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당장 IRP<개인퇴직연금> 통장 만들고 정기예금에 ‘인내’ 더하라

‘3重 연금’으로 노후 대비?

  • 원재훈│회계사 wjh2000p@hanmail.net

    입력2013-03-20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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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IRP 통장 만들고 정기예금에 ‘인내’ 더하라
    ‘한국은 15세 미만 인구가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해 멕시코, 아이슬란드,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젊은 나라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설립해 세계적인 상품 투자가로 이름을 날린 짐 로저스가 저서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묘사한 글이다.

    1990년대 말 짐 로저스가 본 한국과 달리 우리는 어느덧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대다수가 어떤 대비도 마련해놓지 못했다. 의료기술의 급속한 발달이 ‘100세 시대’를 가져왔으나 반대급부로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됐다. ‘국민연금만 믿어라’던 정부는 노년층 빈곤 방지를 위해 사적 연금시장을 활성화하는 등 여러 보완책을 짜내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기초노령연금을 10만 원으로 할지, 20만 원으로 할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퇴직금 숙려제도’

    2013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2% 정도다. 짐 로저스가 봤던, 젊고 역동적인 한국은 이제 없다. 지금의 40대가 65세가 되는 2030년 즈음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4%가 되고, 지금의 30대가 65세가 되는 2040년 즈음에는 32%가 된다. 과연 그때에도 국가가 노인에게 연금을 챙겨줄 수 있을까. 그리스나 이탈리아처럼 연금 때문에 국가재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현재 직장인은 월급의 9% 정도를 국민연금으로 납입한다. 국민연금을 더 활성화하려면 이 정도로는 안 된다. 더 내야 한다. 하지만 다들 그러긴 싫어한다. 내가 더 낸다고 더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제대로 운용되는지 알 수 없고, 중소기업은 외면한 채 특정 재벌 주식에 투자되고 있다는 ‘음모론’이 거론될 때면 더욱 망설여진다. 정부도 국민연금 이외의 대책을 찾기 시작했고, 2005년에 정부가 들고 나온 노후 대책 카드가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의 시작은 초라했다. 2005년 12월 말 잔고가 겨우 163억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세제 정책과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마케팅 덕분에 2012년 초 기준으로 52조 원에 육박하는 시장이 됐다. 어느덧 공적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3대 연금시장으로 그 규모를 키운 것이다.

    하지만 적게는 두세 번, 많게는 10번까지 직장을 옮기는 요즘 세상에 수십 년간 쌓인 목돈 퇴직금을 받는 사람은 교사, 공무원, 군인 외엔 찾아보기 어렵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받는 몇 개월치 월급 수준의 퇴직금은 생활비로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다. 국민연금에 이어 퇴직금도 우리의 노후를 담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가 꺼내 든 카드가 바로 개인퇴직연금, 즉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이다. 이제는 회사를 그만두면 퇴직금은 보통예금통장이 아니라 개인의 IRP 계좌에 입금된다. 물론 이 돈은 본인이 원하면 인출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일단 노후자금으로 묶어둘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충동적 이혼을 막고자 하는 이혼 숙려제도와 유사한 일종의 ‘퇴직금 숙려제도’라 하겠다. 또 이 통장에 퇴직금을 넣어두면 세율이 5~10%인 퇴직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IRP는 개인연금보다는 확실히 장점이 있기는 하다. 은행이나 보험회사가 판매하는 개인연금은 보험상품이기 때문에 고객이 엄청난 사업비를 지불하게 되어 있다. 많은 이가 개인연금이 소득공제상품이라 세금공제 효과 덕분에 투자수익률이 꽤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험회사가 사업비를 상당히 떼가서 소득공제 효과를 다 까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월 10만 원씩 납입하는 개인연금 상품에 가입한 경우 보험설계사에게 40만 원이 수당으로 지급되고, 보험회사 운용역의 월급과 보험회사 사무실 임차료 등도 모두 가입자가 낸 돈에서 공제된다. 연간 총급여가 3000만 원인 직장인이 개인연금에 연간 400만 원을 붓는다면 24만 원의 세금공제 효과를 얻는데, 이는 보험회사에 사업비로 낸 40만원보다 16만원이나 적은 금액이다. 2년 후(원금 400만 원×2=800만 원) 중도해지한다면 각종 세금을 제외하고 돌려받는 돈은 250만 원에 불과하다.

    또 지금은 개인연금이 절세효과를 가져다 주지만 향후 소득에 대해서는 다시 연금소득이나 기타소득으로 간주돼 세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소득공제형 개인연금 상품은 소득에 대한 적용세율이 38.5% 이상인 억대 연봉의 고소득자에게만 유리한 상품이라 하겠다.

    이에 반해 IRP는 사업비 부담 없이도 연간 400만 원까지 납입한 금액을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퇴직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또 IRP는 향후 연금으로 수령할 때 3~5%가량의 낮은 퇴직소득세율을 적용받고, 운용수익에 대해서도 최저 3%의 세율만 부담하면 된다. 만기 이후 수령하더라도 연금소득으로 간주되어 원칙적으로 5%가 과세된다.

    사업비 없지만 고정수수료 부담

    당장 IRP 통장 만들고 정기예금에 ‘인내’ 더하라
    IRP 제도로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많은 언론에서 다루고 있지만 한 가지 놓치는 게 있다. 올해부터 퇴직소득세가 인상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퇴직소득세의 과세표준 산정방식을 변경해 퇴직소득세를 실질적으로 인상했다. 그 공식이나 절차가 너무 복잡해 언론이 다루지 않은 것 아닌가 싶은데, 일례로 20년간 한 회사에 근무해 1억5000만 원의 퇴직금을 받을 경우 지난해까지 468만 원이던 퇴직소득세는 2013년부터 738만 원으로 인상된다(표 참조).

    어쨌든 당장 회사를 그만둘 계획이 없더라도 미리 IRP 통장을 개설할 것을 권한다. 본인이 퇴직 전에 IRP 금융기관을 지정해놓지 않으면 회사가 지정한 금융기관에 IRP가 개설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IRP는 본인이 상품의 운용을 지정할 수 있는, 자유적립식 펀드와 유사한 개념이다. 물론 펀드의 단점 역시 고스란히 가질 수 있다. 펀드 운용보수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IRP는 일종의 종합펀드라는 점에서 일반 펀드와 다른 면이 있다. 즉, 얼마든 투자상품을 지정할 수 있다. EPS 주가연계 증권부터 주식, 국공채, 회사채, 정기예금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안정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이라면 정기예금 위주로 넣어두면 되고,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이라면 주식 등에 적극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IRP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고정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IRP 계좌에 넣어둔 돈을 대부분 정기예금에 투자한다 하더라도 고정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예금에 가입한 셈인데 수수료라니? 과연 누구를 위한 수수료 산정방식인지 모르겠다. 자칫 퇴직금을 받아 정기예금에 넣어두는 것보다 오히려 못한 결과를 가져올까 두렵다. 다만 고정수수료가 2%로 책정되어 있어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연간 총소득 3000만 원인 경우 IRP 계좌에 연간 400만 원을 납입하면 24만 원의 절세 효과를 얻고, 고정 수수료로 8만 원을 지불해야 하니 투자수익을 제외하고도 16만 원이 이득인 셈이다.

    필자의 지론 중 하나는, 복잡한 금융상품일수록 이면에 보통 ‘플레이어(player)’라고 하는 금융기관들의 수수료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국제 금융회사들은 미국 뉴욕의 맨해튼 땅을 헐값에 팔아넘긴 인디언들을 ‘바보’라고 하지만, 월가의 신화적인 투자가 존 템플턴은 맨해튼을 팔아 받은 돈을 채권에 복리투자만 했더라면 지금 시세로 맨해튼을 되사고도 돈이 남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가장 단순한 투자가 가장 큰 수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퇴직금처럼 작지만 계속 모이는 돈은 더욱 그렇다. 복리투자의 마법이 가장 환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확실한 연금은 복리의 마법을 그대로 부릴 수 있는 안정적인 정기예금 투자나 국채 투자일 것이다. 물론 언제든 중도해지할 수 있고 만기 때 되찾아 곶감 빼먹듯 다른 데 돈을 쓸 수 있다는 게 최대 단점이긴 하다.

    당장 IRP 통장 만들고 정기예금에 ‘인내’ 더하라
    원재훈

    1977년생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한국공인회계사, 미국공인회계사, 세무사

    이촌회계법인 근무

    저서 : ‘월급전쟁’ ‘법인세법실무’


    이제 변경된 퇴직금 제도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퇴직금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아직 부족한 느낌이다. 스스로 여유자금을 모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고소득자가 아니라면 굳이 사업비를 지불하면서 개인연금에 들 필요가 없다. 차라리 인내심을 키우면서 정기예금이나 채권 투자에 눈 돌리는 것이 좋겠다. 여기엔 사업비도, 운용보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국세청이 ‘마지막 문’을 열고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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