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보험금 노린 살인인가, 부실수사 희생양인가

  • 글: 고상만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rights11@korea.com

    입력2003-09-25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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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구속된 20대 여성의 절규. 무기수로 복역 중인 그녀는 대법원 판결로 형이 확정된 후에도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인정한 살해동기는 아버지의 성추행, 살해목적은 사망보험금이다.
    • 하지만 재판 종료 후 유죄 근거를 뒤집는 단서가 하나 둘 발견됐는데…. 고난도 퍼즐과도 같은 진실게임의 종착지는?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2000년 12월 말경. 내가 일하던 모 시민단체에 한 통의 이메일이 접수되었다. 그것이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이 의문에 가득 찬 존속살해사건의 시작이었다.

    2000년 3월7일.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50분경. 남도 바닷가의 한적한 시골마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50대 초반의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3급 장애인으로, 현장에서 약 7km 가량 떨어진 곳에 살던 김진만(가명)씨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뺑소니 교통사고로 판단했다. 사체가 도로에서 발견됐고 그 주변에 자동차의 깨진 라이트 조각이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충격에 따른 외상 흔적이 보이지 않자 경찰은 타살된 후 교통사고로 위장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사건 발생 만 하루가 조금 지난 3월9일 0시10분 경, 경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로 변사자의 큰딸 김서희(1977년생, 가명)를 전격 체포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1년 3월, 대법원은 그녀에게 존속살해와 사체유기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경찰은 김서희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는 성추행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2000년 1월경 이복 여동생(당시 18세)으로부터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는 말을 들은 김서희는 자신이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해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짐승 같은’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2000년 3월6일 저녁 6시경. 마침내 김서희는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먼저 김서희는 수면제 가루를 A4 용지에 싸서 핸드백 속에 넣었다. 전날 밤, 사기 밥그릇 뚜껑을 이용해 수면제 30알을 갈아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조그만 실수가 있었다. 수면제 가루가 식탁 유리 위로 조금 떨어진 것이다. 서희는 무심코 행주로 이를 닦아 쓰레기통에 버린 후 냉장고에서 약 3분의 1 정도 남아있는 0.7ℓ들이 일본산 양주병을 꺼내 가방에 담았다.



    3월7일 0시55분경. 7시간에 걸친 운전 끝에 고향에 도착한 서희는 승용차를 아버지 집 앞에 세운 후 골목의 초입에 있는 오래된 2층집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생활하는 2층은 불이 꺼져 있었다. 서희가 큰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자 깜깜했던 2층 유리창이 환해지면서 창문이 열렸다.

    서희는 아버지에게 “술에 취하지 않는 약을 가지고 왔다”고 말한 후 가방에서 일본산 양주와 잘게 부순 수면제를 꺼냈다. 서희는 아버지 앞에서 준비해온 수면제를 양주에 넣어 섞은 후 방 한 쪽에 놓인 장식장에서 양주잔 두 개를 가져왔다. 잠시 후 아버지는 술에 취하지 않는 약과 양주를 가져왔다는 큰딸을 의심하지 않고 자기 앞의 양주잔을 들어 시원하게 마셨다. 그 순간 서희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극약’을 마시는 것을 보자 두려워진 것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다시 서희의 앞에 놓여있던 양주잔도 가져와 자신이 마셔버렸다. 서희는 벌떡 일어섰다. 도저히 그렇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리를 절뚝거리며 아버지가 뒤쫓아 나왔다. 겁에 질려있던 서희에게 아버지는, 그러나 의외의 요구를 했다. “오랜만에 드라이브나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서희는 아버지를 자신의 차에 태워주었다.

    목적지가 따로 있지 않은 ‘죽음의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내내 불안과 공포를 느끼던 서희가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것은 그의 ‘더러운’ 손에서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차가 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는 내내 서희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30여 분이 지날 즈음, 서희는 어느 순간 아버지의 손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서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출발했다. 이제 아버지의 사체를 버릴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차가 멈춘 곳은 인적이 없는 시골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앞이었다. 가로등조차 없는 거리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서희는 재빠른 동작으로 아버지가 앉아있는 보조석의 문을 연 후 아버지의 상체를 밖으로 힘껏 밀었다. 시계바늘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은 경찰이 작성한 진술조서를 토대로 김서희의 범행을 재구성한 것이다. 어머니가 다른 자신의 두 딸을 강간하고 성추행한 인면수심의 아버지. 그리고 이로 인해 자살까지 기도하는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던 김서희가 아버지를 살해 후 유기한 사건.

    1990년대 들어 심심찮게 발생한 이런 종류의 사건들은 대부분 여성단체 등 시민단체의 도움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관대한 처분을 받아왔다. 따라서 김서희도 범행을 하게 된 특별한 사정을 재판부에 호소하고 선처를 바랐다면 형량이 줄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서희는 달랐다.

    1심 재판 때부터 그녀는 수사기관의 주장과 달리 아버지에 의한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다. 따라서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이유도 없었다며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다. 특히 그녀는 딸들을 성추행한 파렴치범이 돼버린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며 무기수로 확정된 오늘까지도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2000년 8월30일. 이 사건을 담당한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에서의 피의자 자백,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하는 것을 들었다는 증인의 진술, 그리고 사건 시간대에 알리바이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그녀가 아버지를 살해한 후 도로 위에 사체를 유기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애초 공소 사실과 조금 달라진 부분은 있었다. 사인의 직접 원인이 된 수면제를 어떤 방법으로 먹였느냐는 점이었다.

    경찰은 김서희가 미리 집에서 갈아온 수면제를 양주에 혼합시켜 아버지에게 두 잔 마시게 해 사망케 했다고 했으나 1심 재판부는 김진만씨가 가루가 아닌 알약 30개를 양주 두 잔과 함께 먹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김서희의 2심 변호사는 국가에서 배정해준 국선 변호인이었다. 이 변호사는 복사비가 아까워 재판 기록을 따로 복사하지 않을 정도로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피의자의 무죄 주장이 재판부에 설득력 있게 전달될 리가 없었다. 그녀의 남동생이 이메일로 억울함을 호소해온 것은 항소심 재판이 끝난 다음날이었다.

    김서희가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서울을 출발해 고향에 들어선 이후 약 4시간 동안의 행적이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김서희는 나름대로 자신의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있다. 그중엔 확인된 사실도 있다. 예를 들어 고향 도착 후 만나기로 약속했던 여자친구 2명과의 전화 통화 사실과 여동생과의 전화 통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고향에 도착한 00시57분 이후부터 새벽 5시 할머니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약 4시간 중 3시간 동안의 알리바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서희는 혼자 등대 밑에 차를 주차시킨 후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등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구상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혼자 있었던 것이 죄가 될 줄은 몰랐다며 절규한다.

    김서희의 알리바이가 확인되는 시간대는 할머니 집에 들어선 새벽 5시 이후다. 할머니와 가족들에 따르면 서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 들어서며 할머니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서희가 세수를 하고 강아지와 장난을 치다가 할머니 옆에서 잠든 것은 새벽 5시30분경. 마을 주민에 의해 아버지의 사체가 발견되기 20여분 전이었다.

    3월7일(월) 아침 7시30분경. 서희는 할머니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 깨어나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알게 됐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되지 않는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8개의 사망 보험금

    서희는 사건이 발생한 당일 오후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서희에게 사건 당일 고향에 내려온 경위와 알리바이를 추궁했다. 경찰이 자신을 아버지 살해범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서희는 당황했다.

    경찰이 서희를 의심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매우 강력한 의혹이었다. 바로 사망한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이 가입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경찰은 그 보험의 계약자가 사망자의 큰딸인 김서희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경찰이 보기엔 이 사건은 ‘딱 떨어지는’ 전형적인 보험살인 사건이었다. 거액의 교통사고 사망 보험금을 노려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딸. 사망시간대와 관련된 4시간여 동안의 알리바이가 확인되지 않는 김서희는 분명 존속살해범이 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조건을 갖춘 용의자였던 것이다.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

    무기수 김서희가 필자에게 보낸 편지들. 원 안은 김서희 사건의 수사기록 표지.

    김서희가 아버지 앞으로 보험을 든 것은 사실이었다. 2000년 1월경. 서희는 일본인 애인의 도움으로 문학 공부를 위한 유학을 준비했는데 그 날짜가 3월 말로 결정됐다. 하지만 그토록 바랐던 유학이 결정됐지만 서희의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그동안 가족들의 생계를 서희가 도와주었는데 자신이 이제 일본으로 떠나게 되면 가족들이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됐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보험이었다. 마침 서울로 올라온 아버지에게 보험에 대한 의중을 물어보니 비싸지 않은 것으로 알아보라는 승낙도 있었다고 한다.

    서희는 일본에 가서도 관리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보험사를 알아봤다. 하지만 아버지의 보험 가입은 쉽지 않았다. 3급 장애자는 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결국 서희는 아버지가 정상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건강진단서가 필요 없는 교통보험에 가입하기로 하고 국내 각 보험회사 지점에 전화를 했다.

    상담을 통해 각 회사 보험상품의 차이점을 알기 위해서였다. 상담원들은 자신의 회사가 가장 많은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최고 보장액(사망보험금)을 강조했다. 서희는 그들로부터 들은 여러 보험상품의 특징을 수첩에 기재했다. 이 메모는 추후 사망 보험금을 계산한 증거가 됐다.

    한편 당시 IMF 외환위기 여파로 퇴출이 거론되고 있던 보험회사 담당직원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서희에게 방문상담을 하겠다고 제의했고, 며칠 후부터 8개 보험회사의 설계사들이 차례로 서희의 집을 방문했다. 문제는 서희가 그렇게 찾아온 설계사들을 매몰차게 물리치지 못한 점이다. 그녀는 집까지 찾아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매달리는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설계사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게 된다. 그렇게 든 보험이 바로 8개였다.

    수사기관은 아무리 아버지를 생각했다고 해도 보험을 8개나 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 때문에 수사기관은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고의적으로’ 무시했다. 서희는 보험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보험회사에서 잠시 보조 업무를 본 적도 있고 설계사 시험을 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희는 보험의 맹점을 활용하기로 했다.

    즉 장애 사실을 숨긴 채 정상인으로 가입한 것이다. 그런 후 가장 좋은 조건의 한두 개 보험만 남기고 해지할 생각이었다. 장애 사실을 숨긴 ‘고지의무 위반’을 통보하면 보험사가 해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서희는 8개의 보험 중 이미 3개의 보험을 사건 발생 전까지 해약한 상태였다.

    “제가 보험금이 있는 줄 알고 파렴치하게 피도 눈물도 없이 노렸다면 왜 보험을 하나 하나 해지했겠습니까? 또 보험금을 노렸다면 보험금이 거의 두 배나 더 많다는 일요일을 선택했겠지요.”(2001년 3월15일자 편지 중)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지의무 위반’ 보험의 경우 가입 후 2년 이내 거액의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서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서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서희가 잠깐 근무했던 보험회사의 소장이었던 친척 김은정(가명)의 증언(참고인 진술조서)에 의해서다. 고지의무 위반 상태에서 2년 이내 사고 발생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희도 잘 알고 있었다는 진술이었다. 그러나 이미 수사기관이 그녀를 범인으로 ‘찍은’ 상황에서 이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서희는 할 수 있는 설명은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경찰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빨리 영안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 경찰이 내미는 조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지장을 찍고 경찰서를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밤. 서희는 존속살해 혐의로 경찰에 전격 체포됐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은 체포가 아니라 ‘신고에 의한 자수’였다.

    김서희를 경찰에 신고한 이는 인척 관계에 있는 김정한(가명)이었다. 김정한이 밝힌 경위는 이랬다. 사건 발생 하루 뒤인 3월8일(화) 오후 11시20분경. 김정한이 서희를 병원 영안실 휴게실로 불렀다고 한다.

    “너 나를 믿지?” 김정한의 말에 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 경찰이 나를 찾아왔었다. 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면 빨리 말하는 것이 좋겠다. 자수하는 것하고 잡히는 것하고는 형을 받을 때 차이가 많이 난다. 니가 그랬니?”

    그러자 놀라운 답변이 나왔다.

    “제가 했어요”

    김정한은 재차 김서희에게 물었다.

    “어떻게 죽였냐?”

    “수면제를 먹였어요.”

    김정한은 이같은 자백을 듣게 된 시각이 대화를 시작한 지 약 20분이 지난 밤 11시40분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일을 혼자 처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희의 큰아버지에게 말했다고 한다.

    “형님, 큰일났습니다. 서희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한 것 같아요.”

    “뭐라고? 어떻게 했다는 거야.”

    “수면제를 먹여서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약 30여 분 후인 3월9일 00시10분경. 경찰은 김정한과 함께 경찰서로 찾아온 서희를 존속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그리고 이어진 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서희는 자신이 아버지를 수면제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자칫 교통사고 뺑소니사건으로 끝날 뻔했던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고 한적한 시골마을을 들썩이게 했던 흉악한 살인사건은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건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공범은 없나

    경찰의 조사는 순조로워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범행의 물증이었다. 자백말고는 물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경찰은 현장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서희가 현장검증을 거부한 것이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서희가 순순히 재연한 장면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고향 도착 후 공중전화로 친구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던 장면, 그리고 새벽 5시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아버지 집에 들어가서 수면제를 먹이고 드라이브를 하며 사체를 유기한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후 서희는 자신의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부인만 계속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시인하고 때로는 부인했다. 예를 들어 검찰로 송치된 후 서희는 1, 2회 조서에서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3회 조서부터는 시인했고 더 나아가 공범으로 자신의 옛 애인을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인의 알리바이가 확인되면서 이 진술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서희는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옛 애인을 공범으로 몰았을까.

    수사기관은 유난히 작은 체구의 서희 혼자서 범행을 했다고 보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 공범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서희의 체격은 키 155cm, 몸무게 35kg에 지나지 않아 웬만한 여중생보다 작다. 그렇기에 수사기관은 공범을 추궁했고 서희는 이에 못 견뎌 순간적으로 허위 진술을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하튼 이같이 일관되지 않은 진술은 유죄 의혹을 더욱 짙게 했다.

    이 사건은 이미 형이 확정된 사건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통해 다시 이 사건을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법부가 판단한 사실관계에서 몇 가지 결정적인 의혹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사법부가 김서희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내세운 증거는 오히려 ‘그녀가 진범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한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의혹은 물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은 그녀가 범행에 사용했다는 수면제를 어디서 구입했는지 밝혀내지 못했으며 또한 양주병과 술잔 역시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수사기관은 ‘고심 끝에’ 김서희로부터 그 모든 것을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진술을 받아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그러나 바다에 던져지지 않은 중요한 증거품이 두 개 있었다. 바로 수면제를 갈았다는 사기 밥그릇 뚜껑과 흘린 수면제를 닦은 행주다. 만약 이들 물건에서 사망자의 위에서 나온 수면제가 검출된다면 서희의 범행을 입증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압수한 물건에서는 어이없게도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 김서희는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양주병과 술잔, 그리고 사기그릇이나 행주 모두 강압수사에 의한 거짓자백에서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

    한편 수사기관은 이들 물건에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자 사망자에게 수면제 가루를 탄 양주를 마시게 한 게 아니라 수면제 30개를 알약으로 먹여 숨지게 했다고 범행방법을 바꾸어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설정 모두 설득력이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근무하는 주무과장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렇다.

    먼저 가루로 된 수면제를 먹을 경우. 경찰은 (변사자가) 약 250cc의 양주에 알약 30개에 해당하는 수면제 가루를 혼합해 두 잔을 마셨고 이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약을 만들 때 들어가는 밀가루 비슷한 성분인 ‘부영제’로 인해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즉 부영제 성분 때문에 술과 30개 분량의 수면제 가루를 혼합할 경우 사실상 ‘밀가루 떡’이 돼 마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설정 역시 자연스럽지 못하다. 적어도 성인의 주먹으로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그 새벽에 넙죽 받아, 그것도 물도 아닌 양주 두 잔으로 받아먹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은 추론이었다. 더 중요한 점은 설령 그것을 먹인다 해도 삼킬 수는 없을 것이라는 식약청 주무과장의 지적이다. 역겨워 먹을 수도 없겠지만 설령 먹는다 해도 이내 다 토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법원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고 그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양주병과 술잔은 어디에?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김서희가 이 사건의 진범이 분명하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그 ‘단정’에 의심을 제기할 만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먼저 부검 결과 김서희의 진술과 일치하는 양주와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부분에 대한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부검 과정에서 양주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다만 상당한 수치의 알코올과 수면제가 아닌 독실아민이라는 수면 유도제 성분이 검출됐을 뿐이다. 특히 검출된 알코올 성분을 굳이 양주라고 단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서희의 아버지는 사건 당일 오전부터 내내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김서희가 가져 왔다는 일본산 양주가 존재했던 것이냐는 점이다. 경찰은 김서희의 집 냉장고 안에 든 일본산 양주를 가리키는 남동생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증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남동생은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자신은 경찰에게 “일본에서 누나가 사온 변비약 병이 냉장고에 있었다”며 그 위치를 가리켰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사진은 ‘남동생이 일본산 양주가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조서에 첨부됐다. 동생은 이 사진이 경찰에 의해 조작됐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수사기록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수면제와 관련된 논란이다. 수사기관은 부검하기 전 수면제가 사인임을 김서희가 알고 있었고 실제 부검 결과 위 속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으니 이것만으로도 유죄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말한다.

    마침 김서희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간접 증거도 발견됐다. 바로 그녀의 습작소설 중 하나에서 ‘보험금을 받기 위해 2명의 부인을 교묘히 살해한 아버지를 수면제로 살해한다’는 내용의 원고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소설 내용이 이 사건 전개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판단, 서희의 혐의를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원고가 김서희의 무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수면제 성분 때문이다.

    김서희가 소설 속에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데 이용한 수면제의 성분은 페노바르비탈이었다. 그녀는 이 약의 성분과 효능을 알기 위해 병원 레지던트와 약사 등 전문가를 만나 많은 정보를 얻은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김서희는 경찰의 1, 2회 조서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수면제 성분을 물어보는 경찰에게 ‘트라독신 성분의 수면제’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부검 결과 실제로 수면제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그녀가 범인이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차이’를 무시했다. 사망자의 위에서 발견된 수면제는 소설 속의 페노바르비탈도, 서희가 진술한 트라독신도 아닌 독실아민이었던 것이다. 나는 수사기관이 주장하는 것처럼 김서희가 소설 내용처럼 아버지를 수면제로 살해하려 했다면 응당 그토록 많이 공부하고 연구했던 페노바르비탈 성분의 수면제를 사용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출된 약의 성분이 그와 전혀 다른 독실아민이라는 사실은 김서희가 이 사건의 진범이 아니라는 반증일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연구했던 강력한 수면제 페노바르비탈을 이유 없이 포기한 채 실제 상황에서 수면제도 아닌, 그보다 형편없이 효과가 낮은 독실아민을 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검출된 독실아민은 수면제가 아니라 통상 ‘배가 부르도록 먹어도 안전하다’는 수면 유도제다. 쉽게 말하자면 감기약을 먹으면 졸음이 오는 이유가 바로 이 독실아민 성분 때문인 것이다. 실제로 부검 감정서에도 ‘사망자의 위 속에서 13.02ug/ml의 독실아민이 검출됐고, 이는 지금까지 복용 치사량으로 보고된 22.3ug/ml~59.2ug/ml보다 매우 낮은 수치’라고 적혀 있다. 다만 ‘다른 사망의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약물과 알코올이 합동 작용해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됨’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다른 사망 원인을 찾을 수 없자, 그동안 보고된 치사량보다 극히 적은 약물을 사망 원인으로 삼은 것이다.

    8개의 보험 외에 김서희의 범행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간접증거가 있었다. 그것은 보험만큼이나, 그리고 수면제만큼이나 확실하고 나 또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바로 아버지 사망시 받게 될 보험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금액을 가지고 어디에 쓸까 계획한 소위 ‘사용 내역서’다.

    이에 대해 김서희는 상상 속의 ‘가상 재산’을 가지고 낙서한 것이라며 이는 자신의 오랜 버릇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버릇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재학 당시 권장도서였던 미국의 유명한 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패배’를 읽은 후부터였다고 한다.

    주인공 ‘상어웍스’가 가상 장부를 만들어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행복해하는 내용을 보고 자신도 이를 따라하면서 갖게 된 버릇이라는 것이다. 서희는 수사기관이 제시하는 소위 사용 내역서도 이 같은 낙서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김서희가 어려운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정말 너무나 절묘한 답변이 아닌가? 나는 김서희의 주장 앞에 말 그대로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릇이었다는 주장을 믿기에는 평범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상 재산’을 염두에 두고 낙서하는 버릇을 가졌다는 서희의 주장은 ‘최소한’ 사실이었다. 2001년 12월 말경. 나는 정말 서희에게 그런 버릇이 있다면 어딘가에 그 같은 낙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할머니 집을 방문해 서희와 관련된 물건들이 남아 있는지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할머니는 몇 장의 사진과 낡은 연습장 한 권을 찾아왔다. 펼쳐본 연습장에서 의외의 내용이 발견됐다. 바로 문제의 ‘가상 재산’ 낙서였다.

    그 노트에는 소위 ‘가상 재산’을 두고 계획한 내용이 숱하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구입 3억, 자동차 구입 2000, 저축 3000 등과 같은 거액 기록과 동생 용돈 20, 화장품 구입비 30, 연기학원 학비 등 잡스러운 것까지 기록한 낙서가 40쪽 가량 기록돼 있었다. 또한 그 노트에는 일기와 수학 문제를 푼 공부 흔적도 보였는데,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런 낙서가 시작된 것은 적어도 서희가 고3이었던 1997년 12월부터였다. 즉 ‘사용 내역서’라는 것이 아버지가 사망한 2000년에 처음 작성된 것이 아니라 늦어도 1997년 12월부터 숱하게 써온 낙서 중 하나였다는 주장은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드라마 끝나기 전 신고전화

    그렇다면 서희는 왜 친척인 김정한에게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것일까. 무엇보다 김정한이 자백받았다고 주장하는 밤 11시20분부터 40분 사이 그들은 정말 어떤 대화를 한 것일까. 먼저 김서희는 자신은 김정한에게 어떠한 자백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희의 주장을 검증하는 과정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납득할 수 없는 ‘중대한 모순’이었다. 바로 처음 이 사건을 신고받은 허모 경위와의 전화통화에서였다.

    2000년 3월8일. 허경위는 당일 경찰서 당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9시 뉴스데스크를 모니터한 후 이어 계속해서 드라마 ‘허준’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휴대전화 벨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김정한이었다. “어쩐 일이냐”는 허경위의 물음에, “조카 서희가 아버지를 수면제로 죽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허경위는 “그렇다면 지체하지 말고 어서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허경위에게 “그 전화를 받은 시각이 몇 시였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충격적이었다. “(밤) 11시 이전이었다. 드라마 ‘허준’이 끝나기 전에 전화가 왔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친 나의 확인 요청에도 똑같이 답변을 했고 재판부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그렇게 진술했다.

    허경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로 상반된 대화 내용을 주장하고 있는 서희와 김정한 사이에 유일하게 일치하는 부분은 단 하나, 바로 대화를 시작한 시간이다. 처음 대화를 시작한 시각은 밤 11시20분, 그리고 김정한에 따르면 자신이 서희에게 자백을 받았다는 시각은 20분 후인 11시40분이었다.

    그런데 허경위의 말처럼 신고 시각이 11시 이전이라고 한다면 김정한은 자백을 듣기도 전에 이미 경찰에 신고한 셈이다. 나는 허경위가 혹시 시간을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허경위는 신고 시각이 자백 시각보다 더 빠르다는 말을 듣고도 “틀림없이 드라마가 끝나기 전이었다”고 말했다.

    더 놀라운 것은 경찰에 신고하기 전 김정한에게 서희의 범행을 전해들었다는 큰아버지의 주장이었다. 3월8일 저녁. 서희의 큰아버지는 조문 온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이어 조문객들이 화투를 치자 화투판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한다. 잠시 후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동생 김은정(가명)이었다. 영안실 밖으로 따라 나가자 김은정의 남편인 김정한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큰일났습니다. 서희가 아버지를 수면제로 살해한 것 같습니다.”

    나는 서희의 큰아버지에게 “그때가 몇 시였냐?”고 물었다. 그는 “저녁 8시30분에서 9시 사이였다”고 말했다. 11시40분에 처음 들었다는 자백을 김정한은 어떻게 무려 3시간이나 앞서 서희의 큰아버지에게 말했다는 것인지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의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분명하게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김정한이 말하는 자백을 들은 시각과 수사기관이 이 사건을 접수한 시각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며 다시 한번 기억을 상기해 보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큰아버지는 오히려 나의 설명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김정한에게 서희의 자백내용을 전해들은 후 너무 놀라 김정한의 차로 가서 약 30분간 같이 의논하기도 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나는 차후를 생각해 허경위 및 큰아버지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 두었다.

    한편 큰아버지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것은 대화 말미에서였다. 서희가 구속된 다음날, 그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서희 혼자서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는 서희가 잡혀간 다음날 아침 김정한을 불러 “아무래도 서희가 범행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아침에 동생을 부검하기 위해 옮기는데 남자 두 명도 힘들어서 결국 밖에 있는 운전기사까지 불러서 간신히 옮겼는데 어떻게 서희 혼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말했다.

    그러자 김정한은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실은 한 달 전에도 서희가 서울에서 남자 2명을 데리고 와 아버지를 살해하려다 실패해서 그냥 올라갔다는 말도 하더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서야 큰아버지는 서희가 범인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큰아버지는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려주며 한 달 전 검문소를 출입한 서울 번호판의 차량 중 남자 두 명이 타고 있는 차량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라는 말도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큰아버지가 김정한에게 들었다는 이 얘기에 대해 막상 당사자인 김정한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은 서희로부터 오직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자백만 들었을 뿐 그 외 다른 말은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서희가 검찰로 송치된 후인 3월21일, 김정한의 검찰 진술조서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검찰은 이 사건을 김서희의 단독 범죄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김정한이 공범 여부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나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누군가 도와준 것으로 생각되나 알지는 못한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김정한의 태도에 대해 큰아버지 역시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몇 번이나 나에게 “정말 김정한이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느냐. 분명히 내게 말을 했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큰아버지가 분명히 들었다는, 그리고 이를 듣고 서희의 범행이 사실이라고 믿게 됐다는 이 말을 김정한은 왜 부인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언급한 것처럼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살해 동기와 목적을 각각 아버지의 성추행과 사망 보험금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그 동기와 목적은 진실인가.

    먼저 사망 보험금은 고지의무 위반으로 지급될 수 없는 것이었고 김서희가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살해 동기다. 성추행. 과연 그것은 사실이었을까.

    성추행… 여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살지도 않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중략… 아버지에게 스스럼없이 모든 일에 대해 얘기하고 기댔던 저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성추행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2001년 3월5일 편지 중)

    ‘짐승만도 못한 내 아들이…’

    그렇다면 법원이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서희의 할머니와 여동생 등 가족의 진술 때문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사망자가 딸들을 성추행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할아버지가 경찰에 제출한 탄원서가 결정적이었다. ‘짐승만도 못한 내 아들이 제 자식들을 추행해 빚어진 사건에 대한 선처’가 이 탄원서의 핵심이었다. 왜 이들은 김서희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진실은 이렇다. 손녀가 살인 혐의로 체포돼 걱정하고 있던 할머니에게 경찰이 몇 가지 물어봤는데, 그중 하나가 손녀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냐는 질문이었다. 할머니는 별 생각 없이 기억나는 한 가지 사례를 말해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심부름을 다녀온 막내손녀딸이 대뜸 “이젠 아빠한테 가지 않을 거야”라며 심통을 부렸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묻자 손녀는 “아빠가 술에 취해서 나보구 뽀뽀하자고 하잖아”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아빠가 딸이 귀여우니까 그런 걸 가지고 괜히 그런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이 경찰에 가서 이야기한 전부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경찰에서 조서에 지장을 찍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문맹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문제였다. 할머니의 주장과 달리 조서에는 김서희와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등 고통을 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내가 이 사실을 할머니에게 말해주자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펄쩍 뛰었다. 나는 그렇다면 왜 그런 사실이 없는데 그후 ‘딸들을 성추행하는 짐승만도 못한 아들을 죽인 손녀딸을 용서해달라’는 탄원서를 냈냐고 다시 물었다.

    이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대답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할머니가 조사를 받고 나오자 경찰서 마당에 신고자 김정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할머니는 그야말로 귀가 확 트이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바로 “손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김정한의 말이었다. 그것은 ‘성추행’을 당해온 손녀가 ‘짐승만도 못한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라는 탄원서를 내는 것이었다. 이에 할아버지는 손녀를 살리기 위해 엉터리 탄원서를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도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다면 성추행이 없었다는 것이냐?”고 재차 물었다.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성추행은 단연코 없었고 다만 김정한의 말을 듣고 거짓말로 탄원서를 썼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여동생이었다. 여동생은 이 사건의 계기가 됐던 아버지의 성추행은 사실이 아니며 따라서 언니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한 적도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김서희의 친구인 권모양 역시 여동생으로부터 “성추행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권양에 따르면 사건 발생 직후 자신을 찾아온 여동생에게 “네가 정말 아버지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 해도 나는 너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니 나에게만이라도 솔직하게 얘기해봐라. 정말 아버지가 너에게 그런 짓을 했니?”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여동생은 단호하게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한다. 여동생에 따르면 “그렇게 말해야 언니가 살 수 있고 언니를 돕는 길”이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동생은 그가 바로 김정한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정한에 대한 의혹은 수사기관이 풀어야 할 숙제다. 앞서 살펴봤듯 허경위의 진술이 맞다면 그는 서희가 범행사실을 털어놓기 몇 시간 전에 이미 경찰에 신고한 셈이다. 또 큰아버지 주장이 틀림이 없다면, 그는 있지도 않은 공범 얘기를 꺼내 서희를 범인으로 믿게끔 해놓고는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다.

    김정한에 대한 의혹은 그의 부인 김은정에게로 이어진다. 김서희와 가족들은 김은정이 서희의 변호사 선임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은정은 서희의 부탁을 받아 변호사 선임을 도와주었던 모 여행사 사장에게 “서희의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반드시 먼저 나를 만나 상의해야 한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이에 여행사 사장은 김은정의 요구에 따라 두 번이나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김은정은 두 차례 모두 아무런 연락 없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은정은 이처럼 여행사 사장을 두 번이나 허탕치게 해 결과적으로 변호사 선임이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서희와 가족에게는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걱정 말아라. 내가 모든 일을 봐주겠다”고 말 했다고 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여행사 사장이 시간에 쫓겨 지방의 모 변호사를 선임한 뒤에 일어났다. 김은정은 재차 여행사 사장에게 자신을 만나야만 변호사로 선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에 여행사 사장은 다시 한번 김은정의 요구대로 변호사와 함께 약속장소로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김은정은 또 나타나지 않았고 그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가족과 여행사 사장의 증언이다.

    결국 이 같은 김은정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3개월이란 시간이 그냥 흘러갔다. 구속 후 6개월 이내에 재판을 끝내야 하는 1심에서 김서희가 고작 3번밖에 재판을 받지 못한 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족들은 지금도 왜 김은정이 제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서희의 변호사 선임을 방해했는지 궁금해한다.

    “범행 인정해야 도울 수 있다”

    마지막 의문은 김은정의 경찰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의 거짓진술이다.

    2000년 3월13일 김은정은 유치장에 수감된 김서희를 면회했다. 그리고 당시 이들의 대화 내용은 유치장 근무자에 의해 세세히 기록됐다. 첫 번째 의문은 김은정의 언행이다. 통상 조카의 범행에 대해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 정말 네가 한 짓이냐?’ 등 예상할 수 있는 통속적인 대화는커녕 김은정은 김서희가 범행을 부인하자 계속해서 범행을 시인할 것을 강요(?)했다. 그래도 김서희가 “내가 아니라고 해도 경찰은 믿지를 않는다. 나를 좀 도와달라”고 호소하자 그는 “네가 범행을 인정부터 해야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결국 김서희는 더 이상 김은정에게 부탁해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되리라 생각해 맥없이 면회를 마쳤다.

    문제는 그후였다. 김은정은 이 면회 직후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김은정은 경찰로부터 “방금 전 면회할 때 김서희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요?” 하는 질문을 받자 어처구니없게도 “네. 자신이 수면제로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법원은 이 진술을 증거로 채택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당시 유치장 근무자가 작성한 면회 기록 어디에도 김은정이 들었다는 서희의 자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백한 거짓 진술이었다. 도대체 그들 부부는 왜 이런 거짓말을 한 것일까.

    제가 누명을 쓴 것, 수사기관의 타락, 법원의 편파적인 태도에 대한 서글픔에 앞서… 제 아버지가 딸을 추행한 파렴치한으로 몰리는 것을 손도 쓰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던 제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아버지의 누명이라도 벗길 수만 있다면….(2001년 2월4일자 편지 중)



    김서희는 지금 감옥에 있다.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고 결론 짓기에는 8개의 보험 가입, 보험금 사용 계획서, 비슷한 내용의 습작 소설 등 너무나 기묘한 ‘우연의 일치’가 맘에 걸린다. 반면 그녀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제껏 살펴본 대로 의문점이 너무 많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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