kr) 박찬성(50) 상임대표의 귀띔이다.

    다만 당시 한기총과 보수단체들의 관계가 ‘느슨한 연대’ 형식을 띤 탓에 3·1절 대회는 집회장소를 각기 달리했다. 보수단체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을 택한 반면 한기총은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10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금식기도회’를 가진 것. 이후 6·25 대회 때는 보수단체와 한기총이 긴밀히 공조해 함께 집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8·15 국민대회는 앞서 개최한 두 차례의 국민대회와 성격이 조금 달랐다. 한기총의 협력없이 순수하게 보수단체들의 힘으로만 행사를 치러낸 것. 한기총이 8·15 대회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것은 인공기 소각 등 보수단체들의 과격한 퍼포먼스 외에 내부 사정도 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기총 김청 홍보국장은 “한기총이 독자적으로 구국기도회를 개최할 땐 문제가 없었으나 보수단체들과 국민대회를 개최할 때는 스태프진이 잘 맞지 않았던 측면이 있고, 8월은 휴가기간으로 기독교계에선 교회 자체 수련회 등이 많아 인원 동원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국민대회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찌됐건 세 차례의 국민대회가 시사하는 것은 보수진영이 상시 최소 1만명 이상의 막강한 동원능력을 갖춰 언제든지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지니게 됐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이상훈)의 경우 3·1절 대회와 6·25 대회 때는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나 8·15 대회 때는 조직 내부 사정상 다소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서울시재향군인회만 참여했다.

    북핵저지시민연대 박찬성 대표는 “6·25 대회의 경우 한기총과 공조해 국민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인원 동원 면에서 효과가 배가된 측면은 분명 있었지만, 당시 집행위원회가 인공기 소각 등을 달가워하지 않는 등 다소 온건한 경향을 띠었다.

    반면 8·15 대회는 보수단체들이 집행위원회 차원에서부터 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한층 강성 이미지를 띨 수 있었고, ‘보수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까지 충만하게 됐다”고 밝힌다.

    DJ정권 말기 ‘행동보수’ 태동

    보수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진 건 DJ정권 말기부터다. 북핵문제 대두를 계기로, 현재 활동중인 보수단체 대다수가 이즈음 창립했다. 이들 단체는 특히 참여정부 들어 대대적으로 세불리기에 나섬으로써 진보진영과 대립각을 세울 만한 위상에까지 이르렀다. 보수진영이 총궐기에 나선 핵심 이유는 무엇보다도 직접 체감케 된, 보수세력 존립의 위기 때문이다.

    “친북좌경세력이 ‘진보’를 칭하면서 해방 직후 미군정 때처럼 허구한 날 집회·시위를 갖고 건국 정통세력인 우리 보수세력을 수구냉전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니 보수세력과 절대 다수의 ‘과묵한’ 중산층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겠는가. DJ정권이 5년간 친북좌경세력을 위해 터를 닦아준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 들어 한미공조와 집단안전보장체제를 부정하며 반미 촛불시위나 벌이는 작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겠다는 애국심이 보수세력의 적극적 봉기를 이끌어낸 것이다.”

    건국보수세력의 원로인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http://my.dreamwiz. com/ncfd) 대표상임의장 나름의 분석이다. 진보진영의 맹공에 보수진영이 수성(守城)하던 전통적 보-혁 구도가 역전되는 현상이 생긴 건 ‘친북좌경세력을 방치한 DJ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합작품’이란 것이다. 이철승 의장은 8·15 대회에서 공동대회장을 맡는 등 여전히 보수진영의 상징적 존재로 통한다.

    그러나 8·15 국민대회가 처음부터 대규모 행사를 염두에 뒀던 건 아니었다. 당초 실내 및 소규모 야외행사로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같은날 진보진영 역시 대규모 집회를 계획중이어서 대한민국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진보진영에 선점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끝에 대규모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선 세 차례의 국민대회를 두고 ‘반북시위’쯤으로 치부하지만, 정작 보수단체들은 ‘애국운동’ ‘북한동포를 위한 인권운동’이라 자평한다. 또 북한기자들과의 충돌도 북측의 ‘테러’로 규정한다. ‘보수단체’라는 세간의 호칭도 ‘애국시민단체’로 바꿔 부른다.

    국민대회 집행위가 큰 軸

    현재 보수진영에서 각 단체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대략 2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국민대회 집행위원회다. 국민대회 임원은 국민대표, 자문위원, 집행위원으로 나뉜다. 이중 집행위원들이 모인 집행위원회가 국민대회에 관한 실무를 담당한다.

    8·15 대회의 국민대표 113명 중엔 명망가가 다수 포진했다. 그중에서도 강영훈 전 국무총리, 권영해 전 안기부장, 노재봉 전 국무총리, 박홍 전 서강대 총장,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 이동복 명지대 초빙교수, 정기승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헌변)’ 회장, 채명신 베트남참전전우기념사업회장,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황장엽 탈북자동지회 명예회장 등이 특히 눈에 띈다. 반면 자문위원 39명은 중소기업인, 각종 이익단체 및 참전단체장들이 대다수다. 집행위원은 45명으로 이 가운데 상당수가 국민대표를 겸했으며, 언론계 인사로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이 유독 두드러진다.

    똘똘 뭉친 한국 보수진영의 ‘역습’

    9월5일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직접 만든 인공기를 불태우는 ‘북핵저지시민연대’박찬성 상임대표

    좀처럼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허문도(63) 전 통일원 장관 역시 8·15 대회의 국민대표로, 대회의 ‘메인 메시지’격인 궐기사 ‘국가반역을 심판하자’를 직접 작성하는 등 보수진영의 이념운동 아이템을 제공하는 이론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00년 11월 발족한 자유시민연대도 보수진영의 핵심단체 중 하나다. 임광규 변호사(헌변 부회장) 등 6명이 공동대표로 있는 이 단체는 50여 개의 크고작은 보수단체를 회원단체로 거느리고 있으며, 8·15 대회 때는 집행위원회가 짠 행사 세부계획을 종합하는 역할을 맡았다. 자유시민연대는 매월 ‘자유시민저널’도 발간, 회원들에게 발송하고 있다.

    국민대회 집행위원회는 국민대회를 열 때마다 새로 구성되는 한시적 조직. 따라서 대회가 끝나면 그 다음 국민대회 준비단계에서 집행위원회는 교체된다. 하지만 핵심인사들은 대개 차기 국민대회 집행위원회에도 그대로 임원으로 참여한다.

    집행위원회를 이끄는 집행위원장의 면면을 보면, 3·1절 대회에선 김상철(56) 변호사(전 서울시장), 6·25 대회 때는 김경래(75)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 사무총장, 8·15 대회 때는 안응모(73) 황해도중앙도민회장이 각각 맡아 행사를 치러냈다.

    보수진영의 또 다른 한 축은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를 필두로 한 청년보수세력이다. ‘안티DJ’ 사이트를 운영하다 2002년 7월 보수 성향의 인터넷매체 독립신문(www.independent.co.kr)을 창간한 신대표는 청년보수세력의 리더로 활동중이다.

    혹 보수진영에 그 수뇌부격인 비공식 모임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별도의 모임은 없다는 게 집행위원회측의 답변이다. 그런 조직이 생겨나면 자칫 보수단체들의 ‘옥상옥(屋上屋)’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게 그 이유. 하지만 원로들을 비롯한 보수인사들은 각자 자신이 소속한 단체를 통해 활동하며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면 보수단체들의 각종 집회에서 구체적인 ‘전술’은 누가 ‘지휘’하는 것일까. 8월29일 열린 광화문 집회는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가 주도하는 ‘반핵반김 국민대회 청년본부’가 주최한 행사. 하지만 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보수단체 집회의 행사기획은 실상 북핵저지시민연대 박찬성 대표의 몫이다. 8·15 국민대회와 대구U대회 기간을 관통하며 논란거리로 떠올랐던 인공기 관련 퍼포먼스 역시 그의 아이디어다. 과소비추방범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도 겸하고 있는 박대표는 한기총 가맹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청년협의회장도 맡고 있어 국민대회 초창기부터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진보진영에 비해 청년보수단체들의 조직화가 미약하고 전략·전술도 미진하며 투쟁성도 약하다. 기본적으로 진보진영은 오랜 투쟁으로 단련돼왔지만, 보수진영엔 그런 경험을 가진 이들이 거의 없어 ‘액션’을 취하는 데 서툴 수밖에 없다. 이런 내부 사정 때문에 보수진영에선 행동의지가 강한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를 ‘행동대장’격으로 밀어주고 있다.”

    박대표는 “핵무기 모형 등 집회에 필요한 소도구들은 거의 내가 직접 마련한 것들이다. 인공기에 불을 붙이는 방법도 내가 가르쳤다. 8월20일 민주참여네티즌연대 이준호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인공기를 태울 때 불을 붙여준 사람도 나다. 지금까지 보수단체들의 각종 집회에서 사용하기 위해 몰래 찍어낸 인공기만 해도 100장이 넘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보수단체들의 집회에선 진보진영의 집회에서처럼 일사불란하고 ‘세련’된 면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박대표는 일례로 8월29일 열린 광화문 집회를 든다. 단상에 현수막 하나만 달랑 걸려 있고 피켓은 아예 보이지도 않던 의외의 집회 풍경이 ‘기획력 부족’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8·15 국민대회 당시의 인공기 소각 퍼포먼스도 8·15 대회 집행위원회가 행사내용에 포함시켰던 게 아니었다. 더욱이 집행위원회측은 내부적으로 인공기를 소각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베트남참전전우회 등 일부 참전단체들이 인공기를 소각하겠다고 나서자 이를 ‘묵인’해줄 수밖에 없었다는 게 집행위원회측의 후일담이다.

    대구U대회 때의 인공기 소각 역시 계획에 없던 것이다. 자유시민연대(www.freectzn.org) 김구부(57) 사무총장은 “대구에 가서는 기자회견만 하고 절대 인공기를 불태우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러나 북핵저지시민연대, 민주참여네티즌연대, 주권찾기시민모임 등 행동력이 강한 단체들이 전격적으로 인공기 소각에 나섰다”고 밝힌다.

    반면 대구U대회 당시 인공기 소각을 주도했던 북핵저지시민연대 박찬성 대표는 U대회에 대비해 미리 ‘작전계획’을 짜두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행동 시나리오’는 이랬다.

    “지난해 부산아시안게임에서와 같은 행태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남북한팀이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함께 입장하지 않았나. 이번 U대회에 임박해서도 통일연대와 한총련 등 친북세력이 대거 북한 서포터스로 참가해 북한 응원단과 접촉할 것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그래서 이번엔 계획을 짰다. 처음엔 U대회 행사장 등에서 집회를 한 뒤 마지막으로 경기장에 들어가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동포가 산다’는 등 자극적 글귀를 적은 플래카드를 북한 여성응원단 바로 코앞에서 펼치려 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북한기자들과의 충돌 때문에 계획대로 안됐다. 그래도 외신의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어찌됐건 8월31일 폐막된 대구U대회는 박대표의 말대로 한국 보수진영의 ‘건재’를 국내외에 과시한 장(場)이 됨으로써 보수진영이 기세를 올리는 변곡점(變曲點)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넓어진 보수 스펙트럼

    그러나 보수진영 내부에 균열이 전혀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기존 보수세력의 대표격으로 꼽혀온 (사)한국자유총연맹(총재 권정달)과의 관계다.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는 자유총연맹은 3·1절(회원 6000명 참가) 및 6·25 국민대회(5만명 참가)엔 적극 참여했지만, 8·15 대회 때부터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일부 언론과 사회평론가들은 기존 보수세력과 달리 최근 급부상한 보수단체들을 ‘신흥 보수세력’이란 신조어로 지칭하는가 하면,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에 빗대어 ‘네오콘(neocon)’이라 일컫기도 한다.

    서정갑(63)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대령연합회장은 “보수 소릴 듣는다고 해서 다 같은 보수는 아니다. 보수를 가장한 ‘회색분자’인 자유총연맹을 앞으로 보수진영에서 완전히 배제할 것”이라 잘라 말한다. 그는 또 자신이 이끄는 예비역 대령연합회에 대해 “‘별’을 못 달아 한풀이하는 집단이 아니다. 대령 계급은 군의 엘리트 간부이기 때문에 예비역 대령들이 국가안보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앞장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며 “‘종이호랑이’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보여주겠다”고 공언한다.

    예비역 대령연합회(www.bigcolonel. org)는 1995년 4월 창립, 현재 70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보수진영의 대표적 군사평론가인 지만원 시스템클럽(www.systemclub.co.kr) 대표도 대령 출신으로 소속 회원이다. 서정갑 회장은 2002년 3월부터 지금까지 80여 차례의 신문광고를 통해 각종 시국관련 성명을 발표해왔고, 최근엔 6·25 및 8·15 국민대회의 홍보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신문광고비를 모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서회장은 8월30일 조선일보사 앞에서 ‘월간조선’ 조갑제(58) 편집장의 이른바 ‘내란 선동’글 파문(8월24일 조편집장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과 관련, 조편집장에 항의하는 영화배우 명계남씨 및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 힘’ 회원들과 충돌을 빚는 과정에서 가스총을 발사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1983년 3월 당시 육군본부 총무과장이던 서회장은 육본에서 열린 이용문 장군(이건개 변호사의 부친)의 출판기념회 사회를 보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조편집장과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막역한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보수진영 일각에선 자유총연맹이 이른바 ‘신흥 보수단체’들과 ‘불가근(不可近)’의 관계를 유지하는 까닭이 ‘한국자유총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신동아’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자유총연맹측은 서면질의를 원할 정도로 지극히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자유총연맹 장수근 홍보매체본부장은 “자유총연맹은 3·1절 및 6·25 대회에 참여해본 결과 당시 대회를 주도한 일부 인사 및 단체가 전·현 정부를 매도하고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등 대회를 정치적 행사로 변질시킴으로써 본래의 대회 취지를 일탈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국민통합을 해치고 우리 사회를 이념분열의 장(場)으로 이끌고 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8·15 대회에 불참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유총연맹은 극좌를 반대하는 것과 같이 극우도 반대하는 활동노선을 견지한다”며 “극단적인 일부 진보 성향의 단체와 마찬가지 양태의 격렬한 시위와 감정표출, 퍼포먼스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려드는 몇몇 보수단체의 경직된 행동엔 결코 동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50만명의 회원과 전국 16개 지회, 231개 지부를 둔 매머드 조직인 자유총연맹이 행보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점은 ‘신흥 보수단체’들로선 적잖이 아쉬운 부분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보수진영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조금씩 분화하고 있다는 한 방증일 수도 있다.

    기성-청년보수 간극이 자체 한계

    보수단체들은 세 차례의 국민대회와 대구U대회를 전후한 각종 집회들을 통해 그들의 위상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데 일단은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예전에 비해 ‘자발적’인 집회 참가자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점도 특별히 강조한다. 더욱이 대구U대회 당시 북한기자단과의 충돌을 호재(好材)로 분석하는 경향도 강하다.

    “북한기자들과의 충돌 이후 유감 표명 등을 통해 우리 정부가 북측에 굴종적 태도를 보인 것은 정부와 진보진영 공히 ‘자살골’을 먹은 것이다. 사실 보수진영 입장에선 별로 힘 안 들이고 당당히 정부와 북한을 정면비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북핵저지시민연대 박찬성 대표)

    그러나 이런 자평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 내부적으로는 원로 보수인사들과 청년보수세력을 매개하는 고리 역할을 하면서 보수 이념을 승계해야 할 중간층이 희박해 대중성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한계다.

    기성-청년보수 간 갈등 또한 없지 않다. 이는 대개 보수 원로들에 대한 청년보수세력의 부정적 인식과 맞닿아 있다. ‘반핵반김 국민대회 청년본부장’으로 청년보수세력을 대변하고 있는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는 “지금 보수단체 원로들 중엔 5∼6공 때 호시절을 보낸 결과 과거의 때를 벗지 못한 채 말만 앞세우며 관료주의적 행태에 빠져 있는 인사가 상당수 있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자리다툼마저 벌인다”며 “진정한 보수라면 자신의 2세부터 운동에 뛰어들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호텔에서 밥 먹어가며 무슨 애국시민운동을 하겠다는 건가. 진정한 보수는 그런 기득권자가 아니라 ‘운동권’이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아직 외부로 공개된 바 없지만, 8·15 국민대회 집행위원회는 9월4일 오전 11시 서울 타워호텔에서 ‘8·15 국민대회 결과보고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배포된 8·15 대회 결과보고 자료의 ‘종합평가’ 중 ‘총평(總評)’ 부분을 보자. 이 자료는 8·15 대회 당시의 몇 가지 진행상 문제점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성공적 행사였다고 자평한다.

    ‘친북세력의 방해책동은 상대적으로 자유민주세력의 결속과 함께, 이들에 대한 대응활동을 보다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인식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분석임. 또한 시기적으로 혹서와 연휴기, 그리고 종교단체의 소극적 참여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의 시민들이 참여하였으며 행사내용도 전반적으로 짜임새가 있었다는 평가임. 특히 인공기 소각 이벤트 행사를 트집잡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불참을 선언했던 북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는 이 대회의 또 다른 의미의 성공을 반증하고 있으며, 또한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 좌파정권임을 자인했다는 점에서 향후 구체적인 투쟁방향의 강구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판단임.’

    집행위원회는 또 이날 모임에서 향후 활동방안 중 하나로 역동적인 상설 집행기구를 만들기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해 정관, 사무처 운영관계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자는 데 참석자들간 중지(衆志)를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자유시민연대 김구부 사무총장은 “이전부터 집행기구의 상설화 필요성을 거론하는 내부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이번에 상설화를 결정하게 된 것은 자칫 국민대회가 국경일이나 주요 기념일에만 열리는 관례행사란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는 데다 좌편향적인 노무현 정권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북한의 실상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려는 필요성에 의한 것”이라 밝혔다.

    8·15 대회는 자신감 획득의 기폭제

    이미 민주참여네티즌연대(www. fnkorea.org), 청년우파연대(http://cafe. daum.net/blueff) 등 청년보수단체들은 ‘반핵반김 국민대회 청년본부’를 상설화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들에 대항하기 위해 ‘보수매체’로서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며 사이버상에서 청년진보세력과 전선(戰線)을 형성하고 있다. 청년우파연대는 8월22일 탈북자 지원활동을 벌이는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의 ‘대북(對北) 라디오 보내기’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란(累卵)의 국가위기’를 강조하는 보수단체들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8월28일 ‘U대회 반북시위 적절한가?’를 주제로 한 MBC TV ‘100분 토론’에 참석했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연구교수는 “보수진영이 기본적으로 김정일 정권과 북한주민을 구분하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그들의 언행을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U대회 당시 북한기자들을 ‘위장한 공작원’, 북한응원단을 ‘훈련된 공작대’쯤으로 인식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며 “보수진영의 극단적 주장은 북한 민주화를 앞당기기보다 남북대결을 조장하는 ‘대안 없는 흥분’일 뿐이다. 1980년대 군사독재 하에서 북한 관영매체가 연일 군사파쇼정권 타도를 외치며 반파쇼 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한 것이 과연 남쪽의 민주화에 기여했는가”라고 반문한다.

    보수진영은 “‘남남(南南) 갈등’이라고들 하는데 갈등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고 역설한다. 수많은 사회현안에 대해 다양한 공개적 시각들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울림이 약한 건 왜일까.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진지하게 ‘사유’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보수진영을 지배하는 ‘이분법적 우적관(友敵觀)’은 그들의 진일보(進一步)에 과연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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