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보리, 혹은 물고기

  • 입력2010-01-11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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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 혹은 물고기
    그의 몸에선

    보리 냄새가 났다

    두 번의 낮이 지나고 또 한 번의 낮에

    그가 무릎을 꿇고 낫을 목에 두르자

    끊어진 보리 모개가 대신



    발밑에 수북이 쌓였다, 꼬물꼬물

    개미떼는 쉼도 없이 어디론가 가고

    해가 중천에 떠서

    울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왼쪽 어깨의 통증은

    평생 보리를 베었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어서

    땅속 엄니는

    안타까이 소리쳤다

    이윽고 그가 낫을 허공에 던지자

    서쪽 하늘에서 초승달이 졌다, 휘적휘적

    그가 걸어 들어간 못물 깊은 곳에서는

    땀에 잠겼던 머리칼이

    보리 모개처럼 까칠하게 일어서고

    천천히 천천히 지느러미가 되었다

    물에선 물비린내 대신

    보리 냄새가 났다

    박형진

    ● 1958년 전북 부안 출생
    ● 1992년‘창비’봄호로 등단
    ● 시집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다시 들판에 서서’, 산문집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등
    ● 현재 전북 부안군 변산면 모항에서 농사를 짓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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