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0년대생으로 국민의힘을 지지해 온 MZ세대 당원이다. 나는 지난해 연말부터 6·3대선까지 일련의 정치 과정에서 보수가 이렇게 된 연유는 20대를 챙기지 못했고, 대통령과 당대표 갈등에서 찾는다.
우리 당의 위기는 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 승리 직후 시작됐다고 본다. 당시 우리는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며 정치의 흐름을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돌려세우는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거 승리 원인을 잘못 해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한 것이다.
당시 당 지도부는 승리에 도취돼 공치사에 급급했다. 왜 이겼는지, 어떻게 이겼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속 가능한 정당이 되기 위해선, 바로 그 ‘왜’와 ‘어떻게’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분명한 흐름이 있었다. 20대 남성의 72%가 우리 당을 지지했고, 30대 남성도 60% 이상이 우리를 지지했다. 심지어 20대 여성의 40%, 30대 여성은 50%가량이 지지를 보냈다. 즉 청년층 전반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여세를 정책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20대 남성 70% 지지’라는 상징성만을 강조하며 ‘이대남 프레임’을 자청했고, 이는 ‘젠더 편가르기’라는 불필요한 갈등을 낳았다. 사실상 20대 여성, 30대 여성 모두 일정 부분 국힘을 지지했음에도 그 지지를 스스로 놓아버린 셈이다. 그 결과 ‘청년 지지’는 곧 ‘이대남 지지’로 축소됐고, 이후 청년 전반으로의 확장은 제한되고 말았다. 정치적 자산을 전략이 아니라 상징으로만 소비한 결과였다.
‘국민 중심 개헌’이라는 희망

2022년 5월 31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장 선거유세에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오세훈 후보와 대화를 하고 있다. 동아DB
이와 함께 대통령과 당대표의 잘못된 관계 설정은 위기의 정점이었다. 조기 대선을 치르게 한 12·3비상계엄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대통령과 당대표 사이의 갈등 또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당시 여당 대표였던 한동훈은 정부와 빚은 갈등을 이성적이고 정무적으로 조율하려 노력했는가. 누가 뭐래도 여당은 여당이다. 정부와 당이 충돌할 수 있지만 최악의 상황이 아닌 이상 정부가 옳은 방향으로 가도록 견제하고 조율하며 지원할 책임이 있다.
당시 야당은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 입법’까지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힘은 제대로 대응하지도, 견제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여당 대표는 대통령과 갈등의 중심에 섰고, 정부를 고립시키고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4·7재보선에서 시작된 위기가 정점에 달하는 시기였고, 당원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당을 지켜봤다.
어차피 과거지사,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희망을 본 측면도 있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김문수 후보가 41% 지지를 받은 건 ‘국민 중심 개헌’이라는 메시지가 유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김문수·이낙연 두 70대 정치인은 기존의 정당 중심 정치를 넘어, 국민 중심 정치로 가는 전환을 시도했다. 나는 그 간절함에 동의했고, 그래서 더욱 선거 승리를 바랐다.
국힘은 이 연대를 이어가는 동시에 당내 민주주의와 내부 견제가 상실된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세워야 한다. 당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내부갈등을 낳는 ‘편가르기’ 정치도 청산해야 한다. 그것이 MZ세대 당원으로서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다.
- 40대 초반, 경기 거주, 당원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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