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15년’. 한국경제가 장기 정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경제는 물론 사회 전 분야에 만연한 획일적 평등주의가 주요인이다. 1980년대 이후의 경제개혁이 정작 청산해야 할 ‘관치’는 그대로 껴안고 계승해야 할 ‘차별화’만 내다버린 결과다.
- 시장이 주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차별화를 뿌리내려야 한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은 수요부문으로부터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의 경쟁력 추이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취약점이 많다는 게 이러한 논의의 맹점이다. 가령 해외수요의 증대에 따라 수출이 늘거나 국내 총수요 확대정책으로 소비나 투자가 확대될 경우 국민총생산이 증가한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원화절상과 인플레가 진행됨으로써 사실상 기업 및 산업경쟁력이 향상되지 않더라도 달러표시 1인당 국민소득(명목)은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이 지표에만 의존할 경우 기업 또는 산업 경쟁력의 정체 및 회복시점에 대해 오판할 수 있고, 때문에 정체의 구체적 원인과 대책을 찾기 어렵다. 만일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1995∼96년 전후를 경쟁력의 피크로 본다면 그 당시 우리나라의 기업 및 산업 정책에 어떠한 큰 변화가 있었기에 그 이후 정체기로 들어섰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 시기에 우리 기업과 산업경쟁력에 뚜렷한 영향을 미칠 정책기조의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의 논의는 경제를 걱정하게 하고,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방향으로 사회 분위기를 이끌 수는 있겠으나 정체의 근본 원인에 대한 규명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우려가 있다.
[‘총요소 생산성’에 주목해야]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정체의 실상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우선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서 지난 40여 년 간의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경로를 추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참조).
‘그림 1’을 보면 우리나라의 GDP 증가추세는 1987∼88년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즉 1960∼1987년의 28년간 추세치는 6.9%에서 8.8%로 높아진 반면 1988∼2002년의, 상대적으로 짧은 15년 간의 추세치는 4.9%로 크게 낮아졌다. 이와 같이 1987년 이후 장기추세선이 뚜렷하고 빠른 하락세를 보임과 동시에 경기순환의 고점과 저점도 일관되게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성장률도 2%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 이후 경기가 반등한다 해도 5%대를 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 앞으로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혹자는 “GDP 증가율의 장기추세 하락은 우리 경제의 성숙 혹은 선진화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로서, 그렇게 우려할 필요도 없거니와 뾰족한 대책도 없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경제가 선진화 혹은 성숙할수록 요소자원 공급의 제약으로 GDP 증가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그 대신 주어진 요소공급하에서 이른바 총요소 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의 증가를 통한 성장부분이 커지기 때문에 전체 GDP 증가율에는 그리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주장의 약점은 1인당 GDP 4000∼5000달러에 이른 1980년대 후반, 혹은 백보 양보한다 해도 1인당 GDP 1만달러를 달성한 1995∼96년을 한국경제 선진화의 기점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료를 검토해 보면 질적 성장 또한 장기 성장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그림 1> 1960년 이후의 GDP 증가율과 장기 추세선</b><br>1960~87년과 1988~2004년을 불리해 추세선을 추정했다. 매년 추세선의 기울기를 분석한 결과 1987~88년이 정점으로 나타났다. 2003년과 2004년 수치는 전망치.
<b><그림 2> 총요소 생산성 증가율</b><br>자료:한국경제의 성장요인분석:1963~2000(김독석 외·KDI 2002년)
우리나라는 1987∼88년 이후 지난 15년 동안 경제개혁의 기치 아래 ‘관치경제·관치금융’으로 특징지어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운영 방식을 극복하고 경제 선진화를 이끌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제개혁이란 사람과 자본을 많이 쓰지 않고도 주어진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질적 성장이 특히 경제개혁이 가시화된 이후 지속적으로 정체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간 무슨 개혁을 어떻게 해왔기에 과거의 성장동력은 약화되고 오히려 개혁의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했느냐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1960∼70년대에 관치경제·관치금융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연평균 8% 이상의 고속성장 동인을 찾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성공요인은 ‘관치 차별화’]
1961∼79년의 박정희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고속성장을 가져온 경제발전의 동인은 ‘잘하는 경제주체가 보상을 더 받는’ 철저한 차별화 정책이었다. 시장경제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장치다. 시장은 경제주체들에 대한 끊임없는 평가를 통해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경제주체에게 자원을 집중시키는 차별화 장치다. 이러한 차별화 원리를 철저히 구현하는 경제는 발전하지만, 차별화 원리에 역행하는 경제는 정체를 면하지 못한다는 게 경제발전의 기본원리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핵심은 한마디로 ‘정부는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돕는다’는 철학이었다. 정부의 개입 속에서도 잘하는 경제주체를 보상하는 차별화의 경제발전 원리를 철저하게 구현했다. 산업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잘하는 기업을, 새마을운동을 하면서도 잘하는 농촌을 더 격려하고 지원했으며, 심지어 원호 대상자들을 지원할 때도 자립을 전제로 할 만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차별화의 원리를 견지했다.
당시 산업정책의 핵심이던 수출지원정책을 살펴보자. 1965년부터 매월 대통령 주재하에 수출진흥확대회의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는 통상과 관련된 장관, 업계 대표, 금융계 대표 등 유관기관 대표들이 참석해 월별·품목별·지역별 수출동향을 점검하고 수출증대를 위한 시책과 애로 타개 방안을 논의 결정했으며, 특히 연말회의에서는 그해 수출 유공자에 대한 격려와 시상이 있었다.
수출증대를 위한 각종 지원시책도 중요했지만, 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수출 유공자들에 대한 격려와 시상이었다. 이 행사는 그해 대한민국 최고의 (수출)기업을 뽑는 일종의 ‘미인대회’와 다름없었으며, 여기에서 상을 받으면 최고의 우량기업으로 인정받아 각종 금융혜택이나 정부 지원을 받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수출기업들은 수출실적을 늘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았으며, 그 결과 한국의 모든 제조기업들을 수출전선에 뛰어들도록 유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수출진흥전략의 특징은 시장검증을 통해 성과를 인정받은 ‘잘하는 기업’을 밀어준다는 의미에서 차별화 원리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당시의 대기업들을 국제경쟁에 노출시킬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품목에 관계없이 ‘총수출액’을 경쟁목표로 설정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업종의 기업 간 경쟁을 촉진시켜 당시 국내 독점기업들의 지대 추구 행위를 완화시킬 수 있었다.
[차별화의 역동성과 부작용]
박대통령은 1970년부터 새마을운동으로 농업부문의 구조조정을 시도했다. 새마을운동 첫해에 정부는 전국 3만4000여 개 마을에 시멘트 등을 지원했다. 그 이듬해에 성과를 평가한 결과 1만6000여 개 마을은 목표를 100% 달성했지만, 나머지 1만8000여 개 마을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박대통령은 공화당과 장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좋지 않은 마을은 더 지원하지 않았고, 성과가 좋은 마을만 지원했다. 그러자 지원을 받지 못한 1만8000여 개 마을 중 6000여 개의 마을이 자력으로 참여해서 100%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다음해 박대통령은 이들 6000여 개 마을도 지원했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새마을운동의 열기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만일 두 번째 해에도 똑같이 나눠먹는 식으로 지원했다면 새마을운동은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박대통령은 전국의 농촌을 참여도가 가장 낮은 ‘기초마을’, 이보다 좀더 열심인 ‘자조마을’, 그리고 가장 성과가 높은 ‘자립마을’로 구분해 자조마을과 자립마을에만 물자를 지원케 했다. 박대통령의 차별화 철학은 원호대상자의 경우에도 자립·자활 의지가 있는 이들만 지원한다는 원칙에 따라 실천됐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는 관치 아래서도 차별화의 역동성을 보여줬다. 포항제철을 방문한 박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
박정희 패러다임이 성공한 것은 정부가 주도하는 관치경제에서도 이렇듯 엄격한 차별화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경제발전의 기본원리를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는 관치로 인한 자원배분의 왜곡, 즉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켰다며 박정희 패러다임을 청산의 대상으로 간주한 반면, 당시 산업정책의 성공적인 측면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박정희 체제의 권위주의적 성격에 대해 비판적인 사회 분위기도 중요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정부가 잘하는 기업과 농촌을 차별화하는 전략은 ‘관치 차별화 전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배울 수 있는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은 차별화가 역동성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치 전략은 불가피하게 정부의 힘을 비대하게 만들어 정경유착, 부패, 민간부문의 지대 추구, 도덕적 해이, 그리고 승복하지 않는 다수의 패자 양산 등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 전략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제약한다. 아마도 박정희 체제의 종언은 바로 이러한 체제 자체의 모순에 기인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규제 받을 능력 있으니 규제한다?]
1960∼70년대의 박정희식 관치 차별화 전략 아래서는 열심히 해서 남보다 앞서는 것이 ‘지원 받을 자격’이 됐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이 없지 않으나, 열심히 해서 앞서가는 것이 ‘규제 받을 자격’ 혹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아도 될 자격’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이후 미시경제정책은 박정희 패러다임이 가져온 경제력 집중, 즉 자원배분의 왜곡을 교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현상은 이미 1970년대에도 정책적 교정의 과제로 부각됐다. 박대통령은 대기업에 산업정책적 지원을 하면서도 동시에 대기업의 공개를 유도하고, 지나친 은행 여신에 의존한 경영행태를 바로잡아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1980년 이후에는 단순한 기업 재무구조 개선과 기업공개 유도 차원을 넘어 경제력 집중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의 각종 경영행태 및 전략을 직접 규제하기 시작했다. 1980년에 제정된 공정거래법은 그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1987년부터는 계열사 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한도 설정, 지주회사 설립 금지, 순자산 40% 이내 출자총액 제한, 계열사 간 내부거래 규제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30대 그룹에 대한 경제력 집중 규제정책을 제도화한다. 경제력 집중 억제시책의 목적은 대기업 그룹의 문어발식 다각화를 억제함으로써 대기업 그룹의 확장을 막는 데 있었다.
한편 1970년대에 시작된 여신관리제도도 계속 엄격해져 1984년 이후 30대 그룹에 대한 여신규제와 신규투자 감시가 강화됐다. 그리고 1991년부터는 30대 그룹에 대한 소위 ‘업종 전문화’ 정책이 도입되어 업종 다각화를 통한 대기업의 경제력 확장을 더욱 강도 높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대그룹 지배구조의 투명성 제고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모토로 기존 규제에 더해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해체, 200% 부채비율 규제, 사외이사제도 도입 등의 추가 규제조치들을 도입 시행했다. 이 모두가 차별화를 부정하는 획일적 평등주의 규제일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기 때문에, 즉 ‘규제 받을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규제 받아야 된다’는 역차별적 규제의 전형이다.
최근에는 향후 도입예정인 집단소송제의 대상을 30대 그룹의 ‘대체 개념’인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그룹으로 설정함으로써 여전히 30대 그룹에 대한 역차별적 규제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1980년대 이후 대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 억제시책은 특히 정치 민주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 이후 30대 그룹에 대한 규제제도로 정착, 강화됐다.
30대 그룹에 대한 규제정책은 3가지 측면에서 차별화 원리에 역행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열심히 노력해서 30대 그룹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특별 규제를 받게 된다.
둘째, 30대 그룹에 들 경우 규모나 특성이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규제를 받아야 한다.
셋째, 30대 그룹 규제의 또 다른 국민경제적 목적은 그동안 자원이 대기업에만 집중됐기 때문에 중소기업 부문을 육성하기 위해 대기업의 성장을 규제하고, 그 자원을 중소기업 부문에 지원한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이 목적 자체가 정치적 의미는 있을지 모르나, 경제적으로는 역차별적 성격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성장을 억제함으로써 대기업을 수요자로 해서 유기적 관계 속에 성장을 도모해야 할 중소기업도 정체를 면할 수 없게 하는 모순된 결과를 초래했다. 목적대로 대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결국은 중소기업, 나아가 국민경제의 성장을 억제하게 된다.
그동안 하위 30대 기업 그룹들 간에는 서로 30대 그룹에 포함되지 않으려고 ‘경쟁’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성장하는 기업이 더 이상 격려와 지원의 대상이 아니고 규제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성장하는 대기업일수록 보다 엄격한 스탠더드를 적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했다. 필자는 이를 평등주의 함정에 빠진 ‘관치 평등화 시대’라 부르고 싶다.
흥미로운 것은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기본 질서로서 명시적으로 ‘경제의 민주화 추구’를 천명했다는 점이다. ‘경제의 민주화’는 사실상 형용의 모순을 안고 있는 대단히 모호한 개념이다. ‘경제’와 ‘민주화’는 같이 갈 수 없는 용어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1인 1표를 바탕으로 절대평등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이에 비해 경제,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차별화를 기초로 하는, 즉 다른 것을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스템이다. 경제를 민주화하겠다는 말은 경제를 평등주의 원칙하에서 운영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관치 평준화’가 초래한 장기 정체]
1980년대 후반 이후 우리 경제정책이 빠져든 평등주의적 함정은 바로 이러한 경제 기본 질서의 변화를 가져온 국민 대다수의 정서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1987년 이후 공정거래법이 30대 그룹에 대한 특별규제를 제도화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사회적·정치적 분위기를 반영한 듯하다. 1980년대 후반 이후의 평등지향 성향은 산업·기업 관련 미시경제정책에서뿐 아니라 여타 경제부문 및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관찰된다.
그동안 대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전투적 노조활동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노와 사의 충돌은 다름아닌 헌법의 경제 기본 질서, 즉 경제 민주화의 추구와 직결된다. 노사관계의 주요 쟁점은 노조의 경영참여 문제다. 경제 민주화 개념이 도입되면서 이른바 ‘경영 민주화’가 노조운동의 기조가 되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경제와 마찬가지로 경영도 민주화의 대상이 아니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수직적 명령관계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경영권을 노조와 분점해 행사하는 것은 기업이 존립하는 데 치명적일 수 있다. 경영 민주화 논리는 기본적으로 노와 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차별화 원리를 무시하는 평등지향적 사고에서 비롯됐다.
최근에는 노조의 경영참여를 제도화·강제화하려 하고, 주5일 근무제를 대기업이냐 중소기업, 그리고 업종이 무엇이냐에 관계 없이 획일적으로 도입하려 하고, 외국에서 이미 실패한, 기업 간 차이를 부정하는 산별노조 도입을 시도하는 등 차별화를 무시하는 평등지향적 사고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농업부문에서 자조·자립 의지와는 관계 없이 이뤄지는 농가부채 탕감정책, 차별화 장치 없이 똑같이 나눠주는 각종 농가지원책 등도 차별화에 역행한다.
한편 교육부문에서 교육평준화 개념이 이미 1969년에 도입됐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 사회의 평등지향적 성향이 근본적으로 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정치 민주화 이후 보다 강력하게 추진됐고, 이젠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제도적으로 고착화한 듯하다.
최근에는 이에 더해 그동안 지방소재 대학들이 부당한 차별을 당했다는 인식에 따라 지방대학의 활성화를 위한 인위적 균형발전 개념이 설득력을 얻는 듯하고, 대학 신입생에 대한 지역할당제, 교수 임용에서의 여교수 할당제가 추진되고 있다.
근래에 제도화된 의약분업제도 또한 의사와 약사 간에 자생적으로 형성돼온 분업관계를 인위적으로 재규정했다. 그 배경은 ‘잘 나가는’ 고소득 의사들에 대해 부정적인 국민정서, 국민의 약품 과다 사용을 방지한다는 명분 등이었다. 여기에서도 심각한 평등지향적 성향이 엿보인다.
또한 최근 ‘국가 균형발전’을 내걸고 수도권 집중을 규제하면서 인위적으로 지방 육성을 시도하는 정책도 각 지방을 무조건 평등하게, 그리고 획일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되면 좋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경제 성장의 장기정체 원인은 차별화를 부정하는 평등주의의 함정임이 이제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박정희식 관치경제를 청산하고 시장경제를 살려내야 한다는 그동안의 개혁 노력이 정작 버려야 할 관치는 못 버리고, 계승·발전시켜야 할 차별화 정신을 버리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관치에 의한 평등주의 개혁, 즉 관치 평등화 전략이 관치 차별화 전략을 대체한 결과가 바로 15년의 장기 성장정체인 것이다.
관치 평등화 전략 아래서는 기업을 포함한 경제주체들의 경제하려는 의지, 나아가 국민 일반의 잘하고자 하는 자조·자립 의지가 살아날 수 없으며, 국민으로 하여금 생산을 더 늘리려 하기보다는 각자의 분배 몫만을 늘리려 하는 매우 비생산적인 ‘제로섬 게임’에 몰두하게 만든다.
또한 관치 평등화 전략은, 관치 차별화 전략의 장점은 계승하지 못하면서 그 단점인 정경유착, 부패, 지대 추구, 도덕적 해이, 승복하지 않는 다수의 패자 양산 문제 등은 고스란히 계승하게 된다. 관치 평등화 전략은 경제발전을 위해 가능한 전략 가운데 사실상 최악의 경우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시장 감시자’를 양성하라]
한국경제가 장기 성장정체를 극복하고 역동성을 회복해 선진국 진입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장기정체의 원인이 관치 평등화 전략이라면 관치 차별화를 구현한 박정희 패러다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그러나 그동안 관치가 야기한 여러 가지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관치 차별화 전략이 한국경제를 새로운 발전의 길로 이끌 수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향후 한국경제의 개혁 방향은 시장경제의 차별화 기능을 통해 기업과 경제발전의 동력을 이끌어내는 ‘시장(에 의한) 차별화’ 전략을 구현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시장은 기업들에 대한 쉼없는 평가를 통해 잘하는 기업과 못하는 기업을 구분하고, 잘하는 기업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차별화 장치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란 시장의 차별화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시장에는 기업들을 평가하고 차별화하는 소비자, 채권자, 주주, 투자자, 잠재적 CEO, 근로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존재한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이러한 시장의 이해당사자들, 즉 기업 감시자들을 대신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시장의 감시자들을 더 많이 양성하고 그 힘을 강화시켜 기업에 대한 차별화 기능을 보다 효율적·합리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시장의 각종 경기 규칙을 제정하고 보완하고 개혁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기업들에게는 각자의 장점을 살려 다양하고 차별화된 생존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기업의 생존전략은 기업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기업의 생존전략은 본질적으로 정부의 정책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부는 경쟁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도록 촉진함으로써 기업들에게 경쟁압력을 높여 궁극적으로 잘하는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택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 은행의 자율경영을 보장하고 은행부문의 경쟁을 유발해 기업에 대한 채권자로서의 은행의 기능을 키워야 하며, 주주 및 투자자의 권리를 보강해 주식시장의 기업 감시기능을 키워나가야 한다. CEO 시장을 활성화해 현직 CEO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합리적인 노사관계로 이끌어야 한다.
또한 기업의 내부 조직 및 통제제도 선택, 소유 및 지배구조 선택, 업종 선택, 출자 및 투자전략 선택 등 기업의 생존전략은 자율화해 기업에 넘겨줘야 한다. 기업의 생존전략은 다양할수록 좋다. 기업의 다양성은 국가 경제의 유연성과 위기극복 능력을 높여준다.
기업들의 이렇듯 다양한 생존전략은 강한 감시자들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평가와 판별능력에 의해 차별화되고 선별된다. 그 결과 실패전략을 택한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되고, 성공한 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경제발전을 이끌어가게 된다. 결국 기업들은 자신이 선택한 전략의 성공여부에 의해 책임을 지거나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환골탈태해야 할 공정거래법]
이러한 시장 차별화 전략을 구현하기 위해 시급히 요구되는, 가장 근본적인 경제체제상의 개혁과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헌법상의 경제 기본 질서와 경제운영에 대한 규정을 재정립해야 한다. 기본 질서와 관련해서는 경제력 집중에 대한 지나친 우려와 경제 민주화 추구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정부가 비호하지 않는 한 잘하는 기업으로 경제력이 자연스럽게 집중되는 것 자체는 전혀 우려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대형화하는 기업을 어떻게 시장경쟁의 압력 속에 묶어둠으로써 독점력 행사라는 잠재적 부작용을 차단하는가에 있지, 기업의 성장 자체를 막는 것은 국민경제에 해를 끼칠 뿐이다. 또한 경제 민주화라는 목적도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하루빨리 정리돼야 할 용어다.
헌법 제9장 경제장(章)은 국민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해 놓았기에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를 과연 시장경제질서라 부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각종 산업정책적 목적의 정부개입 조항을 정비해 자율과 경쟁이, 그래서 창의가 살아날 수 있는 자유시장 경제질서에 맞도록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다음으로 공정거래정책을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기존 공정거래법은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기업 규제기능’, 그리고 경쟁을 촉진해 기업의 독점력 행사를 차단함으로써 소비자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나아가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유도,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경쟁정책기능’으로 나뉜다( 참조).
이 두 가지 기능은 대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같은 목적을 갖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전자는 대기업의 성장 자체를 막음으로써 독점력 형성의 원천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대기업의 성장 자체를 막지는 않지만 성장 대기업들의 잠재적 독점력 행사를 경쟁촉진을 통해 차단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목적을 갖는다.
그러나 그 구체적 집행 결과는 서로 상충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전자는 대기업의 성장을 규제하기 때문에 경쟁촉진을 저해하게 되며, 실제로 대기업을 규제하는 데 성공하면 결국 전체 국민경제의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따라서 이 정책은 규제가 강화되어 경제가 어려워지면 규제를 풀고, 경제가 좋아지면 다시 규제하는 ‘Stop-Go’ 형태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후자의 정책은 경쟁촉진을 통해서 성장하는 대기업의 행태를 조절하려 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국민경제의 발전을 촉진하면서도 경제력 집중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경제력 집중을 기업 규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된다는 평등주의적 사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공정거래법의 경제력 집중 규제기능을 철폐하고 경쟁정책기능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정책 패러다임을 재정립해야 한다.
[사회안전망도 차별화 원칙에 입각해야]
아울러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사회 각 부문에 만연된 평등주의적 시책과 제도들을 차별화 전략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된다. 경쟁은 피하고자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없애고자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차별화 과정으로서의 경쟁은 태초부터 인류와 함께 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이상주의자가 경쟁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를 없애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임을 설파해 왔지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몰락을 통해 입증됐듯이 그런 이상론은 서재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제 차별화 지향적 개혁의 성공을 위한 보완조치에 대해 살펴보자. 차별화는 불가피하게 시장경쟁의 탈락자들을 만들어낸다. 정부는 시장에 의한 차별화를 막아서는 안 되지만, 퇴출되는 경제주체를 재생시키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퇴출된 경제주체들을 재훈련시켜 시장경쟁에 재진출시키는 것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시장경쟁 과정의 차별화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재등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건실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적자금’을 써서라도 사회안전망 확보를 서둘러야 할 때다. 물론 사회안전망이 경쟁의 도피처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경제발전의 정체를 가져오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의 적정규모와 운영원리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 작동 메커니즘이 평등주의적 방식에 의해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철저한 차별화 원리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차별화에 기초한 공적부조 원리를 배워야 한다. ‘정부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원리가 사회안전망 운영에 적용되지 않고서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할 능력이 있는 실업자의 경우 공적부조를 철저히 자조·자립의 성과와 연계해야 한다. 가령 실업수당을 취업과 연계해 자립정신을 고양시켜야 하며, 실업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결과를 내는 사람에게 유인이 될 수 있도록 공적부조를 운영해야 한다. 실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역설적으로 ‘취업’이라는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공적부조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