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닉스 ‘변칙지원’ 결정한 경제장관회의 자료 유출
- 재경부→산자부→수출보험공사 공문 보내 하이닉스 지원 협조 요청
- ‘정부가 책임진다’ 주무장관 서명까지
- 상대국에서 입수해 미 상무부와 EU에 ‘정부 개입’ 증거로 제출
- 산자부·외교부, 문서 유출 경위 파악 안 하고 ‘쉬쉬’
- WTO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
-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을 결정한 우리 정부의 내부문서가 어느날 갑자기 미국 상무부에서 발견됐다. 하이닉스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도록 제소한 마이크론이 이 문서를 쥐도새도 모르게 빼돌린 것. 정부는 알고도 쉬쉬했고, 이 문서를 받아든 유럽연합은 ‘정부 개입의 증거’라며 상계관세율을 높였다. 손발 안 맞는 어설픈 대응으로 禍를 자초한 셈이다.
이 문서는 하이닉스반도체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도록 미 상무부에 제소했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모종의 루트를 통해 입수한 뒤 미국 정부 및 EU에 제출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을 결정할 무렵, 경제장관회의 결과를 정리해 수출보험공사에 통보한 문서에는, 당시 진념 경제부총리,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 등 주무부처 장관들의 서명까지 담겨 있어 이러한 정부의 조치가 WTO가 금지하고 있는 수출 보조금 지급에 해당하느냐를 둘러싸고 WTO 논의과정에서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보조금 여부 둘러싸고 논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하이닉스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금융지원 개입 증거라며 미 상무부에 제출한 공문서는 모두 2건이다. 첫 번째 문서는 지난 2000년 11월 재정경제부가 한국수출보험공사와 외환은행에 보낸 공문으로, 하이닉스의 수출환어음(D/A : Document against Acceptance) 유동화를 지원하기 위해 수출보험공사가 하이닉스의 비(非)네고분 전액에 대한 보험을 한시적으로 재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경제장관 간담회 결과를 통보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당시 수출보험 주관부서인 산업자원부 역시 경제장관간담회 결정사항을 근거로 수출보험공사에 공문을 보내 수출보험 지원을 요청했다.
수출보험공사는 이 문서를 접수한 직후인 12월1일 이사회를 열어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수출보험공사측은 특혜 소지가 있다면서 이러한 지원방식에 반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동아’가 입수한 당시 수출보험공사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수출보험공사 부사장이었던 임태진 현 사장은 애초 현대전자에 대한 지원은 공사 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수출보험 인수 거절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수출보험공사 관계자도 “하이닉스 본사와 해외지사간 거래 형식을 띠고 있는 수출에 대해서까지 수입업체 파산 등의 상황을 우려해 수출보험을 들어주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보험 적용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IMF 사태 발생 직후 예외적으로 수출업체들의 본사-해외지사간 거래에 대해서도 수출보험을 지원해준 사례가 있다. 2000년 당시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도 이러한 전례에 따라 이뤄졌다.
그러나 수출보험공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변칙적’ 지원이 나중에 문제될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주무 감독부처인 산업자원부측에 장관 등이 서명날인한 일종의 ‘보증서’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산자부에서는 경제장관회의 결과를 첨부하는 방식으로 공사측에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근거를 만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임사장은 하이닉스 수출보험 지원을 결정한 이사회에서도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공사 규정상 가능한 재판매보험으로 하이닉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채권은행인 외환은행측에서 이러한 방식으로는 현대전자 D/A 인수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산자부 장관의 지시에 의해’ 5억5000만달러(당시 한화 약 6600억원) 규모의 수출보험을 지원하게 됐다”고 발언했다.
미 상무부와 EU에 제출된 두 번째 공문은 2001년 1월, 역시 재경부가 산업자원부, 금융감독원, 그리고 외환은행에 보낸 것으로, 2000년 11월 당시의 공문과 마찬가지로 현대전자 D/A 매입 관련 경제장관 논의결과를 통보하고 이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특히 두번째 공문에는 외환은행이 매입한 현대전자 D/A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으로 수출보험기금의 지급여력이 부족해질 경우 별도재원에서 지원한다는 내용과 함께 진념 당시 경제부총리 등 경제부처 장관들의 서명까지 담겨 있다.
하이닉스를 제소한 미국과 EU측이 문제삼고 있는 수출환어음(D/A)이란 수출업체가 물건을 선적한 후 수입업체가 대금을 치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 수입업체나 지정은행을 통해 발행하는 환어음을 말한다. 수출업체는 이 환어음을 국내 거래은행에 제출한 뒤 네고를 통해 수출대금을 우선 회수하고 은행은 나중에 수입업체로부터 대금을 지급받는다. 수출업체들 입장에서는 일종의 외상거래 방식으로 자금을 먼저 융통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은행이 D/A 네고에 응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래은행은 수입업체가 파산해 대금 회수가 안 될 경우와 같은 신용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D/A를 매입할 때 기업들의 보험 부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수출보험공사는 수출업체로부터 보험료를 받은 뒤, 대금 회수가 불가능해질 경우 은행이 입게 될 손실을 보험으로 커버해준다.
하지만 당시 하이닉스는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이 자금난을 이유로 D/A 네고를 거절하면서 수출대금을 회수하지 못해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외환은행 입장에서는 하이닉스의 D/A를 인수할 경우 이 어음이 100% 위험자산으로 인정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당연히 외환은행은 하이닉스측의 D/A 네고를 거절하면서 하이닉스가 매입한 D/A에 대해 수출보험공사의 부보를 요청했다. 수출보험공사가 부보를 하게 되면 D/A의 위험가중치가 10%로 떨어져 은행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가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을 결정한 것은 이러한 배경 아래 이뤄졌다. 2000년말 당시 하이닉스는 2001년 3월까지 집중돼 있는 부채의 만기구조 및 자금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조원 규모의 신디케이트 론(syndicated loan)을 추진하는 등 자금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2001년 3월 말까지 하이닉스가 지급해야 할 금액은 회사채 만기 도래분과 차입금을 포함해 2조3000억원. LG반도체와의 빅딜 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금액도 미처 정산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상태였다. 증권가에서는 하이닉스에 대한 자금불안설이 유포되기 시작했고 외국인의 매도 행진으로 주가는 액면가를 위협할 정도로 곤두박질쳤다.
정부에서도 반도체 빅딜을 통해 탄생한 하이닉스가 자금난에 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경제장관회의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산자부 감독 아래 있는 수출보험공사를 동원해 하이닉스를 간접 지원하는 방안을 결정한 것이다.
EU 관세율 인상에 명분 줘
한편, 마이크론을 통해 EU로 흘러들어간 이 문서는 실제 EU 집행위원회의 상계관세 판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하이닉스에 대한 상계관세율 최종판정에서 3월말 예비판정 당시의 상계관세율 57.37%를 44.71%로 대폭 낮춘 바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4월말 예비판정 당시 33%였던 상계관세율을 최종판정에서 오히려 34.8%로 높여 하이닉스는 물론 국내 DRAM 업계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EU가 최종판정에서 상계관세율을 올린 데에는 수출보험 지원 요청을 확인해주는 이 정부 문서들을 입수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유럽연합의 상계관세 최종판정에서는 채권은행들의 신디케이트 론이나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 등 다른 제소 사유에서 상계관세율이 일부 하향조정됐지만 D/A 한도 확대 쪽에서 5.1%나 상향조정되는 바람에 최종 관세율이 1.8% 올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유럽연합과의 양자협의 과정에서 우리측 의견에 어느 정도 수긍했던 국가들도 이 문서를 확인하고 나서는 한국 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냐고 불쾌한 반응을 보이면서 사태가 꼬여버렸다”고 말해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지난 8월, EU 집행위원회의 하이닉스에 대한 관세 부과 표결에서 15개 회원국 중 프랑스와 네덜란드만 반대표를 던졌을 뿐 나머지 회원국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뿐만 아니라 도리언 프린스 EU 한국대표부 대사도 얼마전 “정부소유 은행과 국책은행이 부도에 직면한 민간기업을 정부 압력에 의해서 지원했다는 서신의 사본을 확보함에 따라 상계관세율을 높였다”고 언급함으로써 이를 확인해준 바 있다.
독일 인피니온의 제소에 따라 하이닉스에 상계관세를 부과한 유럽연합은 우리 정부 문서를 근거로 상계관세율을 인상했다. 사진은 하이닉스 인수 협상을 위해 내한했던 인피니온 관계자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마이크론측이 정부 문서를 빼돌린 것을 알고도 문서 유출 경위조차 파악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산자부 관계자는 “문서 유출 자체가 범죄 요건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쉬쉬’하는 데 급급
따라서 현재로서는 정부건 수출보험공사건 간에 이 문서의 유출 경위에 대해 막연한 추정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 정부와 업계 주변에서는 이 문서를 마이크론측이 가장 먼저 미 상무부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는 점을 들어 지난 2001년 하이닉스와 마이크론간의 전략적 제휴 협상 당시 마이크론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국내 로펌을 의심하는 분위기이다. 수출보험공사 관계자 역시 정부 문서를 빼내 마이크론측에 넘겨준 당사자로 이 로펌을 지목했다. 그러나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짐작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거론하기는 조심스럽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들이 하이닉스 관련 자료를 요청한 바 있어 이때 국회로 넘어간 정부 문서가 마이크론 쪽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간에 정부가 유사한 사례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경위 파악에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충분히 유출 경로를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마이크론이 미 상무부에 제출한 정부 문서에는 당시 수출보험공사 관계자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는 등 문서 유통 경로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서 유출 경위가 밝혀질 경우 정부 내에서 이에 따른 책임 논란이 일 것을 우려해 일부러 쉬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및 EU와의 정부간 협상에서 수석부처의 역할을 맡고 있는 외교통상부도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외교통상부 고위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 국내 업체들이 상계관세로 제소된 상황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정부 문서가 상대국 손에 넘어가게 됐는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미국이나 유럽연합 모두 언론 보도 내용까지 증거자료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연도 있다.”
- 문서 유출 경위를 파악하질 않았나?
“(…)우리가 수사기관도 아니고….”
- 다른 부처와 이 문제와 관련해 협의한 적은 있나?
“(어중간한 말을 할 생각은 없지만) 다른 부처에서도 모르겠다고 하는데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 문서 유출 경위가 전혀 파악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경위 파악 여부를 포함해서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 외교부는 통상협상에서 수석부처로서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글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 중국과의 마늘협상 때처럼 외교부와 경제부처들 간에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닌가?
“마늘협상 때와는 다르다. 마늘협상은 누가 지시했느냐 하는 경위와 협상과정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쪽(경제부처)에서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외교부에서 별도로 뭘 조치하라고 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을 결정할 당시만 해도 경제장관회의에서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을 결정하고 이를 문서형태로 수출보험공사와 외환은행 등에 통보한 사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관계자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당시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과 관련해 “경제장관회의에서 수출기업들이 어려우니까 수출보험공사에서 지원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히고 경제장관들이 직접 서명까지 한 데 대해서는 “민주화 과정에서 모든 기관들이 자신들의 귀책 사유를 밝히기 위해서 서명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일종의 정책실명제와 같은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진 전 부총리 역시 이 문서가 어떻게 해서 미국과 EU측에 넘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당시 주무부처 장관이었던 신국환 전 산자부 장관은 “마이크론과 하이닉스간 인수 협상이 결렬될 당시 상계관세로 제소하지 않겠다는 약정을 맺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 문제에 관해 신 전 장관은 “하이닉스 문제는 은행에만 맡겼을 뿐 경제장관회의에서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을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가 기자가 관련 문서를 제시하면서 이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자 연락을 끊었다.
이제 문제는 WTO 무대로 넘어간 하이닉스 상계관세 분쟁에서 이 정부 문서가 어느 정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냐는 점이다. 일단 주무부처인 산자부와 수출보험공사측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수출보험공사측은 하이닉스 D/A에 대한 보험을 인수해주는 조건으로 80억원 가량의 보험료를 받았기 때문에 손해본 것은 없다고 밝혔다. 수출보험공사 관계자는 “하이닉스로부터 보험료를 받기만 했을 뿐 하이닉스쪽으로 입금된 돈이 없기 때문에 수출보험을 (EU가 주장하는 대로) 보조금으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상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WTO 보조금 협정은 수출 보조금의 사례를 열거하면서 ‘정부(또는 정부가 통제하는 특수기관)가 수출신용보증 또는 보험 프로그램을, 이러한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운영비용 및 손실을 보전하기에 부적절한 보험료(premium rate)로 제공하는 것’도 보조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규정에 비춰볼 때 단순히 ‘보험료를 받기만 했으니까 문제없다’라는 접근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교통상부에서 WTO 보조금 분쟁을 직접 다룬 바 있는 인천대 손기윤 교수(경제학)는 “수출보험공사가 적절한 리스크를 감안한 보험료를 받았느냐, 아니면 보험료를 과소 책정해서 실질적으로 하이닉스측에 혜택을 준 것이냐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WTO에서 ‘악재’로 작용할 듯
이같은 상황에서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을 요청한 정부 문서가 WTO 패널 구성 이후 증거자료로 제출될 경우 우리에게 결정적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는 산자부와 외교부가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자부 김종갑 차관보는 “우리로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상대국이 이 문서를 증거로 제출한다면) 우리도 WTO에서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입장은 다소 신중한 편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유럽연합이 이 문서를 WTO에 증거로 제출할 가능성이 있으며 양자협의에 제출되면 우리에게 불리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측 역시 정부 문서가 유출돼 상대국 손에 흘러들어가 향후 WTO 논의과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상황.
하이닉스 상계관세 문제는 우리 정부가 미국과 EU를 WTO에 제소해놓은 상태에서 첫 단계인 양자협의를 앞두고 있다. WTO에서 미국과 EU가 하이닉스에 부과한 상계관세가 정당하다는 평가를 얻으려면 상대국은 우리 정부가 하이닉스에 수출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조금 지급행위로 인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이 피해를 입었다는 점도 함께 입증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정부측에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고 내다보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여태까지 우리가 WTO에 제소했던 통상 현안 가운데 90%는 승소했던만큼 하이닉스 상계관세 제소건도 WTO 무대로 가면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과 EU를 WTO에 제소하자마자 이번에는 일본과 대만의 반도체업체들이 나서 하이닉스를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반도체 업계는 WTO 판결에 관계없이 또 한번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하이닉스 지원 정부 문서 유출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가리지 않는다면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