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들어온 한 권의 책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안경환 지음, 라이프맵, 428쪽, 2만2000원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은 위대한 이름을 가졌으나 불행한 삶을 산 한 인간의 이야기다. 윌리엄 더글라스(1898~1980)는 36년 7개월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대법관으로 일했다. 소수자와 약자의 편에 선 법률인이다. “헌법은 국민의 몸에서 국가를 떼어내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으며 “약한 자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은 제대로 된 법이 아니다”라고 설파했다.
더글라스는 흑인, 극빈자, 부랑자, 농민, 노동자도 각종 혜택을 동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 진보적 대법관의 표본으로 꼽히지만 3차례 이혼했고 자식에게 냉혹했으며 비영리재단과의 유착 의혹 등으로 4차례나 탄핵됐다. “흠투성이지만 정의의 편에 서고자 노력한 인물”(안경환)이다. 그는 국가인권위원장, 서울대 법대 학장 등을 지낸 저자의 정신적·학문적 멘토 격이다.
“유신 시절 대학원에서 법학을 배웠습니다. 그 시절 더글라스 판사는 제게 희망의 등불과도 같았어요. 처음에는 독일 헌법을 연구하려 했습니다. 독일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은 국가인 터라 독일 헌법을 공부하다 보면 유신을 옹호하거나 관용하는 쪽으로 흐르기 쉬웠습니다. 더글라스 판사는 국가보다는 국민, 기업보다는 개인을 앞에 뒀습니다. 미국 대법원이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한 판결을 많이 내린 데는 더글라스 판사의 기여가 컸습니다. 제가 비슷한 연배의 헌법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진보’라고 불리는 데도 더글라스 판사가 영향을 미쳤어요. 하지만 세상에 흠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더글라스 판사의 무수히 많은 개인적 결함도 책에 썼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세상에 말하고자 한 것의 핵심은 서문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 응축돼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90%의 법률가는 상위 10%의 국민의 이익에 기식해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나머지 10%만이라도 더글라스 판사처럼 지친 영혼에 연민의 눈길을 주는 나라, 그런 나라여야만 살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인권변호사 ‘조영래 평전’(2006), 박정희와 5·16군사정변을 함께 모의한 ‘황용주-그와 박정희의 시대’(2013)에 이은 저자의 세 번째 인물전이다.
“조영래(1947~1990)와 저는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조영래 평전’은 다음 세대가 조영래가 살던 시대를 이해하는 것을 돕고자 쓴 글입니다. 특히 법률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의 상한과 하한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황용주에 대한 글은 저의 평가가 들어간 평전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서술한 전기예요. 현대사에서 그야말로 잊힌 사람입니다. 무덤도 없이 외롭게 죽었는데, 글로 무덤을 대신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
장정일의 악서총람
장정일 지음, 책세상, 592쪽, 1만7800원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지음, 사계절, 272쪽, 2만9800원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
원재훈 지음, 비채, 487쪽, 1만4500원

편집자가 말하는 “내 책은…”
법륜 스님의 행복법륜 지음, 나무의마음, 280쪽, 1만4000원

법륜 스님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스님은 ‘부처님 법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1년에 100회 이상 전국 곳곳은 물론 세계 각지를 돌며 낯선 사람들의 온갖 속사정을 들어주는 수행자’로 유명하다. 특히 불교 신자가 아니며, 개인의 내밀한 고민을 공개석상에서 털어놓고 해답을 기다리는 방식이 선뜻 내키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니 출판편집자에게 법륜 스님은 ‘꼭 붙잡아야 할 저자’다.
그간 스님의 ‘즉문즉설(卽問卽說)’ 강연 녹취록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이 출간됐다. 그중에서도 ‘스님의 주례사’ ‘엄마수업’처럼 하나의 주제를 잡아서 내용을 정리하고 감각적인 그림으로 읽는 즐거움을 더한 책들이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법륜 스님의 행복’을 내놓기까지 전작들의 장점을 이어가되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고, 고정 독자들의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 ‘행복’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간절한 바람이면서도 한없이 모호해질 수 있는 주제라 한계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스님의 주례사’와 ‘엄마수업’을 만든 베테랑들이 기획과 편집을 주도하고, 저자가 적극적으로 퇴고 작업을 한 덕분에 새해 첫 달에 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대로 사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것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 되는 걸 해보라고 다그치거나, 누가 뭐래도 당신이 최고라고 가볍게 위로하지 않는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위로가 되고,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제가 많은 분의 질문에 해답을 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라고 말하는 것뿐이에요. (…) 어느 한쪽만을 바라보며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음으로써 자기가 문제 삼던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사물의 전모를 볼 줄 아는 지혜가 생기면 그동안 갖고 있던 많은 고뇌들이 저절로 없어집니다.”
사람은 마음이 수시로 변하게 마련이고 누구나 이기적인 면이 있는데, 그 마음이 변하지 않길 바라니 괴롭고,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만 손해라는 억울함이 생길 수밖에 없는 원리를 일깨워준다. 또한 이기심을 버려야 세상에 평화가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이기적이듯 다른 사람도 이기적일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이 크게 줄어든다고 스님은 말한다.
이 책은 전작들과 다르게 개인의 마음과 사회적 조건을 함께 가꿔야 온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불평등과 각종 사회 부조리, 남북통일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여러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너무 잘 보이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내 능력껏 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결과는 평가하는 사람 몫이니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구미화 | 출판편집자, 번역가 |
정신의학의 탄생
하지현 지음 해냄, 428쪽, 1만9800원

아시아의 힘
조 스터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프롬북스, 504쪽, 2만3000원

혁신의 시간
김영배·정구현 외 지음, RHK, 304쪽, 1만7000원

서가에 들어온 한 권의 책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하라 아키라 지음, 김연옥 옮김, 살림, 290쪽, 1만7000원

하라 아키라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청일전쟁(1894~1895)·러일전쟁(1904~1905)을 두고 전쟁 목적과 전쟁터 위치를 고려할 때 명칭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지난해 12월 7일 고려대 강연 참조).
한국에서 최근 번역·출간된 하라 교수의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는 두 전쟁을 주제로 삼아 ‘근대 일본’을 고찰한 일본인을 위해 서술한 역사서다. 저자는 복고·국수주의에 입각해 이웃 나라의 기억을 고려하지 않은 일본의 현행 역사교과서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일본이 이웃 나라와 평화를 유지하려면 과거에 벌인 전쟁에 대해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일본은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다. 한반도, 대만, 다롄·뤼순 일대(관동주)를 식민지로 삼는다. 러시아 영토이던 남사할린도 장악한다. 저자는 교전국 이름(청, 러시아)만 강조한 명칭 탓에 두 전쟁의 실제를 21세기를 사는 일본인이 잘못 인식한다고 말한다.
“아베 담화(전후 70년 총리담화)는 일러전쟁이 조선 지배를 강력하게 추진했음을 간과한 내용으로 스스로 역사 인식이 결여돼 있음을 드러냈다. 일러전쟁이 세계의 반(反)식민지 운동을 격려한 것이라고 했으나 일러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이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급속하게 진행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이 책은 ‘근대 일본’이 처음으로 일으킨 두 개의 대외전쟁(청일전쟁,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고찰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개전되기 전까지의 상황을 다룬다. 헤이그 밀사, 명성황후 시해, 경술국치, 3·1운동 등 한국사도 엮어 다루는 터라 한국인 독자에게도 잘 읽힌다. 일본인이 같은 시기의 역사를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한국인의 그것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만, 관동주 등 옛 일본 식민지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은 덤이다.
저자는 70년간 지속된 일본의 평화로운 ‘전후’ 시대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근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폭주하던 때와 현재 일본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일본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일본인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웃을 나타내는 말로 ‘맞은편 세 집과 좌우의 두 집’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말뿐 아니라 실제로도 자신의 집과 맞은편 집, 맞은편 집의 양옆과 자택의 양옆, 이렇게 여섯 가구가 실제 생활하는 데 관련이 깊게 마련입니다. 마주 보는 한국 북한 중국, 양 옆집이라고 할 러시아 동부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지요?”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정민 지음, 휴머니스트, 272쪽, 1만5000원

30금 쌍담
강신주·이상용 지음, 민음사, 272쪽, 1만4000원

리 컬렉션
이종선 지음, 김영사, 320쪽, 1만8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날뛰는 감정 날뛰는 생각정연호 지음, 지상사, 254쪽, 1만4900원

이 책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동양의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의학에도 심리학이 있느냐?’ ‘동양에도 심리학이 있느냐?’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정기신(精氣神)의 순서로 목차를 만든 ‘동의보감’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의학 고전은 정신(精神) 즉, 마음을 병의 근본 치료를 위한 뿌리로 본다. 그런 까닭에 몸의 병을 다룰 때도 ‘마음의 오르내림을 관찰하라(審七情之浮沈)’고 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동양(한의학)의 정신이 지금은 거의 사장(死藏)되다시피 한 점이다.
불안증이 있는 사람은 불안할 일이 아닌데도 과도하게 불안을 느낀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우울할 일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우울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유 없이 불안해요’ ‘이유 없이 우울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보지 못한 자신의 마음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더 많이 불안할 일로 여겼고, 더 많이 우울할 일로 여겼다. 그렇게까지 불안해하고 우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더 크게 그럴 필요를 느낀다. 이것은 강박증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생각은 자신을 속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의식을 뺀 의식적인 부분만 생각으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과는 다른 생각이 무의식에 가득할지도 모르며,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에 속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감정은 속일 수 없다. 감정은 의식과 무의식 모두로부터 신호를 받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율곡은 ‘성학집요’에서 ‘성의(誠意, 생각의 진실함)’라는 말은 있지만 ‘성정(誠情·, 감정의 진실함)’이라는 말은 없다고 했다.
감정은 애초에 진실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다. 감정은 언제나 진실하다. 상황에 처해 순간순간 움직이며 순식간에 돌변하는 감정은 스스로의 수준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결국 감정을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그를통해 (무의식적인) 생각을 더듬어보면 마음의 문제는 한결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의식이 의식으로 드러나며, 의식으로 드러난 자신의 치우친 생각은 비로소 치유의 기회를 얻는다.
현재 불안이 느껴진다면 자신은 그것을 불안하게 여긴다는 뜻이며, 지금 우울이 느껴진다면 스스로는 그것을 우울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유 없이 불안해요’ ‘이유 없이 우울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이유를 보지 못할 수는 있지만, 이유가 없을 수는 없다. 스스로 ‘이유가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그런 믿음 때문에 불안과 우울의 원인을 보지 못한다. 책에는 이러한 것들을 설명하는 동양의 심리학이 그 이론과 함께 진료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바탕으로 설명돼 있다. ‘마음병’이 있는 분들에게는 마음병 치료의 단초가, 마음병이 없는 분들에게는 마음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
정연호 | 한의사 |
청춘의 노래들
최성철 지음, 뮤진트리, 274쪽, 1만3500원

프로액티즘
이대희 지음, 연경문화사, 300쪽, 1만4000원

만물과학
마커스 초운 지음, 김소정 옮김 교양인, 468쪽, 1만8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