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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30년 한결같은 포크계의 ‘상록수’

“‘아침이슬’은 김민기나 내게 애증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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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 온 중년 여성들이 양희은씨 얘기에 공감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시대 아줌마가 갖는 보편적인 정서를 확인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 정서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학창시절에 돈이 없어서 등록금을 못 내고 학교를 다녔어요. 당시 교실에는 지독하게 가난하거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말하자면 ‘거름’이었던 학생들이 꼭 있었어요. 제 얘기를 통해 아줌마들은 그 시절 ‘경제성장기의 고통’을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반에서 잘나가지 못하던 아이들을 가리키던 ‘깍뚜기’나 ‘버스회수권’ 같은 그때 용어들이 제 입에서 마구 튀어나오니 반갑지 않겠어요?”

-조금 도식적인 구분일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경기여중, 경기여고, 서강대 사학과라는 학력을 비롯해 양희은씨가 갖고 있는 조건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아줌마와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기획상품이 아니냐’는 지적도 들립니다. 공식 홈페이지를 보니 아예 ‘아줌마게시판’ 코너가 있더군요.

“아줌마 느낌을 가진 인물도 아닌데 일부러 아줌마의 이미지로 몰아가는 게 아니냐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요. 친구들이 더러 그렇게 이야기하면 전 한마디로 잘라 말합니다. ‘날 봐, 아줌마잖아? 내가 아줌만데 뭘 그래.’ 기획이나 컨셉트가 어디 있습니까? 전 무엇이든 억지로는 못하는 체질입니다.”

송창식, 김민기와의 만남



양희은은 서울 종로 가회동에서 1952년 육군대령으로 예편한 아버지 양정길씨와 어머니 윤순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유학을 다녀온 클래식광(狂)이었던 아버지와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불렀던 어머니로부터 음악적 재질을 물려받은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는다. 1960년대 당시의 이혼이란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나이 열 살 때의 일이다.

1969년 여고시절에는 디자이너로 겨우 살림을 꾸려가던 어머니의 가게에 화재가 발생하는 등 우환이 잇따랐다. 당장 홀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꾸리고 두 여동생(바로 밑이 방송인 양희경씨)을 뒷바라지해야 했던 그에게 학업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몰락한 집안의 장녀요 소녀가장’이었다. 유독 부잣집이 많은 가회동 한가운데 사는 동안 집안 형편이 기울어진 것을 두고 그는 “그때 우리 집이 가회동 물을 흐렸다”고 이야기한다.

졸업과 동시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양재학원에 다니려고 생각했던 그를 뜯어말린 것은 동창생들이었다. 학교에서 응원단장으로 인기를 누릴 만큼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던 그는 결국 여고시절의 우수한 성적과 영어웅변대회 최우수상 수상자라는 프리미엄으로 서강대에 입학한다. 일단 학교에는 들어갔지만 길은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회고다.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트윈폴리오의 송창식을 찾아가면서부터였다. 송창식과는 고교 2학년 때 속해 있던 영어회화클럽을 통해 당시 포크의 메카였던 YWCA의 ‘청개구리’에서 얼굴을 알게 된 사이였다. 당시 통기타무대 ‘금수강산’에 출연중이던 그에게 양희은은 대뜸 ‘노래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포크는 물론 가요를 전혀 몰랐던 양희은은 그 곳에서 동요 ‘따오기’와 서양민요 ‘클레멘타인’을 부르고는 ‘오늘 노래한 것을 가불로 달라’고 송창식을 졸랐다. 신문기자나 방송PD가 꿈이었던 대학 초년생은 이 엉뚱하기 그지없는 사건을 계기로 뜻하지 않은 가수의 길을 가게 된다. 그에게 필생의 음악 동반자로 남아 있는 ‘포크의 기린아’ 김민기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양희은과 김민기의 만남은 한국 포크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김민기씨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겁니까? 미리부터 알고 있었나요?

“김민기씨도 YWCA의 청개구리에서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는 도비두(도깨비 두 사람)라는 이름의 듀엣으로 활동하고 있었죠. 언젠가 무대에서 미국 포크그룹 피터 폴 앤 메리의 ‘난 로큰롤 음악이 좋아(I dig rock and roll music)’를 부르는 걸 봤는데 기타를 굉장히 잘 친다고 생각했어요.

그를 직접 찾아간 것은 경기여고 동창생들이 ‘사은 리사이틀’을 준비하던 때였어요. 기타 반주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죠. 물어물어 공연장 무대 뒤로 찾아갔더니 직감적으로 절 알아보더군요. 대뜸 얼굴을 쳐다보면서 ‘너 아버지 없지?’ 하고 묻는 거예요. 아무튼 별난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저와 김민기 김윤태 임문일이 4인방이 되어 늘 붙어 쏘다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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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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