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국무위원회 36국’의 실체

[Interview] 류현우 전 北 외교관, 최초 공개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25-10-2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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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당 39호실장 전일춘 사위 류현우 전 北 외교관의 충격 증언

    • “공적 비자금은 39호실, 사적 비자금은 36국에서 관리”

    • 한 번 움직이는 자금 수백억 원…전체 규모 추산 불가

    • 김정은 “장성택, 총알도 아까워 화형했다”고 장인에게 말해

    • 김정남 암살 테러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였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지호영 기자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지호영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개인 비자금을 관리하는 북한 비밀 조직의 실체가 처음 공개됐다. ‘국무위원회 36국’이다. 이 조직은 본부서기실 36과에서 출발해 2016년 6월 국무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36국은 경호 장비와 방탄차, 요트, 고급 시계, 의류, 향수는 물론 제비집과 상어지느러미, 고베산 와규, 열대 과일 같은 식료품에 이르기까지 김정은 개인의 호화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의 해외 구매와 공수를 총괄한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는 최근 발간한 증언록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지금까지 김정은의 통치 자금을 관리하는 부서가 노동당 39호실로 알려져 왔지만, 핵심은 국무위원회 36국”이라며 “39호실은 김정은의 비자금 중 공적 비자금만 관리하고, 사적 비자금을 관리하는 조직은 바로 36국”이라고 말했다. “다만 36국과 39호실은 매우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며 “36국 자금의 현금 인출과 계정 관리, 물품 구입, 배송 등은 39호실 소속 ‘파견원’들을 통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류 전 대사대리는 노동당 39호실을 총괄한 전일춘 실장의 사위다. 그는 장인과 한집에 살며 김씨 일가의 전횡을 매우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의 증언록은 장인의 집에서, 그리고 시리아에서 3년 6개월, 쿠웨이트에서 3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중세도 아닌데 사람을 불태워 죽이다니…”

    증언록에 따르면 36국이 한 번 움직이는 비자금 규모는 수백억 원대다. 전체 규모는 추산조차 어렵다. 이 자금은 어느 기관이나 조직도 접근할 수 없고, 오로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독자적으로 집행된다. 자금의 현금 인출·계정 관리와 물품 구매·배송 등 실무는 노동당 39호실 소속 ‘파견원’이 맡는다. 이들 역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다. 만약 누군가 관여하려 하거나 건드린다면? 류 전 대사대리는 단언한다.

    “절대 터치 못 합니다. 터치하는 사람은 죽습니다.”

    류 전 대사대리는 또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장성택 숙청의 배경과 과정부터 처형까지, 그 전말을 공개하면서 “장성택은 총살이 아니라 화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이 ‘장성택은 이 땅에 묻힐 자격도 없고, 총알도 아까우니 화형으로 집행하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장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면서 “중세도 아닌 지금 시대에 사람을 불태워 죽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류 전 대사대리는 2019년 9월 18일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탈출해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계기는 너무도 단순했다. 2017년 쿠웨이트 정부가 북한 대사와 외교관 5명을 추방하면서 북한대사관을 축소 이전하던 과정에서 김정일의 초상이 들어가 있는 선전화를 분실한 것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초상화 분실 사건에 대해 자기 죄를 반성하면서 조국에 보고해야 했는데, 이걸 덮어버렸으니까 제 죄가 크단 말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이놈의 그림 한 장 때문에 저는 정치범 수용소에 가야 하고, 저 때문에 제 딸이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미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아내와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가 가족과 남한 사회에 발을 디딘 직후 코로나19 팬데믹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겹쳤다. 한동안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에 의존해야 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을 부부가 함께 마쳤고, 아내는 이화여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류 전 대사대리는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RFA(자유아시아방송) 등 방송과 유튜브 출연, 강연 등을 이어가며 남한 사회에 정착의 발판을 넓혀가고 있다.

    “北 주민 분노 계기가 되길 바라”

    이 시점에 류 전 대사대리가 북한 김정은과 김씨 일가의 전횡과 치부, 그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증언록 출판을 결심한 이유는 뭘까. 그는 “이탈리아 여행을 처음 다녀오면서 북에 계신 늙으신 어머니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자녀들이 부모를 모시고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여행을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지 않으면 제 소원은 절대 이뤄질 수 없어요. 북한 주민들이 변해야 합니다. 제 책이 북한 내부에 들어가 김씨 일가의 치부를 북한 주민들이 다 알게 되면서 스스로 분노하게끔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류 전 대사대리의 증언록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PART 1 ‘핵보유국의 꿈’에서는 핵·미사일 개발을 둘러싼 외교적 공방과 제재 환경, 중동·아프리카에 구축된 무기·외화 네트워크, 국제기구·과학 행사 무대에서 이뤄진 ‘외교적 위장’ 시도를 현장감 있게 복원했다. 

    PART 2 ‘백두혈통’에서는 본부서기실과 조직지도부, 36국·81과 같은 서기실 라인의 실체, ‘영도전화기’로 상징되는 직통 보고 체계, 그리고 장성택 숙청 등 공포정치의 메커니즘을 내부 증언과 문서 흐름으로 재구성했다. 

    PART 3 ‘나의 이야기’는 저자의 탈북과 한국 정착기, 그리고 ‘왜 지금, 이 증언을 기록하고 공개하는지’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담았다. 이 3중 구조 덕분에 독자는 북한 김정은의 자금·권력·폭력이 어떻게 서로를 정당화하며 순환하는지, 구조와 인간의 서사가 어떻게 얽히는지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책 전반에 걸쳐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내용이 곳곳에 숨어 있다. 전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고도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김정남 암살 테러 사건’의 진실을 외교관 신분으로 북한 안팎에서 경험한 사실을 통해 입체적으로 증명했다. 그는 “김정남을 암살할 이유가 있는 쪽은 북한, 더 정확히는 김정은밖에 없다”면서 “임무가 집행될 때까지 유효한 명령, 바로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였다”고 주장했다.

    체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출연 중인 류 전 대사대리. 방송화면 캡처

    체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출연 중인 류 전 대사대리. 방송화면 캡처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 선생께 감사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이 아편을 구하기 위해 새벽 1시에 장인의 집으로 쳐들어온 일화도 흥미롭다. 류 전 대사대리는 “김정철이 아버지 김정일의 눈 밖에 난 이유는 성격적 특성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 등 여러 요인이 겹쳤겠지만, 아편 중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봤다.

    류 전 대사대리가 북한 외무성 중동과에서 이집트를 담당할 당시 중요한 남한 정보를 북한에 자발적으로 넘긴 남한 인사가 있었다는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훗날 국정원이 수년간의 추적 끝에 해당 인물을 찾아내 검거했다고는 하지만,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더욱이 류 전 대사대리가 전하는 당시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관 외교관의 반응이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파견한 공작원 아니면 주사파일 수도 있지. 정신병자인 것 같기도 하고. 온전한 정신이라면 우리 대사관에 연락하겠나? 아무리 봐도 정신 나간 사람이야.”

    북한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가 KBS에서 2011년부터 방송한 장수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의 애청자라는 사실은 무척 의외다. 심지어 김정은은 2013년 여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영광굴비를 남한에서 공수해 먹어보고, 이후 프로그램에 소개된 음식 조리법과 영상을 매주 금요일 간부들에게 배포했다는 내용은 놀랍기까지 하다. 

    류 전 대사대리는 “음식에 무슨 사상과 이념이 있겠나.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돼 우리 민족의 음식이 더 다채롭고 풍성해지기를 바랄 뿐”이라면서 북한까지 우리 음식 문화의 지평을 넓혀준 최불암 선생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그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증언록 공개 후 북한에 거주하는 가족들의 안위다. 친가와 처가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여전히 연좌제라는 게 존재하는 사회다. 2년 전 증언록 집필을 완성하고도 지금까지 공개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방송에 나와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해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유엔에서 북한을 규탄하는 인권 결의안이 채택되는 건가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랑하는 북녘 동포들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김씨 일가의 치부와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세상에 폭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트럼프, ‘김정은 비자금’ 협상 카드로 활용할까

    류 전 대사대리는 북한의 김정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작정이다. 그가 가장 바라는 건 한반도가 하루빨리 통일돼 북한 주민도 남한처럼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누리는 것이다. 최근 김정은이 “남한과 통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그는 강하게 비판했다.

    “김정은이가 통일을 안 하겠다면 안 하는 겁니까? 그럴 자격이 있습니까? 통일은 역사와 민족이 결정할 일이거든요. 통일은 반드시 돼야 합니다.”

    올해 1월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은 꾸준히 거론돼 왔다. 하지만 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회담이 열린다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핵·미사일 협상에서 그의 비자금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관건은 돈이다. 

    류 전 대사대리는 증언록을 통해 “김정은의 혁명 자금이 어디에서 발생해서, 어디에 은닉되고, 어떻게 관리되는지, 또 핵과 미사일에 쓰이는 자금은 어느 주머니에서 나오는지, 지금도 여러 국가와 기관이 이 수수께끼의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주요 내용

    북한 권력 내부를 직접 겪은 류현우 전 대사대리는 증언록에서 장성택 숙청의 내막, 김정은의 비밀 금고(36국), 김정남 암살의 작동 방식을 공개한다. 핵심은 돈과 보고, 그리고 공포다.

    류현우 전 북한 외교관이 최근 발간한 증언록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표지 사진.

    류현우 전 북한 외교관이 최근 발간한 증언록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 금고’ 표지 사진.

    ① 장성택 숙청 전말

    2008년 김정일 와병 뒤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떠오른 장성택은 2007년 신설된 당 행정부를 발판으로 사법·검찰·사회안전과 대외건설·합영투자 등 권력·외화 라인을 거머쥐었다. 54부·대외건설지도국·제3경제위원회를 흡수하고 38호실까지 해산, 연간 1억 달러대 외화 자금줄을 틀어쥐자 “김정은의 돈주머니가 마른다”는 불만이 커졌다. 

    2013년 여름, 김정은의 군 시찰 후 수산부업기지 군 이관 지시가 행정부에서 지연되는 사이, 현장에서 민간과 군이 충돌해 군인 2명이 사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11월 리룡하·장수길이 14.5mm 고사기관총으로 처형되고, 장성택은 12월 특별군사재판 직후 사형됐다. 류 전 대사대리는 “김정은이 화형을 지시했다”는 전언과 함께, 이후 전당적 반종파 투쟁으로 유일 독재체제가 강화됐다고 전했다.

    ② 김정은의 ‘비밀 금고’ 36국

    류 전 대사대리는 김정은의 비밀 금고를 관리하는 ‘국무위원회 36국’의 실체를 최초로 공개한다. 2016년 국무위원회 출범과 함께 ‘본부서기실 36과’에서 국무위원회 36국으로 간판만 바뀌었고, 기능은 동일하다. 방탄차·요트·고급 사치품·식재부터 ‘문수물놀이장’ ‘능라곱등어관’ ‘대동강 유람선’ 같은 치적 사업 장비 조달까지 36국이 총괄하며, 한 번 움직이는 금액이 수백억 원대라는 게 그의 증언이다. 집행은 39호실 소속 ‘파견원’을 통해 이뤄지고, 운송·결제는 최우선으로 처리된다. 감사 불능의 사적 회계가 권력의 핵심을 이룬다는 주장이다.

    ③ 김정남 암살 테러

    2017년 2월 사건 직후 평양은 주재 공관에 ‘대사/1부상 친전’ 지시를 내려 보고 창구를 좁혔다. 류 전 대사대리는 베트남·말레이시아 라인 인물들의 정황, VX를 화장품으로 위장 반입했다는 내부 발언 등을 근거로 정찰총국 주도설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작전 성격을 ‘스탠딩 오더(집행 때까지 유효한 명령)’로 규정한다. 그 배경에는 2013~2017년 핵·미사일 도발로 북·중 관계가 급랭, 시진핑의 한국 선(先)방문 등으로 김정은이 중국의 ‘김정남 카드’를 경계했다는 판단이 깔린다.

    증언록에는 김정철의 새벽 ‘아편 소동’, 남한 인사가 스스로 대사관에 남쪽 정보 제공을 자청한 사례, 그리고 KBS ‘한국인의 밥상’ 애청과 ‘영광굴비’ 공수 일화 같은 생활의 단면도 담겼다. 체제의 잔혹성과 일상의 기묘한 공존은, 결국 금고→보고→공포로 이어지는 통치 메커니즘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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