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대구·인천의 날씨는 한국에게 불리할 게 없다. 히딩크의 ‘파워 프로그램’이 적중한다면, 한국축구는 세계를 놀라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벼락공부로 명문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축구는 지금부터 월드컵 이후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까닭은 인간이 기어코 땅에 들러붙어서 땅위를 달리며 발로 차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다가와서 나는 신난다. 공을 찰 때 이 세계는 인간의 몸이 연장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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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축구가 현대화되기엔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 내심 믿고 있던 사람의 하나다. 시설이나 선수관리 시스템이 열악하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우리의 의식, 그 가운데서도 언어습관에서 찾았다. 청소년 시절 나는 ‘슛을 하라’는 말을 ‘우겨 넣어’라고 하는 축구풍토에서 자랐다. 골문 앞에서 무슨 수를 쓰든 볼을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으라는 이 말은 축구경기를 관전할 때도 제일 많이 썼던 응원의 하나였다. ‘우겨 넣어, 우겨 넣어!’ 그때 세트플레이니, 센터링이니 하는 기초적이고도 합리적인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우겨 넣는 것이 축구였고 슛이었다.
이런 것이 어디 축구에서만 찾아지는 것이랴. 어쩌다 TV 사극을 보게 되면 죄인(혐의자)을 문초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한결같이 내뱉는 호령이 있다. ‘저놈을 매우 쳐라’ 어떤 것으로, 얼마나 때리라는 것인지. 어느 정도의 강도와 얼마만큼의 횟수도 없다. 마구잡이로 후려 때리라는 것이다…. 어디 TV 사극에서만이랴. 뉴스에 등장하는 관료들도 툭하면 내뱉는 말이 있다. ‘이번 기회에 뿌리뽑도록 하겠습니다.’ 요즘에는 월드컵을 맞아 기초질서 위반사범을 뿌리뽑겠다고 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어느 정도 어떻게 바로잡아 나가겠다는 구체성이나 합리적인 방법론이 없다. ‘볼을 우겨 넣고’ ‘사람을 매우 쳐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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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발에는 뿌리가 없다. 발은 움직이라고 생긴 것이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 가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직립하여 두발로만 걷게 되면서부터 손과 얼굴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수천가지 운동이 가능해짐으로써 의사소통 능력과 주변환경을 조종할 수 있는 여지가 무한히 확장되었고, 그와 더불어 두뇌가 발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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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또한 부자유스럽게 한다. 축구에서의 ‘압박’도 마찬가지다. 공을 가진 상대선수의 공간을 최소화시키는 게 ‘압박’, 즉 ‘프레싱’이다. 공을 가지고 있는 상대선수를 순간적으로 2∼3명이 에워싸면, 상대선수는 플레이할 공간이 좁아지게 된다. 공간이 좁아지면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선수는 패스미스를 하거나 공을 빼앗기게 된다.
압박할 때 다른 동료선수들도 공을 향해 일제히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압박당한 상대선수의 패스루트를 차단할 수 있다. 물론 마라도나나 펠레 지단같이 개인기가 좋은 선수라면 그 좁은 공간에서도 자기 동료에게 정확하게 패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오히려 압박해 들어가던 팀이 역습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압박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 기습적으로 하는 게 좋다.
압박을 자주 하다보면 상대도 곧 이에 익숙해진다. 체력소모도 엄청나기 때문에 나중에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할 미국이나 폴란드가 즐겨 사용하는 것과 같이 상대가 최전방 골문까지 한번에 긴 패스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도 있다. 그래서 압박은 상대팀에서도 가장 개인기가 떨어지는 선수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게 중요하다.
압박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양 사이드와 상대진영이다. 이는 상대의 볼을 빼앗자마자 재빠르게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양 사이드는 가운데에서 사이드라인 쪽으로 2∼3명이 에워싸면 상대는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그렇다고 압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기습공격의 타이밍을 놓친 경우에는 일단 볼을 멈추고 빈틈을 노려야 한다. 원활한 패스 플레이를 펼치면서 상대 수비수들의 실수를 유도해야 한다. 농구처럼 슬슬 공을 돌리면서 틈을 엿보아야 한다.
축구역사상 압박, 즉 프레싱을 가장 잘한 팀은 74서독월드컵에서 준우승한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팀이다. ‘오렌지군단’은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돌아가는 ‘압박 토털축구’로 세계 축구팬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리누스 미켈스 감독은 3-4-3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역동성-압박-스위칭 플레이를 능수능란하게 연출했다. 모든 선수가 상대 진영부터 압박수비를 펼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모든 선수가 공격수가 되기도 했다.
최종 수비라인은 왼쪽부터 ‘루스베르겐-크롤-수르비어’가 맡았다. 이중 센터백 크롤은 압박전술을 총지휘했다. 한국으로 치면 홍명보와 같다. 그는 압박 타이밍과 방법을 동료들에게 지시했다. 때로는 하프라인 위쪽까지 수비라인을 끌어올려 상대진영에서부터 강한 압박수비를 펼치기도 했다.
마름모꼴로 선 미드필더진 4명은 ‘네스켄스-반 하이겜-얀센-한’. 얀센은 한국의 김남일과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상대팀 플레이메이커를 맡았다.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4-4-2로 나온 플레이메이커 오버라트를 묶는 데 주력했다. 오른쪽 미드필더인 한도 얀센의 뒤를 받쳐주면서 수비에 치중했다. 마름모꼴 꼭지점에 서서 플레이메이커로 뛴 선수는 반 하이겜이었다. 한국팀으로선 윤정환이나 안정환의 자리다. 그는 최전방의 요한 크루이프에게 수시로 패스를 찔러줬다. 반 하이겜을 지원한 선수는 올 라운드플레이어 네스켄스.
최전방엔 왼쪽부터 ‘레센브링크-크루이프-레프’가 섰다. 축구천재 크루이프가 공격라인을 지휘했다. 그는 최후방 센터백 크롤과 수시로 고함을 질러가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공수의 템포를 조절했다. 한국의 홍명보와 황선홍이 서로 소리를 질러가며 마치 풀무를 오므렸다 폈다 하며 음을 조절하는 아코디언처럼 팀의 템포를 조절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네덜란드인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도 바로 이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었던 오렌지군단이 모델이다. 한국팀 포메이션 역시 3-4-3이 주다.
압박을 하려면 우선 ‘블록전술’이 전제가 돼야 한다. ‘블록전술’이란 수비-미드필드-공격라인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촘촘하게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최전방 공격라인과 최종 수비라인의 간격이 30m를 넘어서는 안된다. 공간이 생기면 상대선수가 자유로워질뿐더러 압박을 해도 빠져나갈 틈새가 커진다. 3개 라인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동료선수들과 협조가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상대팀 공을 빼앗을 가능성도 커진다. 공격시 블록전술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골키퍼의 역할이 중요하다. 골키퍼는 페널티에어라인 훨씬 앞쪽까지 전진해 리베로 역할을 해야 한다. 골키퍼가 골대 앞에만 있으면 골대와 수비라인의 간격이 너무 넓어 수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압박’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압박에 실패했을 땐 상대의 롱패스에 의한 역습이 시작된다. 4월27일 한국 대 중국의 평가전에서 중국이 보여준 롱패스 작전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수비진 뒷공간에 찔러주는 중국의 긴 패스에 한국 수비진은 당황하다가 중국 공격수들을 놓쳤다. 단순한 전술이지만 상대 패스가 정확하고 상대 공격수의 스피드가 빠르다면 눈뜨고 당할 수 있다. 이날 한국도 중국에 결정적인 찬스를 두세 차례 허용했다.
한국과 맞붙을 미국과 폴란드는 바로 이와 같은 역습에 능하다. 패스도 빠르고 정확하다. 미국과 폴란드의 최종 수비라인에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다. 이들은 비록 순간동작은 떨어질지 몰라도 시야가 넓다. 한눈에 상대의 빈틈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곳에 긴 패스를 찔러준다. 우리의 홍명보처럼.
거꾸로 우리가 상대로부터 압박당할 수도 있다. 이럴 땐 논스톱 패스와 순간적으로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는 롱패스가 필요하다. 발빠른 공격수가 상대 뒷공간을 파고들 때 바로 그앞에 공을 찔러주는 긴 패스는 한순간에 상대의 압박을 무너뜨린다. 논스톱 패스는 정확한 볼 컨트롤, 정확한 판단력, 정확한 패싱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논스톱패스를 하면 상대의 압박을 피할 수 있을 뿐더러 순간 역습이 쉬워진다. 부상당할 가능성이 적고 쉽게 피곤해지지도 않는다. 그뿐인가. 결정적인 기회를 잡을 수 있고 공간확보가 쉬워진다. 논스톱 패스가 자주 이뤄지면 상대선수들은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이고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게다가 상대 수비수들은 늘 ‘순간역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쉽사리 공격에 가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논스톱 패스는 원터치 혹은 투터치까지만 하는 게 좋다. 그 이상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논스톱 패스가 끊기면 곧바로 역습을 허용하게 된다. 통계상 축구경기 중 뒤로 돌리는 공이 아닌 빠른 패스의 성공률은 스리터치 이상인 경우 10% 미만에 불과하다. 원터치나 투터치 패스에서 끝내야 한다는 뜻이다.
폴란드는 논스톱 패스에 능하다. 더구나 그 패스는 후방에서 단숨에 최전방으로 찔러주는 긴 패스다. 아차 하는 순간에 당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 4월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한국이 폴란드와 어떻게 싸워야 이길 수 있는가를 잘 가르쳐줬다. 해답은 ‘강한 압박’에 이은 ‘순간 역습’. 폴란드 선수들은 체력이 강하고 순간 역습에 능하지만, 압박에는 약했다. 몸이 굼떠 순간 압박을 당할 때는 당황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공을 뺏기거나 엉뚱한 곳으로 공을 차내기에 바빴다.
나폴레옹의 전술도 마찬가지다. 그의 전투 기본도 ‘기동력’과 ‘기습’이다. 한스크리스티안 후프가 엮은 ‘쿼바디스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중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 워털루’에서 묘사한 그의 전투 방식을 보자.
“나폴레옹은 언제나 전광석화처럼 행동한다. 그는 전쟁이란 오직 실전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미리 정해진 정밀한 규칙은 없다. 전적으로 지휘관의 타고난 성격, 그의 오류와 특질, 군의 특성, 무기의 사정거리, 계정, 그리고 모든 것을 항상 달라지게 만드는 주변 여건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한다. 그는 끊임없이 공격을 추구한다. 그는 ‘기습전 승리’의 대단한 옹호자다.
그는 우월한 전력을 바탕으로 재빠른 공격을 감행하여 적이 전술을 개발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나폴레옹의 비결은 민첩성 즉 결단의 민첩성이며 실행의 민첩성이다. 부대의 이동, 화력의 재배치, 그리고 기병대의 공격 등 모든 것이 신속해야만 한다. 기민한 이동에 실패하여 적들이 그의 작전을 예측하게 되면 그의 계획은 좌절하고 만다. 그의 승리는 ‘병사들의 다리’에서, 즉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독한 행군에서 얻어진다. 그의 병사들은 길이 나쁘고 날씨가 험해도 무거운 군장을 진 몸으로 하루 50㎞의 행군을 몇 주 동안이나 계속한다. 그는 급속한 이동으로 상대방을 교묘하게 따돌린다.”
서양 중세의 기사들은 왜 몰락했는가. 기동력 부족 때문이다. 역시 한스크리스티안 후프가 엮은 ‘쿼바디스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를 살펴보자.
“보통 165cm쯤의 키에 몸무게 70㎏인 사람이 갑주를 모두 갖추고 칼과 창을 들면 대략 50㎏의 무게를 지탱하고 걸어다녀야 한다. 강철로 만든 옷깃과 장식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하고 가슴에 댄 금속판은 흉부를 압박하며 내뿜는 숨의 습기로 인해 투구 안쪽에 맺힌 물방울들은 속옷 안으로 줄지어 흘러내린다. 기마전투를 치르고 나면 기사들은 잿물을 뒤집어 쓴 상태가 된다. 심장의 힘은 모두 소진되고 팔과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겁다. 그래서 수많은 기사들이 농기구 따위로 엉성하게 무장한 농부의 무리들에게 죽음을 당하곤 했다. 농부들은 기사들을 기묘하게 늪지대로 유인한 다음 지친 기사들을 말에서 끌어내려 거북이처럼 버둥거리는 그들을 도살했다. 기사계급의 몰락은 공룡의 멸종에 비유할 수 있다. 막강하고 위세가 대단했던 기사들이 철갑으로 무장하지 않은 민첩한 석궁수와 장궁수들에게 굴복해야 했듯이, 엄청난 몸집의 공룡들도 마침내 더 작고 민첩하고 활동적인 포유류에 밀려나 사멸하고 말았다.
전투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양한 속도로 상호충돌하는 힘과 질량들이며 측정가능한 대립적 에너지들이다. 승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더 많은 에너지, 더 큰 중량, 더 빠른 속도, 그리고 더 고도의 정확성을 뜻한다. 즉 에너지는 속도 곱하기 질량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양 중세의 기사계급은 적대자의 속도가 증가하여 질량이 우세한 철갑기사들과 균형을 이루게 되는 날부터 시대의 낙오자가 되었다.”
히딩크는 좌우로 쉴틈 없이 움직이며 상대 공격의 숨통을 끊는 수비력을 중시한다. 송종국 김남일 이을용 이영표 박지성이 황태자로 불리는 것도 바로 그걸 잘하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한국팀의 실력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다. 히딩크는 “최근 몇 차례 경기에서 선전했다고 한국팀이 갑자기 세계적인 팀이 됐다고 생각하지 말라. 한국에는 기술은 있지만, 세계수준의 체력을 갖춘 선수는 없다”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우리가 상대할 미국 폴란드 포르투갈의 수비진은 모두 30대의 노련한 선수들 위주로 짜여져 있다.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 등으로 짜여진 한국의 수비진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들은 한국의 더위에 어떻게 대처할까. 하기야 프랑스의 수비라인 리자라쥐(33)-르뵈프(34)-드사이(34)-튀랑(30) 등도 지난해 6월 컨페드컵에서 한국의 젊은 선수들보다 월등한 체력을 과시한 바 있다. 바로 여기에 선진축구와 후진축구의 차이점이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히딩크는 또 체력을 외친다.
“월드컵 개막 1주일 전까지 체력훈련을 강도 높게 실시하고 개막 직전부터 서서히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하겠다. 성생활은 인위적으로 금욕해도, 그렇다고 지나쳐도 좋지 않다. 개개인의 성생활은 스스로 판단할 문제다. 난 스포츠생리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어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인종별 개인별로 생리학적인 특성이 다를 뿐만 아니라 생활패턴도 다르기 때문에 휴가중 선수들 성생활 문제에는 간섭하지 않겠다.”
일본의 트루시에 감독의 말도 재미있다. 일본이 8강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성적도 가능하다는 일본 내의 여론에 대해 “일본의 월드컵 8강 진출은 아직 무리다. 진출해서도 안된다. 일본축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세계 톱클래스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만약 운이 좋아 8강에 진출한다면 일본축구의 장래를 위해서 곤란하다”며 일침을 놓았다.
역시 일본인들은 치밀하다. 한국인들은 무조건 16강을 외치고 있는데 비해 일본인들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리적이다. 일본 아사히TV는 얼마전 “일본국민 모두 스파이가 되자”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세계 각지에 사는 일본인에게 그 나라 축구대표팀에 관한 어떤 내용이라도 보내달라는 것. 특히 일본은 같은 조에 속한 러시아 벨기에 튀니지에 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모았다. 이 프로그램이 나가자마자 인터넷 홈페이지와 방송사로 날아온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러시아도 “스파이를 조심하자. 정보유출을 막자”며 일본 현지에 축구관계자들을 파견해 일본대표팀에 관한 책자나 기사 등 관련 자료들을 모조리 걷어갔다는 소식이다. 또한 일본이 다른 나라와 경기를 벌인 뒤 나오는 각종 기사 중에서 일본 관련 부분만 뽑아내는 특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일본의 정보전에 맞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과연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차라리 모든 것을 감독에게 일임해 놓고 조용히 기다리는 한국식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백기완 선생은 말한다.
“난 기본적으로 서양사람들을 배타적으로 생각하는데, 히딩크는 매우 머리가 좋아 보인다”
그렇다. 이젠 그를 믿는 수밖에 없다. 그의 체력을 바탕으로 한 속공전략을 믿어보자. 16강에 못 들면 어쩌랴. 솔직히 한국이 16강에 들어갈 실력은 아니지 않은가. ‘벼락공부’로 서울대에 들어간다 한들 대학생활이 수월할까. 16강에 오르든 오르지 못하든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국축구의 실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한 것은 하나의 신선한 퍼포먼스다. 그의 방북이 곧바로 통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막힌 것을 뚫는 하나의 ‘숨통’ 구실을 했다. 16강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16강에 오르면 그것은 하나의 퍼포먼스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희망을 쏘아올릴 수 있다. 그러나 16강에 못 오르더라도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원래 실력이 딱 그만큼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16강에 오르고 한국이 못 오른다면 어떻게 하냐고? 왜 그리 배아파 하는가? 일본은 그럴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제발 남과 비교하지 말자.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슈∼우웃 골인. 한국은 한국이고, 일본은 일본이다.
마침 그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한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팀은 마치 휴가라도 나온 것처럼 보였다. 유럽팀의 경우 대부분의 선수들이 클럽에서 뛰다가 잠깐 모여 A매치를 갖기 때문에 경기 결과는 실질적인 전력과 크게 다르다. 월드컵이 아직 한 달 이상 남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모여 발을 맞춘다면 팀전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말이다.
그렇다고 폴란드 선수들의 순발력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자기 소속팀에 있다가 잠깐 나와서 뛰는 것이라 해도 폴란드 선수들의 몸동작은 둔했다. 예선전 경기를 비디오로 보더라도 그렇다. 한마디로 폴란드는 수비위주이며 힘의 축구를 구사한다. 기술이 좋은 선수는 나이지리아에서 귀화한 올리사데베 정도다. 플레이도 거칠다. 독일 분데스리가 샬케04에서 같이 뛰고 있는 노장 수비수 하이토(30·187cm)와 발도흐(31·185cm)는 ‘삼국지’로 말하면 ‘장비’ 스타일이다. 거칠고 완강하지만 느리다. 신경전으로 화를 슬슬 돋우며 빠르게 공격하면 뚫지 못할 것도 없다. 물론 키가 커서 공중전은 불리하다. 한국은 코너킥도 슈팅처럼 빠르게 올려야 한다.
미국팀은 어떨까. 미국은 자신만만하다.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기죽지 않고 자기 플레이를 펼친다. 그리고 몸동작이 빠르고 날카롭다. 조직력이 탄탄하다. 한국으로서는 폴란드보다 미국을 더 경계해야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비진이 너무 늙었다. 아구스(32·179cm)-포프(28·185cm)-레지스(32·179cm)-사네(30·188cm)로 이어지는 수비진은 후반이 되면 헐떡거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국으로선 집중력이 떨어지는 후반 중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여야 승산이 있다.
미국은 개인기와 힘을 바탕으로 한 조직력의 축구를 구사한다. 때로는 유럽형 축구인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남미식 축구인 것 같기도 하다. 의외로 체구도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미국의 마라도나라고 불리는 갓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랜던 도노반 등 빠른 선수가 많다. 역습할 때 보면 폴란드보다 훨씬 날렵한 감이 있다. 다행히 골 결정력은 높지 않다. 미국과 독일의 평가전을 보면 미국도 압박에는 약하다. 허둥대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약점이 있다. 결국 미국전은 체력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강한 압박으로 초반부터 ‘기’를 꺾어야 승산이 있다.
체력은 경기 당일의 날씨와 관계가 깊다. 덥거나 습기가 많을수록 선수들은 더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 한국이나 일본의 6월 날씨는 덥고 습도가 높다. 특히 16강전 토너먼트가 펼쳐지는 6월15일 이후는 한국 일본 모두 본격적인 장마철이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오듯 흐르는 장마철의 후텁지근한 날씨에 죽을 힘을 다해 뛰어다니며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90분 동안 축구경기에서 실제 플레이가 진행되는 시간은 65분 안팎이다. 실제 98프랑스월드컵 때까지의 평균 경기시간은 62분으로 나타났다. 경기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25분 정도는 공이 밖으로 나가거나 파울 등으로 경기가 끊긴 시간이다. 선수들로선 이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지혜다.
축구전문가들은 말한다. “유럽선수들은 보통 1경기를 뛸 때 몸무게가 2㎏ 정도 빠지지만 습도가 높은 6월의 한국이나 일본에서 뛴다면 몸무게가 4㎏ 정도 빠질 것”이라고. 즉 유럽인들은 습도가 높으면 정상적인 땀의 배출이 힘들어져 체내의 수분이 다량으로 증발된다는 것이다.
일본 기상청은 최근 오사카 중심의 간사이지방은 6월6일부터, 도쿄 등 간토지방은 6월8일부터 장마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이로써 6월9일 도쿄 바로 밑에 있는 요코하마에서 러시아전을 갖는 일본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왜냐하면 러시아 선수들은 일본의 후텁지근한 날씨에 약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러시아의 6월 평균기온과 강수량은 17℃에 77㎜다.
게다가 일본이 6월14일 오사카에서 맞붙을 튀니지는 수중전 경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튀니지의 6월 날씨는 건조하고 쾌적하다. 평균기온이 23℃에 강수량 11㎜다. 일본의 개막전 상대인 벨기에의 6월 날씨도 평균기온 16℃에 강수량 79㎜로 건조한 한국의 3월 날씨와 비슷하다. 오죽하면 벨기에 로베르 바세주 감독은 이런 짓궂은 날씨를 들어 “일본이 이번 대회 우승후보의 하나”라고 평가했을까.
보통 유럽선수들은 여름에 쉰다. 그것은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A 등 유럽의 프로리그가 해마다 8월말 시즌을 시작해 그 이듬해 5월 중순에 끝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수들은 비가 오거나 더울 때의 경기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미 유럽선수들은 체감온도가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열린 94미국월드컵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바 있다. 독일이 한국전에서 전반에 3골이나 넣고도 후반에 2골을 먹으며 몰린 것이 단적인 예다.
일본은 6월 평균 강수량이 오사카 201㎜, 요코하마 192㎜에 기온은 21∼23℃로 무덥고 끈적끈적하다. 일본은 벌써부터 통풍이 잘되고 몸의 열을 쉽게 빼앗는 특수재질의 유니폼을 준비하는 등 대비가 치밀하다.
한국의 초여름 날씨도 일본에 못지 않다. 기상청이 지난 31년간 한국의 기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월드컵이 열리는 5월말부터 6월말까지 한국 날씨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비오는 날과 무더운 날이 많다. 평균 강우량은 110∼280㎜.
한국이 폴란드와 첫 경기를 갖는 6월4일 부산의 날씨는 어떨까. 최근 10년 동안 부산의 6월 평균기온은 19∼21℃. 연평균 최고기온은 23℃에서 25℃ 사이를 오르내린다. 습도는 75∼85%선이며, 강수량은 50㎜에서 447㎜까지 편차가 심하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 6월중순 이후 남부지방에 장마가 상륙했기 때문이다.
축구경기 하기에는 15∼23℃가 안성맞춤이다. 30℃가 넘으면 8∼12일 정도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이때 선수들은 잠잘 때도 에어컨을 켜서는 안된다. 결론적으로 한국 대 폴란드의 부산경기는 그리 덥지 않은 날씨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경기시간이 저녁 8시이므로 한낮의 무더위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비가 올 것이냐의 여부.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31년간 부산에서 6월4일에 비가 내린 적은 모두 10회. 사흘에 한번 꼴인 32.2%의 확률이다. 그러나 강수량은 대부분(8일) 1㎜ 이하를 기록했다. 보통 수중전이 되려면 시간당 5㎜ 이상 쏟아져야 한다. 이 정도 쏟아지면 공이 물에 튀어 패스가 제대로 안된다. 비가 오더라도 시간당이 아니라 하루에 1㎜ 정도라면 큰 변수가 못된다.
통계상으로만 본다면 폴란드와의 부산 경기는 비가 오더라도 수중전의 확률은 거의 없다. 날씨도 그리 덥지 않다. 한국으로선 다행이다. 폴란드같이 힘 있는 팀과의 수중전은 한국으로선 상당히 껄끄럽다. 한국팀에겐 비가 오지 않고 30℃가 넘는 고온에 습기가 많은 후텁지근한 날씨가 가장 유리하다. 이런 날씨라면 폴란드 선수들이 빨리 지친다. 그래서일까. 폴란드의 엥겔 감독은 “경기력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무더위가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6월10일 대구에서의 미국전은 어떨까. 마침 이 경기는 더위가 한창인 오후 3시30분에 벌어진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대구의 6월10일 연평균 최고기온은 27.3℃ 습도는 67.8%. 한마디로 덥고 끈적끈적한 날씨다. 게다가 비까지 올 확률이 높다. 지난 31년간 대구지방에서 6월10일에 비온 것은 12차례(38.7%). 강수량은 하루 6㎜정도로 많지 않았지만, 그만큼 불쾌지수가 높다.
미국의 아레나 감독은 “정말 날씨가 걱정이다. 무더위나 습기가 우리팀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수중전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다행히 한국은 일본보다 습기가 적어 나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 대 미국의 대구경기는 한낮 찜통 더위 속의 체력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더위 속에서 짜증을 내거나 집중력을 잃는 팀이 패할 확률이 높다.
6월14일 인천에서 벌어지는 한국 대 포르투갈의 경기는 어쩌면 비가 오는 가운데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31년 동안 인천지방에서 6월14일에 비가 온 적은 모두 13차례로 41.9%. 그러나 강우량은 평균 5㎜ 수준으로 미미하다. 한국으로선 차라리 비가 많이 내려 수중전을 벌이는 게 유리하다. 개인기가 좋은 포르투갈을 체력으로 밀어붙이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기상대는 일단 올 6월 초순엔 맑은 날이 많겠지만 기온이 예년보다 높고, 중순께부터는 기온이 예년보다 높은데다 비가 자주 내리겠다고 예보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도 이런 ‘날씨변수’에 대비하고 있다. 틈만 나면 줄곧 ‘체력 또 체력’을 외치고 있는 히딩크는 “한국은 우기에 시작되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두 경기는 수중전을 치러야 할 것이다. 실전에서는 전력질주한 다음 체력을 빨리 회복해 다음 동작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 특히 수중전에서는 밸런스와 갑절의 체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수중전에서는 반칙도 많다. 수중전에서의 적절한 반칙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히딩크는 “축구는 테니스가 아니다. 때론 더티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더티플레이도 불사해야 한다”고 독려한다.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도 “정당한 파울은 기술이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몸싸움과 같은 공이 없는 상황에서 구사하는 경기기술이 절대 부족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물론 다른 국가들도 무더운 날씨에 대비하고 있다. 그 가운데 다소 엉뚱한 처방을 내리고 있는 밀루티노비치 중국 감독의 훈련방법이 눈길을 끈다. 바로 고산지대인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체력강화 훈련을 하고 있는 것.
밀루티노비치는 최근 중국프로리그 칭다오 이장수 감독이 “중국대표팀은 고산지대 쿤밍보다는 일찌감치 한국에 가서 현지 적응능력을 키우는 게 좋다. 한국에서 훈련이 어렵다면 한국도착 예정일인 5월26일보다 일찍 들어가 적응훈련을 하는 게 좋다”고 충고하자, “고산지대 훈련은 선수들의 적혈구를 증가시켜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정신력을 키우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충고는 고맙지만 내 생각과는 크게 다르다. 예정대로 5월26일에 한국에 입국할 것이다”고 일축했다.
과연 밀루티노비치 감독의 말이 맞을까. 보통 고산지대 훈련은 마라톤선수들이 즐겨 한다. 시드니올림픽 여자마라톤 우승자인 일본의 다카하시 나오코도 바로 이 고지훈련으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고지훈련은 적혈구를 증가시켜 근육에 산소공급을 늘려줄 뿐만 아니라 근육의 산성을 줄여 지구력과 경기력을 증진시켜준다.
그러나 고지훈련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지대는 산소가 적기 때문에 최대 산소 섭취량이 줄어든다. 또한 쉬 피로해지기 때문에 평지에서 훈련할 때만큼의 강도를 유지할 수 없다. 근육이 풀어질 수도 있다. 지구력은 향상되겠지만 순발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어떤 선수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상승해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고지대에서의 축구공 속도와 발에 닿는 감각은 평지에서와 다소 다르다. 그래서 요즘 마라톤 선수들은 해수면 높이의 평지에서 강도 높게 훈련하고, 고지에서 잠을 자는 방법을 많이 쓴다. 훈련은 정상적으로 하고 심폐기능은 별도로 키우겠다는 뜻이다.
보통 고지훈련은 해발 2200m 높이에서 한 달 정도가 좋다. 그리고 고지훈련 효과가 최대로 발휘되는 때는 고지에서 내려온 지 2∼3주일 이후로 알려져 있다. 이 이론대로라면 중국팀은 첫 경기를 갖는 6월4일 광주 코스타리카전 2주전인 5월21일 이전에 고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얘기다. 밀루티노비치는 이때쯤 고지에서 내려와 일주일 정도 중국현지에서 평지훈련을 하고 첫 경기 열흘 전인 5월26일 한국에 들어와 적응훈련을 하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있다. 축구경기는 마라톤이 아니다. 11명이 팀워크를 이뤄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마라톤선수는 혼자 뛰는 것이기 때문에 고지훈련에서 실패해도 한 사람의 실패로 끝난다. 반면 축구선수는 최소 11명 이상이 고지훈련 효과를 봐야 한다. 마라톤선수들의 고지훈련은 선수에 따라 적응하는 경우도 있고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고지훈련을 하면 성적이 좋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보통 20∼30%의 성공률을 보일 뿐이다. 월드컵 축구 엔트리 23명 중 잘해야 7명 정도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팀 경기를 볼 때는 바로 이 고지훈련의 효과를 생각하면서 감상하는 것이 관전법의 하나다. 만일 경기도중 쥐가 나 쓰러지는 선수가 있다면 바로 고지훈련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몸이 둔해 순간동작이 느린 경우도 마찬가지다. 드리블이나 트래핑 등 볼 감각에서 엉뚱한 실수가 잦아도 그렇다. 밀루티노비치의 이론대로라면 고지대에 있는 멕시코가 적어도 체력적으로는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
일본에서 경기를 치르는 잉글랜드의 무더위 대책도 볼 만하다. 4월22일 잉글랜드축구협회의 의료 및 훈련담당부서는 월드컵기간중 잉글랜드선수들은 ‘얼음 옷’을 입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체온유지 방법이라는 것.
발표에 따르면 이 냉동 재킷은 일단 몸의 수분을 흡수한 뒤 곧바로 얼려서 몇 시간 동안 냉동상태를 유지한다. 재킷에 장착된 특수 크리스털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물론 경기중에는 입을 수 없다. 훈련시간과 경기전후 그리고 하프타임 때 착용할 예정이다. 고온다습한 날씨에 이 ‘얼음 옷’은 선수들의 체온을 낮춰 땀배출을 줄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축구선수들은 한 경기를 마치면 보통 체온이 39∼41℃까지 올라간다. 체온이 올라가면 몸의 활동이 둔해진다. 그래서 인체는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땀을 배출한다. 그러나 땀을 배출하면 체내의 수분이 부족해져 집중력 저하로 연결된다. 보통 축구선수가 한 경기를 뛰고 나면 2∼3ℓ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체중의 약 1% 정도에 해당하는 수분 손실이 있을 때 갈증을 느끼게 된다. 몸무게가 70㎏인 선수라면 700ℓ정도의 수분을 배출하면 ‘타는 목마름’을 느낀다. 그러나 갈증을 느낄 땐 이미 경기수행 능력의 약 10% 정도가 떨어져 있다. 따라서 경기시작 20∼30분 전에 최소한 200∼300㎖의 수분을 미리 섭취해야 경기중에 갈증을 느끼지 않게 된다.
또 경기중에도 섭취한 수분이 말단 세포까지 흡수되기까지는 약 15∼25분이 걸린다. 따라서 15∼25분 간격으로 경기도중 틈틈이 80∼120㎖의 수분을 섭취하는 게 좋다. 물은 4∼8℃의 약간 찬물이 좋다. 습도가 높은 날은 경기 전 식사할 때 좀 짜게 먹어두는 것도 중요하다.
세계적인 슈퍼스타 지단은 쉬는 날 무엇을 할까. 주로 테니스를 치거나 자동차 경주를 본다. 그러나 그가 빠짐없이 챙기는 것이 있다. 바로 하루에 물 4ℓ를 마시는 일이다. 그만큼 축구선수에게 평소 수분 보충은 중요하다.
날씨는 모든 선수들에게 똑같은 조건이다. 그러나 체력은 자기가 얼마나 관리했느냐에 따라 다르다. 물론 세계적인 선수들의 체력은 별 차이가 없다. 그만큼 그들은 항상 높은 수준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정신력 싸움으로 귀결된다. 운동선수의 정신력이란 무엇일까. 흔히 한국축구 팬들은 ‘정신력=깡’으로 인식한다. 물론 정신력에는 근성이랄까 책임감이랄까 하는 그런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우선 문학평론가 김명인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국축구가 강국들과 경기할 때 가장 결정적 요인은 늘 ‘정신력’이었다. 기본적인 기량의 격차를 극복하려면 정신력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하다’는 한국팀의 징크스는 여기서 유래한다. 정신무장이 잘돼 있으면 경기를 잘하고, 정신무장이 신통치 않으면 경기를 망친다. 그런데 기량이나 체력은 한번 몸에 배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지만, ‘정신력’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 프랑스나 잉글랜드 같은 세계 정상의 팀들은 당연히 한국처럼 예측할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축구는 ‘정신력’이라는 변수보다는, ‘기량’이라는 항수에 더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축구의 넓은 저변에서 형성되는 두터운 선수층, 좋은 시설, 체계적인 훈련 등 확실한 축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튼튼한 물적 토대가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축구는 유물론적 합리주의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늘 기적에 의존한다. 콩 심은 데서 팥이 나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상황에서 한국축구팀의 경기결과는 늘 마술적이고 주술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축구는 유심론 또는 신비주의와 통한다.
히딩크가 체력에 주목한 것은 정확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력에서 체력으로, 체력에서 기술로, 기술에서 전술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조적 예술로 가는 게 유심론적 축구가 유물론적 축구로, 신비주의적 축구가 합리주의적 축구로 바뀌는 경로다. 그는 한국축구가 체력단계에 있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운동선수에게 정신력이란 체력+기술+전술+창조력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최종 개념이다. 여기에서 김명인씨가 말하는 정신력이란 아마도 ‘깡+투쟁심+의욕’ 정도가 아닌가 싶다. 보통 스포츠심리학자들은 운동선수들의 정신력을 예닐곱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히딩크가 한국에 처음 와서 “한국선수들은 학습의욕은 높지만 책임감 통제능력 등 다른 정신력 부분은 30점 이하”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부분에서 관점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전문가들이 말하는 운동선수의 정신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첫째 경기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없으면 경기에 들어가기도 전에 주눅이 든다. 한국선수들이 그동안 월드컵에서 자기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감 부족은 상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자신의 실력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상대를 두려워하면 몸이 뻣뻣해진다.
98프랑스월드컵에 참가했던 최성용은 아시아축구연맹(AFC) 기관지 ‘풋볼 아시아’ 4월호 인터뷰에서 “문제는 자신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16강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보다 더 나은 플레이를 하지 못하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 선수들이 유럽을 비롯한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기술 정신력 감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한결 자신 있게 경기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뛰어봤던 최성용은 ‘막상 부딪쳐보니 그들도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유상철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상철은 “책임감이 자신감으로 바뀌어야 한다. 남은 기간 자신감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98프랑스월드컵 때 멕시코 네덜란드 전에서는 내가 어떻게 뛰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경기 전부터 잔뜩 주눅이 들고 그라운드에서 꽁꽁 얼어 있었다. 현재 우리 월드컵팀은 전술 이해도가 예전보다 훨씬 높다. 전에는 ‘하라’는 지시에 아무 말 없이 따랐지만 지금은 ‘왜 하느냐’를 알고 움직인다”며 자신만만해 한다.
이번까지 월드컵에 4회 연속 출전하는 백전노장 홍명보는 “개인적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선수들의 개별적 준비는 첫 경기 한달 전에 끝내야 한다. 이제 선수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전력 차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정신력이 문제다. 세계 정상급 공격수들을 상대하려면 수비는 지금보다 더 좋아져야 한다. 역습할 때 패스미스를 줄이는 등 미드필더와의 유기적 플레이로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자신감은 일상에서 말로 하는 게 아니라 경기에서 플레이로 보여줘야 한다. 선수로서 내 생애 마지막 대회다. 첫승과 16강은 한국축구의 숙원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한’이기도 하다. 정말 한번 꼭 이겨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선수가 자신감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스포츠심리학자 로엘(Loehr)은 “벼르던 경기에서 실력 한번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패배하는 것처럼 후회스럽거나 실망스러운 일은 없다. 이런 경우를 당하면 여간해서는 기분이 후련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 자기불신이나 자기비하로 발전한다. 그것은 결국 경기수행 능력의 슬럼프로 이어지고 더욱 장기화하면 은퇴를 재촉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와 맞설 미국 아레나 감독은 “미국 고등학교 응원단을 보라. 우리팀도 치어리더의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미국팀은 언제나 자신만만하다. 조금도 기가 죽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팀은 무섭다.
정신력의 둘째 요소는 노여움 불안 갈등 스트레스 압력감 등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감정통제 능력이다. 한국선수들이 외국선수들에 비해 가장 낮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충격을 통제하는 능력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히딩크는 “한국선수들은 볼을 빼앗았다는 흥분 때문에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목적지 없는 센터링이나 패스를 날리는 경우가 많다”고 질타했다. 왜 이렇게 한국선수들은 흥분을 잘할까. 왜 결정적인 찬스에서 어이없는 똥볼을 날릴까.
일본 오이타팀의 황보관 코치는 “우리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훈련해온 탓인지 큰 경기에 나서면 지나치게 긴장하는 경향이 있다. 선수 개개인이 평소 심리상태를 조절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차피 경기가 끝나면 승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보다 어떤 순간에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더 많이 든다. 처음부터 경기에만 몰두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축구의 영웅 가마모토 일본축구협회 부회장은 “전통적으로 한국은 홈팬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으면 오히려 중압감을 갖는 약점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홈 팬들의 성원에 압박을 느꼈다는 뜻이다.
잉글랜드 스벤 에릭손 감독이 “젊은 선수와 나이 든 선수가 같은 실력이라면, 월드컵을 앞둔 대부분의 감독은 베테랑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미국의 아레나 감독이 “우리팀 평균 나이가 28.7세로 역대 최고인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3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의 경험이 큰 무대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엔트리 23명을 추려내는 데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것은 한 선수가 2가지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느냐였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 감정 통제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력의 셋째 요소는 집중력 혹은 주의력이다. 이것은 경기중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부분도 한국선수들이 외국선수들에 비해 아주 낮게 나타난다. 이는 경험부족이나 아마추어리즘 혹은 안이함 등에 기인한다. 내가 이렇게 하면 심판이나 상대방이 이해해 주겠지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심판이 휘슬을 불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미리 판단해 행동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프로답지 못하고 순진한 것이다. 결정적인 골찬스에서 헛발질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황선홍은 “팀 전체가 수비에 중점을 두다보니 한 경기에서 골 찬스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편이다. 두세 차례의 찬스를 확실하게 골로 연결시키는 집중력을 키우는 게 공격수의 과제다. 후배들이 때로 의욕이 지나쳐 냉정함을 잃는 경우가 많다. 마인드 컨트롤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순간적으로 흥분해 경기를 망치면 안된다. 마지막으로 출전하는 월드컵이지만 부담을 갖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도 “수비 대체요원 부족과 경기중 이따금 나타나는 집중력 저하가 문제다. 부딪치고 넘어지기 싫다면 축구를 그만둬라. 지금은 월드컵 본선에 대비해 훈련에만 집중해야 할 때다. 연예인들과는 사진 찍지 않을 것이며, 작위적인 연출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 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 지금 한국선수들은 선발 출장하는 11명뿐 아니라 최다 16명까지는 실전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경기 한번 치르고 나면 너무 엄살이 많다. 이젠 어리광을 부려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선수들은 툭하면 넘어지고, 한번 넘어지면 좀체 일어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일단 경기가 시작된 이상은 뛸 수만 있다면 악착같이 뛰어야 한다. 승패의 결과에 관계없이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유럽선수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부상은 조심하되 몸은 사리지 말라. 항상 고개를 들고 플레이하라. 고개를 들어야 동료의 위치와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히딩크 감독이 개막을 한달쯤 앞뒀을 때부터 수시로 서귀포에서 비밀훈련이 아닌 비공개 훈련을 한 이유도 바로 이 집중력 때문이다. 그가 비공개훈련을 하는 것은 특별히 감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수들이 미디어나 팬들을 의식하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넷째는 상상력이다. 한국선수들의 상상력 부족은 어제 오늘 지적돼온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한국선수들이 외국선수들에 비해 가장 부족한 점이다. 경험부족이나 어렸을 때부터의 교육방법 등에 문제가 있다. 끊임없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조금은 보완할 수 있지만 하루 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말한다.
“창조정신이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창조정신이란 덤불 사이의 작은 틈이나 샷을 위한 특별한 길과 같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내부의 눈’이다. 골프에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자신감 중압감을 다스리고 실패를 잊는 능력이 필수적인 요소다. 스윙하는 동안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리에 대처하는 법은 물론 갤러리의 부정적인 분위기도 이겨내야 한다. 내가 실수를 생각할수록 홀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공이 홀컵을 스쳐 지나가는 일이 잦아진다. 여러 골퍼들이 퍼트에 성공한 뒤 나를 차갑고 매서운 눈길로 쳐다보거나 파3홀에서 캐디에게 실제로 친 것이 아닌 다른 클럽으로 쳤다고 거짓말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드라이버샷을 제대로 날린 뒤 마치 미스샷을 한 것처럼 반응하거나 티샷을 짧게 해서 그린을 먼저 공략,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먼저 그린에 올라가 상대를 압박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난 경쟁을 좋아하고 그 경쟁에 따르는 모든 것들, 심지어 정신적 압박까지 좋아한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즐기지 못한다면 골프는 당신에게 적합하지 않다.”
다섯째는 의욕 혹은 동기유발 곧 강한 성취 의욕이다. 이것은 인내력, 희생의지, 훈련의지, 목표에 대한 의욕 등에 바탕한 것으로 한국선수들이 가장 강한 부분이다. 연금혜택, 상급학교 진학, 군대면제 등이 강한 동기유발 요인이다.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 프랑스팀도 개막 한달 전쯤 바로 이 부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 적이 있다. 결국 시라크의 압승으로 끝나긴 했지만, 발단은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FN)의 르펜이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에 오른 것. 르펜은 1996년 “외국선수를 데려와 프랑스 국가대표팀으로 세례를 준 것은 너무 속보인다. 흑인들이 많이 뛰는 대표팀은 진정한 국가대표팀이 아니다.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도 못 부르는 자가 프랑스 국가대표로 뛴다”며 다인종이 연합한 프랑스팀을 비난한 적이 있다.
그러자 세계적인 슈퍼스타이자 알제리계인 지단이 즉각 반발했다. 지단은 “난 프랑스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프랑스적 가치와 동떨어진 국민전선에 투표하는 행위가 가져올 심각한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 30%에 가까운 유권자가 투표하지 않은 결과 시라크와 르펜이 결선에서 맞붙게 됐다. 이제 모두 투표장에 나가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흑인으로 가나에서 태어난 주장 드사이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르펜의 국민전선이 파시스트 정당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아르메니아 출신인 조르카에프도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5명의 투표인 중 1명이 르펜에게 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며 만약 르펜이 당선된다면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발됐지만 발목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한 로베르 피레스(아스날)는 아예 한술 더 떴다. 피레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선수로서 현재 위기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줄 의무가 있다. 현재 프랑스대표팀 선수들은 프랑스인이지만 출신성분이 다양하기 때문에 극우정권이 들어설 경우 프랑스를 위해 뛰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르펜이 집권할 경우 상당수 대표팀 선수들은 월드컵 출전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섯째는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즐거움 기쁨 등을 에너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동안 한국선수들은 지나치게 많은 훈련량과 오랜 합숙 등을 거치면서 동료나 코칭 스태프와의 인간관계에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형성된 적이 많았다. 정치 사회분야의 전반적인 불신풍조도 한몫했다. 다행히 유머가 풍부한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팀 분위기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와 반대로 우리와 맞설 폴란드팀은 요즘 평가전에서 일본에 0대2, 루마니아에 1대2로 패하면서 여론의 집중적인 뭇매를 맞고 있다. 폴란드 언론은 “희망이 없다. 월드컵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부진은 이해할 수 없다.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선수들의 플레이는 마치 타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파리와 같았다. 일본에 0대2로 진 뒤 루마니아에 1대2로 졌으니 발전한 것 아닌가. 한 골씩 더 넣고 있으니 이런 추세라면 한국과는 2대2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엥겔 감독은 훈련도 전술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비아냥대는가 하면, 맥도널드 햄버거 광고에 모습을 드러낸 엥겔 감독에 대해 “광고는 찍으면서 축구에는 딴 생각이다. 루마니아전의 경기결과는 맛없는 햄버거 같았다”고 쏘아붙였다.
엥겔 감독도 “우리가 왜 이렇게 못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답답할 뿐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전혀 다른 팀을 만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론의 눈총뿐만이 아니다. 폴란드대표팀 주장 토마시 바우도흐는 최근 “엥겔 감독의 결정에 반박할 수는 없지만 오스트리아 빈에서 뛰고 있는 토마시 이반의 탈락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새로 대표팀에 합류한 선수들이 과연 팀전력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라며 선수선발에 불만을 나타냈다.
일곱째는 훈련에 임하는 자세, 마음가짐 등이다. 물론 이점에서도 한국선수들은 뛰어나다. 동양적 사고방식 탓이다. 한국팀 피지컬 트레이너 레이몬드 베르하이엔이 “한국선수들에게 두 번 놀랐다. 하나는 기동력을 위주로 하는 팀인데도 지구력과 순발력이 많이 부족한 게 뜻밖이었고, 그 다음엔 강도 높은 훈련을 해도 불평 한마디 없이 따르는 태도에 놀랐다”고 말했을 정도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상대보다 아군의 전력이 약할 땐 예로부터 ‘기동력에 의한 기습전’이 으뜸이다. 물론 여기엔 엄청난 체력이 요구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객관적인 실력이 다른 3개국보다 약하다. 정면으로 붙으면 승산이 없다. 수비를 두텁게 하다가 속공으로 역습을 가하는 게 최고다. 히딩크 감독이 수비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미드필드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것도 결국은 수비전술이다. 거기에서부터 막지 않으면 최종 ‘물막이댐’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금강산댐이 무너지면 우선 평화의댐에서 1차 충격을 줄이고 그 다음은 화천댐에서 줄이고 하는 식으로 나가야 서울이 안전하다.
게릴라 전술의 귀재 중국의 마오쩌둥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군이 적군보다 약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격 때에는 주력을 집중시키고 공격이 끝나면 병력을 신속히 분산시키는 것이다. 진지를 구축하고 싸우는 진지전은 가능한 한 피하고 이동하면서 각종 병법을 동원해 적부대와 접전하여 그들을 궤멸시켜야 한다. 한마디로 이것은 ‘기동력과 속공’으로 적을 분쇄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적이 전진하면 우리는 물러서고 적이 멈추면 우리는 그들을 교란한다. 적이 피하면 우리는 공격하고 적이 퇴각하면 우리는 추격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마오쩌둥의 홍군은 국민당 군대와의 2차초공전에서 적의 20만 대군을 2만의 병력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이때 홍군은 14일 동안 7회의 전투와 8일 동안의 행군을 강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