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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세상의 지배자를 꿈꾸는 힘과 힘이 부딪칠 때, 부서져 내리는 것은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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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흐름

“산업화를 통한 국력증대 속도의 차이에 의해 다른 강대국들보다 상대적으로 급성장하는 국가가 생기게 되고, 이러한 국가는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한다. 도전국가의 국력이 지배국을 따라잡는 세력전이 현상이 일어날 때, 이들 간에는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도전국가가 현상타파를 원하는 불만족국가일 경우 전쟁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지고, 도전국가의 성장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위험은 더 커진다.” - ‘현대 국제관계이론과 한국’ 중에서 ‘세력전이이론’ 부분 요약

일반 여행객과 상인들이 섞이는 경우란 쉽지 않다. 여행객들의 방은 주로 배 앞쪽, 상인들의 공간은 뒤쪽이다. 곳곳에 붙어 있는 금연 표지판에 아랑곳없이 상인들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운다. 중국인 상인들의 내기 장기판과 한국인 상인들의 고스톱 판이 층계참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맥주로 얼굴이 불콰한 사람들이 한국말과 중국어를 뒤섞어가며 너나들이 농담을 던지는 동안, 점 100원 심심풀이 고스톱 판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는 불청객 따위는 단박에 외부인임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곳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이들만의 마을이다. 하나의 공화국이다.

이 ‘인터내셔널’한 공동체의 분위기는, 그러나 지난 몇 달 사이만 봐도 금방 느껴질 만큼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2층 침대가 가득한 선실에서는 덜 흔들리는 1층이 2층보다 좋은 자리다. 창문이 보인다면 최고다. 좋은 자리는 대부분 한국인 고참 상인들이 우선권을 갖던 그간의 관례에 중국인 상인들이 한꺼번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 최근의 일이다.

새로 이 길에 들어선 한국인 상인들이 중국인 ‘선배’들의 텃세에 고달파하는 일도 생겼다. 1층에 누운 중국인 상인들이 침대 사다리를 오르는 삐걱 소리에 짜증을 부리는 일이 잦아 신참들은 이들이 곯아떨어질 때까지 로비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식이다. 중국인이 8할 가까이를 차지하는 상인회의 회장을 한국인이 맡고 있는 것도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더 이상 중국이 못사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열등감 따위는 이젠 없다.



문씨는 중국인 상인들과 잘 지내려 애쓴다. 지금 잘해주면 언젠가 중국인 상인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때 자신에게도 잘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물론 그 기대가 맞아떨어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배 위에 만들어진 ‘힘의 균형’이 뒤집히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예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이 배 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씨가 남편에게 중국 국적을 버리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영주권이면 충분하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 중국이 어떻게 될지, 한국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은 중국인들이 한국 주민등록증을 동경하지만 언제 한국인들이 중국 공민증을 부러워하는 날이 올지 알 수 없다. 그때가 되면 문씨가 남편 덕에 중국 영주권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인천과 칭다오를 오가는 배 위의 사람들은, 그 변화의 흐름을 온몸으로 감지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외정책이 도광양회(韜光養晦·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에서 돌돌핍인(??逼人·기세등등하게 호통치며 상대방을 윽박지른다)으로 변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중국의 노골적인 반발, 남중국해 곳곳에서 벌어진 영토분쟁,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국제금융 시스템에 대한 중국 당국자들의 날선 비판이 모두 한 묶음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 동아시아의 일에 미국이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소리다.

신냉전의 최전선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지켜야 할 국제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 천안함 사건 이후 기대와는 달리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움직임을 노골화하자 한국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중국의 급부상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은 백악관은 한미 합동훈련을 위해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서해에 밀어 넣었다. 제국의 쇠퇴를 인정할 수 없는 지난 세기 지배자의 노익장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중국의 의지, 그리고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미국의 의지가 이 바다에서 맞부딪쳤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사람들은 ‘신(新)냉전’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후이취안만의 해변에서 본 마천루 숲의 칭다오 신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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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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