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는 제쳐두고 역사시대만 보아도 헤게모니의 이동은 과학기술의 주도권 싸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원래 과학의 역사를 주도했던 곳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이다. 종이, 나침반, 화약, 시계 등 이미 1세기경에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발명품들이 서구에 등장한 것은 10세기나 그 이후부터였다. 서양의 과학 수준이 동양을 능가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였고, 본격적으로 힘의 불균형이 국제정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세기였다. 1842년에 벌어진 아편전쟁이 가장 상징적인 예다.
그때 무릎을 꿇은 중국이 이제 자발적으로 과학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뛰고 있다. 이처럼 과학만이 살 길임은 자명한데 우리는 지금 그걸 외면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굴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확실하게 과학기술을 중흥하려고 노력하는 데 견주어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우리나라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최근 발표한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의 논평에서 간단명료하게 나타난다. “1960~70년대 한국의 과학기술인 우대 정책과 청소년들의 이공계 선망 분위기가 1980~90년대의 고도성장을 낳았다. 2000년대 초 이공계 기피현상을 보며 2010년 이후 한국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실 이공계의 위기는 그 규모와 성격은 조금씩 달라도 웬만한 선진국이라면 다 겪은 과정이다. 다만 위기임을 느끼자마자 대책 마련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정면 돌파한 나라들은 위기를 무사히 넘겼거나 넘기고 있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장기적인 침체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애써 멀리 둘러볼 필요도 없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만 비교해봐도 위기의 본질은 간단하다. 장기적인 경제불황으로 자칫 이류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는 일본은 10여 년 전쯤부터 나타난 이공계 기피현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현재 일본 정부의 차관급 이상 공직자 중 이공계 출신은 불과 3%. 그러나 중국은 국가 최고지도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7명 중 이공계 출신이 장쩌민 주석을 비롯하여 무려 6명이나 된다. 거기다가 최근 제정된 과학기술상의 상금 규모가 자그마치 8억원에 이르는 등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파격적인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있어 명실공히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설 것이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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