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말빚 갚느라 78년 검찰청 해체,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

[쟁점 | 누구를 위한 사법개혁인가] ‘17시간 12분’ 필리버스터 기록 경신한 박수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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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5-10-24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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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혁하려면 국민 피해 덜 가는 방향으로 해야

    • 검찰청 폐지로 ‘검경 핑퐁 문제’ 심화 우려

    • 검찰은 머리, 경찰은 손발 역할해야

    • 정부조직 개편안에 빠진 3가지 관점

    • 저출산·세계 전략·공직자 사기 진작 방안 없어

    • 검찰청 해체·기재부 개편·방미통위 신설 ‘낙제’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 지호영 기자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 지호영 기자

    “정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국민께 알리고 싶었다. 다수 국민 뜻을 받들어야 할 국회가 일부 극성 지지층에 포획돼 그들 요구대로 대화도, 토론도 없이 일방적으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호소하고 싶었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9월 25일 오후 6시 30분부터 다음 날인 26일 오전 11시 42분까지 17시간 12분 동안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추진한 정부조직 개편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KTX로 서울에서 부산을 ‘3번 왕복’하고도 남을 그 긴 시간 동안 박 의원이 주권자 국민에게 전달하려고 한 메시지는 ‘작동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심각성’이었다.

    작동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심각성

    “우리 정치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여럿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정부조직법 개편이다. 정부 조직을 바꾸는 것은 시간을 갖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상임위 토론, 공청회를 통한 전문가 토론 등을 거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처리했어야 옳다.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여야 토론이 어렵다면 최소한 여당 내부에서라도 토론과 소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 여당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된 토론이 있었다는 흔적과 징후를 찾아볼 수 없다. 누구 의지가 어떻게 반영된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속전속결로 밀어붙여 처리됐다. 졸속으로 정부 조직을 바꾸면 나라 운영이 엉망이 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특히 다음 세대가 보게 된다.”

    9월 25일 오후 6시 30분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고 있다. 박 의원은 다음 날 오전 11시 42분까지 17시간 12분동안 필리버스터를 계속했다. 동아DB

    9월 25일 오후 6시 30분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고 있다. 박 의원은 다음 날 오전 11시 42분까지 17시간 12분동안 필리버스터를 계속했다. 동아DB

    이번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 드러난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나.

    “조직개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필터링이 사전에 충분히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게 생략됐다. 누군가 ‘안’을 툭 던져놓으면 다수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위험성은 없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선제적으로 따져 보완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임무다. 그런데 지금처럼 아무런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법안이 통과되면 그 법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지 못할뿐더러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제대로 묻기 어렵다.”



    가장 큰 논란이 됐던 게 ‘검찰청 폐지’다.

    “우선 이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저를 포함한 많은 국민의힘 의원도 검찰개혁에 동의한다. 개혁하더라도 국민에게 피해가 덜 가는 방향으로 하자는 게 내 입장이다. 명의는 환부만 도려내기 때문에 수술 부위가 작다. 그런데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생살까지 건드려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의사는 결코 명의가 아니다.”

    추석 전에 ‘검찰청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은 통과됐지만 정작 법 시행은 1년 뒤로 유예됐다.

    “1차 검찰개혁으로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후, 검찰과 경찰 사이에 수사관할권을 둘러싸고 핑퐁 문제가 발생해 수사 기간이 과거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미제 사건이 급증했고, 결과적으로 힘없는 국민이 피해를 구제받기 더 어려워졌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통계로 이미 입증되고 있다. 진짜 검찰개혁을 하려면 수사관할권 문제로 수사가 장기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보완책을 함께 마련했어야 한다. 그런데 ‘추석 전에 검찰청 폐지를 선물로 드리겠다’는 그 말빚을 갚느라 70년도 더 된 조직을 해체해 버렸다. 

    그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부터 일손을 놓고 있지 않나.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 한 달간 더 논의하자고 필리버스터에서 제안했다. 만약 한 달 만에 합의가 안 되면 원 플러스 원처럼 한 달 더 논의해서 최대 두 달 안에 여야 합의안을 만들어 처리하자고 호소했다. 1년 유예보다 그게 더 부작용을 줄이는 길 아니겠나. 일방적 검찰청 폐지로 검경 핑퐁 문제가 심화할 우려가 있다. 그런 피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지 않는 것은 강성 팬덤과 강성 지지층의 포로가 된 포퓰리즘 정치의 폐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9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국회(정기회) 9차 본회의에서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1948년 8월 정부 수립과 함께 설치된 검찰청은 78년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된다. 뉴스1

    우원식 국회의장이 9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국회(정기회) 9차 본회의에서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1948년 8월 정부 수립과 함께 설치된 검찰청은 78년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된다. 뉴스1

    검찰은 머리, 경찰은 손발 역할 해야

    지금이라도 검찰청 폐지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후속 입법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당연하다. 필리버스터하면서 ‘검찰은 머리 역할을 하고, 경찰은 손발 역할을 하도록 하자’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게 검찰 제도를 발명해 낸 유럽에서 발전시켜 온 논리다.”

    검찰이 ‘머리’ 역할을 맡으면 수사지휘권이 다시 살아나는 것 아닌가.

    “검찰청 폐지로 수사권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경찰로 모두 넘어가게 됐다. 검찰이 직접 수사는 하지 않더라도 지휘는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지휘’라는 명칭이 자존심이나 명예심을 자극한다면 ‘수사 조율권’이나 ‘수사 협의권’ ‘보완 수사 요청권’처럼 수평적 느낌을 주는 단어로 바꾸면 된다. 조율이든, 협의든, 보완 요청이든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기한을 정해 수사를 관리하도록 해야 장기 미제 사건을 줄일 수 있다. 그 같은 보완 방안을 마련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최소 한 달, 필요하면 한 달 더 논의해서 늦어도 연말까지 여야 합의로 결론 낼 수 있는 문제다.”

    검찰청 폐지 외에도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했다.

    “총리실 산하에 기획예산처를 둔 것은 재정을 마구 쓰고 싶어 하는 진보 정권이 쥐락펴락하기 쉽게 만든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예산이 빠져나가면 재정경제부는 중요한 정책 조정 수단 하나를 잃게 되면서 역할 수행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세금, 국고, 개발 협력과 같은 전통적인 수단만으로는 경제 수장으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예산이 줄어든 대신 금융정책 조정 기능이라도 추가됐어야 하는데… 그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실질적 힘이 빠진 상황이다.”

    박 의원은 “경제부처가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발전시킨 개편이 아니라 기능을 조각조각 나눠 작동이 안 되게 힘만 뺀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경제부처가 통치 철학과 맞지 않으면 조직을 조각낼 게 아니라 인사로 해결했어야 한다”며 “통치 철학에 맞는 사람을 장관이나 간부로 앉혀 제대로 역할하도록 했어야 할 문제를 지금처럼 조직을 형해화해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어놓으면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 의원은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 모두가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며 ‘낙제 4건, 퇴장 1건, 채점 거부 3건, 합격 5건, 그리고 관점 부족 3건’이라고 적힌 한 장의 표를 제시했다.

    정부조직 개편안에 빠진 3가지 관점

    검찰청 폐지와 그에 따른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그리고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나눈 것은 ‘낙제’로 평가한 반면, 과기부총리를 신설하고,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통계청을 국가데이터처로 격상한 것과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중소벤처기업부에 소상공인 전담 차관을 신설한 것은 ‘합격’으로 평가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신설한 것은 “사실상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 한 사람을 겨냥한 조직개편이었다”며 ‘퇴장’이란 가장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한 것을 ‘채점 거부’했는데, 그 이유가 뭔가.

    “우리나라 전력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에너지실이 이번에 산자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됐다.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그리고 화력과 LNG발전 등의 발전 비율을 정하는 기능이 규제 기관인 환경부와 합쳐진 것이다. 전력 공급 계획을 수립하는 기능과 환경 규제를 합쳤으니 앞으로 규제 위주로 전력이 공급될 가능성이 높다.”

    박 의원은 “에너지정책을 환경 규제 입장에서 과격하게 바꾸려 하면 에너지 가격, 특히 전기료가 급격하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이미 한국전력공사의 적자가 200조 원이 넘어선 상황에서 기후 온난화와 관련 있는 화석에너지를 급격히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할 경우 전기료 생산 단가가 높아져 전기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화석에너지를 줄여가자는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화석에너지를 급격히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리면 전기 생산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부담할 적정 전기료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충분히 이뤄진 상태에서 에너지정책을 바꿔야 하는데, 그 과정을 또다시 생략한 채 태양광과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설치를 독촉하는 업계 요구에 떠밀려 일방적으로 에너지정책을 바꾸려 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전기 생산 원가가 높아져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할 전기료가 비싸진다.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박 의원은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에 부족한 ‘3가지 관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3가지 관점이 빠져 있다. 첫째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다. 둘째는 미중 패권 갈등과 한미 관세 협상처럼 급변하는 국제질서에 대응할 세계 전략이 누락돼 있다.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공직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방안도 빠져 있다.”

    박 의원이 밤을 꼬박 새워가며 17시간 넘게 호소했지만, 여당 주도 정부조직 개편안은 그가 필리버스터를 마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재석의원 180명, 찬성 176명, 반대 1명, 기권 3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에 반대한 박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했다. 신장식·차규근·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 세 명이 기권했고,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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