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경주 APEC은 미중 무역전쟁 최종 결투의 장

[APEC 특집 | 세계가 경주로 향한다] ‘양보=손실’ 강박관념 탓에 6개월째 협상만 반복

  • 주재우 경희대 교수 jwc@khu.ac.kr

    입력2025-10-2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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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희토류 수출 통제 계획 발표

    • 대미 협상서 유리한 위치 서려는 술책

    • 매 협상 추가 제재로 일관한 美도 문제

    • 양국 이견 좁히지 못한 채 APEC서 결판

    • 韓,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간 ‘닭 쫓던 개’ 신세

    • 美中 대신 외교 대상 다변화로 국익 챙겨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뉴시스

    경주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참가국 외에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APEC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해소의 장이 될 수 있어서다. 올해 6월 10일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유예하며 화해의 씨앗이 보이는 듯했다. 미중 양국은 이후 무역 협상을 두 차례 더 치르면서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양국 정상이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 무역 협상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만약 두 사람이 만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중국이 10월 9일 희토류 수출 통제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런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경주 APEC 회의에서 시 주석과 만날 이유가 없다”며 관세 100% 추가와 반도체 소프트웨어 수출 규제로 즉각 응수했다. 그러나 이튿날 그는 시 주석과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번복하면서 무역 협상 타결의 기대감을 다시 높였다. 미국과 중국이 APEC을 앞두고 갈등을 빚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반 우위 외엔 얻은 바 없는 중국

    6월 9일 영국 런던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왼쪽)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미중 고위급 통상 협상 개시를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6월 9일 영국 런던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왼쪽)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미중 고위급 통상 협상 개시를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일단 두 나라는 무역 협상에서 합의하기 어려워 보인다. 양국이 무역 협상에서 관철하고자 제안한 사안이 극도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의 펜타닐 미국 유입 방지 노력 강화, 중국 시장의 개방 확대, 틱톡의 소유권 이전, 자금세탁 방지 공조와 희토류 무기화 금지 등을 요청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고급 사양 반도체의 중국 수입 규제, 미국의 대중(對中) 기술이전 규제, 중국의 미국 기업 투자 규제 완화와 관세 감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로 전혀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협상은 난항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협상이 어려워지자 이들은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서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관세’라는 무기를 휘두른다면 중국은 희토류를 무기로 삼았다. 

    초반에는 중국이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2일 상호 관세 조치의 일환으로 중국산 수입품에 145% 관세율 책정을 발표했다. 그러자 중국은 같은 달 14일 미국을 겨냥해 희토류 7종에 대한 수출 통제로 미국 기업 16개를 제재 대상으로 규정하며 맞대응했다. 중국의 예상치 못한 희토류 대응에 미국은 무역 협상 테이블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5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첫 무역 협상이 성사된 점이 이의 방증이다.



    협상 결과, 중국은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의 이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이 결정에 화답하듯 미국은 중국에 책정된 고관세 145%를 3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중국 역시 대미 관세율을 125%에서 10%로 감축했다. 양측은 고관세 적용을 90일 유예하는 데도 합의했다.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2차 미중 무역 협상에서 중국은 미국에 자석 등 희토류의 지속적인 제공을 약속했다. 미국은 중국 유학생 비자 발급 재개로 화답했다. 중국이 이득을 본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이 전쟁의 승자는 없다. 두 차례 협상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핵심적으로 관철하고자 한 반도체 제품 수입과 기술 규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자유로운 교역이다. 중국으로선 코로나 유행 이후 침체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선 내수뿐 아니라 해외 수출 시장 활성화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중국 수출품에 대한 고관세뿐 아니라 트럼프 1기 때부터 제정된 일련의 규제 행동 명령과 법안의 완화가 필요하다. 반도체에 대한 접근성 보장도 관건이다. 고사양 반도체뿐 아니라 이의 제조 생산을 위한 기술과 소프트웨어 확보가 핵심이다. 이는 대부분 미국이 쥐고 있다. 지금까지 이뤄진 네 번의 협상 자리에서 미국은 중국의 시장개방 요구를 전혀 들어주지 않고 있다.

    중국은 시간도 부족했다. 10월 20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가 개최됐는데, 이 자리에서 제15차 5개년 경제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앞으로 5년 동안 중국이 추구할 경제발전 정책의 청사진이다. 4차산업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무엇보다 반도체 문제를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내심 10월 20일이 오기 전에 미국 시장을 개방하고 싶어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중국은 세계의 역린을 건드리는 ‘희토류 카드’를 10월 9일에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상무부가 이날 발표한 ‘2025년 상무부 공고’ 7건 중 5건이 오는 11월 8일에 발효되고 12월 1일에 시행된다. 즉 경주 APEC 회의 이후에도 미국과 협상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

    양보할 줄 모르는 美中

    사실 양국이 적정선에서 양보한다면 무역 갈등은 빠르게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전에 양보는 없다. ‘양보는 손실’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양국 무역 협상에서는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돌아서면 태도가 달라진다. 다음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며 추가 제재 조치를 감행한다. 결국 협상은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다. 특히 미국은 자국이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며 추가 제재에 나선 경우가 많다. 

    7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3차 무역 협상 이후 미국은 9월 12일 23개의 중국 반도체 기업 및 종사자에 대한 제재안을 발표했다. 제재 산업도 반도체, 바이오, 항공 분야로 확대했다. 이들 분야에서 대중국 기술이전 통제를 강화하는 조치도 추가됐다. 물류와 관련해 중국발(發) 선박에 대한 미국의 입항세 인상도 결정됐다. 

    미국의 조치에 중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중국은 9월 13일 미국산 반도체가 자국 시장 내에서 반독점법과 반덤핑법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전수조사로 응대했다. 이후 10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4차 무역 협상에서도 별다른 진척이 없자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라는 카드를 사용하고 말았다.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앞서 추가 제재에 나서 무역 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승기로 가져가려는 속셈이다. ‘상대에게 끌려다닐 수 없다’는 전략적 계산이 미국의 추가 제재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를 추동했다. 

    경주 APEC 회의는 미중 정상 간 최종 결투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양국 정상이 최종 협상을 앞두고 서로 대면하면서 협상의 주도권과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는커녕 ‘닭 쫓던 개’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두 나라가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 한국이 안중에 있을 리 만무하다. 미중 간 선제적인 문제 해결이 있어야 한국이 미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외교할 기회가 생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APEC 일정이 불투명한 사실만 봐도 한국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AP통신은 10월 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PEC 직전 행사인 ASEAN 정상회의로 말레이시아와 일본 방문 동안 ‘체류(stay)’하나 경주는 ‘방문(visit)’할 것으로 보도했다. ASEAN 정상회의는 10월 27일~10월 30일, APEC 정상회의는 10월 31일 시작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일치기’로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당일치기’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2006년 덴마크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당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숨바꼭질하며 회담 시간을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는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트럼프가 경주에 ‘방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도 일종의 신경전일 수 있다.

    韓, APEC 통해 외교 다변화 나서야

    미중 양국은 서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생각뿐인데 한국 정부의 마음은 중국에 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 일정을 따로 잡지 않았다. 9월 23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재하는 정상 환영 만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만찬 행사는 스페인 국왕과 일본·호주 총리를 비롯해 145명의 각국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해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 대통령도 참석하는 게 자연스러운 행사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측은 “오피니언 리더 만찬이 먼저 잡힌 일정이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만찬은 참석 대상을 일일이 초청하는 게 아니라 올 수 있는 사람은 오라는 행사였다”고 해명했다.

    APEC 회의 의장국으로서의 외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실의 해명처럼 쉽게 불참해야 할 만찬이 아니었다. 최소한 APEC 참석 예정 정상과 외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절한 것이 문제였다. 

    반면 중국을 대상으로는 유화적 태도를 보인다. 한국 정부는 9월 29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시적(2026년 6월까지) 무비자 입국을 시행했다. 물론 한국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한국은 희토류 해외 의존도가 100%다. 중국과 관계가 틀어지면 주력 산업인 반도체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희토류를 수입하면 된다는 지적도 있으나 쉽지 않다. 희토류 생산국 대부분이 제3세계(탄자니아, 나이지리아 등)나 중국과 강한 연대를 가진 나라(BRICS, 베트남, 미얀마 등)들이다. 한국과 가까운 나라는 드물다.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잘만 이용하면 우리에겐 극복의 단초를 마련할 기회가 된다. 제3세계를 제외한 희토류 생산국(중국, 호주, 베트남, 러시아) 정상 대부분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리 외교는 주변 4강(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함몰돼 있었다. APEC을 계기로 외교의 지평을 넓힌다면 중국의 눈치를 조금은 덜 볼 수 잇다. 말레이시아 ASEAN 정상회의와 11월 22일에 열리는 남아공 G20 정상회의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외교 대상 다변화에 적극 나서야 하는 형국이다. 

    주재우
    ● 美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 中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 前 한국세계지역학회장, 한중사회과학회장, 美 브루킹스연구원 방문학자 등 역임
    ● 現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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