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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록 등과 구별하려 ‘클래식 음악’ 쓰기 시작
이름은 구분하고 구별해야 할 대상이 있을 때 붙여진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의미의 ‘클래식 음악’이란 용어는 클래식 음악이 아닌 것들이 등장하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서 재즈와 포크, 록 같은 새로운 음악이 생겨나자, 이 음악들과 서양 고전음악을 구별하기 위해서 클래식 음악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이 아닌 ‘고급 음악’이란 뜻도 함축하고 있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란 의미도 품고 있다. 라디오방송에서 이 음악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클래식 음악이란 용어를 사용했고, 음반을 판매하거나 음악을 교육할 때도 이 용어를 사용했다.반복해서 연주하고 감상할 가치가 있는 음악이란 의미로 ‘클래식 음악’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아마도 이렇게 쓰는 것이 문학에서 쓰는 ‘고전’의 의미와 가장 가까울 것이다. 이런 의미의 고전음악은 악보가 인쇄되고, 인쇄된 악보를 해석하는 연주자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바로크 시대 이후, 인쇄된 악보 중에서 작품을 선택해 자기 스타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등장했다. 악보가 축적되면서 연주와 감상의 기술도 함께 축적됐고, 바흐나 헨델,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작곡가의 곡들이 연주회에서 반복해서 연주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인정되고 살아남았다.
천년이 넘는 서양음악사에서 오늘날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극히 소수다.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했고, 하이든의 동생인 미하엘 하이든도 40여 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 시기엔 전 유럽에서 매해 수백 곡의 교향곡이 작곡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클래식 교향곡의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남은 곡은 불과 수십 곡에 불과하다. 낭만 시대엔 연주자의 기교를 자랑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협주곡이 매해 수백 곡 작곡됐다. 이 가운데 아직도 꾸준히 연주되는 곡은 베토벤과 브람스, 멘델스존과 슈만, 시벨리우스와 그리그,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정도다. 모두 합쳐도 30곡이 넘지 않는다. 누가 연주해도 일정 수준의 감동을 보장하거나, 새로 등장하는 연주자들이 새로운 해석에 도전해 보고 싶을 정도의 형식미와 깊이를 갖춘 작품들만 살아남아서 클래식 음악으로 분류된다.
재즈, 녹음·방송 기술과 함께 태어난 음악

RCA Victor의 레코드 레이블 로고. Gettyimage
두 차례 세계대전 중에 발전한 라디오 기술도 재즈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형 방송 네트워크들은 녹음 스튜디오도 소유하고 있어서 라디오를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재즈 연주는 음반으로도 만들어졌다. CBS(Columbia Broadcasting System)는 콜롬비아 레코드를 소유하고 있었고,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는 1929년에 당시 세계 최대의 음반 및 축음기 제조업체였던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Victor Talking Machine Company)를 인수해 RCA Victor를 설립했다. 재즈는 미디어와 함께 태어나서 성장한 ‘미디어아트’였다.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 Gettyimage
이후의 녹음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의 재즈가 어떤 경로로 확산해 녹음 스튜디오와 방송사를 통해 어떻게 진화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1917~1918년에 미시시피강이 바다와 만나는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에서 활동하던 딕시랜드 밴드들이 대도시 뉴욕에서 처음으로 녹음한 곡이 흥행에 성공하자, 뉴올리언스에서 뉴욕과 시카고로 오는 길목에 위치한 버지니아의 리치먼드에 재즈 전문 녹음 스튜디오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결국엔 중서부 최대 도시인 시카고와 뉴저지에 초기의 딕시랜드와 스윙 재즈를 녹음하는 스튜디오들이 자리 잡게 됐다.
초기의 재즈 음악들은 모두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됐다. 완성된 악보를 해석해서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과 재즈는 본질적으로 다른 음악이었다. 연주자들은 클럽과 녹음 스튜디오, 방송국에서 연주했는데 흥겨운 멜로디를 자유롭게 연주하는 집단적인 즉흥연주였다. 다양한 악기가 사용됐지만 특정 악기가 멜로디를 주도하지 않았고 자유로운 감각과 리듬, 연주자들 사이의 호흡이 중요한 음악이었다. 방송국이 있는 시카고가 재즈의 무대가 되면서 집단적 즉흥연주에서 트럼펫이나 클라리넷 같은 독주 악기의 소리가 좀 더 선명하게 녹음되기 시작했다. 비록 마이크도 없이 나팔꽃 모양의 호른 앞에서 하는 연주였지만 방송국의 녹음 전문가들은 독주 악기가 돋보이도록 연주자들의 위치를 조정했을 것이다. 녹음과 방송이 거듭되면서 재즈 연주는 진화했다.

금주법 시대 해가 지면 밀주를 팔았던 비밀 주점 ‘스피크이지(Speakeasy)’. Gettyimage
비밥(Bebob)과 추상표현주의
음주를 금한 금주법 시대(1920~1933)가 되자, 해가 지면 밀주를 파는 비밀 주점인 ‘스피크이지(Speakeasy)’에서 빅밴드가 스윙 재즈를 연주했다. 불법적인 사업이었고 알 카포네 같은 갱스터들이 비밀 주점을 운영했다. 라이브 재즈 음악과 흥겨운 춤, 금지된 술은 잘 어울렸고, 몇몇 조직은 음반 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루이 암스트롱과 듀크 엘링턴, 베니 굿맨과 글렌 밀러의 빅밴드들이 뉴욕의 밤을 장악했다. 재즈 클럽이 있는 할렘으로 가는 기차(A Train)를 타고 흥겨운 리듬이 넘쳐흘렀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고, 이듬해부터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자 빅밴드의 연주자들이 군대에 징집되면서 빅밴드의 전성기는 저물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빅밴드의 시대가 저물고 비밥(Bebob)의 시대가 열렸다. 재즈의 역사에서 가장 강렬하고 매력적인 장면이 시작됐다.
1930년 1월 1일 미국 재즈 음악가 루이 암스트롱, 로이 엘드리지, 콜먼 호킨스, 바니 비가드(왼쪽부터)가 재즈 콘서트에서 함께 연주하고 있다. Gettyimage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Gettyimage
전혀 다른 생각, 하나의 위대한 걸작
1955년 뉴욕에 나타난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같은 음악을 테이프 위에 여러 번 녹음하고, 녹음된 결과물을 잘라서 이어 붙이는 아날로그 녹음 기술을 사용해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했다. 그리고 1959년 같은 도시, 뉴욕 30번가 스튜디오에서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는 글렌 굴드와 같은 기술을 사용해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를 완성했다.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과 캐넌볼 애덜리, 피아니스트 윈튼 켈리, 베이스 연주자 폴 챔버스, 드러머 지미 콥은 스튜디오에 도착해서도 그날 어떤 곡을 연주할지 알지 못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연주자들에게 멜로디 라인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와 즉흥연주에서 사용할 음계 정도만 알려줬고, 리허설 없이 녹음이 시작됐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곡마다 여러 차례 녹음을 반복했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재즈 연주자였던 이들은 즉흥적으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감각적 연주를 이어나갔고, 녹음이 끝난 후에는 아무도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녹음은 3월 2일과 4월 22일, 이틀에 걸쳐서 진행됐다. 편집을 거쳐 그해 8월에 음반이 발매됐다. 이 음반이 유명한 ‘Kind of Blue’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녹음된 연주를 모두 들어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골라냈고 그것들을 이어 붙여 곡을 완성했다.
트럼페터 겸 작곡가 마일스 데이비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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