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호

北 경제특구 파고들어 평양 무너뜨려라

동아시아-서태평양 Great Game, 한국의 묘수는?

  • 장량(張良)│재중(在中) 외교안보전문가·정치학박사

    입력2013-05-22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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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스판서 ‘Pivot to Asia’ vs ‘中國夢’ 충돌 불가피
    • 한반도가 미-중 거래 대상 안 되게 해야
    • 中은 北의 지정학적 숙적…경협 통해 北 끌어당겨야
    北 경제특구 파고들어 평양 무너뜨려라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이 지난 4월 21일 저녁 특별기편으로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다음날 그는 인민해방군 팡펑후이(房峰輝) 총참모장 등 중국 인사들을 만나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의 미래를 결정지을 ①대만(미-중) ②댜오위다오 혹은 센카쿠열도(중-일) ③북한 핵(한반도) 문제 등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의 핵심 군사안보 이슈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뎀프시 의장의 중국 방문을 전후해 미 국무부 존 케리 장관과 윌리엄 번스 부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그 무렵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각기 중국을 방문했다. 윤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던 시기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미국을 방문해 북핵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 러시아, 대만 등이 미·중의 행보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봤다.

    중국의 5세대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창한 ‘중국몽(中國夢)’과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이 한반도와 그 주변으로 불티를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중 양국은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서 ‘싸울 것은 싸우고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는 자세로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이는 120년 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요충지 한반도와 만주를 놓고 영·미 세력 후원하의 일본과 청(淸)나라, 러시아가 벌였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상기하게 한다.

    체스판 先手 둔 평양

    북한은 2월 12일 한국과 미·중 등 국제사회의 거듭된 반대와 경고에도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일본 총선과 한국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둔 지난해 12월 12일에는 장거리 로켓(탄도미사일) 은하 3호를 성공리에 발사했다. 그 직전인 11월 6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으며, 11월 8일부터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18차 당대회에서는 시진핑이 총서기로 선출됐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북한은 상충된 이해관계를 지닌 미·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가 끝나자마자, 또한 일본 총선과 한국 대통령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외교·안보 공세를 개시했다. 한반도 체스 게임(chess game)에서 선수(先手)를 둔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으로의 권력집중이라는 내부 상황도 고려했겠지만, 미·중뿐 아니라 12·16 총선 후의 일본, 12·19 대선 후의 한국 새 지도부를 계산에 넣고 이런 행보를 보인 듯하다. 북한은 다시 한 번 게임 시점(timing)을 선정하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북한은 2006년 미국 부시 행정부가 자금 세탁을 이유로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하는 등 9·19 공동성명 이행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새벽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태평양을 향해 장거리 탄도미사일 대포동 2호를 발사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한(對韓), 대미(對美)관계가 악화되자 2009년 4월 5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이어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의 대북(對北) 정책이 강경 쪽으로 흐르는 것을 목격하고 ‘안보-경제 교환모델’이 더 이상 정권 생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무렵 북한은 김정일의 건강 이상 문제도 발생해 핵무기를 확보해야만 정권 생존이 가능하다고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된 것 같다.

    2월 12일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 등을 핑계로 한국은 물론, 미국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미국은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 중 F-22 스텔스 전폭기, B-2 스텔스 폭격기, B-52 전략폭격기와 핵추진 잠수함 등 첨단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한편, 이를 통해 한국에 대해서도 섣부른 군사행동을 하지 말 것을 암암리에 요구했다. 미국의 이러한 군사행동은 한반도의 안정을 희구하는 중국의 묵시적 동의를 받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5월 현재까지도 중국 군부를 중심으로 4차 핵실험 강행 가능성이 예측되는 등 북한발 화염이 아직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한미 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강온(强穩)을 오가는 여러 가지 대책에도 불구하고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느끼는 북한은 정권 생존을 위해 더욱 교묘해진 책략을 구사하고 있다. 거의 유일한 동맹국으로 남아 있는 중국이 만류하는데도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에 이어 3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에 대해 한미가 합동군사훈련으로 대응하자 핵전쟁 불사를 부르짖었다. 이는 국제사회를 뒤흔들어 북한이 바라는 형태로 체스판을 짜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모순투성이 북·중관계

    북한을 잘 다루려면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함께 북한 지도부의 생각을 잘 읽어야 한다. 북한은 면적 12만2000㎢, 인구 2400만 명, 국내총생산(GDP) 약 260억 달러(1인당 GDP 약 1100달러)의 약소국이다. 남쪽에는 선진국으로 발전한 동족국가 한국, 서북쪽에는 초대국 중국, 동북쪽에는 강국 러시아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북한 지역에는 조선 왕조가 멸망하고 일제의 통치가 끝난 직후 공산독재체제가 수립됐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모른다. 빈곤은 도를 넘었으며 빈부차이도 극심하다. 김씨 일가의 권력 장악·유지와 통치의 안정을 위해 도입된 개인숭배주의는 교조적인 유교 및 기독교 교리와 결합해 북한을 종교적 독재왕조체제로 변화시켰다.

    극도로 취약해진 북한은 미·중 등 강대국 간 흥정의 희생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과 함께, 한국에 흡수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품고 있다. 북한이 적으로 상정한 나라에는 한국, 미국, 일본 외에 지정학적 숙적 중국도 포함된다. 북한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지만, 직접적인 위협은 한국, 중장기적인 위협은 중국으로부터 올 것으로 보고 있다.

    北 경제특구 파고들어 평양 무너뜨려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3월 11일자 3면에 실린 노농적위군의 훈련 광경.

    반면 중국은 북한을 해양세력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해줄 외곽의 참호 정도로 여긴다. 중국은 또한 해양세력으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지면 북한이 아무리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랴오닝성의 선양(瀋陽), 산둥성의 지난(濟南) 군관구 및 칭다오(靑島)의 북해함대 병력을 동원해 언제든지 일거에 타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현재의 북·중 관계는 ‘국익 불일치 하의 일치’ 내지 ‘전략적 이해관계 불일치하의 일치’라는 모순에 처해 있을 수밖에 없다.

    한편 대만과 동중국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중 간 전략적 이해관계의 불일치는 북한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적대적인 외부환경에 둘러싸인 데다 극도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보통 국가였다면 이미 몇 번을 붕괴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북한은 가을철 영양분 공급이 줄어든 미루나무가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잔가지를 고사시키며 긴 겨울을 견뎌내듯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짜내면서 생존해 가고 있다. 보유한 모든 에너지를 수도 평양과 핵무기, 미사일이라는 전략무기 부문에 집중해 1990년대 초부터 계속돼온 ‘붕괴설’을 딛고 살아남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을 절감한 북한은 핵무장을 통해 안보를 확고히 한 다음에야 경제발전도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최근 북한은 ‘핵무장 후 경제발전’이라는 안보-경제 병진정책을 선언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위협 대상으로 여기는 미국, 한국 등에 대해 핵무장을 통한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핵무기와 미사일을 생존 수단인 동시에 흥정 수단으로도 사용해왔다. 미·중 간 상충되는 전략적 이해관계를 이용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정치·경제적 지원도 받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독립성을 저해한다고 판단해 대중(對中) 의존을 줄이기 위해 미·일에도 접근하고 있다.

    한반도 겨냥한 중국군

    김정일이 미·일과 수교하려 한 것이나 외무성 부상 김계관과 북미국 부국장 최선희가 “북한은 미국과 전략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고 말한 데에는 북한이 처한 지전략적(地戰略的·geo-strategic) 우려가 반영돼 있다. 김계관 부상은 2007년 3월 뉴욕에서 “북·미 관계가 정상화 되면 북한은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최선희 부국장은 2012년 3월 시라큐스 대학 주최 세미나에서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씌워주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핵우산을 씌워주면 핵무기를 개발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강조했다. 북한은 앞으로도 미·중 간의 전략적 길항(拮抗)을 이용해 생존을 유지해가려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 주둔한 미군은 분명히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서태평양 주둔 미군이 없다면 한국은 물론 일본이나 북한도 마음대로 다루려 할 것이다. 그만큼 동아시아-서태평양 주둔 미군은 중국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물론 주일미군은 일본의 재무장 속도를 늦추는 기능도 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미군의 존재는 중국으로 하여금 수도 베이징 외곽의 환발해만과 만주를 지켜주는 참호인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약점에 기대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 언론은 중국군이 지난해 12월 14일 유사시에 대비해 북한과의 국경지대에 최신형 전투기를 배치했으며, 한반도 작전에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지상군 병력 30만 명을 포진시켜 놓았다고 보도했다. 아직도 중국 내부에서는 외부세력의 침공에 맞서 북한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북한의 군사안보적 가치를 높게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 주둔 미군은 동맹국을 지켜주는 역할뿐 아니라 북한 정권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하겠다.

    북한 경제는 일부 군수 분야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붕괴된 것으로 평가된다. 정권 생존을 위해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난 극복을 추진하고 있으나 발전한 동족국가 한국의 존재와 체제의 취약성으로 인해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주저해왔다. 북한은 한국의 우월성을 잘 알고 있으며,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강화할 경우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북한은 한국과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협력을 하는 데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최근의 개성공단 잠정 폐쇄 사태가 보여주듯이 체제 안보에 대한 우려가 생기면 한국과 경제협력을 중단하거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북한이 때로 심술을 부리고 억지 주장을 하더라도 인내하고, 또 인내함으로써 낚시꾼이 물고기를 낚듯이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이 던지는 미끼를 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해가야 한다. 1970~80년대 동독은 서독이 추진한 동방정책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으나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서독의 경제지원이 필요했던 까닭에 서독의 전략에 말려들었고 결국 흡수당하고 말았다.

    북한이 중국에 활용 가치가 있는 이상 북핵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생존과 위신이 걸린 핵무기 등 군사안보 문제를 맨 앞에 내세워서는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그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여러 번 개최되고 강경과 온건을 오가는 국제사회의 다각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북한은 오히려 핵무장 및 미사일 능력과 의지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이른바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했을 정도다. 서로를 위협으로 보고 있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는 덜 민감한 경제가 민감한 정치·안보 부문을 추동해나가게끔 해야 한다. 그리고 만주 개발에 대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중국과의 경제협력 증진을 통해 한국과 만주 사이에 끼어 있는 북한의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게 해야

    한국의 대북 협력 증진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미국의 양해를 확보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남과 북의 접근은 종국엔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 출신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에 따르면 북한 권력 엘리트가 개혁·개방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혁·개방이 체제의 붕괴를 야기하고, 이는 결국 지배층의 특권 상실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할 소지가 큰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정권 유지에 집착하는 북한 지도부의 변화를 기다리지 말고, 그들 스스로 한국에 접근하도록 지속적으로 작용을 가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의 예와 같이 미·북 간 직접거래 등 미국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서방의 한 정보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당국자들이 지난해 8월 극비리에 북한을 방문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공군기가 8월 17일 괌에서 출발, 서해 항로를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면서 “당국자들이 나흘간 평양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해 11월 6일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 협상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베이징의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쏜 지 4개월 만에 당국자가 방북했다는 것은 미국으로선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에 무력도발을 자제할 것을 설득하고,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단행하거나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대선에 미칠 악영향을 감안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북측과 대화의 끈을 유지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이후 3개월 동안 침묵하던 북한은 미국 대선이 끝난 후인 11월 22일경 평양시 병기연구소에서 동창리 기지로 미사일 부품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국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북한을 밖으로 끌어내려면 북한이 정권 안보에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게 할 만한 협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즉, 자기도 모르게 가랑비에 옷이 젖게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주도로 통일을 이루려면 중국이 묵인하고 북한이 알 듯 모를 듯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군사적 수단에 호소해보려는 유혹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비해 육군 현대화와 함께 해·공군력도 강화해야 한다.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북한과 한반도의 장래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렵다.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는 중국이 산소호흡기 구실을 계속하는 한 북한은 생존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북핵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현실, 미·중 양국도 전략적 이해관계의 상충 등으로 인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 인식 아래 동원 가능한 해결책을 구상해야 한다.

    中 팽창, 美 후퇴 대비해야

    北 경제특구 파고들어 평양 무너뜨려라

    지난해 12월 5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베이징에서 인민해방군 제2포병부대의 전국대표대회 대표들과 악수하고 있다. 중국은 북·중 국경에 육군 30만 명을 배치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핵전쟁 불사를 외친 데서 보듯 앞으로도 북한은 박근혜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택하건, 온건책을 택하건 그것이 정권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인지만을 기준으로 행보할 것이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인 북한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외교 공간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북한에는 강석주, 김계관 등 1990년대 초부터 핵무기와 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WMD) 외교를 해온 인사들이 건재하다. 그들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 등을 통해 우선 ‘약한 고리’인 한국을 흔들고, 나아가 미·중·일도 뒤흔드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체스판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짜려 할 것이다. 일본 자민당 정권도 중국의 군비증강과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핑계로 미국의 응원을 받아가면서 군사력 증강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북한이 재래식 군사도발을 감행할 경우에는 비례적, 제한적이되 재반격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반격함으로써 다시는 군사 도발을 게임 수단으로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2018년 세계 제1의 경제대국, 2030년대 초반에는 군사력을 포함한 세계 최강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은 향후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암초가 될 한반도 전쟁의 재발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이 군사도발에 나설 경우 이를 통제하려 들 것이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과 관련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쉐시바오’의 덩위원 부편집장은 2월 28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북한 포기론’을 주장했다. 그만큼 중국은 한반도에서 분쟁이 재발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국은 이러한 중국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한국은 대북 경제협력을 통한 통일을 추구하되 북한의 무력 위협에는 단호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매진하게 해야 한다. 여러 상황과 해결책을 검토해 볼 때 남북 경제협력만이 강대국의 과도한 간섭을 받지 않고 혼란 없이 북한을 흡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판단된다. 북한이 추진 중인 △압록강 하구 △두만강 하구 △예성강 하구 △원산만 등 4개 경제특구라는 점(點)에 틈입(闖入)해 4개 특구를 고속도로와 철도라는 선(線)으로 연결하면 면(面)이 생겨난다. 이를 통해 한국은 중심인 평양을 무너뜨리고, 북한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손자병법이 말하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이다.

    향후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팽창과 미국의 후퇴는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 외교는 팽창하는 중국과 후퇴하는 미국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으면서 불필요한 분쟁에 휩쓸리지 않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자 조선을 이용하려 한 ‘조선책략’의 저자 황준헌과 같이 21세기 초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엮어놓으려는 일본 등 해양세력의 책략도 경계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경제적, 군사적 취약성을 줄여나가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난해 11월 9일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030년까지 2.7%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양과 질 두 측면에서 모두 탈바꿈해야 한다. 질 측면의 변화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경제·사회구조 개혁에 기초한 경제력과 군사력 증강이며, 양 측면의 변화는 통일이다. 다행히 한국에는 면적 12만2000㎢, 인구 2400만 명에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으며 대륙으로 이어주는 교량 노릇을 할, 북한이라는 다른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통합 대상이 있다.

    김춘추가 唐에 했던 것처럼

    최근 미국과 중국은 자국 입장에서의 ‘동아시아-서태평양의 신질서’ 구상을 뜻하는 ‘태평양의 꿈(Pacific Dream)’과 ‘중국의 꿈(中國夢)’을 말하기 시작했다. 두 강대국이 각기 자신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서태평양의 신질서를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도 한반도의 장래를 놓고 미·중 양국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제2의 애치슨라인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중 간 세력전환기라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한 한국은 북한의 움직임만을 보지 말고, 그 너머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미·중·일 등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 현실적인 대응책을 찾아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헬싱키 프로세스를 모방한 제주 프로세스나 전략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국가들이 참여한 6자회담이 참여국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것은 당연했다. 그런 와중에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능력은 꾸준히 제고됐다. 1990년 독일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 총리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이해관계국 모두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7세기 신라의 지도자 김춘추가 당나라에 했던 것 그대로 미국과 소련이라는 핵심 국가만을 상대해 정면으로 돌파해나갔다.

    북한이 수시로 자아내는 안보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상을 타파하고 통일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우리 국민과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다. 1870년 이탈리아, 1871년 독일 통일도 민간 통일운동의 에너지를 흡수한 지도자(카부르, 비스마르크)의 결단과 외교·국방력이 결합돼 가능했다. 피에몬테(이탈리아)와 프로이센(독일)은 복잡한 국내외 정세와 프랑스, 오스트리아라는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강력한 적대 국가들의 방해를 이겨내고 통일을 이뤄냈다.

    한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세계 제국(world empire)’ 미국은 1930년대 이후 경제력과 군사력의 상승·하강 추이에 따라 동아시아-서태평양에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왔다. 미국이 국력이 달려 후퇴하더라도 한국은 살아남아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합의한 대로 2015년 12월 전시작전권을 환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행동범위가 넓어지고, 통일의 길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대북 경제협력정책을 통해 통일을 달성하고, 통일 후 미국의 협조를 받고, 일본과 러시아, 베트남, 인도 등과 협력해나가면서 미래의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 패권국 중국에 맞서 국가 독립과 민족 정체성을 지켜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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