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호부터 ‘이한음의 뉴스 사이언스(News Science)’ 칼럼을 연재한다. 과학은 국가 발전에 가장 필요한 동력 중 하나다. 지구온난화, 암, 노화 등 인류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개인의 행복한 삶을 담보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뉴스’에서 ‘과학의 핵심이론’을 끌어내어 흥미롭게 설명하려고 한다. 세상사에 대한 과학적 성찰에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이 칼럼이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과학의 대중화는 과학 발전을 이끈다.<편집자 주>
몇몇 남성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발언을 한 당사자의 신상이 낱낱이 파헤쳐졌다. 해당 방송사와 여대생이 관련된 웹사이트가 초토화되는 등 이제는 좀 식상한, 인터넷 공간 특유의 전형적인 일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일부 키 작은 남성은 “화가 난다” “상처를 입었다”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자괴감에 빠졌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발언 당사자를 향해서는 자기 생각을 말할 자유에, 타인의 신체적 특성을 공격할 자유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고 일침을 놓았다.
“180㎝ 이하 남성은 루저”
여대생은 “경솔했다”고 사과했고, 방송사도 제작진을 교체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선천적인 신체적 차이를 비하하거나 열등한 대상으로 묘사한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면서 징계 조치를 내렸다. 이렇게 이 사건은 ‘루저’라는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며 많은 사람에게 각인됐다.
사이버 여론이 과잉반응을 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수다’라고 이름 붙인 프로그램에서 수다 좀 떨었는데 뭔 난리냐는 것이다. 루저(loser)가 인생의 패배자라는 뜻이 아니라 그저 농담처럼 하는 말이라고 방송 관계자가 해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세태에 공중파 방송도 무책임하게 편승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키가 정말로 그렇게 중요할까? 누가 패배자가 되고 승리자가 되는지를 결정하는 주된 요인일까? 도대체 무엇에 패배했다는 의미일까?
일부 조류는 짝짓기할 때가 되면 ‘우루루 렉(lek)’이라는 뽐내기 경연장에 모인다. 수컷들은 앞 다투어 자기 자랑을 한다. 우승자는 그 자리에 모인 암컷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머지 수컷은 루저다. 자손을 볼 기회조차 차단당한 것이다. 인간도 그런 종이라면, 기준을 정해서 승리자와 패배자를 가린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종의 윤리 규범이 그런 식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종이 아니다.
간디와 베토벤은 키가 작지만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더 중요한 사실은 키 작은 사람은 ‘므두셀라 유전자(Methuselah gene)’라는 장수(長壽) 유전자를 지닐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이다. 그러나 키 작은 사람이 듣기에 기분 나쁜 이야기는 많다. 주변에서 키 큰 남자가 더 인기가 많고 더 당당해 보일 때가 있다. 더 예쁜 애인이나 아내를 얻을 가능성도 더 높아 보인다. 키가 큰 사람이 직장에서 승진 속도도 빠르고 돈도 더 잘 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와 있다.
미국 최고경영자(CEO)의 절반 이상은 키가 183㎝를 넘는다고 한다.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평균키가 더 크다는 통계도 있다. 지도자일수록 주위에 키 큰 사람을 두고 싶어한다는 말도 떠돈다. 믿든 말든 박정희 대통령도 그랬다고 하지 않던가. 키가 작은 사람이 노인성 치매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키와 대통령선거 ‘연관 있다’
키는 정치적 지위와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정치인의 키야 발표할 때마다 달라지는 경향이 있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보다 키가 컸던 것은 확실하다. 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대선 때 경쟁자였던 이회창 후보보다 키가 컸다.
2009년 1월19일 미국 워싱턴의 만찬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오른쪽)와 존 매케인 전 공화당 대선후보가 함께 서 있다.
그럼에도 키를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주된 변수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통계를 이용한 잡담거리에 더 가깝다. 키 대신에 체중, 발 크기, 허리둘레, 시력, 손가락 길이, 이마 넓이 등을 집어넣어 통계 수치를 내봐도 자극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의 배분 문제는 인류의 오랜 숙제였다. 자원의 배분과 키는 관련성이 있을까. 옛날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숲을 벗어나 사바나로 진출했을 때 키가 큰 쪽이 유리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웃자란 풀 너머로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어 먹이를 찾아내거나 다가오는 포식자를 일찍 알아차리는 데 유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보면 큰 키가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생물은 자신에게 제공되는 자원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말이다. 자신의 생존에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자하면, 번식에 쓰일 자원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면 번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생물의 존속에 해가 된다. 번식하지 못하는 생물은 사라진다. 잘 번식하여 많은 자손을 남기는 쪽이 궁극적으로 승리자가 된다. 이때 큰 키는 생물의 존속에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 된다.
인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고추가 더 맵다. 키 큰 벼에는 쭉정이만 달리기 십상이다.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식물은 남보다 더 높이 자라야 유리하다. 그래야 햇빛을 더 많이 받아 광합성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원은 햇빛만이 아니다. 흙에서 얻는 자원도 있고 공기에서 얻는 자원도 있다. 그런 자원 역시 한정되어 있다. 성장하는 데에만 너무 많은 자원을 쓰다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즉 번식에 실패한다.
큰 키는 생존과 번식에 불리?
16세기의 밀은 키가 거의 2m에 달했다. 밀을 베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수확량은 형편없었다. 반면 오늘날의 밀은 사람의 허리에도 닿지 않을 정도다. 키를 줄이고 대신 낟알이 많이 달리도록 끊임없이 품종 개량을 한 덕분이다. 즉 성장에 필요한 자원의 비율을 줄임으로써 번식에 더 많은 자원이 할당되도록 한 것이다. 밀 같은 곡류뿐 아니라 사과, 배, 귤 같은 과일도 비슷한 품종 개량 과정을 거쳤다. 예전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과일을 따야 했지만, 지금의 과일나무는 키가 작다. 대신 과일은 더 많이 열린다.
그렇다면 키와 생존-번식의 반비례 함수관계는 인류에게도 적용될까? 인류의 기원을 다루는 책에서 자주 보이는 그림이 있다. 구부정한 모습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등을 꼿꼿이 편 현대 인류에 이르는 단계적인 진화 모습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키가 점점 더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외적인 종족이 있다. 바로 피그미족이다.
피그미족은 남성이 150㎝, 여성이 135㎝에 불과하다. 다른 종족들은 산업혁명 이후 계속 키가 커왔는데 이들은 그대로다. 왜일까? 영양 부족과 열악한 생활환경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 사는 마사이족은 정반대로 키가 아주 크다. 피그미족은 세계 각지에서 산다. 동남아시아, 호주, 남아메리카에도 피그미족이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연구진은 피그미족의 기대수명이 아주 짧다는 것을 알아냈다. 겨우 16~24세였다. 다른 수렵채집인 부족들은 그보다 10~20년은 더 오래 살았다. 피그미족은 영양부족, 질병 등 갖가지 이유로 일찍 사망했다. 평균 15~16세에 자식을 낳았다. 이들은 성장 속도도 느릴뿐더러 13세 무렵에 성장이 끝난다. 이런 사실은 피그미족이 번식을 위해 성장을 희생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2003년 인도네시아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멸종한 키 작은 인류인 호빗족도 같은 방식으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150년 전보다 10㎝ 커져
그러나 인류를 구성하는 대다수 종족은 키가 계속 커졌다. 산업 국가의 국민은 150년 전보다 평균 키가 10㎝ 커졌다고 한다. 그 짧은 기간에 키를 담당하는 유전자들이 바뀌었을 리는 만무하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혜택이 식량 증산을 불렀고 이것이 양질의 영양섭취로 이어져 키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햄버거와 피자 등 고영양가, 고열량 음식을 마구 먹어대면 계속 성장할까? 꼭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런 음식은 옆으로 자라는 데 더 기여하는 듯하다. 즉 비만자를 양산한다.
미국인의 평균키는 1960년대 초 이래 별 변화가 없다고 한다. 이민자가 아니라 미국에서 대대로 산 사람들을 말한다. 앞으로 미국인들의 키가 더 커질 것 같지도 않다. 이 분야의 연구자인 윌리엄 첨리는 “현재의 유전자 및 환경 수준에서 키가 최대 값에 도달한 것 같다”고 말한다. 즉 성장기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풍족하게 섭취한 덕분에 미국인의 키는 자랄 만큼 다 자랐다는 것이다.
미국인 중에는 키가 작은 사람도 많다. 어린 시절 영양 결핍에 시달리면 키가 덜 자란다. 그러나 키가 작은 미국인 중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성장 환경 외에 키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는 의미다. 바로 유전자다. 거인증은 유전자가 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사춘기에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기면 성장이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거인증’에 걸릴 수 있다. 거인증으로 키가 2m30㎝까지 자란 사람도 있다. 뇌하수체는 여러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그중 성장호르몬도 들어있다. 성장호르몬은 말 그대로 몸을 자라게 하는 호르몬이다. 사춘기에 분비량이 최대가 되었다 그 뒤로 줄어든다. 그런데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기면 이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계속 분비된다.
키와 더 직접적으로 연관된 유전자도 여럿 있다고 추정된다. 티모시 프레일링이라는 영국 과학자는 그중 하나를 찾아냈다. 세포 생장을 조절하는 ‘HMGA2’라는 것인데, 이 유전자의 변이 형태를 지닌 사람은 키가 약 4㎜ 더 자란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유전자를 사람에게 마구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 그 외에도 부작용으로 암에 걸릴 수도 있다.
정상적인 성인 남성의 경우에도 20~30㎝의 키 차이가 난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키가 큰 사람과 키가 작은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집단의 유전적 다양성’ 때문이다. 부모의 유전자들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같은 형제라도 다른 눈, 코, 입을 지니는 것처럼 키도 달라진다.
단백질, 칼슘, 비타민 A와 D
그렇다면 유전자와 환경은 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차오키앙 라이는 유전자가 키를 결정하는 데 기여하는 비율은 60~80%, 영양 공급과 같은 환경이 기여하는 비율이 20~40%라고 한다. 이 비율은 인종 간에 차이가 있다. 백인은 유전자의 기여 비율이 80%에 가깝다. 아시아인은 그보다 낮다. 중국인과 아프리카인은 65%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인의 키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고 한 바 있다. 이 비율에 따르면 백인인 미국 남성은 아무리 잘 먹어도 더 이상 평균키가 상승할 여지는 없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 남성은 유전자 결정요인이 낮으므로, 앞으로 잘 먹을수록 키가 커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20대 초반 한국인의 평균키 통계에 따르면 1979년엔 남성이 167.7㎝, 여성이 155.5㎝였다. 2008년엔 남성 173.4㎝, 여성이 160.4㎝로 커졌다. 30년 사이에 평균키가 남성은 5.7㎝, 여성은 4.9cm가 커진 것이다.
키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영양소는 단백질이다. 그 외에 칼슘 같은 무기 영양염류, 비타민 A, 비타민 D도 중요하다. 사춘기에 이런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면 키 크는 데 도움이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청소년은 단백질과 칼슘을 덜 섭취하는 대신 열량과 나트륨이 많아 비만을 유발하는 식품을 더 많이 먹는다. 더욱이 운동량도 부족하다. 이럴 경우 부모가 물려준 유전적 잠재력은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
키가 크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유전적 잠재력은 지능 등 다른 신체기능에도 영향을 준다. 자아실현과 행복한 삶을 위해선 본인의 유전적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KBS 2TV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의 ‘루저’발언 장면.
그렇다면 지금보다 과학이 더 발전한다면 인간의 외모는 어떻게 될까? 많은 과학자는 ‘원하는 유전자를 지닌 맞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선천적인 유전병을 제거하는 수준을 넘어 유전자를 조작해 키가 크고 재능도 뛰어난 아기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태희의 미모에 장미란의 힘,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지닌 아기를 원한다면 관련된 유전자들을 배아에 넣어서 강화하는 수법이다. 지금처럼 다 자란 뒤 성형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으니 이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전자들을 조작했을 때 이 유전자들이 어떤 식으로 상호 작용할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완벽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면 많은 사람은 유전자 조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갖은 뒷바라지를 마다 않는 현재의 세태와 다르지 않다.
루저 논란이 놓친 ‘진리’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루저 논란은 ‘중요한 과학적 진리’를 놓치고 있다. 생태계든 종이든 대대로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점이다. 다양성이 떨어지는 집단이나 생태계는 환경 교란 같은 충격에 쉽게 무너진다. 생물적 다양성, 유전적 다양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지키고 유지하는 힘이 된다. 또 심한 해를 입었을 때 다시 복원할 힘도 제공한다.
이에 따르면 키가 큰 남성과 키가 작은 남성이 적절한 비율로 공존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과학기술로 조성한 반쯤은 인공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 세계는 풍요를 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환경이 영원히 지속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지구 온난화의 급격한 진행으로 환경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환경이 바뀌면 인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이때 다양성은 큰 장점이 된다.
루저 논란은 180㎝를 기준으로 남성을 양분한다. 이런 이분법에서 ‘종의 다양성’은 설 여지가 없다. 유전적 다양성에 따르면 키 작은 남성들은 루저가 아니다. 인류의 번성에 기여하는 자연스러운 존재다. 그럼에도 루저로 낙인찍히고 만다. 즉, 현재의 루저 논란은, ‘마음속으로는 키 작은 남성을 루저로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겉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실제의 과학적 진리는 ‘마음속으로라도 키 작은 남성을 루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생명은 ‘차이’를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는 근원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얻은 깨달음이다. 인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많은 생물을 멸종시킨 뒤에야 겨우 이 깨달음을 얻었다. 루저 논란은 이 자멸적 획일화를 인류 자신에게까지 적용시키려는 어리석은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