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신’ 헬리오스 이름 딴 ‘헬리오시티’
올림포스 신과 전쟁에서 패배한 티탄족 헬리오스
아폴론에게 태양의 신 자리 넘겨줬지만
고대 그리스 민간신앙으로 신화에 계속 등장
가장 높고 중요한 장소 의미하던 ‘아크로폴리스’
한국 주택 브랜드로 부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헬리오시티 아파트 단지. 뉴스1
‘헬리오시티’는 태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헬리오(helio)’와 영어로 도시를 뜻하는 ‘시티(city)’를 결합해 만든 합성어다. 직역하자면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 된다. ‘헬리오시티’는 이집트의 고대도시 ‘헬리오폴리스’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낸 이름일 가능성도 있다. ‘폴리스(polis)’는 그리스어로 ‘도시, 도시국가’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헬리오폴리스’는 결국 ‘헬리오시티’와 똑같은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헬리오’의 어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티탄 신족의 태양신 헬리오스다. 헬리오스는 티탄 12신 중 ‘빛의 신’ 히페리온의 아들로 달의 여신 셀레네 그리고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남매 사이다. 티탄 신족은 올림포스 신족과 벌인 10년 전쟁에서 패한 뒤로 그리스신화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헬리오스는 다르다. 전쟁 후 태양의 신 아폴론에게 태양 마차를 이양했으나 그리스신화의 몇 가지 이야기에 출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태양신 헬리오스에 대한 신앙이 민간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헬리오스 조각상 세워진 로도스섬
그리스신화에서 헬리오스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그의 아내이자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전쟁의 신 아레스와 ‘썸 타고 있다’는 사실을 귀띔해 준다.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딸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당한 사실도 알려준다. 헬리오스의 두 가지 행적은 ‘모든 것을 보는 자’라는 뜻의 ‘판옵테스’라는 별명을 지닌 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높은 하늘에서 태양 마차를 몰며 지상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보는 헬리오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헬리오스는 태양 마차를 허투루 몰다 제우스가 던진 벼락을 맞고 떨어져 죽은 파에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방랑하다 잠시 상륙한 트리나키에섬에서는 소 떼 주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 박물관 지붕 꼭대기에 세워진 헬리오스 청동상. 빈 자연사 박물관
로도스에 헬리오스 거상이 건립된 계기는 로도스를 점령하기 위해 벌어진 이른바 ‘로도스 공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기원전 323년 마케도니아의 정복왕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갑자기 사망하자 휘하 장수들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전쟁을 벌였다. 전쟁은 총 4차례에 걸쳐 20년 넘게 지속됐다. 결국 기원전 301년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 리시마코스, 셀레우코스 등 네 명의 후계자가 동맹을 맺고 세력이 가장 컸던 후계자 안티고노스를 제거한 뒤 마케도니아를 네 개로 분할해 통치했다.
헬리오스 아버지 히페리온도 아파트 브랜드化
안티고노스가 패권을 쥐고 있던 기원전 305년, 로도스는 이집트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프톨레마이오스와 가까워지면서 그의 든든한 동맹국이 됐다. 이에 불안을 느낀 안티고노스는 아들 데메트리오스에게 4만 명의 군사를 주고 로도스를 함락시키라고 명령했다. 데메트리오스는 ‘헬레폴리스’라는 공성 병기까지 동원해 로도스를 공격했다. 하지만 철옹성 로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1년 뒤인 기원전 304년 로도스를 돕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의 원군을 가득 실은 함선이 다가오자 데메트리오스는 부리나케 도망갔다.데메트리오스의 군대가 퇴각하자 로도스인들은 그들이 도망칠 때 버리고 간 군수물자를 처분해 승리를 기념하는 조각품을 하나 만들기로 한다. 그게 바로 헬리오스의 거상이다. 로도스인들은 섬의 수호신 헬리오스 신이 막강한 데메트리오스의 군대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줬다고 굳게 믿었다. 이 거상은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제우스 좌상을 만든 고대 그리스의 천재 조각가 리시포스의 제자 카레스가 기원전 292년에 제작하기 시작했다.
카레스는 로도스섬의 만드라키 항구 입구에 15m 높이의 대리석 기단을 조성했다. 그 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톱니바퀴형 관을 쓰고 키가 33m나 되는 헬리오스 청동 거상을 세우는 작업에 돌입했다. 청동 거상은 12년 만인 기원전 280년에야 비로소 완성됐다. 그 후 거상은 56년 동안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키다가 안타깝게도 기원전 224년 로도스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무너졌다.
헬리오스의 인기는 현대에 와서도 시들지 않고 있다. 다른 신들에 비해 그의 이름을 상표나 로고로 쓰는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수입 판매되고 있는 독일의 보온병 이름이 ‘헬리오스’다. 헬리오스가 태양신이니 헬리오스 보온병 속의 음료수는 쉽게 식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독일 전역에 지점을 둔 대형 병원 그룹의 이름도 ‘헬리오스’다. 이는 아마 헬리오스의 뒤를 이어 올림포스 신족에서 태양을 맡았던 아폴론의 역할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아폴론이 태양신이자 또한 의술의 신이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헬리오스도 티탄 신족에서 의술도 관장했을 것이라고 유추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설명했듯 한국에는 서울 송파구에 헬리오스의 이름을 딴 아파트 ‘헬리오시티’가 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이자 티탄 12신 중 하나로 빛의 신이었던 히페리온의 이름을 딴 아파트도 있다. 그것은 바로 ‘히페리온’의 영어식 이름인 ‘하이페리온’이라는 이름의 서울 양천구 목동의 아파트다. 두 이름 모두 빛이나 태양신의 궁전처럼 볕이 아주 잘 드는 아파트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파르테논 신전. 위키피디아
‘가장 높은’이라는 의미의 ‘아크로’
‘아크로폴리스’는 ‘가장 높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크로스(akros)’와 ‘도시’라는 뜻의 그리스어 ‘폴리스’를 결합해 만든 단어다. 고대 그리스의 거의 모든 도시국가에 아크로폴리스가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에는 원래 유사시 최후의 보루로서 도시국가를 방어할 목적으로 성채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성채는 점점 당대 가장 중요한 시설인 신전으로 바뀌었다.그리스어 ‘아크로스’의 영어식 표기인 ‘애크로(acro)’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주택이나 아파트 브랜드로 쓰인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게 바로 대림산업 계열 건설사 ‘DL E&C’의 아파트 브랜드 ‘ACRO’다. ACRO 홈페이지에서는 브랜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가장 앞선, 절대우위의 독보적인 고급 주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최고 품질의 아파트를 짓고 있다는 말이겠지만, 아파트의 높이도 이름을 따라간다. ‘아크로서울포레스트’ ‘아크로리버파크’ 등 DL E&C가 ‘아크로’ 브랜드로 지은 아파트는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인근 아파트보다 높은 단지가 많다. 또한 ‘아크로’는 고급 주택단지 브랜드로도 쓰인다. ‘아크로리버뷰’ ‘아크로리버하임’ 등이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도시 아크로폴리스가 주는 이미지처럼 인근에서 가장 좋은 주거 단지라는 자부심의 표현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중 당대 가장 유명한 곳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다. 해발 156m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에는 크고 작은 신전 유적이 산재한다. 그중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파르테논 신전이다. 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수호 여신 아테나의 신전이다. 그렇다면 왜 ‘아테나 신전’이라고 하지 않고 ‘파르테논’이라고 했을까. 그건 바로 아테나의 별명 ‘파르테노스(Parthenos)’를 따서 신전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파르테노스’는 그리스어로 ‘처녀’라는 뜻인데 아테나가 사랑을 모르는 처녀 신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래서 ‘파르테논’은 ‘파르테노스’에 ‘집’이라는 뜻의 접미사 ‘-on’이 결합해 만들어진 단어로 ‘처녀의 집’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on’은 라틴어, 혹은 영어에서는 ‘-um’이 된다. 가령 예술의 여신 무사(Musa)의 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무세이온(museion)’은 라틴어에서는 ‘무세움(museum)’, 영어로는 ‘뮤지엄(museum)’이 된다. 우리나라의 ‘리움(Leeum)’ 미술관에 왜 ‘um’이 들어 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될 것이다. 그건 바로 ‘이씨 집안의 미술관’이라는 뜻이다.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는 수모 당하기도 했던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전쟁 때 파괴된 원래의 신전을 당대 권력가 페리클레스의 발주로 천재 건축가 페이디아스가 확장해 재건한 것이다.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치게 해준 전쟁의 신이자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파르테논 신전은 로마제국의 기독교 시기인 6세기에는 성모마리아 교회로, 15세기 오스만제국 점령기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17세기가 되자 파르테논 신전은 오스만제국의 화약 창고로 사용되다가 1687년 ‘아크로폴리스 공방전’ 때 베네치아 함대의 포격을 맞아 무너지고 말았다. 이때 신전 외벽과 내벽을 장식하고 있던 조각품 대부분을 당시 주(駐)콘스탄티노플 영국대사였던 엘긴 경이 1801년 불법으로 가져갔다. 현재 그 조각품들은 ‘엘긴 대리석’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한가운데에는 상아와 금으로 만들어진 ‘아테나 파르테노스’라는 아테나 황금 신상이 안치돼 있었다. ‘아테나 파르테노스’는 ‘처녀신 아테나’라는 뜻이다. 이 신상은 약 11m의 크기다. 신상 제조에 들어간 금만 약 1150㎏에 달한다. 이 신상은 소실되어 미니어처만 남아 있다.

주(駐)콘스탄티노플 영국대사였던 엘긴 경이 1801년 불법으로 가져간 파르테논 신전의 외벽. 현재는 런던 대영박물관에 ‘엘긴의 대리석’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돼 있다. 대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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