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발행하는 단행본 ‘인물과 사상’ 시리즈 및 월간 ‘인물과 사상’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으면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될 정도로 내로라 하는 각계 인사들이 그가 쏜 ‘말화살’을 맞았다. 그 비판의 주요 잣대가 바로 조선일보에 대한 시각 또는 태도였으니 그가 안티조선 운동에 끼친 영향은 미뤄 짐작할 만하다. 안티조선 운동의 구호가 된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도 그가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그 뜻은 한마디로 ‘극우신문인 조선일보가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그것을 줄여 극우신문에 어울리는 몫만 갖게 하자’는 것이다.
‘단독 플레이’에 가까웠던 강교수의 안티조선 운동이 대중 운동으로 거듭난 데는 1998년 5월 창간한 월간 ‘인물과 사상’의 공이 크다. 창간호에 ‘조선일보의 국가안보 상업주의 사례 모음’을 실은 이 잡지는 매호 조선일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한편 독자에게 전체 공간의 반 이상을 기고와 논쟁의 터로 제공함으로써 안티조선 운동의 공론화를 이끌어냈다.
강교수 주변에 강력한 원군이 나타난 것도 이때쯤이다. 시인이자 교수인 김정란, ‘극우’인사들과 조선일보에 대한 독설로 가득한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저자 진중권, ‘망명객’ 홍세화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신문·잡지 기고와 인터넷 공간에서의 논쟁, 각종 토론회 참석 등의 방법을 통해 곳곳에 안티조선의 표창을 날렸다.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 특히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으로 알려진 조선일보를 공격하는 것인만큼 만만찮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먼저 ‘황석영 파문’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문단의 상황을 살펴보자. 문단의 대표적인 두 유파인 ‘문학과 지성’과 ‘창작과 비평’의 인터넷 게시판은 작가와 평론가 독자들이 뒤엉켜 혼전 양상을 띠고 있다.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는 대표적인 두 문인은 평론가 정과리씨와 김명인씨. 동인문학상의 종신 심사위원 정씨는 7월26일 ‘문학과 지성’의 인터넷 게시판인 ‘문지 마당’에 황석영 파문과 관련한 글을 올렸다.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이 글에서 정씨는 “조선은 보수 이념지일 뿐 극우 이데올로기의 온상은 아니다. 조선이 극우라고 생각했다면 심사위원직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선일보 정체성에 대해 안티조선 진영과 의견 차이를 보였다.
그는 기자에게 “동인문학상과 조선일보는 별개 문제”라고 전제한 후 “조선은 동인문학상에 재정지원만 할 뿐이다. 조선일보가 정치권력은 몰라도 문화권력을 가질 이유는 없다. 조선이 동인문학상을 통해 문인들을 줄세우려 한다는 것은 지나친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조선일보와 같은 우익 이념지도 있어야 한다. 이는 조선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일반적 성향과 관련된 문제다”며 안티조선이 ‘대세’가 아님을 강조했다.
정씨의 글은 곧바로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인 평론가 김명인씨의 반론에 부딪혔다. 김씨는 월간 ‘말’ 9월호에 실린 ‘조선일보에 줄 선 문인들의 모순과 궤변’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정씨와 작가 이문열 양귀자씨를 신랄히 비판했다. 그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정과리씨의 논리를 정면으로 공박했다.
“동인문학상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논란이 된 심사방식도 다른 문학상과 비교하면 진일보한 면이 있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주는 상이라는 점이다. 문학관 차이에 상관없이 조선일보가 표방하는 정치·사회적 이념을 그대로 용인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다. 이는 양심적 지식인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이런 영역에조차 다양성이 인정돼선 안 된다.”
첨예한 대립이 아닐 수 없다. 그 탓인지 문단 내부에서야 어떻든 상당수 문인들은 이 문제에 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다. ‘문학과 지성’ 대표인 김병익씨는 “언급하지 않겠다. 전혀 할 얘기가 없다”며 인터뷰를 사절했다. ‘창작과 비평’의 대표 논객인 백낙청 서울대 교수는 “신문사는 신문사 입장이 있는 것”이라면서도 “안티조선 운동이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론 보지 않는다”며 중립적인 자세를 보이는 한편 이 논쟁이 ‘문지’와 ‘창비’ 두 진영의 대립으로 비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정과리씨와 함께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 7인 가운데 한 사람인 소설가 박완서씨는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몹시 부담스러워 했다.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선 “자세히 모른다”며, 동인문학상 파문에 대해선 “언급하기 곤란하다”며 비켜갔다. 안티조선 진영으로부터 ‘극우파’로 낙인 찍힌 소설가 이인화씨도 “전혀 아는 바 없다”며 언급 자체를 꺼렸다.
한편 안티조선 진영의 ‘타도 대상’이 되다시피한 소설가 이문열씨는 1시간 넘게 계속된 통화에서 안티조선 운동의 ‘불온함’을 지적하며 탄식했다. ‘비권위에 의한 권위 해체 시도’ ‘저질한 문화권력 다툼’ 등의 표현으로 안티조선 운동과 동인문학상 파문의 성격을 규정한 그는 안티조선측 주장에 대해 “일부 인정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인정하더라도 (조선일보를) 비난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어느 사회든 우파가 없을 수 없으며 우파가 악이 될 순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공세에 지친 탓일까. 아니면 약해진 것일까. 그도 아니면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뜻일가. 이씨는 통화 내용을 정식 인터뷰 형식으로 꾸미자는 제의에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기사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논쟁 대열에서 빠지기를 희망했다.
시민운동권에서도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그렇지만 시민운동이 언론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정 때문인지 시민단체들은 공식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평소 정치·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마다 성명을 발표하며 발빠르게 대응하던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다. 가장 영향력이 큰 두 단체인 경실련과 참여연대는 대외적으로 침묵하는 데는 보조를 같이 하고 있지만 내부 분위기는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참여연대가 참가 여부를 두고 논의중인 반면 경실련은 안티조선측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경실련 이석연 사무총장은 “개인적으로나 경실련 차원에서나 의견을 밝힌 적이 없다”며 “일부 언론에 우리가 마치 ‘불참’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도됐는데 이는 원론적인 얘기를 한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총장이 말하는 ‘원론적 얘기’란 “안티조선 운동 참여 여부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할 문제며, 언론의 다양성 측면에서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논의할 성질의 것도 아니며 논의할 단계도 아니다”고 말함으로써 당분간 관망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반면 참여연대는 박원순 사무총장이 개인 자격으로 ‘지식인 2차 선언’에 가담함으로써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한 가운데 간부들 사이에 ‘방법론’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1차 선언’ 때 참여한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개인 자격으로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참여연대가 단체 자격으로 참가하는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언론단체들도 곤혹스러워 한다. 언노련(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최문순 위원장은 “뜻이야 공감하지만 언노련에 조선일보 조합원들도 있어서 난처하다. 밖에서 때리니까 안에서 더 똘똘 뭉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며 언론운동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5개 시민단체의 연합모임인 언개련(언론개혁시민연대)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김주언 사무총장은 “비공식회의에서 논의해봤는데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참여연대와 마찬가지로 안티조선 운동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방법론을 두고 단체간 이견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자유 침해 vs 소비자운동
안티조선 운동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왜 조선일보만 문제삼는가다. 평소 왕성한 신문 기고 활동을 통해 ‘보수 논객’으로 이름을 떨쳐온 송복 교수는 “조선일보와 다른 신문 간에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조선일보를 비롯한 국내 주요 일간지는 모두 보수신문으로 논조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문열씨는 “(안티조선측 잣대로라면) 동아일보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5·6공 때 국회의원과 청와대수석비서관을 지내고 법률신문 사장을 역임한 이진우 변호사는 “조선일보가 특정인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일이나 조선일보를 극우로 몰아붙이는 일이나 다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티조선측 인사들은 “조선일보와 다른 신문들은 명백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조선과 같은 극우신문이 1등신문으로서 영향력을 누리는 것은 우리 사회 민주화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손혁재 협동사무처장은 “극우·보수신문의 상징으로 독재정권·권위주의정권 창출에 앞장서 온 조선일보가 최근엔 남북 화해 분위기를 해치고 그와 관련해 왜곡보도까지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론가 김명인씨는 “물론 보수신문도 많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보수가 아니라 상업적 극우주의 신문이다”며 조선일보가 갖는 차별성을 강조했다.
“80년 이후 언론의 행보를 살펴보면, 다른 언론은 기회주의적 행태로나마 최소한의 선을 지킨 반면 조선은 일관되게 극우적 이념을 펼쳐왔다. 조선일보와 벌이는 싸움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극우적이고 수구적인 세력과 싸우는 것이다.”
조선일보를 안티조선측 주장대로 극우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문제는 안티조선 운동의 타당성을 따지는 데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 안티조선 운동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조선일보가 극우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보수 또는 우파 성향을 띠었을 뿐이고, 그것은 언론의 다양성 측면에서 존중돼야 하며, 그런 성향을 가진 독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자연스럽게 언론자유 침해 논쟁을 부른다. 이진우 변호사는 “조선일보가 수구든 보수든 이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언론의 논조를 문제삼아 불매운동을 펼치고 사회운동화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비민주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동복 전의원은 “언론은 법이 허용하는 한 무슨 얘기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조선일보가 설사 극단적 주장을 편다 하더라도 언론자유 측면에서 보면 난리칠 일이 아니며 난리쳐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안티조선측은 언론자유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김동춘 교수의 반박을 들어보자.
“조선일보도 하나의 기업인 이상 기업을 없애라고 할 순 없다. 다만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 시민단체가 감시활동을 펴듯 지식인들이 언론 소비자에게 언론 바로 알리기를 하는 것이므로 언론자유와 배치되지 않는다.”
이른바 ‘조선일보 활용론’도 이 논쟁의 한 갈래다. 문학평론가 정과리씨는 “동인문학상 수상작에 따라선 조선일보의 정치적 이념과 반대되는 이념을 조선일보를 통해 전파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 지식인으로 알려진 한양대 역사학과 임지현 교수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조선일보에 글을 쓴다는 죄(?)로 강준만 교수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임교수는 “글쓰기를 통해 조선일보 독자의 일부라도 전유할 수 있다면, 끼리끼리 밖에서 비판하고 돌려보며 자족하는 것보다는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안티조선측은 이와 같은 ‘조선일보 활용론’에 대해 한마디로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김동춘 교수는 “전혀 현실성 없는 논리”라며 “그런 일은 최소한의 양식과 중립성을 가진 언론에서나 가능하다. 다른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는 조선일보엔 어울리지 않는 얘기”라고 못박았다. 김명인씨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행위는 극우 상업주의를 다양한 양식으로 포장하고 윤색하는 조선일보 전략에 이용당해 독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기능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퇴출’ 아닌 ‘제몫 찾아주기’(?)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조선일보 기자들의 시각은 어떨까. 8월17일자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조선일보 기자들은 이 운동에 몹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비판은 ‘대안 없는 운동’이라는 것. 기자들은 “조선일보를 없앤다면 그동안 냉전적 상업주의를 이용해온 나머지 언론이 대안이 될 수 있느냐” “조선일보가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사설과 보도내용의 보수성뿐만 아니라, 신문 그 자체의 질적인 수준이 높기 때문”이라며 안티조선 운동의 취지나 방법론 모두를 비판했다.
이런 인식은 ‘안티조선=조선일보 퇴출’로 간주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티조선 진영은 이 운동의 목표가 ‘퇴출’이 아닌 ‘제 몫 찾아주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대안 없는 운동’이라는 비판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한편 안티조선 운동의 방법론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백낙청 교수는 ‘디지털 창비’ 게시판에 올린 글(7월5일)을 통해 “조선일보의 ‘퇴출’이 아닌 ‘제 몫 찾아주기’야말로 정확한 표현으로 본다”고 안티조선 운동의 취지에 공감을 나타내면서도 “그 방법은 각자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며 실천 방법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했다.
계간 ‘당대비평’은 가을호에서 “조선일보에 글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방법론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그 요구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공격하는 명분은 될 수 없다”며 안티조선측의 ‘강경 노선’을 견제했다.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실장도 “조선일보가 안보상업주의, 극우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조선일보에) 기고를 하느냐 안 하느냐를 기준으로 편을 가르는 건 반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티조선 진영은 “오직 실천만이 있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안티조선 운동이 참된 언론 개혁의 횃불이 될지, 아니면 조선일보 기자들의 주장대로 “불만을 표출하는 수준”에 그칠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전망을 논할 때 한 가지 참고해야 할 것은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운동 결과보다 실천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운동에 대한 열기가 꽤 오랫동안 식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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