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있어라, 손들고 있어라”가 정상?
노무현, 진심으로 대하는 인간미가 장점
박근혜, 이춘상 보좌관 유족 챙겼어야
윤석열, 사심 없이 국정 운영 잘하리라 믿어
권송성 아태산업개발 회장은 “은퇴한 후에도 불쌍한 사람을 돕고 나라 발전을 위하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지호영 기자]
광복절을 일주일여 앞둔 8월 7일 ‘신동아’와 만난 권송성(84) 아태산업개발 회장은 “재계에서 은퇴하려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양어머니는 고종황제의 마지막 딸로 알려진 이문용(1900~1987) 여사다. 권 회장은 이 여사의 가르침대로 나라 사랑의 발로에서 나눔 활동에 앞장서 왔다.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을 소리 없이 도왔고, 남북의 평화를 바라며 통일부에 4번에 걸쳐 기탁금을 보냈다. 로또 당첨금뿐 아니라 차고 다니던 금반지와 시계를 팔아 기부한 미담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이유로 각계의 존경을 받으며 지금까지 재계에서 활약을 펼치던 그가 여러 회사의 고문직을 내려놓고 아태산업개발에도 은퇴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기자가 찾았을 때, 40년 가까이 여러 부류의 사람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던 서울 서초구의 개인 사무실은 이미 대부분 짐을 뺀 탓에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방을 빼곡하게 채웠던 상장과 사진 등 그가 수십 년에 걸쳐 이어온 나눔 활동의 증거는 모두 전북 정읍시의 고향집으로 옮긴 뒤였다.
비정상의 정상화 시급한 국회
지금도 정정한데, 은퇴를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떠날 때가 됐기 때문입니다.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야지, 욕심을 부리면 결과적으로 끝이 안 좋습니다.”
이미 많은 걸 비웠는데 피곤해 보입니다.
“잠을 설쳐서 그럴 겁니다. 우리 사회에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돼 도무지 잠이 안 와요. 인터뷰에 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22대 국회가 개원한 날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등 몇몇 의원에게 카카오톡과 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신 것으로 압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22대에서는 당권만 챙기지 말고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해달라, 국회의원과 정부가 서로 협조해 대한민국을 축복받는 나라로 만들어달라, 국회의원이나 정부는 권력자가 아닌 나라의 일꾼이라는 마음으로 본분에 충실해 달라, 국민에게 거짓 없이 신뢰를 얻는 정치인이 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어요. 요즘 국민은 영리하고 정치인보다 뚜렷한 국가관을 갖고 있어요.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서만 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더는 국민을 허수아비 취급하며 정치를 혐오하게 해서는 안 돼요.”
회신이 왔나요.
“아니오. 회신을 바라고 보낸 건 아니에요.”
그럼 왜 보냈나요.
“부족한 국민이지만 지금의 정치 상황을 두고 볼 수만 없었어요. 정치인들이 나라와 국민은 뒷전이고 모든 관심이 당략에만 치우친 것 같아서요. 서울에 올라온 지 34년째인데 늘 어떻게 하면 축복받고 사랑받는 나라가 될지를 최우선에 두고 살았어요. 하물며 일개 국민도 이런 국가관을 갖고 있는데 지금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하기보다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확고한 국가관도 없어 보여요.”
구체적 예시를 든다면요.
“대통령이 엄청나게 잘못하지 않아도 자꾸 탄핵을 언급하는 정치세력이 있어요. 대통령 탄핵이 장난인가요. 국민이 보기에 불편합니다. 정부가 잘할 수 있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걸핏하면 흠집을 내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으면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우리나라가 독립한 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어요. 우리 민족이 한마음으로 뭉쳐 이뤄낸 ‘광복’이에요. 지금 나라와 민족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것만도 마음이 아픈데 여야가 협치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 앞에서 싸우고 헐뜯는 모습만 보이는 게 누구를 위한 일인지 되묻고 싶어요. 정치인의 그런 오만과 위선은 국민을 철저히 무시하기에 나오는 겁니다.”
현재 정치권 갈등이 최고조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국가, 국민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며 양보와 화합에 방점을 두기보다 당리당략과 사심을 우선하는 정치인이 많은 게 문제겠죠. 그러나 그런 정치인을 뽑아주는 국민의 잘못된 선택에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사심 없이 정치할 사람,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할 국회의원이 많아져야 정치 문화가 건강해집니다. 국민의 선택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 말끝에 그는 “자질이 부족한 국회의원이 정말 많다”며 6월 21일 야당 단독으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를 떠올렸다. 이날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10분 퇴장’ 명령을 내리고,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들을 향해 “한 발 들고 두 손 들고 서 있으라 하세요”라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권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목청을 높였다.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나가 있어라, 손들고 있어라’ 하는 게 정상입니까. 사건의 본질을 규명한다는 명분으로 남의 인격을 모독하고 창피를 주고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해병대 예비역들이 데모하고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자기 인격이 중요하면 남의 인격도 중요하게 여기고 존중할 줄 알아야죠.”
인간미 있고 사심 없는 대통령이어야
권송성 아태산업개발 회장이 국보디자인 회장이던 2013년 해병대에 1000만 원을 쾌척해 감사패를 받고 있다. 그는 “나라를 위해, 그리고 은인을 위해서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제가 회갑에 들어온 축의금을 몽땅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보냈어요. ‘우리가 미국의 도움을 받아 잘살고 있으니 우방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라도 보답하고 싶다. 이 돈을 미국에 전달해 사건 피해자들을 위해 써달라’는 편지와 함께요. 이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만리장성 같은 장문의 답장이 왔어요. ‘존경하는 권 선생님’ 하고요.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을 때도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기원하며 1000만 원을 기탁했어요. 당시 제가 아태재단 운영위원이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이후 통일부에 협력기금을 네 번 냈는데 그 덕에 우리나라 국민 대표로 뽑혀 북한을 두 번 갔다 왔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할 때요.”
노무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고 들었어요.
“안동 권씨 가운데 권정달 전 의원이 유명한데 한번은 저한테 ‘우리 권가는 대통령을 만들기가 힘드니 영부인을 만들게 권 회장이 좀 앞장서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무렵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거를 앞두고 있었어요. ‘안동 권씨 단합대회’를 제안했죠. 그 자리에 1500명이 왔는데 그때 권양숙 여사도 딸과 이모, 여동생과 같이 왔어요. (권 여사를) 집안사람들에게 다 인사시키고 오후에 따로 꽃을 보냈어요.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필승하시오’ 하는 메시지를 담아서요. 그랬더니 노무현 당시 대선 후보가 저를 종로구 명륜동 집으로 초대했어요. 이른 아침에 가서 만났는데 말코에 얼굴에서 빛이 나더라고요. ‘당선은 될 것 같은데 말을 좀 아끼시오’ 했더니 웃더라고요.”
노 대통령의 당선을 확신한 근거가 뭔가요.
“선거 기간 택시를 타고 다녀보니 택시 기사 5명 중 3명은 ‘노무현이 됩니다. 젊은이들이 투표하러 많이 갑니다’ 하더라고요. 정몽준과 단일화 합의가 깨진 후 노무현의 지지도가 급상승하기도 했고요. 선거 당일 개표를 할 때 밤 9시까지는 이회창 후보에게 표가 많이 쏠렸는데 이후부터는 노무현 후보가 차츰 분위기를 역전시켰어요. 노무현은 의리가 있는 사람이에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인간미가 가장 큰 장점이죠.”
박근혜 대통령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고 들었어요.
“육영수 여사, 박정희 대통령 모두 실탄을 맞고 돌아가셨잖아요. 남은 3남매를 생각하니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40년 넘게 육 여사 기일마다 그 묘를 참배했습니다. 40년 넘게 한 번도 거르지 않고요. 제가 육영재단 이사를 할 때 양어머니가 생전에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어요. 어머니를 모시고 갔더니 당시 한마음병원 이사장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원장을 불러 진맥을 하게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약을 대줬습니다.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어 두 동생인 박지만, 박근영도 챙기고 선거 때도 무진장 도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한테 제가 세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첫째, 높은 데 있을수록 말을 아끼고 신중해야 한다. 벽돌을 쌓다가 하나가 잘못되면 우수수 무너진다. 둘째, 등잔 밑 가까운 사람을 조심하라. 셋째, 농촌에서 연을 띄울 때도 실을 풀어줄 때, 연이 올라갈 때, 실을 감아줄 때 단계마다 힘 조절이 필요하다. 그러니 그때그때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요. 그런데 사람을 잘못 만나 수모를 겪었죠.”
인간미는 갖췄던가요.
“대통령은 인간미가 있어야 국민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데 인간미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17년간 자신을 보좌하던 이춘상 보좌관이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12년 12월 교통사고로 숨졌어요. 대통령이 된 후 그의 아들과 부인을 청와대에 불러 밥도 주고 위로도 해주는 게 마땅한데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대요. 제가 (이 보좌관의 아들에게) 고등학교 학비를 대줬습니다.”
은퇴 이후 ‘더욱 선하게’ 지향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국민과 국가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사심 없이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잘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국민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 아니에요. 이유가 뭘까요.
“국민이 그분의 깊은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과 알고 지낸 사람들은 (국정 운영을) 사심 없이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을 경험한 시간이 오래되지 않은 사람은 좌파들이 계속 나쁘게 헐뜯으니 색안경을 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의리가 있어서 불의한 짓을 할 성격이 아닙니다. 임기가 앞으로 2년여 남았는데 그 끝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 기대합니다.”
은퇴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갈 계획인가요.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생각하면서 더욱 선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불쌍한 사람을 돕고 나라 발전을 위하는 일에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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