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남긴 곡들의 아름다움으로 그의 천재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작품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 유럽의 풍경을 보려 하는 것이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더 좋은 방법이다. 18세기 유럽의 풍경을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차르트는 그 시대의 축복 같은 것이었다. 시대의 어둡고 추한 것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정화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카메라의 필터 같다. 가볍고 밝고 순수한 필터.

액자 속 초상화에 담긴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 Gettyimage
모차르트는 아버지, 누나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방문한 도시와 당시 작곡하고 있던 음악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겨 그의 작품으로 유럽의 도시를 연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 프라하의 ‘돈 조반니’, 뮌헨의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 ‘린츠’ 같은 작품이 좋은 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빈은 모차르트에게 빚진 것이 많다. 말년의 비발디가 빈의 허름한 여관에서 이름 없이 죽어갔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가 그곳에서 병들어 가난 속에서 요절한 걸 기억한다면 빈은 오히려 예술가들의 무덤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빈은 모차르트가 남겨놓은 음악을 바탕으로 18세기 이후 베네치아나 파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경쾌하고 사랑스러우며,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조화로운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가 방문하고 머물렀던 도시들을 밝고 유쾌한 도시로 상상하게 해준다. 이 도시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랄 정도로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가 방문한 도시를 아름답게 포장해 주고 있다. 이것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축복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서양 음악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천재 가운데 단 한 명의 천재를 꼽아야 한다면 모차르트는 가장 강력한 후보다.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걸작들을 기준으로 평가해도 그는 최고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작곡가다. 하지만 그가 살고 간 시대와 도시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면, 단순한 천재를 넘어서 갈등과 격동의 시대를 포용했던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모차르트가 보인다. 모차르트는 계몽주의와 혁명이라는 격변의 한복판을 살았다.

오스트리아 빈 부르크가르텐 공원에 있는 모차르트 동상. Gettyimage
시대의 대립을 포용한 위대한 예술가 모차르트
그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과 식민지의 영토를 두고 격돌했던 7년 전쟁이 시작하던 해인 1756년 1월에 태어났다. 이 전쟁으로 영국은 제국으로 가는 길을 열었고, 프로이센은 군사 대국이 됐다.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실추된 권위를 보완하려 했다. 그 결과 빈은 유럽 최고 수준의 문화도시로 성장했고,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계몽사상이 퍼져 나갔다. 바로 이 시기에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함께 유럽의 대도시들을 여행하며 새롭게 개편되는 세계질서를 직접 체험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런던에서는 궁정과 귀족 저택의 공간적 한계를 넘어 대중적으로 발전하는 연주회 문화를 체험했고, 프랑스혁명 전야의 파리에선 오페라가 혁신되는 것을 봤다. 바로크와 로코코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질서와 문명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체험한 모차르트는 도시의 취향이 변하고 있음을 깨닫고, 각 도시의 음악적 특성을 흡수해 고전주의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그의 생애 동안에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우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혁명의 피비린내와 정치적 대립의 날 선 예기(銳氣)를 느끼지 못하는 건 그가 그것들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독립전쟁을 하고 있던 시기, 20대 초반의 모차르트는 파리로 가던 길에 만하임에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마치 전쟁하듯 연주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국가와 도시들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었고 새로운 질서를 따라 만하임에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연주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곳의 악단들은 마치 장군 같은 연주자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장군들의 오케스트라’로 불렸다. 전쟁과 계몽주의가 낳은 생각과 취향의 변화는 음악에서 복잡한 장식음들을 제거했고, 청중은 단순하고 명쾌한 주제 선율을 중심으로 현악기와 관악기가 일사불란한 소리를 내는 것을 선호하고 있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작가 괴테의 초상화. Gettyimage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음악 사조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모차르트의 음악이 세대와 지역의 벽을 넘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8세기의 대립적 가치들을 통합해 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구조와 형식에서 조화와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고전주의와, 개인과 감정의 해방을 중시하는 질풍노도 양식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이 중에서 고전주의 음악은 소나타와 같은 질서 정연한 형식을 탄생시켰고, 질풍노도 양식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과 공포 같은 격랑을 표현하는 법을 탐구하며 낭만주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음악에서 전혀 다른 사조가 존재했던 것과 유사하게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도 전통과 개혁을 기치로 내세우는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프랑스혁명 이후 이러한 대립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의 한 장면. Gettyimage
극단 포용한 모차르트 음악의 힘, 균형과 조화
모차르트의 위대함은 이 양 극단을 모두 포용했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해인 1788년에 작곡한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C장조의 ‘주피터’는 엄격한 대위법과 완벽한 균형을 가진 형식미의 결정체다. 모차르트는 이 교향곡에서 보수적인 음악 구조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같은 해 작곡한 40번 g단조 교향곡에선 넘쳐나는 불안과 격정, 비극적 정서를 표현하면서 곧 다가올 혁명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모차르트의 위대함은 오페라에서도 나타난다.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은 하인인 피가로와 결혼하기로 한 하녀 수잔나와 잠자리를 갖는, 전통적 귀족의 권리를 행사하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는 백작부인과 수잔나, 피가로에 의해 그 욕심은 좌절된다. 봉건 귀족에게 대항하는 하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오페라는 진보적 시민의 이상을 대변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균형 잡힌 고전주의적 앙상블과 빈의 세련된 음악 형식 속에 담겨 있다.모차르트는 사망하던 해인 1791년 가을에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를 완성했다. 이 오페라에서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계몽주의적 이상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음악적 서술 방식은 고전적 질서와 균형미를 잃지 않는다. ‘마술피리’는 계몽주의적 이성과 진보적 이념인 평등과 형제애를 다룬 작품인데, 이 작품에서 보수적 질서와 전통을 대변하는 제사장 자라스트로는 격정에 넘쳐 혁명의 전조를 보여주는 밤의 여왕과 대립한다. 이 둘은 각각 이성과 감정, 빛과 어둠을 상징하면서 대립하지만, 오페라의 곳곳엔 유머가 넘치고 아리아는 아름답다.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지만, 결국엔 빛이 어둠을 물리치고 조화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질서와 파격, 이성과 감성이라는 공존하기 힘든 대립항들이 하나의 완성된 미학적 형태로 승화한다. 모차르트는 기존 형식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음악 안에 새로운 감수성과 메시지를 담는 데 성공하는데, 성공 요인은 균형과 조화다. 균형과 조화를 다루는 모차르트의 탁월한 감각이 보수와 진보가 공존할 수 있는 예술적 공통분모를 만들어내고 있다.
베토벤 음악의 초석이 된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 5일, 마지막 작품이 된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예술가들의 무덤이라고 불러야 할 빈에서 사망한 위대한 예술가는 도시 외곽의 공동묘지에 묻혔고, 장례식엔 친한 친구와 몇몇 음악가만 참석했다. 하지만 12월 14일, 체코 프라하의 성당에서 열린 추모식엔 4000명 이상의 인파가 모여 모차르트의 죽음을 애도했다. 모차르트의 축복을 기억하는 유럽의 도시들이 모차르트의 죽음을 애도하자 빈은 갑자기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잃어버린 예술가의 빈자리를 깨달은 빈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회가 급증했고, 빈의 예술 후원자들은 그들이 돌보지 않은 예술가를 뒤늦게 그리워했다.
오스트리아 빈 명품 거리로 통하는 그라벤. Gettyimage
모차르트가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베토벤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유럽 도시들의 다양한 문화적 특성과 시대의 대립을 조화와 균형의 미학 안에서 통합한 모차르트의 음악이 없었다면, 유럽 세계의 음악은 프랑스혁명의 파괴적 힘 앞에서 연약하게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위대한 베토벤조차 후원자를 찾지 못하고 급격히 보수화되던 합스부르크의 수도에서 비발디와 모차르트처럼 쓸쓸히 죽어가는 운명을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
2026년 대한민국에도 모차르트의 축복이 내리길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을 맞는 해에 대한민국과 세계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극한 대립을 겪고 있다. 우리는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위대한 업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념적 대립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대립은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 세대와 지역, 남녀의 대립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정치인도 이 대립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전쟁과 혁명의 시대에 살았던 모차르트지만 그의 음악은 선동적이지 않았고, 한편으로 치우침이 없었다. 대신에 그는 어느 도시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리듬과 선율을 창조해 냈고, 이념과 진영 논리가 아닌 인간의 보편 감정을 가장 이성적 형식 속에 담아냈다. 그의 오페라에선 첨예한 갈등이 단순하게 선악으로 나뉘어 표현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유머와 춤을 사용해서 갈등이 해결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와 각종 행사가 2026년 대한민국 도시 곳곳에서 열릴 것이다. 세계적 연주자와 악단들이 모차르트의 작품을 들고 우리나라를 찾을 것이고, 모차르트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 음반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균형과 조화라는 모차르트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 1970년생
●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 2023년 제1회 대한민국언론인대상 수상
● ‘당신의 밤과 음악’ ‘노래의 날개위에’ ‘명연주 명음반’ 등 KBS클래식 FM에서 다수의 프로그램 제작
● 저서: ‘미디어 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