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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연금술인가 불안의 제조업인가

양지로 걸어나온 性과학

사랑의 연금술인가 불안의 제조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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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性)은 과학인가. 과학이라면 한국에 성과학은 존재하는가.
  • 한국 성인들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성적 갈등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성과학자들이 말하는 우리 성인남녀의 성과 성생활, 그리고 성과학의 현재와 미래.
사랑의 연금술인가 불안의 제조업인가
‘고비용 저효율’은 한국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은 성생활에서도 ‘고비용 저효율’에 시달리고 있다. 고액의 육아 교육비, 생활비를 지출하면서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성생활을 영위하지만, 그 대가로 얻는 오르가슴은 ‘섹스 선진국’들에 비해 그리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성담론 주도한 성 사건들

한국에서 성담론의 변천은 성과학이 아니라 성사건들이 주도해왔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성담론의 변화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빨간 마후라’, 이승희, ㅇ양비디오, ㅂ양비디오, 서갑숙, 홍석천, 하리수에서 마침내 ‘죽어도 좋아’에 이르기까지 온통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사건들이 그 중심에 있다.

이 사건들은 지배적 성통념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측면도 있었다. 성적 존재임이 애써 부정되었던 청소년과 70대 노인의 성욕 문제, 동성애자라는 성적 소수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유명 여성 연예인들의 성생활에 대한 도덕적 이중잣대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 등 교훈적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도덕적 개탄과 과도한 관음증적인 열기에 휩쓸리면서 그때그때 일회성 사건에 머물렀다.

과거 비공식 성문화를 상징했던 ‘세운상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거대한 인터넷이라는 문화 유입의 통로로 인해 공식 성문화와 비공식 성문화 사이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이 순간 한국의 성과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 과연 ‘이쁜이 수술’이나 음경확대 수술에 능숙한 임상의학 외에 대한민국 땅에 성과학이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성과학(sexology)은 여러 학문 간의 ‘종합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성과학은 성문화를 연구하는 인문분야와 성에 대한 생리현상을 연구하는 자연과학 분야, 그리고 실제 성기능장애를 연구하고 이의 치료를 담당하는 성의학 분야로 나뉜다.

성과학은 학제적 연구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다른 단일 학문들과 비교해 일관된 체계와 엄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제적 방법은 연구자에게 한 분야 전문가 이상의 자질을 요구한다. 암을 진단 치료하는 내과의사들은 의학적 처치법만 알면 된다. 그러나 남성의 발기부전을 진단, 치료하는 성의학자는 성문화와 성심리, 성행동 분야에 대한 상당한 전문 지식이 있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른 전문의들이 환부만 보면 된다면, 성의학자는 섹스할 때 사용하는 그 부분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성과학은 연구의 대상이 인간의 성행동이라는 점에서 고유한 어려움이 있다. 성심리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자인 윤가현 교수(전남대 심리학과)는 성과학자들은 우선 연구자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은 기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자신의 기억을 증진시키기 위해 그 연구를 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동성애를 연구하는 사람에겐 틀림없이 동성애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숨어있을 것이라고, 즉 성연구자는 뭔가 스스로 성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호기심 자극하는 연구는 위험

‘항문 섹스를 해보셨습니까? 성적 쾌감을 목적으로 파트너에게 괴로움을 준 적이 있습니까?’ 이런 문항으로 가득 찬 설문지에 답변하라고 한다면, 성생활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쑥스러워하고 솔직한 답변을 하는 데 적잖이 주저할 것이다. 심지어 ‘한국 남성의 성의식 및 성생활 실태조사’를 주관했던 조성완 전문의(비뇨기과)는 자신도 설문지에 답변을 썼지만, 그 내용을 동료들이 알지 못하게 다른 답변지 묶음 속에 섞어버렸다고 한다.

이처럼 연구의 객체인 응답자의 태도도 성과학 연구에 어려움을 배가시킨다.

또 간과해서 안되는 점은 자발적 응답자들이라도 구체적인 성교 기법 등 특정 항목에 대한 응답을 회피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 게다가 사회적으로 무엇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인가를 염두에 두고 응답을 하는 경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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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철영 자유기고가 nextbook@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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