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의 한 장면.
흥미롭게도 ‘아저씨’와 ‘황해’를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북한 공작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들은 모두 북한으로부터 모종의 임무를 받지만 결국 충성심을 시험받게 되고 버림받는 상황에 내몰린다. 이외 ‘아저씨’는 전직 대한민국 특수부대 요원이 아내와 자식을 잃은 후에 숨어 산다는 설정이고 ‘황해’는 살인청부를 맡게 된 중국동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묘한 분위기를 공유한다.
‘용의자’의 주인공 지동철(공유 분)은 탈북자 출신 대리운전기사다. 탈북자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고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케이블TV 프로듀서 최경희(유다인 분)를 귀찮아한다. 어느 날 지동철은 자신을 찾아온 해주그룹 회장 박건호(송재호 분)로부터 모종의 부탁을 받는다. 박 회장은 남북회담에 특별한 선물을 가지고 가려는 참이었는데 지동철에게 이광조(김성균 분)라는 사람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넨다. 이광조는 북한에 있을 당시 지동철의 동료 공작원이었다.
이후 박 회장 집을 찾은 지동철은 누군가가 박 회장을 살해했음을 알게 되지만 오히려 살인용의자로 몰려 쫓긴다. 지동철은 박 회장의 안경을 갖고 다니면서 이광조를 찾는다. 박 회장의 안경에 부착된 렌즈엔 중요한 정보가 숨겨져 있다. 한국 정보기관의 김 실장(조성하 분)은 지동철이 뛰어난 북한 공작원 출신임을 알게 된다. 김 실장은 한때 유능한 첩보요원이었으나 홍콩에서 지동철에게 당한 후 낙하산부대 교관으로 좌천된 민 대령(박희순 분)을 불러들인다. 민 대령은 부관 조 대위(조제윤 분)와 함께 예전의 수모를 갚으려 전력을 다해 지동철을 쫓는다.
국가라는 거대한 적
지동철은 자신의 임신한 아내가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으로 오던 중 이광조의 배신으로 죽게 된 사실을 알게 된다. 지동철은 이광조를 찾아 죽이려 한다. 이광조는 한국으로 전향한 후 전직 남파공작원들로 구성된 비밀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광조는 역으로 지동철을 유인해 죽이려 한다. 둘은 격투를 벌인다. 이광조를 미끼로 지동철을 쫓는 민 대령은 최경희가 한때 신문사의 기자였으며 큰 기삿거리를 취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 후 박 회장 살인사건의 배후에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한다.
‘용의자’와 가장 흡사한 할리우드 영화는 ‘본(Bourne) 시리즈’일 것이다. 1화인 ‘본 아이덴티티’는 2002년 제작됐다. 주인공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누군지 모르다가 나중에 미국 정부의 암살 전문요원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쩌면 ‘본 시리즈’는 21세기 액션영화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일 것이다. 한국 영화도 본 시리즈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몇몇 영화전문가는 10여 년 전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외관과 점점 닮아가는 것을 두고 “카피우드(copywood·복제를 뜻하는 copy와 미국 영화를 뜻하는 hollywood의 합성어)”라고 냉소했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007 시리즈’의 ‘카지노 로얄’(2006)도 액션 스타일에서 ‘본 시리즈’를 차용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 영화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해 보이기도 하다.
‘본 시리즈’와 ‘007 시리즈’는 공작원이 등장하는 액션영화라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국가와 개인을 보는 시각에선 확연히 갈린다.
영국 정보부 소속인 007의 제임스 본드는 때때로 상사와 부딪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영제국의 세계 패권을 수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공무원이다. 서구 세계의 전통적이고 신화적인 영웅상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제이슨 본은 자신의 조국인 미국이 더러운 공작을 저지르고 자신마저 죽이려 하는 데에 맞서는, 국가에 의해 버려진 이방인이다. 국가에 의해 말살당하는 개인성을 지키려 한다는 점에서 미국식 개인주의를 담아낸다.
지동철을 비롯한 201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영웅들은 자신의 생명과 사적인 영역을 지키기 위해 국가나 거대 조직과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제임스 본드보다는 제이슨 본을 더 닮아 있다.
동시에 지동철은 제이슨 본과도 차별화된다. 본은 개인으로서의 자기를 되찾으려는 소극적 목표만을 설정한다. 반면, 지동철은 이런 목표에 더해 자기 아내를 죽인 원수를 갚고 딸을 되찾으려는 적극적 목표를 갖고 있다. 지동철은 남편이자 가장으로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려고 하나 국가와 국제정치가 훼방을 놓았다. 그러자 한 개인이 이러한 거대한 적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나선 것이다.
관료 엘리트의 탐욕과 권력쟁탈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가장의 얘기는 2010년대 한국 액션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성이다. 나아가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괴물’(봉준호, 2006)도 괴물에게 유괴된 막내 현서(고아성 분)를 되찾으려는 가족의 이야기이고,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2004)도 전쟁터에서 동생 이진석(원빈 분)을 보호하려는 형 이진태(장동건 분)의 이야기다.
지동철에겐 두 개의 남성상이 내재한다. 하나는 가족을 위해 분투하는 영웅적 남성상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각종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소시민적 남성상이다. 이는 가족에 헌신하지만 현실에선 끊임없이 좌절을 겪는 오늘날의 한국 중년 남성의 내면을 반영한다. 따라서 지동철이 비록 탈북자 내지 전직 북한 공작원이라는 이질적 신분임에도 관객은 지동철에 동정을 보내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죄 없는 지동철 가족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을까? 국가가 이런 행위를 하는 동기는 국가의 이율배반적 속성에 기인한다. “국가에선 마땅히 법과 정의의 구현이 최우선해야 하지만 실제에선 국가를 움직이는 관료 엘리트들 간의 탐욕과 권력쟁탈이 최우선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베를린’과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주인공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근본적 이유는 북한 정권 내부의 권력쟁탈로 주인공들을 지휘하는 세력이 실각했기 때문이다. ‘용의자’에서 한국 정부의 김 실장은 박 회장 측이 비밀리에 진행한 실험결과물이 생화학무기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국제 무기상에게 팔아 사욕을 챙기려 한다.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때의 북한 실력자와 한국의 김 실장은 과연 국가를 대표하는가, 아니면 공직자 개인일 뿐인가. 보기에 따라 전자일 수도 있고 후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정치와 이념보다 우선
김 실장에 대비되는 존재는 민 대령이다. 김 실장은 탐욕스럽고 권력지향적이지만 민 대령은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지동철이 홍콩에서 민 대령을 놓아준 것은 민 대령의 지갑에 든 가족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민 대령 역시 나중에 최경희 기자의 파일을 보고 지동철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후 김 실장으로부터 지동철을 보호하고 지동철의 복수를 돕는다. 지동철과 민 대령은 이렇게 적대적 관계에 있음에도 가장으로서의 동질감 때문에 서로 공감한다. 가족이 정치와 이념보다 우선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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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액션영화는 ‘버림받은 영웅’에 ‘조력자’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베를린’의 정진수(한석규 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서수혁(김성균 분)이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이다. 이들은 조력자로서 남북한의 화해 가능성을 담아내기도 한다.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영웅이라는 설정은 ‘간첩 리철진’(장진, 1999)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간첩 리철진’은 코믹한 전개와 비극적 결말이 충돌해 실패작이 됐다. 10여 년 뒤 나타나는 요즘의 스파이 액션영화는 ‘조력자’를 설정함으로써 이런 충돌을 피한다. 그만큼 한국 액션영화의 인물 설정이 진화한 것이고, 이런 진화는 남북이 그간 삐걱대면서도 꾸준히 교류해온 점이 영화에 반영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