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자도 쉬어 가는 곳’, 식영정의 멀고 가까운 모습
강산을 품에 끼고 부르는 노래
원림(園林)과 정자의 고향. 한잔 술에 겨워 바람과 달과 강을 노래하는 땅. 대나무 소나무 배롱나무에 메타세쿼이아까지, 온갖 나무들이 세상의 번잡을 싱긋 웃으며 둘러쳐 앉히는 곳. 전남 담양의 겨울은 뭘로 감싸지 않더라도 그냥 푸근한 느낌을 준다. 그런 판에 함박눈까지 길손을 맞으니 뺨에 홍조가 도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소쇄원을 찾기 전 식영정(息影亭)에서 우리는 이미 주눅들었다. ‘그림자도 쉬는 정자’라니, 그 멋들어진 이름에 기가 죽고 광주호를 내려보며 무등산을 건너 보는 절경에 넋을 잃었다. 한사코 자기를 쫓아다니는 그림자마저 예선 쉰다니…. 아, 옛 선비들은 몸을 쉰다 함은 명리까지 철저히 쉬는 것임을 어쩌면 이처럼 명쾌하게 밝혀놓았더란 말인가.
조선 명종 15년(1560년), 서하당 김성원은 장인이자 스승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무등산이 건너 보이는 별뫼(성산·星山)마을 산자락에 식영정을 지었다. 그 석천에게 시문을 배우던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도 여기서 함께 교유하며 이른바 ‘식영정 사선(四仙)’ ‘식영정 가단’을 형성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절정의 가사문학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많다마는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낮게 여겨적막 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