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 한 명의 이적료로 수백억원을 내놔도 밑지지 않는 장사를 하는 곳. 축구공 하나가 선수와 구단은 물론, 도시와 기업, 중앙정부까지 먹여살리는 곳. 유럽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마케팅 전략에 따라 돈과 볼거리를 엮어내는 첨단 비즈니스다.
당시 월드컵에 대해 상당히 깊은 연구와 검토가 이뤄졌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본격적인 대회 유치작업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에나마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때의 연구가 큰 힘이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월드컵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월드컵 이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것도 월드컵대회의 성공과 별개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즉흥적인 남미 축구
월드컵은 세계적인 축구경기다. 하지만 거기에는 축구 외에도 경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곁들여진다. 어떻게 보면 축구는 이런 외부적인 요소들이 제 힘을 발휘하도록 장(場)을 열어주는 무대 노릇을 해낸다고 할 수 있다. 지역예선을 거친 32개국 선수들이 축구라는 단 하나의 종목에서 경기를 벌이는 월드컵이,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30여 개 종목에서 각축을 벌이는 올림픽대회보다 더 많은 사람을 TV 앞으로 끌어들이고, 경기 일수도 올림픽의 두 배인 30일에 이른다는 것만 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월드컵 열기가 이토록 뜨겁기 때문에 개최국가는 월드컵을 계기로 경제 특수를 누릴 수 있고, 자기네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으며, 대회 우승국은 국민적 긍지와 단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1998년 월드컵 대회를 유치한 프랑스가 개최국으로서뿐만 아니라 우승국이 거둘 수 있는 부가효과까지 만끽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축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과 열기는 축구를 축구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런 열기를 유지, 강화하면서 입지를 넓혀온 것이 20세기 축구와 월드컵의 역사다. 축구는 경제이고 정치이고 문화다. 이 점은 우리가 축구를 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기도 하지만, ‘월드컵 이후’를 생각 한다면 모든 논의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축구는 20세기 들어 남미세와 유럽세로 나누어져 자웅을 겨뤘다. 지금까지 16차례에 걸쳐 벌어진 월드컵 대회에서 남미 국가와 유럽 국가는 각각 8차례씩 우승을 나눠갖는 팽팽한 경쟁관계를 유지해왔다.
제1회 월드컵이 남미의 우루과이에서 개최되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남미 쪽이 유럽세를 조금 앞섰다고 볼 수 있다. 당시는 유럽대륙에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된 데다 곧이어 나치의 등장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시기라 축구 또한 위축됐다. 이에 반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대륙과 멀리 떨어진 남미는 그런 정치적 불안도 없었거니와 전란에 휩싸인 유럽으로 양모와 육류 등을 대량 수출해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 지금은 환란(換亂)에 허덕이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였다.
그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대규모 축구 경기장을 건설하고 축구교실을 열었으며, 우수 선수를 기르는 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 결과 남미는 축구 명문대륙으로 부상했고, ‘줄리메컵(월드컵의 전신)’이라는 세계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남미 축구를 한마디로 ‘삼바 축구’라고 표현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남미 선수들은 천부적인 골 감각과 현란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화려하고 열정적인 경기를 펼친다. 팬들은 멋진 쇼를 감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주의와 즉흥성은 전략, 전술, 조직 면에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이러한 특성은 축구 행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들은 뛰어난 축구선수들을 길러냈으되, 축구를 비즈니스로 승화하는 데는 별 재주를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럽 축구는 남미와 달랐다. 초기에 남미세에 얼마간 밀렸던 그들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이 지난 1955년이었다. 그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스포츠 일간지 ‘레퀴프(L’Equipe)’의 편집장인 가브리엘 아노와 마케팅에 뛰어난 감각을 가졌던 그의 동료 자크 페랑은 ‘유러피안컵(European Cup)’ 리그 개최를 제안했다.
두 사람은 축구 구단(클럽)을 활성화하지 않고서는 유럽 축구를 다시 일으킬 수 없고, 이를 위해서는 최고의 선수들이 투지와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축구 경기장으로 몰려들 것이고, 그렇게 해서 구단의 형편이 좋아지면 더 좋은 선수를 확보하게 되고, 그것은 또 더 많은 관중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을 오래도록 지속시키려면 적절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그것은 마케팅과의 접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그들의 생각은 곧 UEFA(유럽축구연맹)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956년 제1회 유러피안컵 대회가 개최됐다. 축구의 비즈니스화는 그렇게 해서 비롯됐으니 1956년은 그 원년으로 기록된다. 축구의 비즈니스화는 그렇듯 철저한 ‘계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미의 즉흥성과는 그래서 다르며, 그게 남미 축구를 이길 수 있는 유럽 축구의 힘이기도 하다.
유러피안컵은 UEFA 회원국에게만 참가 기회가 주어졌고 홈 앤드 어웨이 넉 다운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팀을 가렸다. 유러피안컵은 1992년에 ‘챔피언스 리그(Champions League)’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기본적인 틀은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그런데 경기 운영방식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참가하는 팀이 많은데다 리그 방식이 주류를 이루다보니 게임 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이를 다 소화하느라 1년에 10개월 동안 경기를 펼친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는 UEFA컵과 연계되어 있다. UEFA컵은 더 많은 팀을 유럽 무대에 등장시키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간에 아깝게 탈락한 팀을 구원해 회생할 기회를 주고자 마련된 것이므로 챔피언스 리그와는 상호보완관계에 있다.
챔피언스 리그에는 지역예선을 거친 72개 팀이 출전한다. 이들은 3차례에 걸쳐 예선전을 치르는데, 그중 상위 16개 팀이 본선에 오른다. 여기에 시드를 배정받은 16개 팀이 보태져 모두 32개 팀이 8개조로 나뉘어 4팀씩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다시 풀 리그를 벌인다. 각 조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16개 팀이 2차리그로 진출하고, 3위 8개 팀은 UEFA컵 3회전으로 직행한다. 2차리그에서는 16개 팀이 4팀씩 4개 조로 나뉘어 다시 한번 풀 리그를 펼친다. 거기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8개 팀이 결승 토너먼트에 나간다.
UEFA컵에는 121개 팀이 출전한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도 탈락한 팀까지 포함하면 145개 팀이 각축을 벌인다. 결승전 외에는 모두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진다.
두 리그에 참가하는 팀은 UEFA 회원국의 국내 리그 성적에 따라 결정된다. 가령 스페인의 경우 국내 리그인 ‘리가 에스파니올라’의 우승팀과 준우승팀은 챔피언스 리그 본선 1차 리그로 직행한다. 또한 3위와 4위 팀은 예선 3차전에 나가고, 5위와 6위는 UEFA컵 본선 1회전으로 직행한다. 국내 리그 상위팀은 챔피언스 리그로, 중상위 팀은 UEFA컵으로 간다고 할 수 있다.
출전하는 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축구 선수층이 두텁고 클럽이 많다는 사실을 뜻한다. 민주주의를 꽃피운 대륙답게 유럽은 스포츠에서도 철저히 풀뿌리 지향적이다.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스스로 만든 클럽을 토대로 해서 그 위에 협회(Association)를 결성하고, 또 이들이 뜻을 합쳐 연맹(Federation)을 만들며, 연맹은 다시 대륙연맹인 UEFA 같은 조직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스포츠의 중심에는 늘 클럽이 자리했다. 그것이 상업적 성격을 갖든, 친목 성향이든 관계 없이.
그래서 UEFA가 챔피언스 리그와 UEFA컵을 창설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배려한 것도 클럽의 의견이었다. 유러피안컵 개최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1955년 몬테카를로 총회에 유럽 명문구단 대표들을 초청한 것은 그러므로 지극히 당연한 처사였다.
이탈리아에는 약 2만개의 축구클럽이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보다 조금 더 많고, 영국에는 그 두 배가 넘는 4만2000개 정도의 클럽이 있다. 이들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등록선수는 인구 50명당 1명 꼴에 이른다. 축구협회의 역사도 100년을 넘으며, 명문클럽 역시 그 정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들이 세계 축구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 국가대표 대항전인 A매치에선 남미세가 유럽세와 호각을 이루지만 클럽간의 경기에서는 유럽세가 단연 앞선다.
유럽의 명문클럽으로는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아, 토턴햄, 아스날,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이탈리아의 AC밀란, 인터밀란, AS로마, 라치오, 유벤투스, 독일의 레버쿠젠, 바이에른 뮌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각자 자국의 국내 리그에 참가해 경기를 벌인다. 주요 리그에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 스페인의 리가 에스파니올라, 이탈리아의 세리에 A, 프랑스의 디비죵1, 독일의 분데스리가, 네덜란드의 KPN 텔레콘페티티, 포르투갈 리그, 덴마크 리그 등이 있으며, 각 클럽은 이들 국내 리그를 거쳐 대륙 무대인 챔피언스 리그와 UEFA컵으로 나간다.
국내 리그와 UEFA 차원의 리그를 포함하면 유럽의 웬만한 도시는 매주 적어도 한번은 ‘미니 월드컵’을 치르는 셈이다. AC밀란과 인터밀란이 홈구장으로 함께 사용하고 있는 밀라노의 산시로 스타디움은 8만5000석 규모의 대형 경기장인데, 게임이 열리는 날이면 빈 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찬다. 관중들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경기 내내 서서 소리 지르며 열기를 내뿜는다.
그들이 비싼 입장권을 사고, 차를 끌고 와서 축구를 보고, 먹고 마시고 기념품을 사는 데 쏟아붓는 돈은 한두 푼이 아니다. 스타디움은 시(市) 소유라 구단은 시에 경기장 사용료를 지불한다. 차를 가지고 온 관중은 시에 주차료를 낸다. 주변 상가는 이들 덕분에 매상을 올린다. 축구는 팬들에겐 짜릿한 감동과 흥분, 다시 말해 ‘창조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클럽과 시, 정부, 기업에게는 막대한 재원을 안겨준다.
이런 일이 1년에 10개월 가량 계속된다고 생각해 보라. 이는 비단 밀라노뿐 아니라 뮌헨, 런던, 맨체스터,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도르트문트, 리옹 등 유럽대륙의 주요 축구도시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축구는 본질적으로 1대1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우수한 선수를 확보하는 것이 필승의 제일 조건이다. 축구에서는 골을 넣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무리 일방적으로 공격을 주도했다 해도, 또 아무리 슛을 많이 날렸다 해도 골로 연결시키지 않으면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선수는 골을 넣기 위해 경기 내내 쉬지 않고 뛰어다녀야 한다. 네덜란드에서 이른바 ‘토털 사커’가 등장한 이래 축구선수의 행동범위는 크게 넓어졌다. 거기에다 스피드도 높여야 한다. 축구에는 ‘타임’도 없다. 자기 팀이 이기고 있다고 해서 골키퍼가 볼을 잡고 여유를 부리면 심판은 가차없이 휘슬을 불어댄다. 선수의 눈과 발은 볼에서 떨어져선 안되며, 관중은 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 주시한다.
그래서 유럽의 명문클럽은 골잡이를 확보하느라 혈안이 돼 있다. 뛰어난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고액의 이적료와 연봉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현재 세계 축구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2002한일월드컵에서 어느 나라가 우승컵을 거머쥐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누가 이번 월드컵에서 최고의 스타로 떠오를 것이냐일 것이다. 또한 과연 그 선수가 지네딘 지단이 갖고 있는 이적료 세계기록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인가도 화제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인 지단은 지난 시즌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에서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6620만달러의 이적료 세계기록을 세웠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850억원 정도다. 또한 이적료와는 별도로 지단에게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지급해야 하므로 클럽이 정상급 선수를 영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보통사람으로선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정도다. 유럽이 명실공히 세계 축구계의 왕자로 군림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미의 국가대표 선수들도 유럽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다. 브라질의 간판스타 호나우두는 인터밀란에서, 히바우두는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의 영웅 바티스투타는 AS로마에, 후안 세바스찬 베론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소속돼 있고, 우루과이의 알바로 레코바는 인터밀란에서, 파라과이의 산타쿠루스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다. 축구라면 어느 나라에도 지기 싫어하는 브라질이지만 유럽 등 해외로 진출한 선수는 700명이 넘는다.
유럽의 명문클럽들은 EU 안에서는 물론 동유럽,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도 좋은 선수가 있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끌어오려 한다. 이들은 비(非)EU 국가 출신 선수를 클럽당 5명까지로 제한하는 현행 규정이 선수와 클럽 모두에게 걸림돌이 되자 인종차별이란 이유로 이를 철폐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1995년에 유럽사법재판소가 선수의 자유로운 이적을 보장하는 ‘보스만 판결’을 내린 것도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유럽 명문클럽과 UEFA의 노력의 결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클럽은 무슨 돈으로 그런 고액의 이적료와 연봉을 지급할 수 있을까. 유럽 축구선수들의 이적료는 거대 스포츠 시장인 미국의 야구선수나 농구선수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입장권 수입만으로는 그런 돈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숨겨놓은 다른 수입원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을 알아보려면 클럽의 재무제표를 보면 된다. 대부분의 유럽 명문클럽은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으며, 각 구단은 협회에 재무제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돼 있다. 재정 부실로 인해 선수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렇긴 하나 이러한 정보를 손에 넣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다행히 미히르 보세가 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0년)’에 그 대강이 실려 있어 참고할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999년 재무제표에 따르면 입장권 수입은 전체 수입의 38%로 가장 비중이 높다. 두번째는 TV중계권료로 20%, 스폰서십(후원기금 및 개인 투자)과 로열티(이적료 판매수입)가 그 다음인 16%, 회의 및 식음료 관련 수입이 6%, 상품화 사업수입 및 기타가 20%로 되어 있다. 이렇게 들어온 돈은 선수나 스태프의 급료, 이적료, 경기장 사용료 및 관리비, 경기 진행비, 선수 훈련비, 회의비용 등으로 쓰인다.
이렇게 보면 이적료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다. 지출이자 수입원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투자인 것이다. 가령 인터밀란이 A라는 선수를 5000만달러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했다가 다음 시즌에 바르셀로나에 6000만달러를 받고 넘겨준다면 인터밀란은 1년 만에 1000만달러의 이적료 수입을 올리게 되는 셈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클럽들은 유소년 선수를 육성하는 데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몸값’이 싼 어린 선수를 재목으로 키워낸다면 그런 알짜 비즈니스도 없을 것이다.
고액의 이적료를 지불한 클럽은 어떻게 해서든 그 선수의 몸값을 더 올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기회와 노력을 제공할 것이고, 그게 성공을 거두면 그 선수의 몸값이 치솟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것은 클럽의 재산가치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에서 보듯이 상품화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규모도 만만찮다. 이는 구단과 소속선수의 이미지와 인기를 상품화해 벌어들이는 돈으로, 유니폼 판매가 그 대표적 사례다.
이탈리아의 1부리그인 세리에A에 출전하는 클럽의 경우 반소매 티셔츠 1장의 판매가는 대략 10만원 선이다. 원가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값이다. 로베르토 바조의 등 넘버 10번과 그의 자필사인이 새겨진 한정판 티셔츠는 한 장에 70만원을 호가한다.
이렇게 고가인데도 전국민이 축구팬이다보니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이른다. 40대 초반의 ‘정상적인’ 축구 팬의 경우에도 평균 4장의 유니폼을 갖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세계 유명선수의 팬이 어찌 유럽에만 국한되겠는가. 일본도 그 주요시장의 하나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다. ‘사커 마켓’의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클럽들은 거의 해마다 디자인에 약간의 손질을 가한 새로운 유니폼을 내놓는다.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상품화 프로그램에 따른 수입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덕분에 세계 정상급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장가치는 무려 6억파운드, 우리 돈 1조2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이탈리아의 세리에A에 출전하는 클럽의 주식은 증권시장에서 핵심 블루칩으로 평가받는다.
축구는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듯이 클럽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선수, 관련기업, TV 중계권자, TV 중계 후원기업, 클럽이 소재한 도시, 그리고 그 나라 중앙정부에게도 유형·무형의 부를 안겨준다. 교통, 숙박, 관광, 식음료·복권판매, 축구도박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수혜자다. 관광산업을 일러 흔히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말하지만, 진정 굴뚝 없는 산업은 축구다. 규모가 엄청난데다 매출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적어도 유럽에서 축구는 ‘국민적 비즈니스’로 정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 축구가 조직력과 높은 이적료 및 연봉, 상품화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세계 축구의 메카가 된 것은 아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또 하나의 동인은 클럽간의 치열한 경쟁이다. 이는 유러피안 컵이 등장할 때부터 이미 예견됐는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날이 갈수록 그 도가 더 심화되고 있다. 국내 리그에서 클럽간에 엎치락뒤치락하는 승부, UEFA에서의 피를 튀기는 각축전, 그리고 신예 클럽의 예상치 못한 돌풍 등 한 경기, 한 경기가 흥미진진하다 보니 수많은 경기가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는데도 번번이 매진사례가 이어진다.
경쟁의 격화란 어느 한두 클럽이 장기간 우승을 독식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 후반을 빛낸 이탈리아세는 이제 잉글랜드·스페인 등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최고의 몸값을 기록하는 선수들도 이들 지역에서 출현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은 클럽들로 하여금 능력 있는 감독과 우수한 선수를 확보하는 길을 선택케 했고,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는 전술과 전략의 개발도 부추겼다. 이미 축구의 전문 용어가 되어버린 ‘토털 사커’ ‘압박축구’ ‘아트 사커’ ‘퀵 앤드 러시’ 등은 모두 유럽 명문클럽의 작품들이다.
이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보자. 국내 K리그는 결승전이 아닌 다음에야 경기장은 늘 한산하다. 팬도 ‘붉은 악마’도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A매치 경기나 월드컵 지역예선 정도는 돼야 경기장을 찾고 TV 앞에 모여든다. 월드컵 개막일을 코앞에 둔 지금도 그렇다. 이래서야 ‘월드컵 이후’는 꿈도 꿀 수 없다. 축구는 선수만의 일도 아니고 구단만의 것도 아니다. 유럽 축구의 예에서 보듯이 선수, 구단, 축구협회, UEFA(아시아에는 AFC가 있다), 학교(유럽에선 축구가 교육의 기본 교과과목이다. 페어플레이와 용기가 가장 중요한 인간의 덕목이라 생각해서다), 시, 정부, 기업, 관중 모두가 힘을 합쳐야만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는 산업이자 문화인 것이다.
‘월드컵 이후’란 이를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다름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세한 일에서부터 큰 그림까지 다양한 아이디어와 전략·전술이 동원될 수 있다.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필자는 그 방안의 하나로 가칭 ‘아시안 리그(Asian League)’의 출범을 제안하고자 한다. 아시안 리그를 출범시키면 선수들의 기량은 크게 향상될 것이고, 월드컵 관련시설도 그 활용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 결과 팬은 팬대로 좋은 경기를 즐길 수 있고, 축구관련 종사자와 기업, 지역은 다양한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경험을 갖고 있다. 관련 시설도 있다. 중국은 2008년 올림픽을 개최한다. 그러므로 한·중·일 세 나라는 상당한 정도의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거나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이를 성사시킬 수 있는 국민적 지지를 얻는 일도 그리 힘들지 않다. 세 나라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