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대책?” 피로감 느끼는 국민
공급 대책, 숫자는 있는데 시간은 없다
‘250만 호 계획’ 보단 ‘착공의 현실성’ 절실
‘문재인 시즌2’라는 기시감과 정책 불신
규제 만능주의 벗어나 시장경제 원리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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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영영 내 집 마련을 못 하겠다”는 사람이 늘면서 불안감은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 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10월 추석 연휴 전까지 그야말로 수도권 곳곳에 ‘불장(상승장)’이 형성됐다. 결국 정부는 10월 15일 서울 25개 구 전체와 경기 12개 지역을 규제지역 및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초강수를 뒀다. 4개월 만에 3번째로 나온 대책이었다.
‘또 대책이야?’ 피로감 느끼는 국민
불장의 여파는 통계로 드러났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2025년 10월 기준 10억4000만 원을 돌파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주택 평균 매매가격이 처음으로 10억 원을 넘어서며 명실상부한 ‘10억 원 시대’에 진입했다. 전세가율은 다시 70%를 넘어섰고, 전세대출 규제 이후 월세 전환율이 급등했다. 정책은 ‘투기 억제’를 목표로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민의 주거 불안’을 확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부동산투기는 폭탄 돌리기, 언젠가 일본처럼 될 가능성 있다”고 지적했다. 이튿날인 15일, 정부는 더 강력한 부동산시장 규제 대책을 발표했다. 뉴스1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40대 가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대출을 막을 때마다 우리 같은 실수요자가 제일 먼저 피해 봅니다. 전세 보증금은 늘 오르고, 집은 못 사고, 월세는 폭등하죠. 투기꾼은 이미 현금 들고 있잖아요.”
정책 피로감의 본질은 ‘지쳤다’가 아니라 ‘믿지 않는다’다. 정부가 방향을 설명하기보다 ‘통제’를 강조할수록, 국민은 정책의 선의보다 의도를 의심한다. 실제로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정부와 반대로 해야 돈 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며 설득력을 얻고 있다.
6·27 대책의 핵심은 ‘과도한 가계대출 차단’이었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고정하고, 1주택자 전세대출 한도를 2억 원으로 제한했다. 정부는 ‘부동산시장 과열 차단과 금융 건전성 확보’를 내세웠지만, 실제 타격은 3040세대 실수요자에게 집중됐다.
구체적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유진(35) 씨는 최근 청약에 당첨됐지만 대출 문제로 계약을 포기할 처지에 놓였다. “연 소득이 6000만 원대고 대출 2억5000만 원 정도가 필요했는데, 은행에서 1억8000만 원도 어렵다고 하더라. 전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전용 59㎡ 아파트 전세가는 4억3000만 원이다. 그러나 전세대출은 2억 원이 한도다. 나머지 2억3000만 원은 현금으로 채워야 한다. 월 소득 600만 원 가구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전세 퇴거 불가’ 혹은 ‘비자발적 월세 전환’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서울에 월세 비중이 급격히 상승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7월 서울 신규 임대차계약 가운데 전세 비중은 52%에 그쳤다. 이는 전년 같은 달(59%)에 비해 7%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서울의 전체 임대차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9월 기준으로 45%를 넘었고, 이 가운데 100만 원 이상 월세 계약도 절반에 가까운 2만1000~2만2000건 수준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대출 규제로 투기를 막았다”고 자평하지만, 국민은 “대출 규제로 삶까지 막혔다”고 느낀다.

10월 15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전경. 이날 정부는 기존 강남구·서초구·송파구·용산구 4개 자치구의 규제지역 지정은 유지하면서, 나머지 서울 21개 자치구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했다. 뉴스1
공급 대책, 숫자는 있는데 시간은 없다
9·7 대책에서 정부는 ‘향후 10년간 250만 호 공급’을 공언했다. LH, SH, 민간 정비사업을 총동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언제, 어디서?”라는 질문이 따른다. 과거 정부의 실제 착공률이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왕숙·교산·창릉·대장·계양) 5곳 중 2025년 10월 현재 본격 착공에 들어간 곳은 왕숙 일부 구간뿐이다. 교산신도시는 보상률 60% 수준, 창릉은 토지 보상 지연으로 민원만 쌓이고 있다.국토부는 숫자로 국민을 안심시키려 하지만, 국민은 ‘내가 살 수 있는 시점’을 묻는다.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재건축 추진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공급 확대를 외치지만, 정작 재건축 인허가를 내주지 않습니다. 용적률 350% 상향 얘기만 하고 실제 행정은 멈춰 있어요. 공급이 아니라 언론 공표용 숫자일 뿐이죠.”
그사이 시장은 움직인다. 2025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28만여 가구로 전년 대비 23.3% 감소했으며, 2026년에는 21만여 가구로 더욱 줄어들 예정이다. 서울의 경우 입주 예정 물량이 2026년 2만9000가구로, 5년 평균치(4만6000가구)에 비해 37% 감소했다. 이러니 ‘공급 대책’이 아니라 ‘공급 불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의 본질은 ‘심리’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면 시장은 그것을 ‘대중심리의 신호’로 해석한다. 정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급등락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6·27 대책 발표 직후,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은 6월 3만1132건에서 7월 1만4331건으로 한 달 새 54% 급감했다. 서울만 보면 같은 기간 1만913건에서 3941건으로 63.9% 급감했다. 그러나 9월 말부터는 다시 반등세가 나타났다. 정책에 따른 단기 충격 후 ‘정책 피로감으로 인한 반등’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과거 부동산정책 타이밍은 정치 이벤트나 이슈에 따라 움직였다. 주요 선거를 앞두고는 ‘공급 확대’, 여론 악화 시에는 ‘투기 억제’가 반복된다. 이런 정치적 사이클 속에서 시장은 예측 가능성을 잃는다. 정책은 시장을 설득해야 하지만, 정부는 지지층을 겨눈다. 결국 정책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의 산물이 된다. 이것이 ‘정책과 민심의 엇박자’가 생기는 구조적 원인이다.
‘문재인 시즌2’라는 기시감과 정책 불신
‘투기와의 전쟁’ ‘서민 주거 안정’ ‘대출 규제 강화’ ‘공급 확대’… 이 모든 문구는 이미 2020년에 들었던 것이다. 국민은 새로운 정책보다 기시감(旣視感)을 먼저 느낀다. 그해 7·10 대책 당시,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 세율 인상과 전세대출 제한을 동시에 추진했다. 그 결과,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과 함께 전세대란이 폭발했다. 그리고 2025년, 이재명 정부는 6·27, 9·7, 10·15 대책 등 같은 구도를 되풀이하고 있다.전문가들의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 전문가는 “규제 만능주의라는 사이비 주술의 신봉자들”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자승자박의 주택정책을 폈다”고 비판했다. “휘발유통을 들고 집값 대책이라는 불구덩이로 스스로 뛰어든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2021년 10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부동산은 최고의 민생 문제이면서 개혁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뉴스1
부동산 불안은 단지 주거 문제가 아니다. 금리, 경기, 정치 리스크가 동시에 얽힌 복합 위기다. 한국은행은 2025년 3분기 기준금리를 3.25%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늦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여전히 연 5.3~6.1% 수준이다. 고금리와 대출 규제가 겹치면, 국민은 심리적으로 ‘거래 포기 상태’로 들어간다. 정책이 시장의 불안을 달래기는커녕, “정부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불신을 키운다.
현장의 목소리 “우리는 통계로 살지 않는다”
현금 부자만의 리그로 재편된 시장이 이를 보여준다. 서울 송파구 ‘잠실 르엘’ 1순위 청약에만 6만9476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 631.6대 1을 기록했다. 대출 규제대로 6억 원을 전부 대출받는다 하더라도 다수 면적에서 10억 원 이상의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다.반면 전체적인 청약 경쟁률은 급감했다. 2025년 7월 기준 전국 평균 1순위 청약 경쟁률은 9.08대 1로 2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1년에는 20대 1이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책의 정치화’는 심해진다. 경제정책이 아닌 선거전략으로 인식되는 순간, 시장과 민심은 정부를 떠난다. 이것이 바로 ‘정책 리스크의 정치적 전이’다. 부동산정책은 더는 경제가 아니라 정권의 심리 지표가 된다.
정부는 매번 ‘집값 상승세 둔화’ ‘전세시장 안정’이라는 통계를 내놓는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서울의 매매가격지수는 9월 기준 0.22% 상승, 4주 연속 상승세다. 강남, 서초, 용산, 마포, 성동 등 핵심 지역은 1억~2억 원씩 반등했다.
전세시장의 급변이 이를 보여준다. 전월세전환율은 지난해 말부터 10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4.10%였던 전월세전환율은 올해 1월 4.14%, 4월 4.20%, 7월 4.23%, 8월 4.24%로 지속 상승했다.

10월 15일 서울 시내의 한 은행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이날 정부 대책에 따라 16일부터 수도권·규제 지역의 시가 15억 원 초과 25억 원 이하 주택은 4억 원, 시가 25억 원 초과 주택은 2억 원으로 대출 한도가 차등 적용됐다. 뉴스1
부동산시장의 민심은 단순하지 않다. 국민은 가격이 아니라 방향을 본다. “정부가 시장을 이해하려 하는가, 통제하려 하는가”를 가늠한다. 이재명 정부의 초강력 대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소통의 결여’ 때문이다. 국민은 ‘얼마나 센 대책’인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대책’인지를 본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이유도 같다. 그때도 정부는 “투기 억제”를 외쳤지만, 돌아온 건 서민 고통이었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은 2017년 5억8000만 원에서 2022년 12억6000만 원으로 119% 폭등했다. 이번에도 정부가 “실수요자 보호”를 외치지만, 결과는 “대출 절벽과 월세 지옥”이다.
정책이란 결국 신뢰의 체계다. 국민이 “이번엔 진짜 다르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이번에도 같은 소리”라는 실망과 피로감만 남겼다. 정책 설계자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핵심이다. “집주인들이 제 손으로 집값 떨구겠나”라는 것이 국민의 솔직한 마음이다. 정책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대부분이 이미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한 상황에서, 집값을 떨어뜨리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을 리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책이 아니라 신뢰가 시장을 움직인다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공급도, 금리도 아닌 ‘신뢰의 위기’다.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내놔도, 국민은 이미 ‘정책의 진정성’을 잃었다. 문재인 정부가 5년간 28번의 대책으로 신뢰를 잃었듯, 이재명 정부도 불과 4개월 만에 정책 피로감의 함정에 빠졌다.정책은 숫자가 아니라 신호다. 그 신호가 일관되면 시장은 안정을 찾고, 그 신호가 혼란스러우면 시장은 패닉에 빠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신뢰다. 국민에게는 ‘대출 상한선’보다 ‘정책의 방향성’이 중요하다. 시장에는 ‘250만 호 계획’보다 ‘착공의 현실성’이 절실하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것은 경제 때문이 아니다. 정부가 국민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초강력 부동산대책에도 민심이 정반대로 가는 까닭은 명확하다. 정책에 대한 근본적 불신, 실수요자를 옥죄는 규제, 구조적 공급 부족에 대한 미봉책, 그리고 정책 설계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대책은 쏟아지지만, 진심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민심은 정반대로 간다. 2025년의 부동산시장은 가격이 아니라 신뢰의 전쟁터다.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쪽은 숫자를 가진 정부가 아니라, 진심을 가진 리더일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함께 실질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할 때다. 규제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 원리를 존중하고, 공급 확대를 통한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역사는 똑같이 반복될 것이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이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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