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테슬라·팔란티어 투자자는 숫자 대신 ‘이것’ 본다

[윤지호의 투자공방] 배당·미래 현금흐름·기업의 서사…다음은?

  • 윤지호 경제평론가

    입력2025-11-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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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자란 불확실에 대응할 ‘자신만의 믿음’ 찾는 여정

    • ‘배당의 시대’ 문 연 동인도회사와 그레이엄

    • “미래에 더 크게 갚겠다”는 말에 열광하는 사람들

    • 약점 없는 방법론 없어…계산법보다 ‘과정’이 중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3월 22일(현지 시각) 미국 필라델피아주에서 열린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레슬링 챔피언십 결승전에 참석했다. 뉴시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3월 22일(현지 시각) 미국 필라델피아주에서 열린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레슬링 챔피언십 결승전에 참석했다. 뉴시스

    인류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믿으며 살아왔다.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비와 천둥번개, 세상을 삼켜버리는 어둠 앞에서 초기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동굴에 몸을 숨긴 채 절대자에게 기도하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신과 소통하는 샤먼을 신성시한 본능은 그렇게 우리의 DNA에 남았다. 그 본능은 주식시장에서 좋지 않은 방식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불안을 자극하며 가스라이팅하고, ‘절대적인 투자 비법’을 설교하는 사이비 예언자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다.

    투자자에게 투자란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갈 자신만의 믿음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인간은 초월적 존재를 믿고 따르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데, 투자자 또한 다르지 않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인류가 신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듯, 변화무쌍한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는 저마다의 믿음을 찾아 헤맸다. 특히 ‘가치(value)’는 대다수 투자자가 믿어온 신이었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신전에서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 신에게 기도했다. 시장이 출렁일 때면 그 믿음은 차트 위의 선처럼 요동쳤지만, 그럼에도 가치는 판단의 근거가 됐으며 탐욕과 두려움을 다스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배당의 시대’ 문 연 동인도회사와 그레이엄

    가치를 향한 여정은 ‘배당’에서 시작됐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위험은 제한하고, 이익은 나눈다”는 기존에 없던 가치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를 믿은 사람들은 신분을 막론하고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뤄졌고, 주주자본주의라는 개념이 태어났다. 이처럼 배당은 단순한 수익의 배분이 아닌, 가치투자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파였고, 한동안 투자의 신전은 이단으로 가득찼다.

    월스트리트는 오랫동안 가치보다 ‘가격’을 숭배했다. 전설적 투자자 제시 리버모어의 일기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은 당시를 생생히 전한다. 욕망의 시대, 벼락부자가 되는 투자 방법을 다룬 책이 연이어 출간됐고, 탐욕은 할리우드의 B급 영화의 인기 주제였다. 곡물 가격과 주가를 흔든 모멘텀 투자자의 선구자 아서 커튼, 공격적 포지션으로 시장을 움직여 “황소 중의 황소”라고 불린 윌리엄 듀랜트 같은 인물들이 월스트리트를 지배했다. 

    워런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은 기업의 장부 가치를 중시했다. 위키피디아 

    워런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은 기업의 장부 가치를 중시했다. 위키피디아 

    혼탁한 시장 한가운데서 워런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이 등장했다. 그는 기업의 장부를 펼쳐 그 안에서 신(가치)의 흔적을 읽었다. 자산이 많고 부채가 적으며, 꾸준히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이 곧 ‘성스러운 종목’이었다. 주가가 장부가보다 싸면, 그것은 신의 선물이었다. 감정이 아닌 숫자를 믿었고,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현금을 사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신앙 체계가 바로 배당할인모형(DDM)이었다. “기업의 가치는 앞으로 받을 배당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합”이라는 것을 믿는 투자자에겐 손에 쥘 수 있는 배당만이 진리로 여겨졌다. 



    투자서 ‘현명한 투자자’의 내용은 책이 발간된 1949년 근방에는 유효했다. 당시 기업들은 제대로 된 재무제표를 공개하지 않았고, 소수의 투자자만이 기업 내부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보가 공평하게 흐르지 않던 시대였던 만큼 재무제표를 읽어내는 능력만으로도 숨겨진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른바 ‘담배꽁초 주식’을 주울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장이 점차 효율적으로 변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그레이엄 자신도 후일 인터뷰에서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는 그런 기회를 찾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미래에 더 크게 갚겠다”는 말에 열광하는 사람들

    오늘날 많은 투자자가 그레이엄의 저서 ‘증권분석’과 ‘현명한 투자자’에서 투자의 비밀을 찾으려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읽지만 그 길이 곧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대다수는 혼란에 빠진다. 그레이엄의 말대로라면 경영진의 능력이나 브랜드 가치처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것보단 이익·배당·장부 가치 등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장은 그가 살던 시대와 다르다. 마치 모세의 십계명처럼, 그의 원칙은 숭고할 수는 있으나 현실과는 점차 멀어졌다. 

    세상은 변했다. 기업들은 배당을 나누기보다 “미래에 더 크게 갚겠다”고 약속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 약속을 믿으면서 믿음의 중심도 바뀌었다. 가치는 ‘현재의 돈’에서 ‘미래의 가능성’으로 이동했다. 세월이 흘렀고, 기술의 발전은 속도를 더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눈앞의 현금보다, 아직 벌지 않은 미래의 현금을 더 신뢰했다. 그렇게 태어난 새로운 교리가 자유현금흐름할인모형(DCF)이다. 

    DCF의 교리는 매혹적이었다. 기업이 매년 창출할 현금을 예측하고, 이를 현재로 끌어와 합산하면 ‘진정한 가치’가 산출된다는 것이다. 배당할인모형이 ‘결과’를 중시했다면, DCF는 ‘과정’을 신성시했다. 이제 투자자는 배당이라는 눈앞의 현금 대신,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현금흐름을 예측하고, 머나먼 미래의 꿈을 현재의 숫자로 환산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교리의 핵심이었다.

    이론적 정합성만 놓고 보면 DCF는 정교한 가치평가 접근법이다. 잉여현금흐름이 풍부한 기업은 증자나 차입 없이도 투자가 가능하고, 그 돈을 직접 주주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현금이 왕”인 셈이다. 미래의 현금흐름을 정확히 예측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적절히 할인해 현재로 가져올 수만 있다면, DCF는 완벽한 가치평가 도구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 의문이 따라붙는다. 할인율과 성장률을 계산하는 정확한 공식이 과연 있을까. 당장 1년 뒤의 현금흐름조차 예측하기 어려운데, 10년 이상을 예측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게다가 미래 현금흐름을 추정하기 위해 설정해야 하는 변수가 많아질수록 오차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매출 성장률이 단 몇 %만 달라져도 결과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끝없는 가정에 사람들은 점점 피로해졌고, 결국 더 단순한 신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주가수익비율(PER)이었다. ‘주가÷주당순이익(EPS)’이라는 간단한 수식을 통해 구할 수 있는데, 이 새로운 신은 놀라울 만큼 간명했고 인간적이었다. PER에 당기순이익을 곱하면 기업의 가치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1000억 원을 벌었고, 시장이 그 이익의 10배를 쳐주겠다고 하니 너의 가치는 1조 원이다”는 식이다. DCF가 ‘예언자의 계산’을 중시한다면, PER은 ‘대중의 감정’에 우선순위를 둔다.

    사실 PER의 개념은 이미 1934년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에 담겨 있었다. 그러나 당시 투자자들은 PER보다 배당을 신성하게 여겼다. 그러던 중 시장의 분위기가 변하며 PER은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주가매출비율(PSR), EV/EBITDA 같은 다양한 멀티플 개념이 등장하며 한계를 보완해 나갔다. 멀티플을 중심으로 하는 측정법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평가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중시한다. 가치평가의 핵심은 ‘절대적 가치 측정’에서 ‘상대적 가치 판단’으로 이동한 것이다. 자연스레 “이 기업이 싸다”는 말은 더는 가치중립적 진리를 담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다른 기업보다 싸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멀티플 역시 ‘상대적 가치’를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편리하지만, 진리를 담기엔 너무 가벼웠다. 가격에 거품이 끼면 PER은 부풀었고, 그 효용성은 쉽게 무너졌다. 그래서 학자들은 다시 새로운 신학을 만들었다. 바로 잔여이익모형(RIM)이다. “장부 이익에, 자본비용을 초과한 만큼의 경제적 이익을 더하라”는 내용이 골자다. 단순한 회계상의 이익이 아니라, 기업이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는지를 평가하려는 시도였다. RIM은 숫자의 냉정함과 인간의 기대를 절묘하게 섞은, 가장 현실적인 타협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완전하진 않았고, 시장은 언제나 그랬듯 또 다른 신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점 없는 방법론 없어…계산법보다 ‘과정’이 중요

    그레이엄의 시대에는 가치가 장부 속 숫자로 존재했고, DCF에는 미래의 현금흐름 속에 있었다. 오늘날 가치는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한다. 가치는 더는 숫자 속에만 갇혀 있지 않으며 기업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크기로 확장되고 있다. ESG, 지속가능성, 브랜드, 신뢰 같은 비가시적 자산이 새로운 형태의 가치로 자리 잡았다. 수익의 총합이 아닌, 기업이 세상에 남긴 ‘흔적의 총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이야기에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하느냐가 시장의 흐름을 결정한다. 숫자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숫자 뒤 ‘서사’가 더 중요해졌다.

    팔란티어에 투자한 이들은 재무제표 외에도 피터 틸 회장의 비전과 자본 배분 능력을 중시한다. Gettyimage 

    팔란티어에 투자한 이들은 재무제표 외에도 피터 틸 회장의 비전과 자본 배분 능력을 중시한다. Gettyimage 

    테슬라의 가치는 전기차 매출이 아닌 ‘미래로 가는 꿈’에서 나오고, 애플의 가치는 아이폰 자체가 아니라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재정의한 서사에서 나온다. 투자자들은 배당보다 이야기와 철학, 변화에 투자한다. 즉 숫자를 넘어선 가치를 좇는다. 테슬라와 팔란티어에 투자한 이들은 단순히 재무제표를 본 것이 아니라, 일론 머스크와 피터 틸의 자본 배분 능력과 비전을 믿었다. 그들이 더 많은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을 열어갈 것이라는 믿음에 투자한 것이다. 정체가 곧 퇴보로 여겨지는 시대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며 구조적 성장을 이어가는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다. 고령화와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은 더는 다가올 미래가 아니다. 이미 우리 앞에 도래한 현실이며, 그 변화에 가장 능숙하게 대응하는 기업이 오늘날 ‘가치의 신전’에서 가장 높은 제단에 오르고 있다.

    숫자와 모델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그러나 그 안에 흐르는 믿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투자자는 평가방법(valuation)을 숭배하기보다 가치(value) 자체를 신뢰해야 한다. 어떤 방법론에도 약점은 있기 마련이다. 평가 방식은 길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기독교의 진정한 믿음이 율법이 아니라 이웃 사랑의 실천에 있듯, 투자의 본질도 특정한 계산법이 아니라 가치를 찾아내려는 노력에 있다. 경제적 해자, 경영진의 자본 배분 능력과 정직성, 산업의 구조적 성장 가능성 등을 두루 살피며,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아보자.

    그렇다면 앞으로 힘을 얻는 가치는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의 해석’일 것이다. 계산보다 공감이, 분석보다 서사가 힘을 갖는 시대다. 가치는 더는 고정된 수식이 아니며, 시장참여자가 함께 만들어내는 믿음을 중시하는 추세다. 가치는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 있고, 살아 있기 때문에 진실하다. 그레이엄이 장부에서 숨겨진 보석을 찾았다면, 오늘의 투자자는 세상 속 이야기와 변화에서 보물을 찾는다. 가치는 언제나 시대의 믿음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가치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신화다. 

    윤지호
    ● 1967년생
    ●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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