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IPTV에서 EBS 애니메이션 방영하라”
- “IPTV 독점 방영권 안 풀면 투자 안 한다”
- ‘통신通 낙하산’ 신용섭 사장 취임 후 갈등
- 제작사들 애니메이션 산업 위축 우려
서울 강남구 도곡2동 EBS 본사. ‘두다다쿵’ ‘방귀대장 뿡뿡이’ 등 EBS가 투자한 애니메이션이 전시돼 있다.
‘뽀롱뽀롱 뽀로로’ ‘로보카 폴리’ 등 국내 애니메이션 투자 및 방영을 통해 ‘애니메이션 르네상스’를 이끌던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지난해부터 애니메이션 투자 조건으로 ‘지상파 독점방송권’뿐 아니라 모든 IPTV에 해당 애니메이션을 방영할 수 있도록 하는 ‘국내 영상 콘텐츠 배급권(이하 VOD 배급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EBS는 2013년 한 해 동안 특정 IPTV의 VOD 독점 방영을 인정하는 제작사와는 후속 시즌에 대한 투자 결정을 무기한 보류하는 한편, 모든 IPTV 내 ‘EBS관’에서 VOD를 방영하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인 업체 4곳과만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지난 12월 EBS가 ‘최초로 공동기획제작했다’고 발표한 애니메이션 ‘두다다쿵’의 캐릭터를 활용한 완구, 책, 의류 등 ‘사업권’을 이례적으로 제작사가 아닌 라이선싱 대행사에 하청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향후 EBS가 VOD 배급권과 사업권을 확보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에만 투자해 제작사는 EBS의 하청업체가 되는 것 아닌가”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애니’ 투자 양대 산맥
아이들에게 대통령급 인기를 끌어 ‘뽀통령’이라 불리는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은 2010년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를 3893억 원으로 평가했다. 높은 몸값 때문인지 뽀로로의 공동 제작사 오콘과 아이코닉스는 뽀로로의 저작권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까지 벌였다. 재판부는 “뽀로로는 아이코닉스와 오콘이 각 27%, SK브로드밴드가 20%, EBS가 26% 지분을 보유한 공동 저작물”이라고 판결했다.
‘뽀로로’에서 보듯 EBS와 SK브로드밴드는 국내 애니메이션 투자의 두 축이다. 뽀로로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영화, 드라마 등 다른 콘텐츠에 비해 수익률이 낮아 민간 투자를 받기 쉽지 않다. 국내 지상파 중 EBS가 거의 유일하게 신규 애니메이션에 투자 및 방영을 한다. EBS는 ‘방송프로그램 등의 편성에 관한 고시’에 따라 연간 전체 방영시간 1000분의 3 이상에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을 신규로 편성해야 할 뿐 아니라 ‘교육방송’으로서 어린이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 투자 규모는 후시 녹음 등 현물 투자를 포함해 전체 제작비의 20% 남짓. EBS는 애니메이션 투자를 통해 수익을 분배받고 지상파 독점 방영권을 얻는다.
한편 SK브로드밴드 등 IPTV 사업자는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면서 VOD 독점 방영권을 확보한다. 최근 SK브로드밴드는 “로보카 폴리와 뽀로로는 ‘BTV’에서만 볼 수 있다”며 VOD 독점 방영권을 앞세워 광고했다. 물론 ‘꼬마버스 타요’와 같이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제작사(아이코닉스)와 EBS의 공동투자만으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도 있지만, 뽀로로, 로보카 폴리, 부릉!부릉!브루미즈, 놀이터 구조대 뽀잉, 발루뽀, 미앤마이로봇 등 요즘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애니메이션 대다수가 EBS와 SK브로드밴드의 공동 투자를 받은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EBS, SK브로드밴드의 삼각편대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신용섭 EBS 사장은 애니메이션 담당자들에게 “향후 EBS가 투자하는 애니메이션의 국내 VOD 배급권을 확보하라”는 내용의 정책을 전달했다. 즉 EBS가 투자한 모든 애니메이션을 SK브로드밴드와 KT올레 TV, LG유플러스 TV 등 모든 IPTV 내 EBS관에서 시청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
담당자들은 “제작사에서 SK브로드밴드의 투자를 받은 경우 VOD 독점 방영권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계약했기 때문에 이를 EBS가 막을 수 없다”며 “EBS가 VOD 배급권을 확보하는 정책을 정하면 제작사들이 향후 IPTV 사업자의 투자를 받지 못해 애니메이션 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전달했으나 EBS의 정책은 수정되지 않았다.
1년째 투자 유보
EBS의 정책을 전해들은 제작사들은 반발했고 지난해 8월 30일 신용섭 EBS 사장과 제작사 간 간담회가 열렸다. 이 간담회에서 신 사장은 “EBS 애니메이션 시청률이 작년대비 2~3% 떨어져 어려움이 많다. EBS는 지상파 방영권 외 권한이 없기 때문에 IPTV와 유튜브 등에 설치된 EBS 콘텐츠 전용관에 EBS가 투자한 작품을 공급할 수 없다”며 “앞으로 EBS가 투자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비독점 VOD 방영권’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비독점 VOD 방영권이란 모든 IPTV에 VOD를 제공할 수 있는 권리로, 4월 ‘VOD 배급권’ 자체를 갖겠다는 전략에서는 일보 후퇴한 것이지만 여전히 IPTV 사업자의 투자를 막는 정책이다.
신 사장은 “EBS에서 방영한 콘텐츠는 IPTV의 EBS관에서 봐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며 “시즌1에 투자했다고 시즌2 투자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시즌1의 시청률과 작품성에 따라 투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제작된 애니메이션 시즌1이 특정 IPTV의 VOD 독점 방영을 인정했더라도, 시즌 2는 시즌1과 달리 IPTV의 VOD 독점 방영권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새롭게 계약을 맺겠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제작사들이 반발하자 신 사장은 “EBS가 무조건 VOD 배급권을 갖겠다는 것은 아니고 업계와 상의해서 상생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실제 EBS는 2013년 한 해 동안 특정 IPTV의 VOD 독점 방영권을 인정한 업체와 계약을 진행하지 않았다. ‘브루미즈 시즌3’의 경우 2013년 1월 제작사가 EBS에 제작 계획을 알렸으나 EBS는 아직까지 투자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EBS는 “VOD 독점 방영권을 풀지 않으면 투자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한다. 말레이시아와 공동 제작한 애니메이션 ‘뽀잉 시즌2’ 역시 SK브로드밴드의 VOD 독점 방영권을 이유로 후속시즌 투자 결정이 보류됐다. 해당 애니메이션 제작사 임원은 답답한 속내를 비쳤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통상 시즌1의 계약조건이 후속 시즌에도 연결된다. 이전 시즌에서 SK브로드밴드와 VOD 방영권 계약을 맺었는데, 다음 시즌에서 제공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에게 계약을 위반하라는 것과 같다. 계약을 위반하면 중요한 투자처인 SK브로드밴드를 잃게 되는데 EBS는 무조건 ‘풀고 와라’ ‘해결하고 와라’면서 투자를 안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시즌제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은 최소 시즌2까지 제작하는 것이 관행이다. 애니메이션 평균 제작기간이 2년 이상 걸리고 제작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파급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부르미즈’ ‘뽀잉’ 등의 후속시즌이 제작되지 않는다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IPTV 투자 안 받은 업체에 투자
지난해 9월 EBS는 ‘하반기 글로벌 애니메이션 공동제작 프로젝트 공모’를 실시했다. 기존에는 제작사가 EBS 담당자에게 상시적으로 제안서를 내면 EBS가 이를 검토해 투자를 결정했다. 이런 관행을 깨고 이례적으로 공모를 한 것. EBS는 권리관계에 대해, 선정된 애니메이션의 국내 EBS 지상파TV 독점 방송권, EBS PP채널 비독점 방송권 및 자료활용권을 EBS가 보유하고, 멀티 플랫폼 내의 EBS VOD 서비스관 서비스를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즉 특정 IPTV의 VOD 독점 방영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공고에는 ‘추후 협상 가능’이라고 명시했지만 실제 선정된 4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모두 ‘모든 IPTV의 EBS관에서 상영하는 조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4개 제작사 중 SK브로드밴드 등 IPTV 사업자의 투자를 받은 곳은 한 곳도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작사들은 “향후 EBS에서 방영되고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IPTV 사업자의 투자를 받으면 안된다”고 우려한다. 워낙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처가 적은 상황에서 VOD 독점 방영권을 확보하지 못한 IPTV 사업자가 투자를 중단하면 애니메이션 시장 자체가 휘청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자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을 방송하는 지상파인데다 어린이, 학부모의 지지를 받는 교육방송 EBS의 투자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IPTV 등 다양한 시청각 플랫폼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IPTV 사업자의 투자를 차단하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식의 EBS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EBS가 ‘최초로 공동제작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홍보한 ‘두다다쿵’이 첫 방영됐다. 두다다쿵은 광주 지역의 소규모 제작사 아이스크림스튜디오와 EBS가 공동 기획,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EBS가 45%를 투자하고 아이스크림스튜디오가 30%, LG유플러스가 일부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대적인 홍보행사를 벌이는 EBS를 두고 애니메이션 사업자들은 “그간 EBS는 대부분 애니메이션에 투자할 때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왔으므로 모든 작품이 ‘공동제작’이었다. 기존 20%대의 투자 비율을 45%로 높였을 뿐인데 이례적으로 크게 홍보한다”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사업대행사에 25% 선취 수수료
뽀롱뽀롱 뽀로로, 부릉!부릉!브루미즈, 로보카 폴리.(각)
그런데 ‘두다다쿵’의 사업권은 제작사가 아닌 라이선싱 대행사 온앤프로가 가졌다. 사업권을 위임받은 온앤프로는 공연 및 체험전 테마파크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다. 온앤프로는 위임받은 사업권 중 완구 관련 사업을 ‘아가월드’에 위탁했다. 계약 과정에서 온앤프로는 통상보다 5% 많은 25%의 사업주관 수수료를 선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EBS가 사업권을 확보한 후 ‘하청’에 ‘재하청’을 줬을 뿐더러 선취수수료도 5%나 더 줬다”며 특혜 논란이 있다.
한편 두다다쿵 사례를 보며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은 크게 긴장했다. 먼저 사업권을 제작사에 위임하지 않고 EBS가 외부 업체에 하청을 준 선례를 남기면서 향후 계약에서도 EBS가 사업권을 요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하반기 공모와 관련해서도 업계에는 “향후 사업권은 EBS가 갖거나 관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한 애니메이션 관계자는 “이윤의 20% 남짓인 사업주관 수수료가 언뜻 보면 작은 수입일 수 있지만 대부분 영세한 제작사에는 중요한 운영비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이상 캐릭터를 만든 제작사가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가장 많기 때문에 사업도 가장 잘한다. 수익을 올려 EBS가 더 많은 배당을 받기 위해서라도 제작사가 사업을 맡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올해 EBS는 10년 간 진행했던 ‘애니 프론티어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애니 프론티어’란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과 EBS가 신규 애니메이션을 공모한 후 각 5억 원씩, 10억 원을 투자하는 국내 최대의 애니메이션 지원 프로젝트. 업계에는 “그간 애니 프론티어를 통해 선정된 작품이 수익에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돈 안 되는 지원은 안 하겠다’는 EBS의 방침이 반영된 조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방송국 수익 다변화 필요”
일련의 사태에 대해 EBS의 해명을 들었다. EBS 측은 지난해 애니메이션 투자를 논의할 때 VOD 배급권을 요구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음은 EBS 유아어린이특임부 부장과의 문답 내용이다.
▼ 애니메이션 투자를 결정할 때 VOD 배급권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BS는 국내 지상파 중 거의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을 지속적으로 방송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모험과 상상의 세계를 열어줬다. 최근 시청 패턴이 변화해 공중파를 통한 본방송보다 IPTV 등을 통한 VOD 시청이 늘어나면서 EBS의 시청률이 떨어졌다. EBS는 수익다변화를 위해 모든 IPTV에서 VOD를 상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그간 제작사가 IPTV 사업자의 투자를 받는 대신 VOD 독점 방영권을 제공한 것은 일종의 ‘독소조항’이므로 이번 기회에 시정하려 한다. 현재 EBS는 투자한 작품에 대한 아무 권리가 없다.”
▼ EBS와 IPTV 사업자가 유사한 비율로 투자해서 각각 지상파와 IPTV에서 독점 방영권을 갖는 것인데 왜 독소조항인가?
“공영방송이 투자하고 방송한 EBS의 프로그램을 모든 IPTV 시청자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EBS의 원칙이다.”
▼ EBS가 투자한 애니메이션은 EBS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공동 저작권자의 공동 소유물 아닌가?
“그렇다고 EBS가 VOD 독점 방영권을 풀어달라는 요청 자체를 못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일단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요구했다.”
▼ EBS는 투자 비율에 따라 수익을 배당받는데 왜 아무 이익이 없다고 말하나?
“투자는 하지만 권리가 너무 적다. EBS가 해외에서 프로그램을 판매하는데 애니메이션은 우리 것이 아니라서 판매할 수가 없다. EBS가 가진 세계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판매하면 또 다른 한류 아닌가?”
▼ EBS가 VOD배급권까지 소유하기 위해서는 현행 20%대가 아니라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재정적 한계 때문에 투자 비율을 늘리기 쉽지 않다. 일부 작품에 투자를 많이 하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우린 방영권료도 주기 때문에 무조건 투자가 적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 부르미즈, 뽀잉 등 시즌1, 2가 방영된 애니메이션의 후속 시즌 투자 결정은 언제 하나?
“현재 특정 IPTV 독점 조항을 빼는 조건으로 협상 중이다.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인 만큼 기본적으로 시즌2를 제작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언제 결정이 날지 확답은 할 수 없다.”
▼ 결국 EBS와 IPTV 사업자 간 힘겨루기 아닌가? EBS가 IPTV 사업자와 협의해야 할 문제인데 왜 힘없는 제작사만 압박하나?
“일단 VOD 독점 방영권은 IPTV 사업자와 제작사의 투자 과정에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제작사에 말한 것이다.”
▼ IPTV 사업자가 투자하지 않으면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고사할 수 있다. 혹시 IPTV 사업자들을 시장에서 내쫓기 위한 것 아닌가?
“EBS가 지난해 하반기 공모한 4편의 애니메이션 모두 IPTV사업자가 아닌 곳에서 투자를 완성했다. 지역 콘텐츠센터, 기업, 민간 투자 등을 받았다. 또한 최근 규모가 커진 제작사가 많기 때문에 EBS와 제작사만의 계약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IPTV 사업자를 투자 시장에서 내쫓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
▼ 애니 프론티어 사업을 폐지한 것은 애니메이션 투자를 줄이려는 의도 아닌가.
“서울 지역에 한정했던 공모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아직 사장에게 보고는 안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구상이 다 있다.”
▼ 두다다쿵의 사업권을 확보했는데 이후에도 사업권을 요구할 것인가?
“사업은 더 잘할 수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 제작사 규모가 너무 작아 사업에 힘 쓸 여력이 없어 라이선싱을 줬다. 향후에도 협의해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는 곳에 사업권을 줄 것이다. EBS 전체에서 애니메이션은 일부분일 뿐이다. 콘텐츠사업부에서 사업할 여력이 없다. 유명 캐릭터인 ‘방귀대장 뿡뿡이’를 통해 EBS가 버는 돈은 지난해 2억 원 수준이다. 향후 사업권을 얻어 제작사를 고사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
‘뽀로로 극장판’ 초대 못 받은 신 사장
EBS와 애니메이션 업계의 갈등 시작점은 어디일까. EBS 안팎의 관계자들은 “이게 다 ‘뽀로로 극장판 사건’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2012년 12월 5일 EBS 사장에 취임한 신 사장은 1981년 기술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체신부,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몸담았다. 신 사장은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정책국 국장,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융합정책실 실장을 거쳐 2011년 3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제2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차관)을 역임했다. 대표적 ‘통신통(通)’인 신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퇴임 두 달을 앞둔 시점에 임명돼 ‘MB의 마지막 낙하산’으로 불린다.
신 사장이 EBS에 취임한 지 갓 한 달이 넘은 2013년 1월 16일, 서울 성동구 CGV에서 3D 애니메이션 영화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 시사회가 열렸다. 뽀로로의 극장판 영화 관련 저작권을 가진 오콘이 중국 자본을 받아 만든 영화였다. EBS, 아이코닉스, SK브로드밴드 등 뽀로로의 원저작권자와는 투자 관계가 없는 작품이었기에 오콘은 원저작권자들을 행사에 초청하지 않았다.
2013년 1월 16일, 서울 성동구 CGV에서 열린 3D 애니메이션 영화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 시사회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당선인이 방문했다.
이후 EBS에 난리가 났다. 신 사장은 “뽀로로는 EBS 것인데 왜 나는 초대받지 못했냐”며 홍보사회공헌부, 애니메이션 정책을 담당하는 글로벌콘텐츠부 부장을 심하게 질책했고 이후 글로벌콘텐츠부장이 인사 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신 사장은 “EBS는 ‘뽀로로’를 방송만 해주고 아무 권리를 못 갖는다. 우리가 방송하고 광고한 작품인데 왜 요구를 못하냐”며 애니메이션 관련 정책을 뒤흔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EBS가 VOD 배급권과 사업권 등을 요구하고 나선 것.
이후 신 사장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며 유아어린이특임부 내 애니메이션부를 신설했다. EBS 역시 “그 사건 때문에 신 사장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건 맞다”고 인정했다. 한편 “뽀로로는 우리 것”이라며 분노했던 신 사장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뽀로로 10주년 기념 행사’에는 개인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현재 EBS는 뽀로로에 대해 저작권의 26%를 가졌다. EBS는 뽀로로 시즌1에 후시녹음 등 현물 투자 방식으로 저작권의 6%를 확보한 이후 지속적으로 투자했고 현재 제작 중인 시즌5에는 현금과 현물을 7대 3으로 투자했다.
‘뽀로로 신화’는 EBS가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방송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EBS도 2003년 뽀로로에 투자하면서 각종 혜택을 받았다. 통상 EBS는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에 편성료와 편당 500만 원 수준의 방영권료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EBS는 뽀로로 시즌1의 제작사에 편성료와 방영권료를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시즌2~5에 대한 편성료와 방영권료만 지급했다. 또한 EBS는 뽀로로 전 시즌에 대해 지적재산권이 소멸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방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즉 “EBS는 뽀로로 방송만 해주고 아무 권리가 없다”는 신 사장의 말은 잘못된 것이다.
한편 EBS가 뽀로로를 통해 얻는 수익은 많다. 뽀로로가 큰 인기를 끌면서 광고단가가 높아졌고, EBS 사업을 통해 수익도 배당받기 때문. EBS 측에 따르면 2013년 애니메이션 관련 수익 39억 원 중 절반이 뽀로로를 통해 얻은 수익이다. 아이코닉스 측은 “뽀로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작사와 EBS, SK브로드밴드 간의 협력과 투자 덕분이었다”며 “뽀로로는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저작권자 모두의 것이며 나아가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신 사장 부임 후 EBS는 내홍을 겪었다. 지난해 4월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를 제작하던 김진혁 PD가 방송 4개월을 앞두고 갑자기 수학교육팀으로 인사조치되면서 사실상 프로그램 제작이 중단됐다. 이후 회사를 나온 김진혁 PD(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공무원 시험에 나오는 사실을 대중의 시각에 맞게 엮는 수준의 다큐멘터리였다”며 “당시 사내에서‘신 사장이 정권의 눈 밖에 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무리해서 한 조치’라는 분석이 우세했다”고 말했다.
“정권 ‘확인’ 받으려 무리한 정책”
이후 EBS감사실은 EBS 다큐프라임 전현직 PD 45명에 대해 외부 강의 등을 이유로 복무감사를 벌였고 20명을 징계조치했다. 김 PD는 “전직 EBS 사장은 PD들의 외부강의를 장려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감사를 벌인 것은 PD들을 길들이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또한 신 사장이 12월 13일 편성위원회에서 의결한 ‘2013년 편성개편안’을 시행결재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수정하면서, 음악프로그램인 ‘EBS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 횟수를 주5일에서 2일로 줄였고 제작PD도 3명에서 2명으로 감축했다. 2004년부터 방송된 ‘공감’은 다양한 음악장르를 경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상파 음악방송이다. EBS 노조는 “신 사장은 ‘공감’의 역할을 모른 채 수익성만을 따지고, 임원진은 ‘공짜 공연을 하려면 협찬을 받아서 하라’고 하는 등 공영방송을 이끄는 대표라고 믿기 어려운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노조는 최근 사측이 합당한 이유 없이 교재가격은 그대로 두고, 총판의 출고가만 대폭 낮춘 것도 지적했다.
11월 5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신 사장의 언행 역시 내부적으로 논란이 됐다. 김기현 새누리당 의원이 지식채널 편향성에 대해 지적하자 신 사장은 “네, 시정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것. 또한 신 사장은 다큐프라임 PD 감사 관련 질문에 “1년에 다큐멘터리 작품 하나를 PD에게 맡긴다. 1년 동안 성실히 제작 수행해야 하는데 남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고 말하는 등 EBS 구성원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EBS 구성원들은 애니메이션 분야 등에서 나타난 EBS의 문제는 교육, 방송에 대한 철학이 없는 ‘통신통’ 인사가 낙하산으로 온 데서 비롯했다고 지적한다. EBS 전 PD는 “신 사장은 교육, 방송,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없다. 이전 정권에서 임명되다보니 끊임없이 이번 정권의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EBS 내부에서는 “그간 교육계 관료, 교수 등 몇 차례 ‘낙하산 사장’이 있었지만 이렇게 조직을 뒤흔든 건 처음”이라는 한탄이 흘러나온다.
박병호 한국콘텐츠진흥원 애니캐릭터산업팀장은 “EBS가 애니메이션 수익 때문에 고민이라면 문제를 공론화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제작사만 압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과제 중 하나가 ‘고성장, 고부가 콘텐츠산업을 통한 창조경제 실현’이다. 현재 EBS의 애니메이션 정책이 애니메이션의 발전과 어린이 교육, EBS 수익, 나아가 국가의 창조경제에 역행하는 것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