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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 픽션, 퓨전문학의 첨단작가 그룹

테크노 픽션, 퓨전문학의 첨단작가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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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출생한 남아공 작가 존 쿳시(John Coetzee)는 부커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현재 탈식민주의 문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세계적인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첫 소설 ‘더스크 랜드’에서부터 최근 소설 ‘추락’(왕은철역, 동아일보간)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차적인 관심은, 아프리카의 유산 속에 스며 있는 유럽 제국주의의 잔재를 드러내고 제국주의의 은밀한 억압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작업을 위해 그의 소설들은 언제나 서구 제국주의 담론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니얼 드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포(Foe)’에서 쿳시는 유럽의 시장경제 논리와 실용주의가 어떻게 원주민을 억압하며 결국에는 침묵시키는지를 ‘로빈슨 크루소’의 ‘되받아 쓰기(write back)’를 통해 탁월한 솜씨로 탐색하고 있다. ‘되받아 쓰기’는 서구의 정전을 패러디하는 탈식민주의 문학의 대표적 기법이다. 비록 쿳시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감히 대가인 드포의 소설에 대해 ‘되받아 쓰기’를 할 수는 없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포’가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되받아 쓰기’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포’라는 제목은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대니얼 드포(대니얼의 원래 성은 ‘포’였는데, 40세가 다 돼 자기 이름에 ‘드’를 붙였다)에 대한 패러디이면서, 동시에 제국주의 유럽이야말로 아프리카의 ‘적’이라는 암시가 깃들여 있다.

‘포’에서 쿳시는 백인 크루소와 흑인 프라이데이의 관계를 제국주의적 측면에서 다시 조명하고 재해석함으로써, 탈식민주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쿳시의 ‘포’는 역시 ‘로빈슨 크루소’의 ‘되받아 쓰기’인 새뮤얼 셀번의 ‘모세의 신분상승’, 노아 홍수의 ‘되받아 쓰기’인 티모시 핀들리의 ‘배를 못 탄 자들’, 그리고 ‘제인 에어’의 ‘되받아 쓰기”인 진 리이스의 ‘드넓은 사르가소 바다’와 더불어 오늘날 탈식민주의 문학을 주도하고 있다

‘생태주의’-장 마르크 오베르리



생태계의 보호와 보존, 그리고 목가적 꿈의 회복을 추구하는 녹색문학은 분명 21세기의 지배적인 문예사조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환경과 생태계 파괴로 인한 인류절멸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최근 세계 문단과 학계에서도 기존 문학이나 학문을 생태학적 위치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생태 페미니즘, 생태 탈식민주의, 생태 비평 등 앞에 ‘생태 eco’라는 접두어가 붙은 문예사조나 학문 분야가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 문화부가 선정한 ‘문학의 희망’(1990) 작가이자 ‘르네상스 문학상’(1992)을 수상한 장 마르크 오베르의 생태소설 ‘대나무’(1997)는 최근 유럽의 녹색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베르트는 40년 동안 알코올 중독으로 자신과 타인의 삶의 생태계를 파괴한 사람이지만, 대나무가 주는 교훈을 통해 대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나머지 40년을 오염 정화와 녹색 회복에 바친다. 그는 대나무 숲으로부터 서로 의지하며 수평으로 연결된 상호보충적 관계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삼라만상이 서로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보는 생태주의적 시각과 상통하는 것이다.

생태학에서는 만일 우리가 타자를 적대시해 그 연결망이 찢어지면 필연적으로 전체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베르트는 대나무 역시 “그 밑동 중 하나를 베면 수천의 쌍둥이들이 모두 고통을 느낀다…. 누군가 톱으로 그들 중 하나를 자르면 모두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느끼고, 그들 중 하나에 물을 주면 백만의 작고 노란 나뭇잎들이 전부 시원함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이때 생태학에서 말하는 수평적 연결망은 동양의 공동체 정신과도 상통한다.

베르트는 마치 대나무에 물을 주듯 황폐해진 자신의 삶에도 물을 준다. 그는 자신이 정화될 때, 대나무 숲처럼 자신과 연결된 타자들 역시 같이 정화되며 함께 꽃을 피우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모티프는 정화와 풍요와 재생의 상징인 ‘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녹색의 회복’에 대한 작가의 탐색과 추구로 귀결된다. 장 마르크 오베르는 생태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21세기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닫힌 체계/폐쇄 문화 비판’-A. S. 바이어트

1990년에 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여성 소설가 A. S. 바이어트(Antonia Susan Byatt)는 ‘천사와 벌레’라는 소설을 통해 인간과 곤충 사이의 유사점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성찰한 특이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바이어트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인간들은 본능의 노예가 되어 평생 비참한 벌레로 머무르는 반면, 어떤 인간들은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어 천사처럼 눈부신 비상을 한다고 말한다.

‘천사와 벌레’는 19세기 영국의 상류사회인 앨러배스터가에서 벌어지는 기괴하고도 음습한 비밀들을 곤충들의 생태와 연결시켜 보여주는 특이한 작품이다. 남미의 오지에서 곤충을 연구하고 귀국한 윌리엄 애덤슨은 부자인 해롤드 앨러배스터 목사의 호의로 그 집에 머무르다가 그의 아름다운 큰딸 유제니아에게 이끌려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그 집 외아들 에드거는 자신의 집안에 다른 부류의 피가 섞이는 것을 싫어하며 노골적인 적대감을 나타낸다. 곤충학자인 윌리엄은 에드거의 태도에서 자신의 종족과 영역을 보호하려는 곤충의 본능을 본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은 오누이인 에드거와 유제니아의 정사를 목격하고 충격받는데, 이들의 성행위 역시 순수혈통 보존 본능에서 비롯된 음습하고 타락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닫힌 체계는 필연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환멸에 빠진 윌리엄은 집을 떠나, 유제니아의 먼 친척이자 자신의 조수인 마틸다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다. 여성의 본능을 억제하고 학문과 자아의 패각 속에서만 살아온 마틸다는 이윽고 윌리엄 앞에서 번데기의 껍질을 벗고 한 마리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한다.

이 소설에서 순수혈통 보존과 자기 영역 보호를 위해 본능에 매달리는 벌레 같은 사람들은 문명과 교양의 정상에 있는 상류사회인들이고, 그러한 것을 초월해 아름다운 나비(천사)가 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국외자들이다. 바이어트는 이 새로운 감각의 소설을 통해, 독자의 관심을 종족보호와 신분보존의 닫힌 체계 속에서 배타적으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문명비판과 사회비판으로 확대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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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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