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인회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실세’ 김기춘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이 7인회 소속이다. 7인회는 원로 친박 모임이다.
- 멤버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부녀(父女)와 두루 인연이 있다.
- 7인회는 박근혜 정권의 슈퍼 파워그룹으로 뜰 것인가.
또한 그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초원복국집 사건 때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국회 법사위원장 때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다. 야당은 한마디로 ‘민주주의를 역행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김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자문 그룹이던 ‘7인회’의 멤버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7인회가 박근혜 정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정권 초부터 인사 개입說
7인회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서 막 물러나 대권 도전에 나선 지난해 5월 실체(?)가 공개됐다. 좌장으로 알려진 김용환 전 재무장관이 소문으로 떠돌던 7인회의 실체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 사람들이 ‘7인회’라고 부르는데 가끔 만나 식사하고 환담한다”고 답했다. 7인회 멤버는 김 전 장관,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현경대 전 의원, 강창희 국회의장으로 알려졌다.
당시 7인회가 논란이 되자 김용환 전 장관은 필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내가 실언을 했다. 모여서 무슨 건의를 하고 조언하는 그런 모임이 아니다. 그냥 편하게 만나서 밥 먹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사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가끔 선약이 없으면 나오셨다. 편하게 해드리고, 고생하신다고 위로도 해드리려고 했는데 거꾸로 누를 끼쳐버렸다”고 말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비대위를 꾸리면서 27세의 이준석 위원을 영입했고, 4·11 총선 때는 27세의 손수조 후보를 부산 사상 선거구에 공천하는 등 취약 세대인 젊은 층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평균 연령 74세의 멘토 그룹이 공개된 것은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은 측근인 이정현 의원(현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7인회라는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의 7인회 참석에 대해 “그분들이 초청해 한두 번 오찬에 가 뵌 적이 있다. 그러나 소위 ‘멘토 그룹’ 운운하는 것은 잘못 알려진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신중한 처신’을 당부했고, 이후 7인회는 극도로 행동을 조심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부터 여권에선 다시 7인회가 거론됐다. 7인회 멤버들이 자기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기 위해 인사 개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없었다. 정황이 떠도는 수준이었다.
7인회 멤버인 김기춘 실장의 경우 사위, 검찰 후배, 학교 후배 등이 현 정권 요직에 전격 발탁됐다. 김 실장의 사위인 안상훈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직인수위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으로 임명돼 활동했다. 정홍원 국무총리와 황교안 법무장관은 김 실장의 검찰 직속 후배다. 정 총리는 김 실장의 경남중 후배이기도 하며 검찰에 근무할 때 김 실장을 상관으로 보좌했다. 일각에선 정권 초 개각 때 김 실장이 정 총리와 황 장관을 천거했다는 말도 나온다.
“아이고, 골치 아픕니다”
역시 7인회 멤버인 강창희 국회의장은 여권이 박근혜 체제로 재편된 지난해 6월 국회의장이 됐다. 강 의장은 현 정권에서 잘나가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육사 동기(25기)인데 강 의장이 남 원장을 천거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7인회 멤버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서울고 선후배 사이다. 김용환 전 장관은 대선 때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박근혜 캠프 합류를 도왔다고 한다. 현재 한 전 고문은 대통령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7인회 멤버 가운데 이미 강창희 국회의장이 입법부 수장에 올랐고, 현경대 전 의원은 5월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발탁됐다. 김기춘 실장 임명은 7인회 공직 진출의 화룡점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7인회 멤버인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
▼ 7인회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그런 말 믿지 마세요. 그냥 친목 모임이에요. 모두 정치에서 물러나 시간 날 때 점심 같이 하고 커피 한잔하는 모임인데, 그게 뭐라고 새 정부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느니, 추천한다느니 그런 얘기들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 김기춘 실장의 등장으로 그런 말이 나오는 거죠.
“김 실장이 우리 멤버 중 한 사람인 건 틀림없어요. 그러나 그분이 실장으로 가는 과정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취임한 후에도 서로 연락한 적이 없어요. 심지어 축하한다는 말도 한 마디 건네 적이 없고….”
▼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모임을 안 가졌나요.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점심 한 번 한 기억은 있네요. 모두 나온 건 아니고, 강창희 의장이나 현경대 수석부의장은 바쁘니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친분 있는 사람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는, 그게 무슨 뉴스거리가 되나요? 아이고, 골치 아픕니다.”
▼ 7인회 멤버들이 인사 추천을 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우리 인격도 존중해주세요. 우리끼리 인사 얘기는 한 마디도 한 적 없어요. 인수위를 구성한 시점부터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끊어졌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런 사람들 인격을 존중해야지…. 정말 유쾌하지 않습니다.”
▼ 김기춘 실장 임명은 어떻게 봅니까.
“열심히 잘할 겁니다. 우리가 믿고 있어요. 중도우파로서 굳건함이 있고, 입법부와 사법부를 두루 거치면서 정의감이 넘치는 분이에요. 뚜렷한 국가관도 갖고 있고. 그러나 멀리서 박수 치는 거지, 우리가 모이면 또 뭐라고 하겠어요. 그분도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우리가 덕담으로라도 ‘잘 모셔라’고 하는 것는 인격모독이죠.”
지난해 7인회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민주당은 7인회를 이명박 정부 탄생기의 ‘6인회’와 비교해 맹공을 가했다. 박지원 의원은 “7인회의 면면을 보면 수구꼴통이어서 나라를 맡길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6인회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여섯 사람이 결국 반은 감옥에 갔고 나라를 망쳤다”고 주장했다.
7인회와 6인회는 다르다?
6인회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활동한 이명박 후보 본인과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박희태·이재오·김덕룡 의원,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멤버였다. 이들은 정권을 잡은 뒤 이상득 전 부의장처럼 막후에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국회의장(박희태), 방송통신위원장(최시중), 특임장관(이재오), 민화협 상임의장(김덕룡) 등 요직에 올랐다. 이상득 전 부의장과 최시중 전 위원장은 나중에 비리 혐의로 구속됐고, 박희태 전 의장은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이번에도 김기춘 실장이 등장하자 민주당은 “MB 정권 6인회 멤버들의 비극적 종말이 재현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7인회를 겨냥했다. 이에 대해 김용환 전 장관은 “소위 7인회와 6인회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우리는 2007년 경선 때 박근혜 후보를 도왔던 사람들이 지난 일을 반추해보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는 순수 친목 모임이다. ‘7인회’라는 명칭도 없었다. 언론이 만든 말이다. 우리는 당과 전혀 관련이 없다. 반면 6인회는 MB가 주도한 선대위 공식기구였다. 경선이 끝나고 대선 후보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이태용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은 기자에게 “6인회와 달리 7인회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분들(7인회 멤버)은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운명적, 숙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끝까지 지켜볼 뿐이지 다른 정치적 욕심은 없다”고 했다. 김기춘 실장 발탁도 7인회 멤버여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 개인적 역량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실장은 김용환 전 장관을 오랫동안 보좌한 그의 측근 인사다.
김 전 장관이나 이 실장의 말처럼 박 대통령이 김 실장에게 비서실을 맡기고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기용한 것은 아버지 시대에 활동했던 원로들의 경륜을 빌리기 위한 차원일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6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원로급을 중용하는 경향이다.
청와대에는 김 실장 외에 김장수 국가안보실장(65), 박흥렬 경호실장(64), 주철기 외교안보수석(67)이 이에 해당된다. 박근혜 정부 1기 청와대 참모진을 이끈 허태열 전 비서실장도 68세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71), 남재준 국정원장(69),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72),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71),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76) 등도 고령이다. 한 여권 인사는 “박 대통령이 70대 전후 인사를 많이 중용하자 여권 내 60대 인사들 사이에선 ‘박근혜 정권의 공직 정년은 80세’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 시대 원로들을 잇달아 중용하는 배경에 대해선 ‘배신론’에 입각한 해석도 있다. 정치를 시작한 이후 대선 때까지 곁에 뒀던 참모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거나 결정적인 하자가 드러나 낙마했기 때문에 검증이 완료된 원로그룹에 기댄다는 것.
“朴정권 공직 정년은 80세”
한때 박 대통령의 ‘책사’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대선 때 적진인 민주당으로 갔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를 할 때 대변인이던 전여옥 전 의원은 친(親)이명박으로 돌아서면서 박 전 대통령과 완전히 멀어졌다.
윤 전 장관은 이번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두고 언론에 “박근혜 대통령의 초조함이 배어 있다”고 혹평했다. 또 방송에 출연해 “박 대통령이 현안에 침묵하는 것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보여야 될 마땅한 태도가 아니다. 사정이 어려우면 국민에게 솔직히 보고해야 된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전여옥 전 의원은 대선 전 출간한 자서전에서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며 박 대통령을 깎아내렸다.
지난해 대선 때 영입한 김종인 전 선대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나 이상돈 전 비대위원도 지금은 박 대통령에게 상당히 비판적이다. 이 전 위원은 사석에서 박 대통령의 태생적 한계를 거론하면서 “박근혜 정권이 이대로 가면 성공을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친박계 핵심이던 김무성 의원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도 친박계에서 이탈했다가 복귀한 경우다. ‘원조 친박’인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운다.
김용준 전 총리 내정자,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등은 박 대통령이 야심 차게 기용했지만 결정적 하자가 드러나 사퇴했다. 특히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발탁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방미 때 성추행 사건을 일으켜 박 대통령 본인에게 커다란 정치적 피해를 주었다. 여기에다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Best of the best)’라고 했던 허태열 비서실장 체제는 반 년도 못 채우고 허물어졌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의 핵심은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를 않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인데 비서실장을 임명 6개월도 되지 않아 교체한 것은 의외”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용인불의’는 버렸지만 ‘의인불용’까지 버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강화한 측면도 있다. 이 과정에서 김기춘 실장이 소속된 7인회가 주목받는 것이다. 7인회는 한사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많은 이가 이 모임이 ‘현대판 원로원’이 되는 건 아닌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