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펙트 장보고’ 뒤엔 대우조선 기술력
- 인도네시아 경쟁에서 원제작사 HDW 이긴 비밀
- 독자 설계 KSS-3 잠수함의 가공할 위력
- 남북한 모두 미사일 탑재 잠수함 만든다
1993년 6월 2일 해군은 한국 최초의 잠수함 ‘장보고함’을 진수했는데, 이 장보고함이 2004년 림팩훈련에서 신화를 만들었다. 항공모함을 비롯한 상대의 모든 군함(15척)과 잠수함(2척)에 가상 어뢰를 명중시키고 자신은 단 한 번도 탐지되지 않은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퍼펙트 장보고’. 그날 이후 한국은 “잠수함 작전을 잘하는 나라”란 소리를 들었다. 한국은 이 잠수함을 9척 갖고 있다.
2번함부터 바로 제작한 한국
장보고함의 원형은 독일 HDW(‘하데베’로 읽는다) 조선소가 만든 209 잠수함. 1,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U-Boot(독어 Untersee Boot를 줄인 것이라 ‘우부트’로 읽는다. 영어로는 Un-dersea Boat)’를 만들어 연합군 해군을 괴롭혔다. HDW는 이 전통을 이어받아 209(600t)라는 작은 잠수함을 만들어 독일 해군에 납품했다. 이어 이를 키운 1200t급 209를 제작해 세계를 두들겼다. 1990년대 초 209는 11개국에 49척이 수출돼 잠수함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잠수함 사업을 시작할 때 국내 최대의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정부는 대우조선을 유일한 잠수함 건조회사로 지정했다. 대우는 정부로부터 장비와 시설에 대한 감가상각비를 지원받아 잠수함 건조 시설을 갖췄다. 잠수함은 주변국 정찰위성에 찍히지 않고 제작해야 하기에 지붕이 있는 도크에서 건조한다. 대우도 ‘유개(有蓋) 도크’를 만들었다.
디젤 잠수함은 보통 5개 섹션으로 나눠 제작한 후 이를 합치는 식으로 건조한다. HDW 측은 1~3번함은 자신들이 건조할 테니 대우는 사람을 보내 기술을 배우고, 4번함부터 HDW가 만들어준 섹션을 가져가 조립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대우는 2번함부터 HDW가 준 설계도를 토대로 HDW가 알려준 장비와 부품을 구입해 바로 섹션을 제작해 조립했다.
대우는 한발 더 나아갔다. HDW가 설계도 없이 그냥 내준 핵심 부품을 분해해 도면을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똑같이 만드는 역설계(re-engineering)를 해낸 것이다. 그때 HDW는 209 분야에서는 따라올 조선소가 없다고 봤는지, 지적재산권 보호기간을 짧게 잡았다. 209 8척을 건조하는 동안 그 기간이 지나갔기에, 대우는 자유롭게 209 복사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2001년 HDW는 209보다 큰 212 잠수함을 만들어 독일 해군에 납품하고, 이를 확대한 수출형 214를 내놓았다. 214는 209보다 오래 잠항하고 더 우수한 소나와 잠망경을 탑재한다. 그해 한국은 HDW와 214의 설계도와 필요한 장비·부품을 받아 1번함부터 바로 섹션을 제작해 조립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것이 바로 2006년 진수를 시작해 4번함까지 나온 ‘손원일급’이다.
이 사업이 시작되자 현대중공업이 참여를 선언했다. 잠수함은 LNG 운반선, 크루즈선과 더불어 가장 건조하기 어려운 함선으로 꼽힌다. 세계적인 조선소로 인정받으려면 이 함선을 건조해야 한다. 당시 현대그룹은 김대중 정부와 사이가 좋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1차 남북정상회담을 하려 방북하기 전인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501마리 소떼를 이끌고 방북하는 이벤트를 허락했다.
대우조선은 김대중 정부 시절 손원일급 잠수함 건조에서 배제됐으나 국산 잠수함 최초 수출이라는 개가를 올리며 복귀, 손원일급 제4번함인 김좌진함을 건조했다. 지난해 8월의 김좌진함 진수식.
스승을 꺾다
잠수함은 사방에서 강한 수압을 받기에 함체를 완벽한 원형(眞圓)으로 만든다. 내구성이 강한 특수강으로 거대한 섹션 5개를 만들고 섹션 안에 각종 부품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5개 섹션을 특수 용접하고 내부 부품도 동시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잠수함을 완성한다.
잠수함은 일정 기간 사용한 후엔 설계수명이 다한 부품 등을 교체하는 ‘창 정비’를 해야 한다. 잠수함은 물속에 잠긴 채 다니기에 군함처럼 사람과 장비를 싣는 큰 출입문이 없다. 수밀(水密)이 되는 해치만 있다. 따라서 창 정비를 할 때는 ‘절단’을 해야 한다.
배 안에는 물건을 싣는 넓은 공간이 있지만, 잠수함에는 승조원 공간을 제외하곤 빈 곳이 없다. 잠수함의 절단면을 보면 토막 친 물고기의 단면처럼 내장(부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대우가 할 일은 창 정비뿐이었다. 처음 대우가 창 정비를 할 때 해군은 ‘물 새는 잠수함’을 만들어놓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없자 마음을 놓았다.
인도네시아는 1985년 우리보다 먼저 209 두 척을 도입했다. 그런데 조선 실력이 달려 창 정비를 HDW에 맡겼다. 창 정비 외에는 할 일이 없던 대우가 접근했다.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뭐니는 머니(money, 돈)’란 점에 착안해 “더 싸게 해주겠다”고 설득한 것.
이것이 성공해 209 한 척을 창 정비해줬는데 인도네시아 해군이 대만족했다. 그리고 또 한 척을 맡기면서 전투 체계를 노르웨이가 개발한 최신형으로 교체해달라고 했다. 창 정비보다 훨씬 어려운 성능 개량을 부탁한 것. 잠수함의 부품 교체는 사람으로 말하면 장기 이식과 같다. 인체는 면역체계의 일종인 ‘자기 인식’ 기능을 갖고 있어, 자기 성질과 다른 장기를 이식하면 강력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잠수함도 비슷하다. 대우는 이를 해결해 완벽한 성능 개량에 성공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대우는 DSME -1400으로 명명한 대우형 209(1400t)를 설계했다. 그때 인도네시아가 잠수함 3척을 도입한다는 공고를 냈다. 대우는 ‘목마른 놈이 샘 파는’ 심정으로 입찰에 도전했다. 경쟁자는 러시아의 킬로급과 HDW의 209였다. 예선에서 킬로가 탈락해 대우와 HDW가 결승을 치렀는데, 엎치락뒤치락하다 대우가 승리했다. ‘머니’가 중요한 구실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대우는 스승을 꺾는 기적을 일군 것이다(1조 2000억 원 규모).
인도네시아는 ‘방산 한류’물꼬를 터줬다. 잠수함에 이어 고등훈련기 도입 사업을 벌여 한국의 T-50을 선택한 것. 이 사업에서도 한국은 러시아와 경쟁했다. 러시아는 낮은 가격의 야크기를 내세웠다. 그런데 야크기가 추락 사고를 내자 인도네시아는 안전성을 이유로 T-50 구입으로 돌아섰다(16대, 4000억 원 규모). 그리고 한국이 싼 가격에 안전한 무기를 만든다고 보고,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도 공동 투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인도네시아는 한국 배우기에 열중한다. 방위사업청의 공무원과 기술자들을 보내 대우가 잠수함을 제대로 만드는지 감독하며,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그중 한 명이 특수선 공장에서 기자가 본 사람이었다. 20여 년 전 HDW가 대우와 한국 해군을 상대로 했던 일을 지금은 대우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하는 셈이다.
한국의 길, 일본의 길
그러는 사이 손원일급 3척을 건조한 현대가 더는 저가 입찰을 못하겠다고 물러섰다. 정부는 인도네시아 성공신화를 만든 대우를 불러들여 4번함부터는 대우와 현대가 번갈아 건조하게 했다. 가격도 현실화했다. 이는 정부가 현대를 잠수함 사업에 참여시킬 때 내건 명분을 실천에 옮긴 것이기도 했다.
일본은 한 조선소가 적의 공격으로 파괴돼도 다른 조선소에서 전략무기인 잠수함을 계속 짓겠다는 전략으로, 미쓰비시와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번갈아가며 잠수함을 만들게 했다. 두 조선소를 유지하려면 물량이 많아야 한다. 일본은 30년인 잠수함의 작전수명을 18년으로 한정해 조기 퇴역시키고, 새 잠수함을 짓는 방법을 택했다. 조기 퇴역한 잠수함은 잘 보관했다가 유사시 다시 꺼내 쓰기로 했다.
한국은 ‘지갑’이 얇아 일본처럼 할 처지가 아니었는데도 김대중 정부는 그 논리를 도입해 현대에 잠수함 건조 기회를 줬다. 그리고 정가보다 20% 싸게 만드는 효과도 거뒀다며 만족해 했다. 그런 현대가 “더 이상 적자 건조는 못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수습에 나선 정부는 나머지 6척을 대우와 현대가 번갈아가며 정가에 가깝게 건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두 회사에 ‘KSS-3’ 또는 ‘장보고-3’으로 불리는 손원일급 다음의 잠수함을 공동 설계하게 했다.
그사이 대우는 2300t급인 DSME-2300을 설계해 세계시장을 두들기고 있었기에 3300t인 KSS-3 설계를 주도했다. 설계 경험이 없는 현대는 보조 역할을 했다. 정부는 1차 손원일 사업에서 배제됐음에도 강력한 추동력으로 세계 시장을 뚫은 대우를 인정해 KSS-3 1, 2번함 건조를 대우에 맡겼다. 최근 상세 설계를 끝낸 대우는 올해 말 한국 해군이 운용할 최초의 국산 잠수함 건조에 들어간다.
KSS-3의 가장 큰 특징은 잠대지(潛對地) 순항미사일을 쏘는 수직발사대 탑재다. 가장 유명한 순항미사일은 토마호크인데, 한국은 이와 유사한 ‘현무-3’를 개발했다. 잠수함용으로 개조한 현무-3 ○발을 쏘는 시설을 이 잠수함에 탑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KSS-3가 실전 배치되면 어느 나라도 한국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공격하면, KSS-3가 그 나라 근해로 접근해 물속에서 미사일을 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관계자들은 KSS-3의 비닉성(秘匿性)을 더 높여야 한다며 핵추진을 거론한다. 핵추진 잠수함은 사람이 견뎌내기만 하면 작전수명 기간인 30년 동안 계속 잠항할 수도 있다. 부상(浮上)하지 않는 잠수함은 탐지하기 어려운데, 미사일까지 쏜다고 하면 상대는 큰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소형 원자로 ‘스마트’를 설계해놓았다. 이를 토대로 잠수함에 싣는 더 작은 원자로를 개발해 후기형 KSS-3에 탑재하자는 논의가 밀도 있게 진행 중이다.
호주와 말레이시아의 실패
계단을 올라가듯 1200→1800→3300t 식으로 잠수함 덩치를 키우며 국산화에 성공한 한국의 선택은 옳았다. 이는 호주 등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이 손원일급 건조에 나서기 직전 호주는 잠수함과 군함 건조를 국산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스웨덴의 코콤스 사에 적잖은 돈을 주고 3000t 잠수함 콜린스의 설계도를 가져와 조립 건조에 들어갔다. 연속으로 6척을 건조하며 기술 자립을 이루기로 한 것이다. 부품을 만들 협력업체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그런데 완성된 콜린스는 큰 소음을 내는 등 기대한 성능을 내지 못했다. 그 탓에 후속사업인 군함 건조 등이 이어지지 못했다. 호주 정치권에서는 콜린스에 대한 투자의 적절성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호주 해군은 불만스러워하면서 콜린스를 운용한다.
말레이시아도 한번에 도약하려 했다. 해군력을 강화하려 프랑스에서 3000t급인 스콜피온 잠수함 2척을 직도입한 것. 그리고 큰돈을 들여 잠수함 운용술을 배워왔는데, 말레이시아 해군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프랑스 해군의 잠수함 장교를 고문관으로 태워 잠수함을 운용하게 됐다.
그러나 한국은 조선산업이 발전한 덕분에 목표한 대로 잠수함을 제작했다. 지금은 더 크고 좋은 잠수함을 국산화하려 한다. 해군은 단 한 번의 교육을 받고 장보고급을 운영했고, ‘퍼펙트 장보고’란 신화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잠수함 분야에서 한국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대상은 일본이다. 일본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기에 작은 잠수함을 건조한 후 무장과 장비를 보강하면서 조금씩 큰 잠수함을 건조해왔다. 일본은 잠수함을 수출한 적이 없기에 그 능력을 아는 나라가 없다. 미군도 잘 모르는 편이다. 이 잠수함으로 일본은 도련(島鍊)정책에 따라 태평양으로 나오는 중국 잠수함을 추적하고, 그 정보를 미 해군에 통보한다.
北, 탄도미사일 잠수함 확보?
중국은 핵보유국이라 핵무기를 싣는 전략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주력했다. 이 잠수함들은 덩치가 큰 데다 소음이 크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또 핵무기는 결정적인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으므로 평상시 작은 위협에는 무용지물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잠대지 순항미사일을 탑재하면서도 소리가 작은 KSS-3와 같은 디젤 잠수함 건조로 돌아섰다.
상어급, 연어급 등 작은 잠수정을 건조해오던 북한도 잠대지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확보하려는 분명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 4국은 상대의 실력은 알지 못한 채 ‘그날’에 대비해 자기 실력을 다듬고 있는 것이다. 이 경쟁에 한국이 뒤지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손원일급 건조에서 버림받았음에도 잠수함 국산화에 이어 수출까지 해내며 참여의 기회를 만들어낸 대우조선의 공이 적지 않다. 대우조선이 만든 ‘방산 한류’의 기류를 증폭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