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호주법인이 시드니에 마련한 TV체험장.
삼성전자는 호주의 텔레비전과 일부 냉장고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휴대전화, AV(오디오 비디오), 노트북, 세탁기도 호평을 받고 있다.
2009년 출시된 LED TV는 화질이나 디자인, 에너지 절약 등의 부분에서 독보적이며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뒤이어 2010년에는 전세계 최초로 출시한 3D TV를 통해 호주 지상파 3D 방송을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11년에는 스마트 TV를 포함해 스마트 TV 에코 시스템을 구축해 부가가치를 창출해냈다.
평판 TV는 시장점유율이 28% 수준으로 시장의 리더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휴대전화도 갤럭시S2 등 스마트폰의 판매가 호조를 보여 지난 8월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냉장고의 경우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점유율 35%까지 차지해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제품이 주도하는 마케팅 전략을 통해 전체 가전시장에서 1위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다른 IT 제품이나 생활가전 제품의 경우 삼성은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여서, 대폭적인 브랜드 투자를 통해 시장을 선도해나갈 계획이다.
삼성 vs 애플 법정 소송 격전지
요즘 호주에서 삼성전자의 가장 큰 이슈는 애플과 벌이고 있는 갤럭시 탭에 대한 법정소송이다. 애플은 호주 법정에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놓은 상태로 애플은 갤럭시탭10.1이 애플 제품과 흡사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삼성전자는 “이 제품에 이용한 기술은 범용적인 기술” 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10월4일 가처분 심리에서 법원은 “이른 시일 내에 판결을 내릴 것이다”라고 밝혔다.
호주 인구는 2234만명에 불과하지만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의 경우 이민자 층을 기반으로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이며, 전세계 시장에서 ‘얼리 어답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주 소비자는 제품을 비교해서 평가하는 데 익숙하고, 한번 선택하면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유수의 전자 브랜드들이 호주시장을 세계시장의 시험무대로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신제품을 타시장보다 먼저 출시하고 있다. 마케팅 투자에서도 예외적인 기준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이처럼 상징성이 높은 시장에서 삼성전자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1983년 7월 호주에 현지지점을 마련했다. 지점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삼성은 이때 직접 영업은 하지 않고 우선 거래처를 만들어 수출 거점을 마련했다. 실제 호주에 회사를 설립해서 제품을 창고에 쌓아두고 영업을 시작한 것은 현지법인을 만든 1987년이다.
진출 초기 삼성은 현지인들에게서 ‘브랜드 발음이 어렵다’ ‘일본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곧잘 들어야 했고, 안정적 판매단계에 접어드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삼성전자가 호주에서 질적 도약을 한 것은 현재 현지법인이 들어선 시드니 홈부시베이 근처 건물로 이주한 2002년 전후다. 2000년엔 시드니올림픽의 주요 스폰서가 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폭발적으로 높아졌으며, 2001년 12월 처음으로 매출 1억달러에 도달했다. 이후 급성장세를 보여 2003년 3억달러, 2005년 5억달러를 기록했다. 윤승로 호주 법인장은 “시장에 최초로 신기술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전략(First-to-market)에 열광하는 호주 소비자의 특성이 삼성전자의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급속도로 매출이 증가한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삼성맨의 자부심
교육 중인 호주법인 직원들.
삼성전자 호주(Samsung Electronics Australia)는 삼성전자라는 이름은 달았지만 법적 지위나 위상에서 하나의 호주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가이드라인 안에서 판매 방식이나 운영, 인사, 급여 등이 모두 호주 기준에 맞춰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호주인을 채용할 때 호주의 다른 회사와 비교해서 월급이나 인센티브 등이 뒤처지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으며, 삼성전자가 호주 현지에 확실히 뿌리내린 현지 회사로 인식될 수 있도록,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를 현지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8년 전 호주 법인에 입사한 존 프래지어다키스 기술마케팅 부장은 “한국의 삼성전자 제품이 호주라는 다른 문화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직원들은 삼성전자 직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 호주법인에 근무하는 직원의 평균 근무기간은 3년으로, 호주 내 동종업계보다 1년 정도 더 길고, 5년 이상의 장기근속자 비중도 20%(51명) 정도 된다.
호주만의 특성은 영업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호주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형태의 대리점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한국으로 치면 하이마트나 전자랜드 등과 같은 일반 유통사인 하비 노만, 굿 가이즈, 제이비 하이파이 등 전자전문점과 거래한다. 또 마이어, 데이비드 존스 등 백화점도 중요한 고객이다.
하지만 호주의 지리적인 특수성과 유통별 운영방식에서 구미 선진국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호주 현지에 맞게 주문입수 방식이나 배달조건에 대해 맞춤정장을 만들 듯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인력관리도 이런 방식의 영업에 맞춰 이뤄진다. 하비 노만의 경우 본사가 시드니에 있어 법인 사무실에서 관리가 가능하지만, 굿 가이즈나 제이비 하이파이는 본사가 멜버른에 있어 이를 관리하기 위해 멜버른에 사무실을 두고 현지인을 고용하고 있다. 물론 기타 퀸즐랜드, 서호주, 남호주 등에도 별도로 지역별 사무실을 두고 중소 거래선의 요구 및 지원에 대응하고 있다.
제이비 하이파이의 경우 전자제품의 액세서리와 컴퓨터 주변기기 판매로 시작해서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곳으로 삼성전자의 가장 중요한 고객 가운데 하나이며, 굿 가이즈는 단순한 모델 구색으로 인기 제품만 효율적으로 판매하는 우수 거래선 중 하나다.
“서구인임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중시하고 자기보호 본능이 강한 현지인을 상대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수한 현지인이 필요합니다. 유통업체들도 저마다 거래 조건이 다르고 기업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잘 이해하고 경험이 많으며 네트워크 관계 관리에 능한 이들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현지화가 대단히 중요합니다.”(윤승로 법인장)
제품 현지화
삼성전자의 현지화 전략은 제품 자체에도 배어 있다. 호주에서 물건을 팔려면 호주의 최종 소비자와 거래처를 염두에 두고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원래 제품이 갖고 있는 특장점 가운데서도 호주 소비자가 필요한 버전으로 바꿔서 팔아야 한다.
예컨대 호주의 집들은 대체로 크고, 택지도 넓은 편이지만 실내 공간에는 냉장고 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을 붙박이(built-in) 형태로 두고 사용하기 때문에 그 규모에 맞는 제품이 필요하다. 냉장고는 높이가 172㎝ 이상이면 빌트인 공간에 들어갈 수 없다. 한국형 냉장고는 세로 길이가 이보다 더 긴 것이 많은데, 이런 제품을 그대로 호주에 판매할 경우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TV도 과거에 전세계 공통으로 세팅한 표준화질이 현지인의 눈높이와 맞지 않아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지법인에서 본사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현지의 피드백(feedback)을 제품에 반영한 결과 현재의 성과를 낳을 수 있었다.
윤승로 삼성전자 호주법인장.
“호주인 직원은 일하는 방식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국과는 많이 달라요. 급여나 진급 등에 대한 동기도 다르지요. 미국에서는 돈이나 진급이 중요한 인센티브가 되는데, 호주는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호주인은 가족이나 건강관리, 사생활 등에 대한 균형을 잃어버리면 상당히 힘들어합니다. 실제로 뉴사우스웨일스 주 지역을 담당하는 딜러 서포터 매니저 A의 경우 일을 잘해서 제가 진급을 시켜주겠다고 했는데도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고 묻자 ‘진급하면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아내가 지금보다 일을 더 많이 하면 같이 못 산다고 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호주에서 살다보니 그런 사고방식이 일반적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삼성의 기업 문화는 공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호주인의 직장문화와 삼성의 공격적 기업문화를 조정하는 것이 바로 윤 법인장의 역할이다. 198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윤 법인장은 기획 전략 마케팅 부문에서 근무했다. 1995년부터 2년간 영국법인에도 근무했으며, 이후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영업을 주로 맡아 해외에서의 업무가 낯설지는 않다. 그럼에도 호주라는 다른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고, 본사에서 제시한 경영 목표를 달성해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호주 생활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완급을 조절하며 필요한 일들을 본사의 요구에 맞춰나갈 수 있게 됐다.
“예컨대 휴대전화 제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은 본사가 관장하지만, 호주 현지에서 제품을 제대로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업무는 법인이 맡습니다. 휴대전화의 경우 현지 휴대전화 사업자인 텔스트라 옵투스 보다폰 등과 협력해야 하고, 누구에게 어떻게 마케팅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중요한 점은 제대로 된 소구점, 소비자 수요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냉장고의 경우 같은 제품 설계를 바꿔서 외형 크기는 동일한데 저장 공간을 크게 한 양문형 냉장고를 도입해 현지에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호주에선 전기값과 물값이 비싸기 때문에 절전형, 절약형 제품이 인기가 있습니다. 그런 점들을 제품에 반영하려고 본사와 협력합니다.”
사회적 책임 활동도 활발
삼성전자는 현지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지난 5년간 스포츠 마케팅의 일환으로 오세아니아주 지역 ‘꿈나무’ 육상선수들에게 연 30만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지원해오고 있다. 물론 크고 작은 지역사회의 공익적 행사, 가령 해상구조대 기금 마련을 위한 ‘도시에서 파도까지(City-to-Surf) ’마라톤 행사, 불우소년소녀들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주기 위한 사랑의 바이올린 행사 등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지에서 벌어서 현지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삼성을 존경할 만한 현지 회사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제품 마케팅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퀸즐랜드 주 대홍수 때 10만달러 상당의 제품을 공급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시적인 기여를 넘어서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삼성이 호주와 상생하는, 영원한 동반자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더불어 호주법인에서는 올해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기획하고 있다.
“휴대전화와 TV가 성공적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더 확고한 기반을 갖는 게 저희 목표입니다. 다른 IT 제품이나 가전제품은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2, 3위권에 머물러 있는데, 이들도 선두의 위치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라는 브랜드가 2300만 호주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 존경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